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전철역에서 사든 '시사IN'에서 옮겨놓으리라고 찜해 놓은 기사는 '건강불평등'에 관한 특집기사이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8). 계기는 물론 최근에 출간된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8)이고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013968). '복습'하는 의미로 기사도 읽어두기로 하자(책은 못 읽더라도).

시사인(08. 04. 01) 미국인 건강 순위 25위의 의미는?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보건 시스템도 반드시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이치로 가와치 교수의 말이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최부국이자, 각종 신약 개발이나 의학 신기술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이다. 미국 사회가 보건 의료에 지출하는 돈은 약 1700조원(2003년)으로 국민총생산의 15%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균 수명과 사망률을 기준으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건강 올림픽’에서 미국은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29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그해 국민소득이 미국의 10%에 불과한 코스타리카는 25위, 국민의 영양 상태를 걱정해야 하는 쿠바는 30위였다.



미국 사회가 직면한 천문학적인 의료비 지출과 국민 건강 수준 사이의 끔찍한 불균형은,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자는 미국 사회의 고민과 맞물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의료 현실을 풍자하는 역작 <식코>를 지난해 내놓았다. 마이클 무어는 손가락 하나 봉합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어가고, 아이가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자기들과 거래하는 보험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른 사례 등을 들이대면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비인간성을 까발린다. 그는 4500만명에 이르는 보험 미가입자뿐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 보험을 유지하는 보통 사람도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어는 사실상 무상 의료 체계를 갖춘 영국, 그와 유사한 캐나다와 쿠바의 의료 체계를 소개하면서 미국 보건 체계의 거시적 비효율성을 고발한다. 특히 영국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극빈자에게는 귀가할 차비까지 챙겨주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건 체계를 갖췄다. 1948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갖춘 후 그 시스템을 줄곧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 국민 무상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춘 영국 국민의 건강은 만족스러운 수준일까? 영국은 영국대로 고민이 깊다. 계층 간 건강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아서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사회 모델을 구현한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들의 고민은 이렇게 집약된다. ‘누구나 병이 나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가?’



영국, 공짜 치료해도 건강 격차는 여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그렇게 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불평등을 사회 정의의 문제로 접근했다. 담배를 피우고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실태를 반영하듯 한국에 번역된 관련 서적도 영국 연구자의 저작 일색이다.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펴냄),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리처드 윌킨슨 지음·당대 펴냄)에 이어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후마니타스 펴냄)가 최근 출간되었다. 한국 사회에 처음 건강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대중적으로 환기했던 한겨레의 기획 보도와 전문가의 글을 한데 묶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사회 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이창곤 지음·도서출판 밈 펴냄)는 지난해 말 출간되어 건강불평등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집대성했다.



신간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불평등한 사회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도 떨어뜨린다.’ 불평등한 사회는, 열악한 처지의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좀먹는다는 것이다. 대표적 불평등 사회인 미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이 보건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로, 민간 보험사의 손아귀에 국민 보건을 내맡긴 의료보험 체계를 지목한 데 비해 영국 연구자는 유난스러운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자체를 원인이라고 본 셈이다.

윌킨슨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보다 가장 평등한 주에서 건강 수준이 더 높았다고 지적한다(53쪽 도표 참조). 소득 편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데 활용되는 지표인 중위 계층 가구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즉 소득 편차가 적은 지역일수록 평균 사망률은 낮았다. 반대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 격차가 큰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소득 격차는 어김없이 컸다. 2000년 초반 자료에 근거한 연구 결과는 미국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은 86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되지만, 뉴욕과 시카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기대 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분배와 건강이 관계가 있다면 그 변수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고리를 규명하는 데 골몰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보다 더 진전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스트레스를 중간 고리로 삼아 사회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 의과대학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마이클 마멋과 함께 사회 역학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물론 건강형평성 학회 창립 멤버인 조홍준 교수(울산대 의대)처럼, 윌킨슨이 건강불평등의 발생 기전을 사회심리적인 것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물질적·정치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파괴적 영향에 관한 그의 문제 제기는 우리나라 독자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낮은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부유한 주보다 평등한 주가 사망률 더 낮아


