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로쟈의 인문학서재'(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11/021162000200711290687031.html)를 옮겨놓는다.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 출간을 빌미로 그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몇 자 적은 것이고 한 문단은 예전에 쓴 글에서 따왔다. '한나 아렌트'가 '해나 아렌트'로 표기된 건 한겨례의 표기원칙에 따른 것이다(나로선 동의하기 어렵지만). 파르테논 신전의 사진은 마음에 든다... 

한겨레21호(07. 11. 29) 人間을 들여다보라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정치사상가라 할 만한 해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푸른숲 펴냄)은 지난 1975년 세상을 떠난 그의 유고 중 하나다. 책은 국내에 먼저 소개된 <전체주의의 기원>(1951)과 <인간의 조건>(1958) 사이의 유고들을 주로 모은 것이다. 대부분이 반세기 전에 쓰인 글들인 셈이지만 여전히 정치의 의미와 정치적 사유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럼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 그는 <인간의 조건>에서 ‘관조적 삶’과 대비되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로 나누었는데, 거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행위인데, 이는 ‘정치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을 때, 그가 말한 ‘준 폴리티콘’(zoon politikon)은 실상 ‘정치적 동물’로 번역되어야 하며(‘사회적 동물’로 번역한 이는 로마의 세네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 ‘정치적인 것’의 발견(혹은 발명)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함께-함의 형식을 탐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 하기 위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이다. 정치에서 다루는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의 ‘인류’나 단수로서의 인간(man)이 아니라 복수로서의 인간(men)이다. 즉, ‘인간’이 아니라 ‘인간들’을 다룬다. 아렌트가 보기에 철학과 신학은 항상 단수의 인간과 관계하기 때문에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하지 못한다(따라서 ‘정치철학’은 모순형용이다).

정치란 인간들 ‘사이에서’, 혹은 단수의 인간 ‘외부에서’ 생겨난다(사실 한자어 ‘人間’은 이미 이러한 관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의 근본은 인간의 복수성(human plurality)에 대한 인정과 긍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진리와 무관하다. 가령 우리는 2×2=4인가, 아니면 2×2=5인가의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는다. 지구가 도는지 마는지를 배심원들의 판결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후보를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같은 문제는 정답, 즉 진리를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 의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행위란 이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복수의 행위자들이 하는 공동행위, 즉 함께-행동함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장이 그리스의 ‘폴리스’였다. 아렌트의 지적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롭다는 것은 폴리스에서 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며, 거꾸로 폴리스에서 살기 위해 인간은 이미 자유로워야 했다. 즉, 본래적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은 권모술수의 인간이 아니라 ‘자유의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렌트는 자유가 정치의 의미라고 말한다.

따라서 정치란 무엇보다도 자유에 대한 권리 주장이며 그 행사이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고 흔히 오해되는 그리스어 ‘이소노미아’(isonomia)가 뜻하는 바 또한 모든 사람이 법적 활동을 동등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에서는 폴리스, 곧 정치의 공간에서만 가능했다. 폴리스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자유의 공간으로서 ‘폴리스’가 있는가? 우리는 노예가 아닌,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정당하게 향유하고 있으며 또 적합하게 행사하고 있는가? ‘정치적 인간’ 대신에 ‘경제적 인간’이, ‘정치’ 대신에 ‘정치공학’이 득세하고, 후보들의 정책공약이 아니라 ‘BBK’ 같은 금융사기 사건이 국민적 (무)관심사가 되고 있는 즈음인지라 ‘정치의 약속’에 대한 아렌트의 사유와 ‘정치로의 초대’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적 구호들은 난무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정치가 부족하다.

07. 11. 30.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람혼 2007-11-30 13:17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기고문들만 읽는 것으로도 숨이 가쁩니다. 각각 따로 챙겨서 읽지 않아도 여기 오면 거의 모두 읽을 수 있으니, 좋은 글들에 항상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형용모순으로서의 '정치철학'이라는 단어,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너무도 부족한 정치'에 대해서 숙고해봐야겠습니다. 물론 숙고만으로 풀릴 일은 아니겠지만요! ^^

로쟈 2007-11-30 13:42   좋아요 0 | URL
'숨가쁠' 정도는 아닙니다.^^; 말씀대로 숙고로 풀릴 일은 아니고 '정치적 행위'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냥 찍는 행위로는 부족한...

李潤映 2007-11-30 22:09   좋아요 0 | URL
폴리스에 산다는 것과 자유를 동일 시 하는 아렌트의 생각의 관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가 궁금해지는군요. 인간자체를 본질적으로 자유로 보는 견해와는 사뭇 다르게도 느껴지는 데, 아렌트의 생각이 너무 정치일변도로 인간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인간이 무엇이냐를 생각한다면 아렌트의 말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수긍이 가지 않는 면도 업지 않지만, 과연 복수로서의 인간만을 생각한다면 궁극적으로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들기도 하구요. 여하튼 재미있는 글이었읍니다.

로쟈 2007-11-30 23:21   좋아요 0 | URL
제 어줍잖은 중개보다는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장 쉬운 입문서론 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책세상)이 있고, 이번에 두툼한 전기도 나왔기 때문에 아렌트 읽기는 매우 용이한 편입니다...

송연 2007-12-01 10:27   좋아요 0 | URL
폴리스에서 산다는 것은 평등한 발언의 기회, 즉 행위가 이뤄지는 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래서 행위한다는 것은 결국 자유를 경험하는 또다른 표현일수 있겠네요. 인간 자체를 본질적으로 자유로 보는 견해도 맞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자유개념과 다른 '정치적'자유를 아렌트는 의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정치적이라는 표현도 현실정치를 넘어서서, 좀 더 확장된 존재론적인 의미로서 이해하시면 좋을것 같구요. 복수로서의 인간만을 아렌트가 생각한다는 표현은 조금은 이상한것 같기도 한데요... 단수로서의 인간은 개인 각자의 '고유성', '다름'등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결여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으로 그녀가 복수성 개념을 꺼낸것이구요... 제가 대충 아는데 까지만 어설프게 답변을 드리긴 했는데 로쟈님 말씀처럼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더 정리가 잘 되실듯 하네요..;;

로쟈 2007-12-01 11:5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단수로서의 인간은 신학적 인간이고 철학적 인간인데, 그런 면에서 정치적 인간과 대조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행위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체험되고 확보될 수 있다고 보는 점이 아렌트의 의미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밀실에서의 자유' 같은 건 아렌트가 보기에 유사-자유일 따름이죠)...

