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 세 번째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오늘 오전에 쓴 것인데,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 개념에 대해 소개하고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의 결말 부분을 음미해보았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6121 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이 연재를 책과 책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랑의 길’, ‘사랑의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정리하면서 이 ‘사이’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여성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했다.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문학동네, 2010)에서 대리언 리더가 드는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흔한 사례다.

“한 남자가 카페에 앉아서 남녀 한 쌍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는 여자의 매력에 이끌려 그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여자는 좀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여자도 남자에게 끌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남자와 함께 가는 여자를 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 달리 말하면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은 남자 혹은 여자라기보다 그들 간의 관계이다. 저 여자는 남자를 어떻게 자기 짝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25쪽)

리더에 따르면 여자들의 관심은 한 남자나 한 여자가 아니라 ‘한 쌍의 남녀’이다. 여자가 남자의 아파트에 들어가서 처음 하는 일이 남자가 이전에 사귀던 여자의 흔적을 찾는 것이란 지적도 그는 잊지 않는다. 여자는 항상 최선을 다해 삼각관계를 만들며, 이러한 삼각관계가 다른 사람의 욕망을 탐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어수룩한 남자들의 너무도 단선적인 욕망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것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하나의 텍스트는 두 개의 축에 따라 형성된다. 하나는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수평축’이고 다른 하나는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를 연결하는 ‘수직축’이다(‘상호텍스트성’에 대한 개념 소개는 대니얼 챈들러의 기호학 입문서 <미디어기호학>(소명출판, 2006)을 참조. 이 번역서의 원문은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축에 의해 구축되기에 텍스트는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하나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 고립돼 있지 않고 독자적이지도 않다.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맺기의 소산이기에 그러하다(“하늘 아래 새로운 텍스트란 없다”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그래서 미셸 푸코 또한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책, 다른 본문, 다른 문장들과의 관계의 체계 속에 놓여 있다. 책은 그물망의 교차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더 밀고 나가면, 과연 ‘텍스트의 경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가능한 것인지 의문시된다. 텍스트론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 ‘텍스트의 경계’ 개념에 놓인다. 텍스트에 대한 구조분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확정돼야 한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의 경계가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 그것이 텍스트 자체의 성립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호텍스트성 개념은 이 텍스트의 ‘안’과 ‘밖’이 과연 구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구분은 과연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 회의하게 만든다. 챈들러의 표현을 빌면, “텍스트의 경계는 서로 뒤섞여있다. 각각의 텍스트는 여러 장르와 매체를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텍스트공동체’ 속에 존재한다. 어떤 텍스트도 외딴 섬일 수 없다.” (...)  



뉴질랜드 태생의 영국작가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는 생전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를 흉내낸다고 자주 폄하됐다고 한다. 결핵으로 35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사실 또한 어쩌면 같은 병으로 44세에 생을 마감한 체호프를 닮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집 <가든파티>(강, 2010)의 역자는 맨스필드와 체호프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일러준다.

“맨스필드는 체호프의 영향을 받아 플롯이나 캐릭터에 대한 탐구보다는 깨달음의 순간, 균형이 깨어지는 파열의 순간 등을 포착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대에 맨스필드는 체호프와 비교해 폄하되는 일이 더 많았다. 비평가들은 체호프가 넓은 시각을 가진 객관적 관찰자인 반면 맨스필드는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시야가 좁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가든파티를 여는 날 가난한 이웃이 가장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윤리적 갈등에 빠지는 부르주아 처녀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가든파티>까지도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시야가 좁다’는 비판을 받았다면 맨스필드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이 작품의 뛰어난 성취는 무엇보다도 결말에 있다. 주인공 로라는 초상집을 이웃에 두고 파티를 벌인다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가족 누구도 그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천막을 치고 악단까지 부른 파티는 예정대로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파티가 끝난 뒤에 로라의 어머니는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초상집에 보내기로 한다. 이번에도 로라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인지 미심쩍어하지만 음식 바구니를 나르는 일은 그녀의 몫이 된다. 그녀는 이웃에 문상을 가서 시신의 평화로운 모습까지 보고 어린아이처럼 울음도 터뜨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오빠 로리를 만나 흐느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말야.”
로라는 말을 더듬거렸다.
“사는 게……”
하지만 사는 게 어떻다는 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려면 어때. 오빠는 이해하니까.
“참 그렇지, 로라?”
로리가 말했다.(<가든파티>, 강)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가든파티>, 펭귄클래식) 