왜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영국 사회의 전통은 꽤 뿌리가 깊다. 저명한 건강불평등 연구자인 마이클 마멋 교수에 따르면 영국이 건강불평등 문제에 착목한 것은, 150년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마이클 마멋 인터뷰). 현재 영국은 암 발생률과 흡연율을 언급할 때도, 전체 인구에서의 발생률과 취약 계층의 발생률을 각각 거론할 정도로 ‘건강불평등 인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건강불평등이 정식 어젠다로 채택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분야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얘기되는 블랙 리포트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블랙 위원회에 연구를 의뢰해 1980년 세상에 빛을 본 것이지만, 이후 집권한 보수당 정권은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건강불평등을 논제로 삼지 않았다. 그 사이 보수당 집권 시기에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그에 따라 계층 간 건강 격차도 커졌다. 1997년 다시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후 건강불평등 실태와 정책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그것이 애치슨 보고서이다(55쪽 참조).

보수당 집권기에 정부는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 차이(Vari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국 보건부 건강불평등팀 레이 어리커 박사는 “건강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일은, 곧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연결되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관료의 증언에 따르면, 발병 후 처치를 맡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 체계(NHS) 유지에 들어가는 돈보다,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일련의 건강불평등 정책이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해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책은 기대 여명을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었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 요인에 관한 연구는 최근 20년 동안 특히 선진국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계층 사이에 왜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 요건이 충족된 부유한 나라의 경우, 그 관심은 더욱 첨예하다. 지금까지 지목된 사회 요인으로는 초기 아동기 경험, 현재 겪는 불안과 걱정의 강도, 사회 관계의 질, 삶에 대한 자기 통제력의 정도, 그리고 사회 지위 등이 있다.

특히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와 사망률의 연관 관계를 밝힌 연구로 유명하다. 마멋은 영국의 공무원 사회 분석을 통해 직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이 적을수록, 즉 조직의 말단으로 갈수록 수명 등 건강 지표가 나빠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바 있다(<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노순동기자)

08. 04. 05.

P.S. 건강 형평성 연구에 관한 보충기사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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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3-15 11:09 
    지난주에 서평도서로 내가 고려했던 책은 그 전주에 나온 <권력의 병리학>(후마니타스, 2009)과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이었다. 지면 사정상 후자에 대해서 쓰게 됐고 <권력의 병리학>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리뷰기사가 별로 올라오지 않았다. 다행히 메인으로 다룬 기사가 하나 있어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9. 03. 06) 질병은 왜 가난한

경향신문의 '독립언론 10년'을 맞아 이루어진 특별대담을 옮겨놓는다. '김우창 교수에게 듣는다'란 부제대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이며 진행은 이대근 국제/정치 에디터가 맡았다. 김교수는 경향신문의 정기칼럼 필자이기도 하므로 아주 '내외간'의 대담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 옮겨놓는 기사들 대부분은 내가 읽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조를 위한 색칠 등을 하면서 꼼꼼하게 읽어볼 기회를 일부러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형편과 무관하게 꽤 많은 시간을 신문읽기에 투자하는 듯하다...

경향신문(08. 03. 28) “위기의 한국 언론,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와 언론이 주제였지만 대화는 부동산에서 시작되었다. 역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땅은 빠질 수 없는 화제였다. 김 교수는 땅값이 오르면 내야 할 세금이 오르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그와의 인터뷰는 내내 이런 상식 아닌 상식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다.

한국이 낳은 탁월한 사상가라는 상찬을 받는 그였지만, 한국 사회와 언론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담백했다. 사실과 의견이 서로 왜곡되지 않고 균형을 갖추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특별한 한국 사회, 한국 언론에 상식과 원칙의 처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 새 출발한 지 10년째를 맞아 자화자찬보다 이번 기회에 한국 언론 전체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 속에서 경향신문의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취지를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말을 받으며 “신문이 자기가 한 일을 무조건 중요하다고 과장하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고 눈에 거슬리는 일”이라며 “신문에 나는 것은 언제나 공정하고 공공이익에 입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제가 벌써 나온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 정년 퇴임하신 뒤 주로 댁에서 지내십니까.

“ 주로 집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집이 시내와 가깝고, 자연이 좋고, 특히 땅값이 안 올라서 좋아요.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땅값이 오르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팔려고 내놓으면 좋겠지만, 살려고 한다면 세금이 오르는데 왜 좋아하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창동·명륜동·혜화동 같이 서울에서 살기 좋은 데는 땅값이 안 오르고, 혼란스러운 동네는 올라가요.”