swk516 2008-02-02 00: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십니까, 김선욱입니다. 오랜만에 클릭클릭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지젝을 얼굴로 쓰시는군요. 제게도반가운 얼굴입니다. 번역은 했지만 깊이 읽고 써 주시는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정치와 진리>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8-02-03 11: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젝과는 대담도 하셨으니까 반가우실 만하겠습니다.^^ 저야 좋은 책을 내주시는 역자/연구자분들께 감사를 드려야죠. 아렌트에 대한 제 이해는 많은 부분 김선생님께 빚지고 있는 것이고요.^^
 

이번주 시사인에 실린 칼럼(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6)을 옮겨온다(실명 칼럼이다). 시사인에도 가끔 북리뷰를 싣기로 했는데, 첫번째 책으로 내가 고른 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이다. 당초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글을 청탁 받았지만 적어도 고등학생은 돼야 읽을 수 있을 듯하여 원고를 보낸 후에 찜찜했었는데(가령 '헤게모니의 봉사자'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말끔하게 편집되어 있어서 그런 찜찜함을 씻을 수 있었다. 기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편집담당자가 집어넣은 사르트르의 사진이다. '사팔뜨기 사르트르'의 모습이 지식인의 이중적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듯해서. 우리 주변에서 갈수록 '사팔뜨기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시사인 11호(07. 11. 26) '지식인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는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에 관한 ‘고전적’ 정의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1966년 일본 강연에서 내린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분명 비난의 어조를 담고 있는 부정적 정의이지만 사르트르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어떤 명분을 내걸면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전문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남용’하는 부류들이다(예컨대, 번듯한 직함을 달고서 이런저런 지면에 칼럼을 ‘남발’하는 자들이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은 이런 부류의 역사적 운명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한 상념에 한 가지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지식인의 종언’ 담론이다(그리고 최근 한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다). 그것이 유행어가 되었다면 이제 지식인이란 부류가 역사의 무대에서 모두 퇴장했거나 퇴장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까? 일견 그런 듯 보인다. 한데 이 종언의 사태를 부추기는 것이 자신의 명성을 남용할 수 없을 만큼 지식인들의 형편이 더 열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두둑해졌기 때문이라면? 오늘날 지식인의 입을 막는 국가의 손은 더욱 커지고 자본의 발은 더욱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다시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본성적으로 약자’였다. 그 자신이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않기에 경제 또는 사회 권력을 갖지 못하며 따라서 지식인이란 ‘무능하고 불안정한 자’이다. 지식인은 일단 기식인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도덕주의와 이상주의는 그러한 무기력한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진단이다. 그가 말하는 ‘무기력한 상황’이란 무엇인가? 지배 계급에 대한 예속적 상황이다.

양심선언은 지식인 시대의 흔적

지식인은 ‘실천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이지만 이런 전문가가 모두 지식인이 되는 건 아니다. 즉 그러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지식인의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지배 계급은 ‘실천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에게 두 가지 역할을 가르치고 강요한다. 하나는 지배적 헤게모니의 봉사자의 역할이고, 상부 구조의 관리자 역할이 다른 하나다. 즉, 이들에게는 지배 계급의 가치관을 전파하면서 그와 대립되는 가치관은 타파하는 기능이 부과되는 것이다. 지식인이란 이러한 예속적·기생적 상황에서 탈피하여 ‘숙주’로서의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고 저항할 때 탄생한다. 알다시피, 이러한 반항의 신화적 형상이 프로메테우스이며, 지식인의 시대는 그러한 프로메테우스들의 시대였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달라진 듯하다. 지식정보사회, 지식경영시대의 지식인은 더 이상 ‘불만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적어도 ‘지식 자본을 가진 자’로서 새롭게 규정되는 지식인은 ‘단지 봉급으로만 생활하는 자’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의 허세는 언제부터인가 위세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지식인의 종언’은 지식인의 불우한 처지가 아니라, 배부른 처지를 이르는 말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는 ‘실천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점점 더 발을 빼기가 어려워진 시대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무겁다.” 

사실 지식인의 사회적 위치는 모호했다. 지배 계급도 아니고 피지배 계급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무능력하면서도 불안정한 위치의 ‘모호함’이 지식인의 계급적 토대였다. 하지만 오늘날 ‘지식 계급’은 단일한 대오가 아니다.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노동 계급이 단일한 대오를 구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인의 위치는 더 이상 모호하지 않으며, 각각의 지식분자들은 지배 계급이나 피지배 계급으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지식인, 혹은 ‘약자’가 아니고자 하는 지식인이 득세할 때 ‘지식인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사회는 이들이 비워놓은 자리를 다만 ‘사이비 지식인’(혹은 ‘집 지키는 개’)들로 채워놓을 따름이다. ‘지식 계급’은 ‘지식층’으로 용해되고, ‘지식층’은 또 자연스레 사회 ‘지도층’으로 편입된다. 이것은 애도할 만한 일일까? 그나마 아직은 ‘양심 고백’과 ‘지지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지식인 시대의 흔적을 다행스러워해야 할까?

07. 11. 29.

P.S. 이번주 한겨레21에도 '한국 지식계의 위기'를 질타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의 '지식인은 아무도 없는가'(http://h21.hani.co.kr/section-021067000/2007/11/021067000200711290687029.html)이다. '지식계'란 용어가 눈길을 끈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사르트르를 발가벗기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01 23:45 
    '지식인의 지식인'을 다룬 기사를 옮겨놓고 나니 20세기 원조 지식인이라고 할 사르트르에 관한 평전 소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르트르 세대 이후 가장 '대중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베르나르 알리 레비가 쓴 <사르트르 평전>(을유문화사, 2009). 역자는 사르트르 전문가인 변광배 교수다. 968쪽에 달하니까 얼추 안니 코헨 솔랄의 세 권짜리 평전 <사르트르>(창, 1993)에 이어서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2007-11-2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9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지막이 학교에 나오는 길에 점심은 오천원짜리 순대국밥으로 때웠다. 학교식당에서보다야 비싼 점심이었지만 '국밥'은 왠지 '때웠다'와 잘 호응할 성싶다. 덕분에 조간신문 기사들을 두루 읽었다. 특히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기획기사 '2007 한국인의 자화상'(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f055)을 '눈물나게' 읽었다. '어린 가장들'을 다룬 기사였다. '죽음으로 내몰린 양극화 절망'이란 1면 기사에서 이미 41분마다(하루 36명) 자살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자살자의 대부분은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하니 실상은 '사회적 타살'이란 지적을 읽은 터였다.  