여기서 로라가 더듬거리며 끝맺지 못한 말은 “Isn't life-”이다. 그녀는 그날 하루 겪은 너무도 대조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감정이 복받쳐서 “인생은 정말-”이라고 입을 열지만 말을 끝맺지 못한다. 인생이 어떻다고 규정짓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걸 보충하는 것이 “Isn't it, darling?”(정말 그렇지?)이라는 오빠 로리의 말이다. 서로 거울상인 이 두 표현이 말하자면 로라와 로리 남매가 합작하여 만든 ‘인생’에 대한 정의다(“인생은 정말, 정말 그렇지.”). 나는 이것을 인생에 대한 맨스필드 자신의 정의라고도 보고 싶다. 그녀의 대단한 성취는 “인생은 정말-”과 “정말 그렇지?”라는 대구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정의 없는 정의(definition without definition)’를 만들어낸 데 있다. 그것은 실상은 아무런 정의도 내리고 있지 않지만, 모두를 ‘이해시키는’ 정의다. 그렇잖은가?

동시에 이 마지막 장면은 대리언 리더가 설명해주는 남녀간 성차의 좋은 사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아이가 특정 음절을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상당수 여자들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끝맺을 수 없음을 불평한다. 남자는 때로 그녀를 위해 대신 문장을 끝맺어주려고 나서지만, 그런 행동은 요점을 놓치는 것이다. 문장을 끝맺지 못한다는 것은 단어에 의해서 고정되기를 주저한다는 뜻이며, 누군가가 특정한 언어적 재현과 등가이거나 동등할 수는 없다는 것, 곧 그가 말한 것 이상의 존재임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실존이 말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남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존을 말로 환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225쪽)

그렇게 보자면, 더듬으면서 마무리 짓지 못하는 로라의 말을 로리가 부가의문문의 형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형식적으로라도 말로 환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위에 값한다. 그래야 작품이 ‘종결’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로라와 맨스필드의 진짜 ‘종결’은 이 작품의 첫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And after all the weather was ideal.)” 여기서 어떤 연속성을 표시하는 접속사 ‘and’의 등장은 작품의 서두로서 파격이다. 그것은 이 ‘텍스트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동시에 뭔가 다르게 읽을 것을 제안한다. 혹은 대조해 읽을 것을 권유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인생은 정말, 정말 그렇지.”와의 대조다. “어쨌거나 날씨는 정말로 완벽했다”는 것! 우리가 정직하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날씨에 대해서뿐인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No matter? 상관없다고요? 

10. 07. 05.  

P.S. 현재 나와 있는 <가든파티> 번역본은 세 종이 더 있다. <원유회>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까지 포함하면 두어 권 더 된다. 번역작품일 경우 작품 분석을 위해서는 대본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조만간 기존 번역본들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창비에서 나온 영국 단편선에 포함된 <가든파티>는 안정감을 주는 번역인데, 첫 문장은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고 옮겼다. 정석이라고 할 만하다('이상적 ideal'이란 말을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도 있기에). 그리고 맨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옮겼다. 

"인생이란 게,"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만 인생이 어떻다는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관이 없었다. 그는 무슨 소린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응?" 로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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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23 11:31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 네 번째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네 번째'라고는 하지만, 지난번에 다룬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에 대한 내용의 연장이다. 이야기는 이 글에서 완결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다리' 정도라고 해야겠다. 작품에 흥미를 느껴다 보면 다시 읽게 되고, 다시 읽다 보면 또 다른 흥미가 생기기 때문에 오래 붙들고 있게 된다. 계획엔 '타자로서의 이웃'이란 테마까지
 
 
스밀라 2010-07-0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 평전에서 울프가 캐서린 맨스필드에 대해 경쟁심을 느꼈다는 구절이 나오더군요. 맨스필드의 소설이 매우 궁금했는데 번역되어 나왔다니 반갑네요.^^ 로쟈님의 글도 참 좋구요.

로쟈 2010-07-06 14:43   좋아요 0 | URL
번역본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저도 <원유회>라고 중학교 땐가 봤었거든요. 최근엔 새 번역본들이 나온 거구요...

