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의 때문에 신촌에 나갔다가 홍익문고에 들렀는데, 메모를 해두지 않아서 미처 구하지 못한 책이 있다. 하영식의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 2010)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는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시베리아 기행기다. 무려 일곱 차례나 시베리아를 찾았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지만, 현재로선 독서 경험만으로도 더위를 얼마간 덜어보고 싶다(오늘은 태풍이 지나간다고 하니 좀 시원하려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국민일보(10. 08. 27) “시베리아 7차례 여행하며 찾아낸 키워드는 자유”…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 펴낸 하영식씨 

시베리아로 추방됐던 러시아 정치범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르마크! 왜 시베리아를 정복해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예르마크는 16세기 시베리아 왕국을 정복한 해적 출신 러시아 장군이다. 시베리아 정복 직후 시작된 죄수들에 대한 유형 제도는 20세기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잔존했다.

‘남미 인권 기행’의 저자 하영식(45·사진)이 이번에는 시베리아 이야기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을 펴냈다. 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시베리아의 ‘뜨거운 역사’를 기행문 형식으로 담아냈다.

“러시아를 여행하며 학자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어요. 하지만 시베리아나 데카브리스트(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자유주의자들)의 역사가 별로 알려진 게 없어 역사기행 형식으로 쉽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추위와 도스토예프스키 정도밖에 떠올려지는 게 없는 곳이지만, 러시아인에게 시베리아는 혹한의 압제에 맞선 투쟁가들의 삶이 가득한 역사의 현장 그 자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가 펴낸 불멸의 문학도 시베리아라는 척박한 땅 없이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가 시베리아를 7차례 여행하며 찾아낸 키워드는 ‘자유’. 특히 19세기 러시아의 급진적 엘리트였던 데카브리스트들이 시베리아에 남긴 유산에 관한 서술이 눈길을 붙잡는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주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러시아군의 젊은 장교들이다. 이들은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파리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혁명을 거친 근대 유럽을 보았고 자유를 알았다. 그때껏 농노가 전 국민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러시아 사회만 보던 이들에게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개가 귀족 출신으로서 가만히만 있으면 기득권을 움켜쥐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들은 1825년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이들 중 다섯 명을 처형하고 121명을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저자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데카브리스트들은 물신주의로 가득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생’의 가치를 전해준다”고 말했다.

실패한 혁명 이후 100년간 절대군주의 압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러시아의 역사를 따라가노라면 책상에 책을 펴놓고 앉아 ‘만약’을 읊조리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푸쉬킨과 미국으로 망명을 오라는 솔제니친의 제의를 평생 거부했던 파스테르나크 이야기도 가슴을 울린다. 가벼운 기행문으로 시작했다가 역사의 뒤편 깊숙한 곳까지 들춰내는가 하면, 어느덧 풍경에 대한 감상을 비치는 저자의 자유로운 서술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박노해 시인으로부터 ‘지구 시대의 슬픈 여행자’라는 말을 듣기도 한 하영식의 다음 목적지는 티벳이나 아프리카가 될 예정이다. 그는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며 “티벳에 갈 계획을 세워는 놨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책 말미에는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양진영 기자) 

10. 09. 02. 

 

P.S. 시베리아에 관한 책들이 간간이 출간되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리처드 와이릭의 <너의 시베리아>(마음산책, 2010)가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가 딸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시베리아에까지 갔던 경험을 담고 있다. 일종의 여행기. 감수자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콜린 더브런의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까치글방, 2010). 얼마 전에 소개한 책인데, 후배에게 부탁한 원서도 마침내 구한 김에(아직 입수까지 한 건 아니지만) 읽어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더브런의 책은 제임스 포사이스의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2009)와 함께 리처드 와이릭이 참고한 책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필히 챙겨둘 만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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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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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0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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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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