조금 인용하면 이렇다: "1970~80년대에 전태일 열사와 대학생들은 민주화와 사람답게 살 권리 쟁취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생활고·장애·산재 극복 등 최소한의 삶의 질 보장을 요구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화 투쟁 20년을 맞은 한국의 참담한 현주소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사회에 남겨진 것은 ‘20대 80’이라는 양극화다. 하위 30%는 한푼도 저축할 수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미래도 희망도 약속할 수 없는 삶이다. 양극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승자독식, 1등지상주의, 신자유주의의 구호 속에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경쟁에서 낙오된 패배자 정도로 치부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성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과 그 대선후보들은 성장중심의 경제공약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잘못된 현실인식에서 나온 잘못된 해법이다. 하층민을 대표해야 할 진보정당은 가치실현을 위한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이어서 읽은 게 여고생 김정은양 이야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0281747391&code=210000)와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17세 안재우군 이야기이다. TV 프로들에서도 자주 접하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얼마간은 대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자화상으로 김정은양의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그와 대조적인 사설과 함께. 졸렬한 공무원들에 관한 사설이다.

경향신문(07. 10. 29) 어린 가장들-혼자 사는 여고생 김정은양

“가끔씩 학원 다니기 싫다고 투정하는 친구들 보면 ‘내가 대신 가줄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갈 때가 있어요. 저는 수업 시간에 절대 자지 않아요. 졸릴 때는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어요. 정말 피곤하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요. 그리고 속으로 몇 번씩 나 자신과 이야기 하죠. ‘이거라도 듣지 않으면 나는 배울 기회가 없다’ ‘수업시간에 잠깐 졸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다’…”

김정은양(16)은 새벽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친구들을 과도한 입시경쟁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을 때 피식 쓴 웃음을 짓는다. 돈이 없어 학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정은이에게는 학원 강의 듣고 새벽별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게 소원이기 때문이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한창 멋을 부릴 여고 1학년. 하지만 지난 24일 경기 수원의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만난 정은이는 생각이나 말씨가 ‘완벽한 어른’이었다.

“반 친구들은 저를 ‘정은이 형’ ‘정은이 형님’ ‘정은이 이모’ ‘정은이 엄마’라고 불러요.”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요즘 10대들에게 인기있는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아니다. 요즘 10대들은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노래를 듣는 순간 김광석에게 끌렸어요. 김광석의 잔잔한 노래가 제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노래를 듣다보면 김광석이 왜 자살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루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늘 동경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

10대 소녀가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훌쩍 어른이 돼 버린 사연은 김광석의 노랫가락만큼 애절하다. 정은이의 부모님은 7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다. “경찰로부터 부모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어요. 믿어지지 않았죠. 이상하게 처음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6살 아래 동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동생에게는 ‘엄마 죽었대’라고 담담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정은이는 평생 흘릴 눈물을 그날 모두 쏟았다. 동생이 잠든 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밤새 울었다. 정은이는 “그후로 한번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아 남아야 했고,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은이는 동생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생기 발랄함을 잃지 않았던 정은이도 동생 이야기에는 표정이 굳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정은이와 동생은 대구에 있는 숙모와 살았다. 숙모는 남매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다. 정은이는 숙모에게 많이 맞았다. 숙모가 가방을 던져서 연필 심이 머리에 꽂힌 적도 있다. 아직도 흉터가 있다. “잦은 폭력 때문에 24시간 내내 ‘경계태세’를 갖추고 살았어요. 당시 저는 비쩍 마른 채 반 미친 상태로 하루하루를 이어갔죠. 5년간 구타를 견뎠어요. ‘절대 무너지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수만번 기도를 했어요.”

정은이는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대를 가게 돼 방 하나가 비게 되면서 지난해 수원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동생을 두고 온 게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있다. 정은이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동생을 양자로 보내야 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양자로 들어갔으면 지금쯤 잘 먹으면서 잘 살았을 수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정은이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동생과는 가끔 e메일을 주고받아요.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요.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 ‘동생이랑 같이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어요. 동생은 내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인도자예요. 저는 ‘부모가 없어서 저런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정 섞인 말을 하면서 연락하라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도와준다는 사람이 몇번 있었는데 말뿐이라는 것을 알아요.”

정은이는 지금 60대 할머니가 혼자 사는 아파트의 조그만 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자 정은이는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정은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밥 먹는 것도 눈치를 준다고 했다. 정은이는 세들어 사는 집에서도 구박을 받고 있었다. 정은이는 “할머니가 ‘매일 약속 없냐, 누구는 여기 살 때 음식도 많이 사들고 왔다, 전깃불 함부로 켜 놓고 물쓰지 마라’며 잔소리를 매일 늘어 놓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은이는 주인 할머니 세탁기도 사용할 수 없어 교복을 직접 손빨래하고 있다. 정은이의 손바닥은 가사에 지친 40대 주부마냥 거칠었다. “시험 기간 동안 밤 늦도록 공부하기도 쉽지 않아요. 할머니가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눈치를 줘요. 할머니가 그러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요. 가난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정은이의 한달 생활비는 5만원이다.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 중 일부를 숙모가 매달 보내주세요. 그렇지만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정은이에게 5만원은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학생들의 용돈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 돈으로 밥도 먹어야 하고, 문제집도 사고, 교통비로도 사용해야 돼요. 가끔 학교에서 장학금 10만원이라도 받을 때는 사고 싶었던 문제집을 왕창 사요.” 정은이는 “책값이 너무 비싸 절망적이다”고 말했다.

정은이는 그래서 꾀를 냈다. “수학 문제집을 한권 사서 책장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노트에 그대로 정리해서 풀고, 완전한 새책을 다시 팔았어요. 책값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요. 그렇지만 정말 새책인데 1000원도 안쳐주더라고요. 그래도 덕분에 헌책을 사서 공부하면 되겠다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정은이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 주인 할머니 눈치 때문에 밥을 밖에서 사먹느라 돈이 더 들어간다. 아침에는 주로 1000원짜리 ‘칼로리 바란스’를 먹는다. 살을 빼기 위해 먹는 다이어트 식품이 정은이에게는 주식인 셈이다.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보통 분식으로 해결한다.

부모 없는 가난한 소녀에게 학교 생활은 쉽지 않다. 특히 과제물을 컴퓨터 워드 문서로 제출하라는 숙제는 정말 힘들다. “선생님들 생각이 잘못돼 다들 집에 컴퓨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5만원으로 1개월을 버텨야 하는데 컴퓨터 살 꿈은 엄두도 못내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PC방을 가요.”