미지 2010-07-13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구에 던지시는 질문이 강렬하군요... 그러고 생각해 보면, 옛날에 종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쓸 때는 주로 처음에 그때의 날씨를 먼저 얘기하면서 운을 뗐거든요... 엄정한 자연만이 무상한 삶을 고정해 줄 프레임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쟈 2010-07-13 19:18   좋아요 0 | URL
의미부여를 하자면 꽤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 같아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이번주 한겨레21은 '책 속의 책' 특집으로 '고명섭 기자가 추천하는 인문서 16선'이 실렸다. 지난해 7월부터 올 상반기까지의 출간작 가운데 16권이 선정됐는데, 나는 그 중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산책자, 2009)에 대한 서평을 급하게 청탁받고 썼다. 책을 다시 통독할 시간은 없었고, 작년 CBS 시사자키에서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몇 가지 주장만을 정리했다. 

한겨레21(10. 07. 2) 우리가 기부해야 하는 이유 

“나는 독자 여러분께 바란다. 1천 8백만 명의 생명이 매년 죽어가는 세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덧없이 꺼져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기를!”  

동물해방론자이자 세계적인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산책자 펴냄)에서 던지는 제안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싱어의 대답은 간명하다. 절대 빈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그렇게 남을 돕지 않는 한 우리는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 수 없다는 걸 입증하고자 하며, 우리 모두가 더 많은 소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일깨우고자 한다.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6가지
책의 원제는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이다. 책의 취지에 맞추자면, ‘당신도 구할 수 있는 생명’이란 뜻으로 새겨도 좋겠다. 가령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작은 연못에 한 아이가 빠졌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는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 않다. 단지 며칠 전에 산 새 신발과 양복이 더러워지고 출근길이 늦어질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경우 “그냥 돌아가겠다”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비하면 신발이나 지각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현재의 지구촌 현실이라고 싱어는 말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신발이 젖는다고, 지각한다고 죽어가는 아이를 모른 체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아동기금 자료를 보면, 아직도 매년 970만 명의 5살 이하 어린이가 빈곤 때문에 사망한다. 이들의 목숨 하나를 살리는 데 신발 한 켤레 값 정도밖에 들지 않는데도 말이다. 자주 사서 마시는 생수를 비롯해 외식, 옷, 영화, 콘서트, 휴가 여행, 집 단장에 돈을 쓸지언정 죽어가는 아이에 대해선 모른 체한다고 싱어는 꼬집는다. 물론 그런 ‘무관심’에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싱어는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를 6가지로 분석한다. 인식가능 희생자 효과(눈에 보여야 돕는다), 헛수고라는 생각, 왜 나만 도와야 하느냐는 생각 등이다. 더불어, 우리의 진화적 본성은 다수보다는 특정 개인에, 멀리 떨어진 곳의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더 예민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러한 도덕적 직관이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와 같은 지구공동체 사회에서는 우리의 책임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물론 이제까지 구호의 손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50년 동안 서방 세계에서 구호에 쏟은 비용이 2조 3천억 달러라고 한다. 연간 460억 달러이며, 1인당 매년 60달러를 부담한 것이 된다. 총소득의 0.3%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부에도 아직까지 빈곤 퇴치에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그동안 너무 조금만 퍼주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건 우리 자신의 처지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싱어가 밝히고 있는 한국의 대외 원조 규모는 국민총소득의 0.09%로 유엔이 권장하는 대외 원조액(국민총소득의 0.7%)에 한참 못 미친다.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최하위권에 속하는 미국과 일본도 한국의  두 배 수준이다. 대외 원조에서 한국만큼 인색한 나라도 드문 것이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입버릇처럼 늘어놓지만, 싱어의 말대로 “우리 상황이 최악의 최악이라도, 절대 빈곤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외원조에 인색한 나라, 한국
정부가 더 많은 대외 원조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일 외에도 개개인이 자기 소득의 5%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인 제안이다. 거기에 덧붙여 제도적으로는 적절한 형태의 ‘넛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봄직하다. 가령 봉급에서 일정 비율을 기부의 디폴트(초기조건)로 지정하는 것인데, 우리가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올바른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방책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올바른 행동이란 물에 빠진 아이를 당장은 건져놓는 일이다. 

