환경문제와 인간종말을 다룬 책이 모처럼 언론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졌다. 나도 리뷰들을 읽고서야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7)이 문제의 책이다. 타임지에서 이미 '올해 최고의 논픽션'으로 꼽았다고도 하니까 '명불허전'을 기대봄 직하다(국역본도 초스피드로 출간된 셈이군). "어느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이란 상상 자체도 제법 '유쾌'하다. 내가 읽은 기사들을 모아둔다.  

경향신문(07. 10. 27)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이 책(원제 ‘The World Without Us’)이 매력적인 건 이 도발적인 상상력 탓이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에 그쳤을 질문을 인류에게 던지는 ‘묵직한 울림’으로 바꿔놓은 것은 다양한 시공간과 학문을 넘나드는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열정, 명징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 그리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다.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인류와 함께 없어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남길 유산은 무엇인가. 책은 이 같은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 떠난 지적 모험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 키프로스섬 바로샤, 하와이 킹맨 환초(環礁), 한국의 비무장지대 등 세계 곳곳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진화생물학자·지질학자·고고학자·박물관큐레이터·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자가 그려낸 ‘인간 없는 세상’의 연대기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곰팡이가 벽을 갉아먹고, 빗물은 못을 녹슬게 하고 나무를 썩게 한다. 우리가 살던 집들은 50년이면 대부분 허물어진다. 인간이 사라진 이틀 뒤면 습지와 강을 메워 만든 도시 뉴욕의 지하철은 물에 잠길 것이다. 20년 후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이 시대 최고의 토목공사”라고 말한 파나마 운하는 막혀버리고 남북 아메리카는 다시 합쳐진다. 300년 후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고, 삼각주 유역에 세워진 휴스턴 같은 도시들은 물에 씻겨나가 버린다. 1000년 후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 가운데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영불해협의 해저터널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또다른 ‘유산’들이 있다. 인간세상이 18세기부터 과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려면 10만년이 걸린다. 태평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데는 몇 천년, 몇 만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납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가려면 3만5000년, 크롬은 그 두 배의 기간이 소요된다. 인류가 남긴 약 3만개의 핵폭탄의 플루토늄이 자연 상태의 배경 복사 수준이 되려면 25만년쯤 걸린다. 그러고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441개의 핵발전소와 싸워야 한다.

결국 저자가 미래의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가정을 통해 되새기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간 있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아프게 드러나는 건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사실이다. 한 이론에 따르면 인류가 신대륙에 도착할 때마다 마주친 동물들은 전멸당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킬러 본능’만이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존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치명적으로 박탈해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인간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안타까워할까?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 저자는 인간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생물이라곤 이, 진드기, 바퀴벌레, 쥐같이 인간에 기대 살았던 동물들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라지면 오히려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번성할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뜨끔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독자들의 두려움만을 키우는 종말론적 계시록은 아니다. 저자는 답사의 중간중간 상처 입은 지구의 경이로운 치유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생명의 요람인 바다는 인류가 하늘에다 뿜어낸 탄소를 흡수하고 있고, 핵발전소 사고로 오염된 체르노빌에서도 생명은 왕성히 살아나고 있다. 저자는 특히 동족이 원수가 되어 싸우던 지옥에서 수많은 생물들로 넘쳐나는 천국으로 변한 비무장지대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비무장지대 방문 경험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다”라고 밝혔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를 파괴하면서까지 부여잡으려고 애쓴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묻는다. 뭇 생명체들이 그러하듯 인간이라는 생물종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 영원히 남는 것이라곤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전자 신호 정도일 뿐. “창공은 영원히 푸르고,/ 대지는 장구히 변치 않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하나 사람아,/ 그대는 대체 얼마나 살려나”라는 이백의 시가 울림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영리한 책’이다. 환경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해 지적 자극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인간 없는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책이 “딱딱하기 쉬운 과학 논픽션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했다”는 미국 현지 매체들의 극찬을 받은 이유다. 그들의 말을 빌려 모처럼 좋은 책의 전범을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고 말하면 과찬일까.(김진우기자)