일부 선생님의 편견도 견디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는 한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정은이가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 화가 정말 많이 났다. “선생님에 대한 복수심이 일었어요. 선생님 말을 더 안들었고,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어요. 다른 애들은 때리면 부모님이 항의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 거리낌없이 때리는 것 같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만난 지금의 담임 선생님은 그에 비하면 천사다. 선생님과 진로도 상담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정은이는 “지금까지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교칙같은 거 한번 어겨보려는 친구들 보면 한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친구들에게 ‘그러지 마라’고 충고도 자주 하죠. 친구들이 음식점에서 밥 남기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요. 친구들은 저보고 ‘60년대 아줌마’라고 놀리지만 애들이 나중에는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가난과 폭력, 사회의 편견에 정은이는 지금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성적이 됐지만, “요즘 세상은 내성적일수록 손해보는 게 많다”는 이치도 깨달을 만큼 성숙했다. 정은이는 밝게 보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다. “저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정은이 삶의 신조도 ‘나부터 잘하자’다. “내가 잘해서 남에게 피해 안주는 게 남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정은이의 꿈은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거예요. 하지만 여기 저기서 들리는 취업난 이야기 때문에 겁이 나요. 대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는데….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지금 사는 곳에서 나와 방을 얻고, 그 즉시 동생을 수원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에요.”

정은이는 부모 없는 아이를 동정적으로만 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부모가 없어서 의지할 사람은 없어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시는데 나에게 그 시간이 빨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부모 없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닌데, 주위에서 가엾어 하는 시선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신 걸 숨기게 되거든요.” 정은이는 맑은 웃음으로 붙임성 있게 재잘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그 웃음에는 혼자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가 묻어 있었다.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

경향신문(07. 10. 29) [사설] 대학생 리포트 베껴 연수보고서 낸 공무원들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낭비성, 놀자판으로 흐르는 것은 왜 일까. 한마디로 감독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무슨 일을 해도 상부에서는 알 길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없으니 실컷 놀다 와도 괜찮다는 생각이 공무원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귀국후 내는 보고서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 저기 남의 것을 보고 짜깁기해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행정자치위 김기현 의원이 행정자치부와 경찰청 직원들이 제출한 해외연수보고서를 분석해본 결과 이런 부실·표절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행자부 공무원이 제출한 ‘2006년 제2기 선거제도 해외연수보고서’는 앞부분이 인터넷에 있는 900원짜리 대학생 리포트와 토씨까지 똑같았다. 괄호속 영문 및 숫자표기나 ‘~함으로써’라고 써야할 문구를 ‘~함으로서’라고 맞춤법이 틀리게 쓴 대목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일자 일획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서 낸 것이다. 경찰공무원이 낸 연수보고서 역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1200원에 살 수 있는 대학생 리포트와 말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사실상 같았다고 한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문서를 베껴놓고도 버젓이 귀국보고서라고 제출한 것이다.

이들이 유독 강심장이어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들의 선배 동료들이 엉터리 보고서를 써도 사후에 검증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공직사회의 경험칙이 그런 표절 행위를 낳았을 것이다. 얼마전 감사원이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벌인 국외여행 실태 감사에서 그런 분위기가 확인된 바 있다. 이미 종료된 국제기구 행사에 참석한다며 출장을 떠나 관광만 하고 돌아온 경우, 자료수집이란 같은 명목으로 수십명이 특정 도시를 수차례 반복적으로 방문한 경우 등 사후 검증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있을 수 없는 놀자판 출장·연수 사례가 수없이 적발된 것이다. 공무원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의 감독 시스템 부재를 꾸짖지 않을 수 없다.

07. 10. 29.

P.S. 비록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정은이의 장래가 그렇게 어두워보이지만은 않는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정은이 이모' 성격에다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녀의 자산일 것이기 때문이다(김광석의 '일어나'를 정은양에 대한 선물로 링크해놓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6lx1JHZ63T0). 요컨대 정은이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비록 현실은 노예 같은 삶일지언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됐다. 거기에 비하면 사설에서 꼬집고 있는 양심불량 공무원들이야말로 '천박한 노예들' 아닌가? 연구보고서로 대학생들 리포트나 베껴내는 인생들이 무사안일 호의호식하며 사는 사회라면 비전 없는 사회다(공공기관 개혁에 관해서는 강준만 교수의 칼럼 http://h21.hani.co.kr/section-021128000/2007/05/021128000200705310662073.html 참조). 그래도 이 정도 굴러가는 것이 언제나 미스터리하긴 하지만. 여하튼 정은이의 10년후, 20년후의 모습에 기대를 건다. 우리가 아주 엉터리 같은 사회에 살았던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으면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경 2007-10-29 18:12   좋아요 0 | URL
철밥통 속 나이 값 보다 어린 김정은양의 산전수전 돋보이네요. 주변에서 공무원 고시 준비하라는 소릴 많이 듣는데, 공무원 만큼은 정말 되기 싫더군요. 아직은 미덥지 않아서 그단 소리나 듣는 저도 반성할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저도 꼴값은 안떨어야 할텐데.

로쟈 2007-10-30 00:15   좋아요 0 | URL
책읽는 공무원이라면 리포트 베껴내진 않겠죠.^^

마늘빵 2007-10-29 22:45   좋아요 0 | URL
제 이번 추천은 로쟈님이 아니라 정은이를 향한거에요. ^^

로쟈 2007-10-30 00:14   좋아요 0 | URL
네, 정은이는 추천받을 만합니다. 아니 표창을 줘야죠!..

테렌티우스 2007-10-30 02:31   좋아요 0 | URL
음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아동학대하는 어른들을 보면 살인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는 ...

유교 이데올로기 때문에, 예를 들면, 부모 살해보다 더 끔찍하고 더 비인간적인 자식 살해, 어린이 살해가 덜 주목받는 우리나라...

인간의 고통을 필터링하여 그 고통을 못 느끼도록 혹은 선택적으로 공감하게 만들고 훈련시키는 이 도덕이라는 놈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여하튼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

정은이 화이팅입니다!!!^^

로쟈 2007-10-30 13:57   좋아요 0 | URL
'동정 없는 세상'이라는 걸 이미 아는 아이니까 잘해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뭉실이 2007-10-30 23:45   좋아요 0 | URL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라는 정은양의 마지막말이 저를
반성하게 하네요. 봄의 새싹같은 그마음이 주위로도
쭈욱 퍼저갈것같아요 ^^

로쟈 2007-11-01 21:23   좋아요 0 | URL
실상은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요...
 

학술저널 담비에서 고대대학원신문 창간 20주년 기념인터뷰를 옮겨온다. 고대 명예교수인 김우창 교수와의 인터뷰이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MAIN&rsec=MAIN&idxno=6763). 주된 화제는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 최근에 출간된 <백낙청 회화록>(창비, 2007) 중의 일부를 읽으면서 생각해본 화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로 학문을 한다는 것', 한국의 인문학도들이라면 내내 끌어안고 씨름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우창 교수의 대답은 좀 '낙관적'이다...