10.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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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6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6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향신문의 '목수정의 파리통신'은 즐겨 읽는 칼럼의 하나다. 가끔 스크랩을 해놓으려다 짬을 내지 못했는데, 어제 칼럼은 르몽드 관련 칼럼이기에 콜레주 드 프랑스 얘기와 '매치'가 될 듯싶어서 옮겨놓는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두 사람의 사랑 얘기는 칼럼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들이 동성 커플이었다는 것도. 더불어 그들의 미술품 '컬렉션'이 대단하다는 것도. 겸하여, 이브 생 로랑이 <발칙한 루루>(이다미디어, 2007)란 만화책의 저자라는 사실도(1956년 22살 때 그린 유일한 만화책이라 한다).    

경향신문(10. 07. 03) [목수정의 파리통신]르몽드와 새주인 베르제  

팔려간 르몽드지의 새 주인 셋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사람은 피에르 베르제다. 1944년 창간 이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정론지로서의 모양새는 지켜왔으나, 초심을 저버린 지 오래인 르몽드의 쓸쓸한 운명을 애도해줄 아량까지는 없다.  



5년 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러 온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연인 베르제를 보았고, 두 사람의 50년 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1962년, 그는 연인 이브 생 로랑을 설득하여 이브생로랑사를 함께 설립하고, 그들의 신화를 만들어간다. 20대 초반부터 카뮈, 사르트르, 콕토, 앙드레 부르통 등 당대의 지성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는 일찌감치 예술과 좌파의 성향을 뚜렷이 가슴에 새겼다. 이브생로랑사의 직원들은 매년 프랑스공산당이 주최하는 휴머니티축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의 열렬한 지지자이던 베르제는 81년 미테랑 집권 이후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광범위한 재정지원을 펼쳐왔고, 88년부터 5년간 국립오페라 바스티유극장의 디렉터로 극장을 이끌기도 했다.

99년 동성애자들의 합법적인 연대를 공인하는 팍스법(PACS·시민연대계약법)이 통과하자, 오랜 연인인 이브 생 로랑과 팍스에 서명했다. 성소수자 연대의 활동가로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며, 에이즈퇴치운동협회를 창립하여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다.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을 지지한 것처럼,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와 맞서 싸운 사회당 대통령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적극 후원했다. 불확실한 훗날을 위해 양쪽에 고루 떡값을 묻어두는 기업들의 행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죽은 후, 그는 두 사람이 함께 모으고 소장해온 예술품 700여점을 경매에 내놓았다. 둘이 함께 아끼고 감상하던 예술품들이 혼자 남은 그에겐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다는 설명과 함께. 당시 경매에 나온 작품 중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군에게 도난당한 두 개의 청동상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환을 요청했고, 베르제는 이렇게 답했다. “중국 정부에 이 청동상들을 당장 돌려줄 수 있다. 그들이 인권선언을 적용하고, 티베트인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며,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허용한다면.” 제국주의를 반성할 줄 모르는 서구 자본가의 오만이란 비난과, 티베트와의 분쟁으로 비난을 사던 중국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는 상반된 평이 뒤따랐다. 평생 그랬던 것처럼.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창업자이며, 좌파 정치가들의 확고한 후원자, 사회운동가이며 또한 공연예술 경영자이기도 했던 그는 한 아름다운 남자와의 전설적인 사랑을 나눈 연인으로서 가장 눈부시게 빛난다. 명예와 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절멸시키지 않고, 자신의 가슴을 타오르게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명예와 부를 이용할 줄 알았기에. 얼마 전, 죽은 연인에게 바치는 저서 <이브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간한 그는, 사르코지의 손아귀에 들어갈 뻔한 르몽드를 구출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속한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보탠다. 르몽드를 공공자산으로 여긴다는 선언, 편집권의 완전 독립, 경영진 결정에 대한 기자협회의 거부권 보장과 함께.

사회당을 돕고 르몽드를 구해내는 일이 세상을 변혁하는 일에 직접 기여하지 못한다 해도,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한 한 남자의 굽힘없는 삶을 지켜보는 일은 신선하기만 하다. 

10.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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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un 2010-07-04 21:11   좋아요 0 | URL
뜬금없는 얘기라 죄송하지만 저번에 알아보시던 에밀 번역본 중 어떤 것이 가장 괜찮았나요?

