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어 불어판, 푸코
https://fr.wikipedia.org/wiki/Michel_Foucault
성적 동의 연령에 관하여 Positions sur l'âge du consentement sexuel
1977년 푸코는 장폴 사르트르, 자크 데리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 도본 또는 엘렌 식수와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투사ㆍ지식인 들과 함께 <성년과 미성년 사이의 [성] 관계를 규제하는 몇몇 법적 문건의 개정에 관한 공개서한>에 서명한다. 이 서한은 프랑스에서 15세 이하의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상호] 동의에 입각한 성관계의 합법화 요청을 심의하는 프랑스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이 청원은 또한 (18세를 성적 성년의 기준으로 간주하는) 동성애자에 관련된 차별의 철폐 및 미성년의 구금에 관련된 법률의 명확화를 요청하고 있다.
En 1977, avec Jean-Paul Sartre, Jacques Derrida et d'autres intellectuels ou militantes féministes (comme Simone de Beauvoir, Françoise d'Eaubonne ou Hélène Cixous), Foucault signe une « lettre ouverte pour la révision de certains textes législatifs régissant les rapports entre majeurs et mineurs » adressée au Parlement français dans laquelle est demandée la décriminalisation des relations sexuelles consenties entre adultes et mineurs de moins de quinze ans, l'âge de la majorité sexuelle en France. La pétition demande aussi la fin des discriminations envers les homosexuels (pour qui la majorité sexuelle est fixée à dix-huit ans), et la précision de la loi sur le détournement de mineurs.
1978년 4월 4일, 푸코가 기 오케겜, 장 다네와 행한 관련 대담이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의 프로그램] ‘대화’를 통해 방송된 바 있다. 이 대담은 이후 채록되어, 1979년 4월 잡지 <연구> 37호에 「수치의 법률」이라는 제명 아래 발표되었다. 이후 대담은 [사후에 발간된] 푸코의 글 모음집 『말과 글』에 [같은 제명으로] 재수록되었다.
Un débat est diffusé sur France Culture le 4 avril 1978 avec Guy Hocquenhem et Jean Danet dans l'émission Dialogues. Il est ensuite retranscrit et publié en français sous le titre La Loi de la pudeur dans la revue Recherches no 37 d’avril 1979. Plus tard, il est inclus dans le recueil Dits et Écrits.
기 소르망의 비방과 명예훼손 Accusations et diffamation de Guy Sorman
2021년 자유주의 에세이스트 기 소르망은, 지난해의 비난을 더욱 확장하면서, 푸코가 1969년 부활절 바캉스 동안 [튀니지의 관광지] 시디 부 사이드의 공동묘지에서 어린이들과 성관계를 맺었을 것이며, 따라서 푸코의 작품과 정치적 참여를 자신의 ‘파렴치함에 대한 알리바이’로서 묘사하였다. 이러한 비난은, 구체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트위터는 물론, <에프드수쉬>, <C 뉴스>, <발뢰르 작튀엘>, <르 푸앙>, <미들 이스트 아이> 및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의 미디어에 의해 어떤 기초적인 확인 작업도 없이 대량으로 유포되었다. 이러한 비난은 얼마 후 마을 주민들을 취재한 [잡지] <죈 아프리크>의 탐사보도에 의해 반박되었다. 기 소르망은 명확한 [관련] 증거의 제시를 요구하는 [미디어 비평 전문 사이트] <아레 쉬르 이마주>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였다.
En 2021, après avoir déjà proféré ces accusations l'année précédente, l'essayiste libéral Guy Sorman réaffirme que Foucault aurait eu des relations sexuelles avec des enfants dans le cimetière de Sidi Bou Saïd aux vacances de Pâques 1969 et décrit alors l'œuvre et l'engagement politique de Foucault comme « l'alibi de ses turpitudes». Ces accusations, non étayées, sont alors massivement relayées par des médias sans vérifications préliminaires comme Fdesouche, C News, Valeurs actuelles, Le Point, Middle East Eye et Le Nouvel Observateur, ainsi que sur Twitter. Elles sont peu de temps après contredites par une enquête de Jeune Afrique auprès d'habitants du village. Guy Sorman refuse alors de répondre aux demandes de clarifications d'Arrêt sur images.
소르망은 [독일 시사잡지]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발언이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며, 소문에 입각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이후 (기 소르망에게 직접 질의를 했으며, 기 소르망이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며 축소했던) <렉스프레스>의 기사에서, 필립 슈발리에는 기 소르망의 비난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언의 내용도 자주 바뀌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Sorman admet dans un entretien à Die Zeit ne pas avoir été témoin de ce qu'il a affirmé et s'être basé sur une rumeur. Philippe Chevallier souligne ensuite dans L'Express (après avoir également interrogé Guy Sorman, qui se rétracte et minimise les propos qu'il a tenus) le peu de consistance de ces accusations et le fait que Sorman a tenu des propos variables au fil du temps.
* 저도 궁금하여 관련 전문을 직접 번역해보았습니다.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