고대대학원신문(143호) "학문은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2007년 10월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0일 고려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산하 편집부에서 창간을 하게 된 본지는 민주화 항쟁 이후 급박하게 전개돼 온 한국사회의 변동에 대학원생들이 스스로의 학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 능동적으로 참여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결집해 만들어진 자치활동의 산물이다.

본지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창간 2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한국인문학의 거장’이자 본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인 김우창 교수를 만났다. 교수신문의 지적처럼(2002년 10월호) 김우창 교수는 우리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가운데 한명이다. 그의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민음사 刊)이 출간된 1978년 이후, 김우창이라는 텍스트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내면에 사유의 자양분으로 쌓여왔다. ‘심미적 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은 개성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며, 그 보편적 결론으로 다가가는 과정이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자는 먼저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커다란 주제 중에서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주목했다. 현재 한국에서 '학문의 장'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을까? 평상시 원우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나 그간 대학원 생활을 하며 느낀 점들을 생각해보았다. 대략 3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째,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 둘째, 시장가치 물신화, 셋째, 학문의 미국화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과 시장가치의 물신화, 미국적 시각 및 사고방식의 내면화 문제와 직접 대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은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
기자는 먼저 김우창 교수에게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의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김 교수는 대학원생정도 되는 사람들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의해서 사고가 좁아지면 안 된다며 더 이상 냉전반공주의는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자의 질문이 학문의 범위를 좁힌 것이라 지적했다.

"반공이든, 친공이든 이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회, 인문과학입니다. 자연과학과 의학은 그렇지가 않지요. 자연과학이나, 공학, 의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회, 인문과학도 마찬가지지만 바로 경제논리에 학문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나 맹목적으로 시장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열린 형태의 학문 수행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장가치 추구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한국사회 특히나 학문의 장에도 스며들고 있는 현실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수입을 올릴 수 있거나, 단기적인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는 연구프로젝트에 집착하여 대학원생들을 동원하고 있다. 대학원이 점점 국가나 기업의 '프로젝트 하청공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구자는 당연히 자신의, 현실의 삶, 생활 속에서 문제의식을 제기, 발전시키고 그에 대한 엄밀한 고찰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돈이나 상징자본의 획득을 위해 대부분 현실과 괴리되어, 자신의 문제의식과는 상관이 없는 방향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자의든, 타의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국에서 '죽은 학문', '화석화된 문제의식'등이 득세하는 것도 이런 경향들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

학문에 특정관점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
김우창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운영, 지배하는 하나의 조류일 뿐이고 이보다 포괄적인 개념이 바로 경제논리, 시장논리인데 이것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 교수는 경제적 관점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 나름의 커다란 의미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실용적인 경제관점에서 진리탐구를 재단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장가치를 말하기에 앞서 목적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문은 총괄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정 관점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김 교수는 여러 차례 역설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신자유주의는 분명 우리사회, 사고를 좌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세계까지 그것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전체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강제력에 의해서 집행되는 체제가 아니죠. 신자유주의 자체에 직접적인 강제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현실의 문제를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분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면 그에 순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김우창 교수는 수사적으로, 표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자신의 책임들, 우리가 실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연구기금을 위해 하는 연구
'시장가치의 확장'문제와 관련지어서 김 교수는 학문의 이니셔티브는 연구기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에서 나와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구자는 자신이 중요시하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국가는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추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연구를 하는 이들을 찾아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거에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모든 것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학술진흥원 같은 곳도 이미 프로젝트 주제를 정해놓고 입찰을 받는 식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에 연구기금이 따라야 하는데 연구기금에 연구가 따르고 있습니다. 잘못된 거죠."

그는 옛날 시골훈장의 사례를 들며 요즘의 세태를 비판했다. 훈장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명으로 했고, 경제적 수입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훈장이 돈을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 경제 제일주의에서 벗어나자.
위의 맥락에서 김 교수는 한국에서 모든 행동을 정당화라는 논리가 두 가지 있다며 그것이 ‘민족주의’와 ‘경제성장’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부국강병'의 논리가 여러 곳에서 지배적인 가치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본교가 영국 타임지 선정 세계 150대 대학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의 명예차원에서 사안을 볼 뿐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우석사건'은 이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사례이다. 국가의 명예나 기대되는 경제적 가치에만 주목한 채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진리탐구라는 이슈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학문은 인간과 진리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통해 이러한 국가, 경제제일주의를 뛰어넘어 이를 초월할 수 있는 여지를 갖아야 한다.

"민족주의와 경제성장의 논리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심각한 사고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학문의 엄정성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세상에 크게 해악을 끼칠 일도 민족과 국가, 경제성장의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어요. 학문을 하는 이들은 이러한 논리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기자는 한국에서의 '학문의 미국화'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미국학문에 종속되어 미국박사만이 숭상되며, 한국의 현실을 한국의 눈으로 설명하는 '자생적 이론의 부재'문제를 그간 여러 차례 느꼈기 때문이다. 김우창 교수는 기자의 질문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며 중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엄격한 사고에 입각한 객관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 그 자체에 국가적인 편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박사냐 한국박사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체적인 균형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김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논문의 질에 대한 엄정한 평가이다. 학문성과에 대한 선입견 없는 구체적인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대이론이 사라진 이유
논의의 범위를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대한 강조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것으로 넓혔다. 근래에 들어 학자 중에 '대가'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이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또한 더 이상의 '거대이론'역시 출현하지 않고 있다. 개별 학문 분과를 넘나들 수 있는 사고력과 철학적 깊이를 갖춘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학문 분과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즉 학문의 분과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내지 지형으로 고착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과거와 같은 거대 이론도 출현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전공한 김우창 교수에게 '거대이론', '대가'의 부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 교수는 두 가지를 이야기 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발전에 따른 소비사회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먼저 공산주의의 몰락을 언급했다.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몰락이후 사회를 고쳐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역사 그 자체를 설명하는 이론은 소멸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를 비롯한 많은 혁명가들이 공유했던 '역사는 발전한다'는 개념자체에 대한 회의가 커져버렸다. 또 한편에서는 자본주의는 여전히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이고, 생태적인 문제와 연관지어서 지금 '서구의 선진사회가 과연 살만한 사회인가?'인가 하는 자각이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이론이나 새로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이제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후 서구에서 자본주의발전에 따른 소비주의 사회가 등장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비의 유혹이 커지면서 생각은 흔들리고 사물을 크게 보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즉 창조적인 관점에서 자기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문제가 새로 발생하면서 사는 보람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고요. 어찌 보면 푸코나 알튀세르 같은 당대의 이론가들도 역사와 더불어 움직이지 않은, 소비주의에 맞춰 들어간, 소비주의에 충실한 사회이론가들이라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작은 실천이다.
김 교수는 거대 이론은 사라졌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가르침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삶을 충실히,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과 보람을 약속해주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중요한 것이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들도 매우 소비적이고, 또한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실천,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입니다. 비 온다고 비 탓만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개인적인, 사회적인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대 담론에만 주목하면 안 되죠. 이론과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소비주의, 판타지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작지만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라는 큰 이론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죠." 