로쟈 2010-07-04 21:13   좋아요 0 | URL
대조해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한길사판으로 구했습니다. 그것도 두 종이지만, 조금 저렴한 걸로요.^^;

Sati 2010-07-04 21:13   좋아요 0 | URL
오트쿠튀르와 좌파라... 프랑스의 매력이 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로쟈 2010-07-05 08:47   좋아요 0 | URL
네, 일종의 '프랑스식'이라고 해야겠네요.

카스피 2010-07-04 22:38   좋아요 0 | URL
“중국 정부에 이 청동상들을 당장 돌려줄 수 있다. 그들이 인권선언을 적용하고, 티베트인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며,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허용한다면.”이라 정말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가 한 짓을 모르는 정말 오만 방자한 말이군요.병인양요에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도 우리가 인권선언을 안해서 안돌려 주는 건가요 3:<

로쟈 2010-07-05 08:49   좋아요 0 | URL
요즘 같아선 민간인 사찰도 대놓고 하는 국가라서 그런지도요...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명성이 높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이 방한하여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미셸 푸코와 피에르 부르디외 등 명망 있는 최고의 학자들이 모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일반 대중을 위해 강의를 한 바 있다. 조금 부럽기도 한 학제인데, 인터뷰 기사를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현직 총장이 보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서울신문(10. 07. 03) “대학은 서비스입니다” 

“상아탑 안에 갇힌 엘리트들만이 공유하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소통하고 새로운 지식을 나누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과 교수의 진정한 존재 가치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집단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의무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 기초학문 경시 아쉬워”
한국을 처음 찾은 코르볼 총장은 국내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열기에 놀라워하면서도, 기초학문을 경시하는 풍토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유럽의 대학들은 기초부터 순차적으로 연구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대학에서는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더 높이 사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이런 대학 문화는 응용과학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코르볼 총장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존재 이유를 ‘지식의 전파’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설립 당시 프랑스에는 소르본대학으로 대표되는, 바깥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지식인들만의 대학’이 있었다.”면서 “이 같은 틀을 깨고 대학과 교수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학교가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1530년 설립된 콜레주 드 프랑스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걸쳐 모두 52명의 석좌교수가 몸담고 있다.

●연구 성과 시민들에 강의 의무화
석좌교수들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연구에 대해 공개강의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점이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수업료도 없다. 지난해에만 무려 12만명의 시민들이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하는 강의를 들었다.  

서울신문(10. 07. 03) “교과서의 죽은 학문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지식을 가르친다” 

프랑스 지성의 전당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볼 총장은 콜레주 드 프랑스가 프랑스 지성을 상징하게 된 이유로 ‘융통성과 역동성’을 꼽았다. 연구영역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학문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고 학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교수들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를 듣는 것은 ‘교과서 안에 있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석학들이 직접 연구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지식’을 듣고 싶어 하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는 올해부터 한국 기초기술연구회와 함께 국제협력활성화사업을 진행한다.

●융통성·역동성이 최대 장점
→콜레주 드 프랑스가 5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비결은 어디에 있나.
-1530년 설립 당시의 정신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르본 대학을 비롯한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들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닫힌 연구를 했다. 이들은 기초과학이나 언어학 등은 학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대중을 우매한 존재로 여겼다. 콜레주 드 프랑스는 이런 엘리트들의 인식을 깨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완전히 열려 있는 대학, 지식을 나누는 대학의 의미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는 공짜이고, 강의내용에 대한 저작권도 없다. 애플 앱스토어에 올려진 무료강의는 지난 한 해에만 500만시간 넘게 다운로드됐다.

●엘리트의식 깨기 위해 설립
→노벨상, 필즈메달 등의 수상 실적에서 규모가 수백배 큰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비견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구방식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융통성과 역동성을 꼽을 수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들은 강의 주제를 정하는 데 있어서 외부 간섭으로부터 100% 자유롭다. 가능성만 있다면 어떤 접근방식도 용인된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학문의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도 동기부여가 된다.

●1시간 강의 최소 2주 준비
→많은 대학교수들이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연구중심대학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들은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프랑스나 미국의 다른 대학교수들도 같은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는 기존 대학과 다르게 학위과정이 없다. 교수들이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얘기다. 교수들은 시민을 상대로 강의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강의 준비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1시간의 강의를 위해서는 최소 2주 이상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KAIST, 연세대, 이화여대 등 한국 대학을 방문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고, 유럽 대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은 첫 방문인데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연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열의는 정말 뜨거웠다. 유럽 대학과의 차이는 연구를 대하는 가치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를 중시해온 유럽에서는 D를 가기 위해서는 순차적으로 A, B, C를 거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권의 대학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위험성이 높은 연구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박건형기자) 

10. 07. 03.  