중앙일보(07. 10. 27) `인간과 자연, 공생 해법 DMZ에 있다`

환경문제를 다룬 책들은 대체로 공포스럽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시골 마을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점차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버린다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그랬고, 생태계 파괴와 기상 이변 등 지구 온난화의 위험한 결과를 보여주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그렇다.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만지니, 독자 입장에서 유쾌한 종류의 책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이 논픽션은 ‘우울하다’는 기존 환경관련서의 한계를 벗은 신선한 책이다. 점점 망해가는 지구를 묘사하는 대신, ‘어느날 지구상에서 인류가 몽땅 사라진다면’을 가정하고 그 이후 자연의 신비스러운 복원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해 완벽한 지구 부활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그를 전화 인터뷰했다. 와이즈먼은 25일 매사추세츠주(州) 커밍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2003년 11월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던 경험이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50여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곳. 그래서 이젠 반달가슴곰·스라소니·사향노루·고라니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된 곳이다. 그는 “DMZ에서 희귀동물인 빨간 머리 두루미 무리를 발견했을 때 무척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와이즈먼은 DMZ 외에도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과 체르노빌·미크로네시아·아프리카·아마존·북극 등 지구 구석구석을 발로 누비며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확인했다. 또 수백명의 과학자들의 만나 인터뷰하고, 또 수백 권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자료를 모았다. 꼬박 3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는 자연이 어떻게 인간이 남기고 간 것들을 다룰지 유추해 냈다.



그는 “인간이 사라지면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들도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집은 보통 50년, 길어야 100년 안에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지붕과 벽면에 빗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자리잡는 게 출발이다. 겨울철엔 배관이 얼어터지고, 다람쥐·너구리·도마뱀 등이 벽에 구멍을 낸다. 나무는 썩고, 석고보드는 물에 씻겨 땅으로 되돌아가고, 시멘트도 조금씩 부스러져 가루가 된다. 포장된 도로도 엉망이 된다. 땅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갈라진다. 그 틈에서 겨자·토끼풀ㆍ갈퀴넝굴 같은 풀이 자라면서 틈은 더욱 벌어지고 곧 나무도 뿌리를 내리게 된다. 도시에 줄지어 서 있는 건물들은 화재로 무너질 확률이 크다. 20년이면 피뢰침이 삭아 꺾이기 때문에, 벼락이라도 한번 치면 도시가 불타는 건 순식간이다.

물론 자연의 복원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핵은 심각한 위협거리다. 지금 당장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3만 여개의 핵탄두와 441개의 핵발전소가 남는다.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핵탄두가 폭발할 위험은 없다. 대신 포탄의 외피가 부식해 내용물이 노출된다”고 내다봤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속에 들어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4∼9㎏. 그 방사능의 강도가 자연 상태로 줄어들려면 무려 35만년 쯤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래도 와이즈먼은 희망을 내비친다. “생명체가 방사능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는 쪽으로 진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 지역에 사는 들쥐들이 다른 지역 들쥐들보다 수명은 훨씬 짧아졌지만 성적(性的)으로 일찍 성숙해 새끼를 빨리 낳음으로써 개체 수는 줄지 않았다는 게 추론의 근거가 됐다.

그의 계산법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뒤 300년이 지나면 댐들이 무너져 강 유역에 세워진 도시들이 물에 씻겨 나가고, 3만5000년 후엔 토양에서 납이 전부 사라진다. 그가 이렇게 경이로운 지구의 자기 치유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와이즈먼은 저술 동기를 묻자 “이젠 인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연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없겠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절약▶녹색 에너지 개발 ▶숲 파괴 중지 ▶산아제한 등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해법으로 제안했다. ‘산아제한’은 "나흘마다 100만명씩 느는 세계 인구 증가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원 부족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말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해결책이란다. “모든 가임여성이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면, 현재 65억인 세계인구가 2100년이면 16억으로 줄어들어 세상이 나날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그는 “하지만 한 집에 아이 하나씩만 낳자고 요구(require)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부탁(ask)할 뿐이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이지영기자)

07. 10. 27.

P.S. 과문한 탓에 모르고 있었는데, 와이즈먼의 책으론 <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월간말, 2002)이 이미 소개돼 있었다. "'가비오따쓰'는 서구식 근대화에 회의를 느낀 한 무리의 이상주의자들이 콜롬비아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황량한 초원지대에 건설한 계획공동체이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에 선진국에서조차 걸음마 단계에 있던 태양열시대를 활짝 열어 제쳤고, 태양력이나 풍력과 같은 대체 에너지만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가비오따쓰에 모여든 사람들은 서구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찾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한 자신들이 파괴해 버린 인디언 원주민 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기도 한다."란 소개글이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더불어, 그의 신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란 사실도 새삼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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