기자는 다른 이도 아닌 평상시 다른 이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 김우창 교수의 지적이기에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주변의 이른바 '강단좌파'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실제 삶과 유리된 학문내지 사상이라는 것이 어떠한 위험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누구나 머리만 좀 좋고, 약간의 노력만 한다면, 좌파이론가들의 이름과 저작, 이론들을 줄줄 꿸 수 있고, 이는 실제로 그들에게 남들과 구별되는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신의 실존적 삶 내지 현실역사와 유리된 앎이라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모르니만 못한 것이다. 잘 모르는 이들은 적어도 어딘가에 가서 혹세무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김우창 교수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고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학문은 무엇보다도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라 역설했다. 연구자는 항상 자기가 추구하는 분야에서 참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시장가치나 민족주의와 같은 것이 현대를 지배하는 중심적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에 자신의 학문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문의 기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헌신과 도덕적 성실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경제주의나 출세주의가 지나치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굶어죽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것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아까 훈장이야기를 했었죠?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목적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연애하다보니까 종족이 번성되는 것이지 종족 번성을 위해서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무릇 대학원생들은
김우창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학문의 기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열린 사고를 갖되, 엄격하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해오고, 학생들을 지도해왔던 스승의 입장으로서 후학들인 대학원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에 '빠져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둘째, 대학원생들은 장래의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김 교수는 두 가지의 방안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학문에 몰두하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정책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학문발전을 위해 일정부분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직업을 잡는데도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교수 비율의 문제를 생각해보죠. 교수의 숫자를 늘려서 교수들이 연구나 강의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건 제가 예전부터 계속 교육부에 건의를 했던 것인데요, 교육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간섭은 안하더라도 대학교원의 수급상황에 대한 통계는 발표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료가 있어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학원생의 수급을 적절히 조정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이 학생들을 일단 많이 뽑으려 합니다. 경제논리를 따르는 거죠. 교육부에서 이런 통계를 발표해서 교원-학생 수급에 따라 학생 수를 조정하는데 일조를 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일을 안 하고 있어요."

셋째, 공부를 하는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에 대한 소명감이 있어야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은 공부를 단순한 직업(job)이 아닌 하나의 부름(calling)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기자에게 졸업가운의 의미를 아는지를 물어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김우창 교수는 졸업가운은 과거 신부들의 수도승 복장과 유사한데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그럴 정도의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사실은 '소명으로서의 학문'으로 번역되어야 할)을 인용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고 너무 세속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앞서나가는 것을 참고 견디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가난도 감내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을 참아내야 하고 연구비는 정말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야 한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마지막으로 본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고 대학원장을 역임한, 고려대학교의 스승이라는 입장에서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김 교수는 비록 전보다 유혹은 많아졌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정열이나 공부하는 마음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앞서 자신의 말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덧붙였다.

"학문을 하는 이들은 냉정하게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베버가 언급했듯이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소명의식을 가진 이들이 해야 합니다. 연구자들의 취직문제는 정부가 앞서 이야기한 일들을 하며 해결노력을 해야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저는 외국유학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눈을 돌려 직업시장을 넓힐 필요도 있습니다. 비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목민처럼 살 각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학교는 건물이나 외양에만 치중된 시설투자는 그만하고 공부를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설투자가 아닌 공부투자가 절실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 시간 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는 김우창 교수와의 대화들을 음미해 보았다. '인문학의 거장'이라는 그에 대한 찬사답게 그의 말과 주장들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한 것 같으면서 강한 메시지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의 말은 잘 음미해 보면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찌 보면 누구나,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은 아는 것과 행동의 일치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기자는 매체나 주변을 통해 들은, 그가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는 검소한 삶을 떠올리며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진정성에서 나오는 '말의 힘'을 느낀 것이다.

김우창 교수와 한 시간 여 동안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 후 기자는 마치 책에서나 읽었던 완숙기의 '막스 베버'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자의 짧고 얕은 공부로는 막스 베버나 김우창 교수 사상의 정수나 인식론, 삶의 철학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학문은 무엇보다도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김 교수의 주장, 일체의 결정론이나 단정적 태도, 이데올로기를 배격하고 사물의 다차원성을 강조하는 것, 공부를 하는 이들은 반드시 소명의식을 가지고 엄격하면서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주문은 기자의 짧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막스 베버의 풍모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07. 10. 2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10-27 09:34   좋아요 0 | URL
"첫째,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에 '빠져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둘째, 대학원생들은 장래의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 셋째, 공부를 하는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에 대한 소명감이 있어야 한다."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저로서는,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러워집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수능점수 상위 몇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고, 이로 인해 첫번째 또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 자꾸만 딴 곳을 바라보게 되니깐요 - 세번째는 그래야하는 당위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군요. -_-

로쟈 2007-10-27 10:39   좋아요 0 | URL
모든 당위가 그렇듯이 실천은 쉽지 않지요.--;
 

어제로써 대략 이번 대선 출마자들이 정해진 듯하다. 후보 통합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현재 출마를 선언하거나 정당 후보로 선출된 이들끼리의 통합일 테니까 더이상의 '변수'는 없어 보인다. 자칭 '키보드 워리어' 한윤형군의 표현을 빌자면 "바야흐로 구렁이들의 전쟁이  도래했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005161917&s_menu=정치). 이번 대선이 지난 97년때보다 덜 흥미를 끄는 것은 경선 구도가 너무 뻔하게 굴러가는 탓이기도 하다. 한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을 계속 얻는다면 경선의 의미가 무색해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물론 최종적으로는 50만표 안팎의 승부가 될 거라고도 하지만). 거꾸로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그 50% 지지율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를 지지하는가? 그게 '반盧'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데, 박노자 교수가 그래도 설득력 있는 분석을 해놓았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자영업자들이다. 그리고 '1970년대 신화'이다.