P.S. 프랑스 축구는 최강의 자리는 진작에 내놓았지만, 콜레주 드 프랑스 같은 프랑스식 교육제도는 아직 세계 최강인 듯싶다. 인상적인 건 두 가지다. 이 교육기관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이 철저하게 '지식의 전파'에 놓여 있다는 것. 때문에 모두 시민에게 개방돼 있고, 저작권도 없다. 말 그대로 지식의 '코뮤니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실제 효과. 연간 12만 명이 강의를 듣고 무료강의는 500만 시간 넘게 다운로드 됐다는 것. 우리에게 이에 견줄 만한 게 있다면 EBS 수능방송 정도가 아닐까. 혹은 EBS의 지식채널? 5분 분량의 지식을 50분, 100분 분량의 '사유'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 그것이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국가는 이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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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2010-07-04 10:18   좋아요 0 | URL
과거에 김용옥 교수의 TV 강연도 있었죠, 그 이후에 몇몇 TV 강연 프로그램들이 생겨났지만, 그때처럼 파격적인 시간대에 편성되어 이목을 집중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그것을 인기에 영합하는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열기는
누군가를 기점으로한 "자신의 열망의 확인"에 다름아니었습니다. 모두들 김용옥이라는 한 개인의 강연을 들으러갔지만, 강연이 끝날 무렵 저마다 마음 속에 다른 열망들을 품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면 끔찍 했겠죠,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열기와 열망 자체였습니다.
앞으로 또 언제, 이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훌륭한 석학이 그처럼 대중들을 향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연을 하는 날이 오게될지..........

로쟈 2010-07-04 16: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지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있는 것이죠. 그걸 모른 체하는 대학과 정부가 있는 것처럼...

푸른바다 2010-07-04 19:50   좋아요 0 | URL
파리에 갔다가 콜레주 드 프랑스를 굳이 찾아 간적이 있었습니다. 문이 굳게 잠궈져 있어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요. 소르본 대학(지금의 파리 1대학) 뒤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그 좁고 차도 별로 많이 다니지 않는 듯 보이는 길에서 바르트는 어떻게 차에 치게 되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봤답니다.^^

로쟈 2010-07-04 20:32   좋아요 0 | URL
그런 교육기관을 세우는 게 한국에선 불가능한 건지 궁금해요...
 

이번주에 출간된 가장 놀라운 인물 평전은 마쓰모토 겐이치의 <기타 잇키>(교양인, 2010)다. 저자는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문학과지성사, 2010)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일본의 평론가. <기타 잇키>(2004)는 30여 년에 걸친 그의 기타 잇키 연구의 결정판이라 한다. 국역본의 분량만 1220쪽.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다른 책들처럼 '문제적 두께'를 자랑한다(히틀러와 스탈린, 괴벨스 등의 평전이 포함돼 있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기타 잇키>는 1936년 일본 전역을 뒤흔든 2.26 쿠데타의 정신적 지도자 기타 잇키의 삶과 사상을 끈질긴 추적과 철저한 고증으로 되살려낸 전기이자 역사서이다. 쿠데타의 배후라는 이유로 역사의 무덤에 깊숙이 매장당한 기타 잇키는 박정희와 5.16 쿠데타의 사상적 배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기타 잇키는 2차 문헌에서만 몇 차례 이름을 접해본 인물인데, 이 책을 통해 그 '거대한' 실체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일본 사상계의 천황 마루야마 마사오는 기타 잇키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한다. “기타 잇키의 <일본개조법안대강>은 쇼와 시대 초국가주의 운동의 <나의 투쟁(Mein Kampf)>이었다.” 그 <일본개조법안대강>도 마땅히 소개되면 좋겠다. 이럴 땐 대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기타 잇기>는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인데, 겸사겸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히틀러와 괴벨스를도 기회가 닿는 대로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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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잇키-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
마쓰모토 겐이치 지음, 정선태.오석철 옮김 / 교양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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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2- 몰락 1936~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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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권력
로버트 서비스 지음, 윤길순 옮김 / 교양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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