한겨레21(07. 10. 09)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오슬로대학에서 ‘한국 사회·정치’ 수업을 할 때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 중의 하나는 극우적 색채가 강한 보수의 대표자 이명박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근대적 노동계급이 다 형성된데다 비정규직화와 같은 최근의 사회 재편으로 근로 인구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됐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부자들의 대표’가 계속 50% 안팎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은 필자에게 배우는 노르웨이 학생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과연 가장 보수적인 곳이 아닌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

△박정희를 떠올리게 하는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의 이미지, 박정희를 계승한 개발주의적 발상들은 이명박 대선후보의 주된 상징적·이념적 자산이다. 그가 선거에서 성공할 확률은 높지만, 그의 개발주의적 처방으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생 문제들을 어차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사진/ 연합 손대성)

독자적인 대중적 좌파 정당이 발달되지 못한 미국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 중심부 내지 준중심부 국가 중에서는 일본과 한국만큼 사회주의적 진보세력이 약하고 극우가 강한 데가 없다는 게 이 질문의 요지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총선에서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함께 약 12%의 표를 얻었으며, 한국에서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의 표를 얻었지만, 유럽에서는 좌파가 20∼30% 미만의 표를 얻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다 이명박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처럼 고정적으로 일부 노동자 사이에서까지 ‘선풍적 인기’를 누리는 극우 정치인을 찾기가 힘들다. 왜 하필이면 한국과 일본이 지구의 정치학적 지도에서 온건 좌파 지향의 유럽, 급속히 급진화돼가는 중·남미와 대조가 되는 상대적 ‘친미 보수 권역’을 이루게 됐는가?

노르웨이 5% 대 한국 34%

학계에서 자주 지적되는 한·일의 상대적 보수성의 원인 중 하나는, 자영업자 인구가 비교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북유럽 도시 풍경과 한국 도시 풍경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한국의 무수한 식당과 가게, 상가 건물들이다. 노르웨이 같으면 정반대다.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필자 입장이 난감해지는 이유는, 오슬로대학을 벗어나서 적어도 20분 정도 걸어야 비로소 괜찮은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소규모 가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소매업 시장의 99.3%를 네 개의 큰 독점 기업(체인점)이 독차지하는 노르웨이에서는 ‘가게를 내서 장사에 성공했다’는 유의 이야기는 이미 ‘머나먼 과거의 동화’ 취급을 받는다. 전체 비농업 부문 피고용자에 대비해 비농업 자영업자가 5%도 안 되는 노르웨이에서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안정된 소득의 임금 근로자들이 맹목적 ‘성장’보다 차라리 재분배 위주의 정책에 더 쉽게 합의한다.

반면에 무급 가족까지 포함해서 자영업자들이 전체 취업자의 34%를 이루는 한국이나 16%를 이루는 일본에서는, 당장의 자금 흐름이 문제가 돼 ‘경기 회복’을 약속하는 극우파의 감언이설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생산 수단을 소유하면서도 착취 대상이란 자신과 가족,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 빼고 별로 없는 중간 규모 이하의 자영업자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이중적 존재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진정한 자본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자신들과 몇 명의 주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기 변동에 따라 늘 도산 위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변화가 없는 호경기’를 찾다 보니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주된 지지 기반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유럽 역사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운하 건설’을 위해 예산을 대대적으로 풀어 경기 부양을 도모한다고 해도, 적자를 보거나 월 평균 100만원 이하의 소득밖에 못 올리는 285만 명의 영세 자영업자(전체 자영업 인구의 약 37%)들의 사정이 과연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일 도산해 생계 기반을 잃을지도 모르면서 사는 이들로서는-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의 많은 영세업자들처럼- 차라리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좌파를 지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대 체인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이르는 지방 영세상인보다는 서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민주노동당의 주된 지지 기반은 조직화된 숙련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지만, 일본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은 노동자의 지지까지도 부진해 거의 고학력자들의 표에 많이 의존한다. 늘 민중을 부르짖고 민중에 호소하는 좌파가, 민중의 많은 계층으로부터 고립돼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사회심리적 요인들이 크게 작용한다.

극단적 소극성 속에서도 ‘적하’된 것들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산업자본주의는, 영국에서는 거의 150∼160년 동안, 독일에서는 약 130∼140년 동안 발전돼왔지만 일본에서는 그 연륜이 90년에 불과하고 한국에서는 아예 30년밖에 안 된다. 후발 주자인 한·일에서 국가와 재벌 주도로 중화학공업 건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노동자들과 중간계층 소득 사이에 학력과 부동산 보유에 따르는 격차가 벌어지기도 하고 도·농 격차, 재벌과 중소기업 고용자 사이의 격차 등 온갖 불균형과 불평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배자들이 불가불 성장의 일부 과실들을 ‘밑’으로 전달시켜야만 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이는 노조들을 순치하고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 상황에서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 정권이 민생 문제 해결의 시늉이라도 보여주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59년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고, 1961년에 농민과 자영업자까지 가입할 수 있는 국민연금을 완비하고, 1970∼80년대 정부의 총지출에서 복지 지출 비율을 거의 3배(1970년대 초반의 6%부터 1989년의 18%까지) 올리는 등 유럽식 사민주의자 없이도 복지사회의 기본은 마련됐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일선 노동자에게 장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연공서열식의 임금 인상 제도와 ‘능력에 따르는 승진’을 모토로 내세운 고과제도, 그리고 약 150만 고용자 가구가 살고 있는 저렴한 임대료의 사택(社宅) 제도를 만드는 등 우파 조합주의적 ‘노사 협력’의 분위기를 부추겼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는 일본의 복지제도가 유럽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가족과 같은 기업’은 어디까지나 개별 노동자의 무력함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호도하는 허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의 빈곤과 불안의 악몽을 보수주의자들의 집권 밑에서 벗어난 경험을 가진 일본 민중의 상당 부분이 자민당 정객들을 ‘시혜자’로 인식하는 것은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박정희가 일본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끝내 하지 않는 등 복지 부문에서 일본과 대조되는 극단적 소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그도 반독재운동의 대중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주도한 초고속 축적의 일부 과실이라도 ‘밑’으로 적하(滴下)해야 했다. 예컨대 1971∼84년 새마을운동에 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약 4조원에 이르는 등 당시 경제 인구의 약 45%를 이루는 농민층에 대한 민심 무마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도·농 간의 소득 격차가 심했지만 정부가 쌀 수매가를 꾸준히 매년 10% 이상 올리고, 경제성장의 결과로 비농업 부문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상황에서 농촌에서 영세농가의 비율이 감소돼 ‘중농화’ 경향까지 나타났다. 물론 노동자의 실질임금 연례 증가의 폭(8%)은 중산계급 소득 증가율에 비해 부족했지만,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평균 한 달 식료품 비용을 넘어 공장에 다니는 사람에게 드디어 배불리 먹는 삶이라도 가능해진 것은 역시 초고속 개발 시절인 1970년이었다.

자기 땅 한 뼘이라도 갖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롱하듯이 1960∼70년대 내내(1972년과 1973년만 제외하고) 연평균 지가상승률이 25∼50% 정도를 기록해 부동산 보유자들이 안정된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의 통계에 의하면 부동산 보유자의 총수는 1100만 명 정도 됐다. 전 국민의 4분의 1은 건설 부문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토건 경제의 수혜자가 됐으며, 수혜자 반열에 끼지 못하는 상당수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죽기 전에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보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게 된 것이다. 가난뱅이들이 박정희가 설계한 사회 모델을 혐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그들은 박정희 대신에 ‘능력이 없어서 남처럼 잘살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

문제는 대권 쟁취 그 다음

‘부자의 후보’ 이명박은 수많은 가난뱅이들의 표를 동원할 만한 상징적 자원, 즉 ‘박정희를 떠올리는 1970년대 자수성가형 경영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단순히 기아를 면한 것부터 지가 상승으로 떼돈을 벌어 대학 교육·취직 기회 확충으로 출세에 성공한 것까지 ‘수혜’ 정도가 다양하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1970년대에 빚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물질적 삶의 개선이 기반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거기에다가 애국주의부터 ‘실패자는 무능력자다’ 등의 성공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박정희 시절의 온갖 국가주의적·자본주의적 관념에 그대로 포섭되고 말았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종교, 지역, 계급, 고용형태별로 분열돼 고질화된 갈등 속에 고착돼 있는 한국 사회에 ‘1970년대의 신화’는 거의 유일한 통합 기제로 작동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명박이 대권 쟁취에 성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1970년대는 초고속 개발과 함께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으며, 4∼5% 이상의 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오늘날에 이 불평등은 계속 악화일로로 심화됐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든 여권이 기적적으로 정권 유지를 이루어내든 앞으로 5∼10년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계급 갈등들이 폭발의 지점까지 확실히 갈 것이다. 그때에 가서 좌파 세력들이 노동계급과 영세민의 투쟁을 이끌어 이 사회에 믿을 만한 평등·복지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적 신뢰를 받아야 우리가 비로소 죽은 독재자의 망령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미국, 일본과 함께 가장 보수적 사회’의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07. 10. 16.

P.S. 우연히도 아침에 읽은 강준만 교수의 칼럼 또한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칼럼은 '보완'하는 의미에서 같이 읽어둠 직하다.

한국일보(07. 10. 17)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가 최근 <한겨레 21>에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었다. 감사의 뜻으로 박 교수의 논지를 좀 보완해볼까 한다. 박 교수에게 배우는 노르웨이 학생들은 '극우적 색채가 강한 보수의 대표자 이명박'이 높은 지지를 받는 걸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며, 그래서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가장 보수적인 곳이 아닌가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 질문에 공감하면서,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4%로 매우 높다는 점을 들었다. 자영업자는 경기변동에 따라 늘 도산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호경기를 선호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 유권자에 자기 정치성향 있는가
박 교수는 자영업자 비율이 7%대인 미국은 '특별한 경우'로 보면서 일본도 자영업자 비율이 16%로 비교적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일본의 16%는 영국의 12%나 독일의 11%에 비해 높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므로 한국의 높은 비율만 문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영업자들의 경기에 대한 민감성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는 타당한 일면이 있지만, 이는 지난 대선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이전에 더욱 중요한 건 한국 유권자들이 과연 자기 이익 중심으로 정치적 성향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진보-보수'의 그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다. 한국적 특수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치솟은 게 잘 말해주듯이, 남북분단은 꼭 보수의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높은 대외의존도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수출ㆍ수입액의 비율이 88.6%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 운운하는 표현이 잘 말해주듯이, 한국인들은 높은 대외의존도에 대해 만성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 불안감을 보수적이라고 표현하기엔 처지가 너무 절박하고 상흔이 너무 깊다.

둘째, 반작용 쏠림현상이다. 한국인들은 정치 불신ㆍ냉소가 강해 '포지티브 투표'보다는 '네거티브 투표' 성향이 강하다. 지지보다는 반감 표현에 능하다는 뜻이다. 이명박 지지율은 꼭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 정권과 더불어 '3년짜리'를 '100년짜리'라고 사기친 세력을 처벌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서울공화국 체제'로 대변되는 1극 집중 구조가 자주 유발하는 쏠림이 일어난 것이다.

셋째, 높은 감성 의존도다. 감성이 이익 계산보다 앞선다. 위선을 필요 이상으로 혐오한다. 보수파가 하면 괜찮을 일도 개혁파나 진보파가 하면 펄펄 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한국 진보세력의 주요 구성원인 대기업 노조를 어떻게 생각할까?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의 다음과 같은 고언에 공감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다면, 과연 누구의 보수성을 탓해야 할까?

● 대외의존도와 쏠림 현상 때문
"민노당이나 민노총을 보자. 대한민국 1,500만 노동자의 10%도 안 되는 귀족형이다. 그 10%도 다 재벌기업, 보수기업, 공기업, 언론, 교사, 병원 등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종사자들이다. 1,000만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 1,000만 명에 육박한 비정규직을 위한 조직도 사실상 없다. 민노당, 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지만, 자기 것을 내놓으려고는 안 한다. 내 건 빼앗지 말고 소수에게, 권력자에게, 자본가에게 저들(비정규직)을 위해 더 내놓으라는 식이다. 유럽을 봐라. 자기 근무 시간 줄이고 하면서 같이 하지 않는가."(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댓글(3)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from 텅 빈 세상에 2007-10-19 13:15 
    위선을 필요 이상으로 혐오한다
 
 
biosculp 2007-10-17 12:29   좋아요 0 | URL
동의하기 힘든점이 초고속개발로 인해 극심한 불평등이라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부 이전이 상하 격차가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 적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격차가 민주정부들어 더 심해졌고. 선진국의 경우 공무원이 비율로 우리보다 10% 높습니다. 자영업자 비율이 줄어든면 그비율 그대로 공무원으로(복지파트로)흡수 되는 꼴이죠.
지금 연금, 보험료 등등 따지면 세금으로 30%정도 내고 있고. 여기에 중산층들 자녀교육에 소득의 20%이상 들어가고 주거비 이자까지 합치면 선진국에 내는 세금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데요.
좌파우파애기 이전에 나라 운영 잘(이게 힘들지만)만 하면 극우인 명박이 아래에서도 잘 살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박노자 애기. 명료한것 같기는 한데 현실과 유리된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7-10-17 15:55   좋아요 0 | URL
강준만 교수의 칼럼도 옮겨놓았습니다.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현실과 유리'에서 그 현실은 '한국적 현실'일 테니까요...

마립간 2007-10-19 11:17   좋아요 0 | URL
일부의 글을 저의 서재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