- 휴대전화를 사용하시지 않더군요.

“농담으로 하자면, 급한 전화가 있다는 것은 거는 사람이 급한 거지 받는 사람이 급한 것은 아니잖아요. 너무 정보가 많은 게 문제입니다.”

- 매체가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체가 다양해져서 민주주의가 향상됐다고 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어떤 칼럼니스트가 썼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의견이 있어도 반드시 지지자가 있게 마련인데 매체가 많으면 이런 의견을 담느라 정말 좋은 의견이 모아지기 힘들다는 겁니다. 물론 의견 표명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양한 게 좋죠. 그러나 현실적인 해결책은 1~2개뿐입니다. 여러 의견과 방안을 종합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종합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절차가 중요한 것이지, 모두가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은 인터넷 매체에 비해 접근이 선택적입니다. 그것을 부당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기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매체의 다양화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 신문을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습니까. 처음 신문을 대할 때 신문은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신문을 언제 읽었느냐는 물음은 참 답하기 어려워요.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아버지 때부터 읽었던 신문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보았으니 계속 읽었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신문은 네개를 봅니다. 저는 사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이 가장 풍부한 신문을 가장 먼저 보고 그 다음 경향신문을 봅니다. 경향신문은 사실과 의견이 적절하게 있어서 좋아합니다. 의견이 매우 강한 신문은 네번째로 봅니다.”

- 즐겨 읽는 면이 있습니까.

“신문 편집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면 기사를 먼저 보게 돼요. 보통 정치기사를 많이 봅니다. 자잘한 세상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 기사들을 보면 세상 사는 느낌을 받게 돼요.”

- 혹시 신문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자가 되면 이런 것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이라도.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기자가 됐더라면 내게 도움이 됐을 것이란 생각은 했죠. 게을러서 잘 안되는 것을 기자란 직업 때문에 의무감으로 사람 사는 현실에 대해 자세히 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기자란 직업에 대해) 그게 부러운 점입니다.”

-한 마디로 정의해서 신문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신문을 가지러 나갈 때 ‘아직도 세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것이 신문입니다. 헤겔이 신문은 현대인의 기도서와 같다고 했어요. 기도서는 아니지만 신문은 세상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물론 잘못된 모양도 있고요.”

- 건강한 시민이라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문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신문을 잘 안 읽는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보느냐 이런 말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신문을 안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신문 외에 정보매체가 많다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각이나 청각 매체에 비해 정신집중이 더 필요한 일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정신집중보다 몸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지요. 또 정보 과다로 정보가 필요없다는 인식도 있어요.”

- 그런 흐름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보십니까. 그런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활자매체의 쇠락은 불가피한 것인가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사고하고 검증하는 습관이 학교나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어요. 말은 문장이 완전하지 않아도 되고, 논리가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글은 논리와 사고에 입각해야 하고 문법도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글마저 사고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 한국 언론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 이미지 시대의 도래 등 언론 환경의 변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 신문의 타격이 큽니다. 게다가 신뢰도도 매우 낮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언론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회의 지적인 힘이 약화됐어요. 그 책임은 언론에만 있다고 보기 힘들지만 언론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투쟁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하지만 그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위기가 완화되고 나면, 사람 사는 방향이 여러 방향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로만 묶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입니다. 옳은 것이라고 해서 주관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옮겨가야 해요. 사실이 무엇이냐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관해서는 의견에 관계 없이 사람들이 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외국신문은 어떤 것을 보십니까, 한국신문과 비교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까.

“외국신문을 보는 게 몇 개 있는데 사실 검증이 중요한 기준으로 되어 있어요. 한국의 경우 정의의 이름일 수도 있고 국익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위해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지요. 사실이란 일어난 일, 틀림없이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요. 사실 보도 여부는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하는 거지요. 이는 사실에 대한 존중이 약하다는 것도 되고,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제가 오래 본 신문 중의 하나가 영국의 가디언입니다. 가디언이 사실을 선정하는 기준은 아주 객관적이에요. 예를 들어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중요한 기사도 아니고, 모두의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경향신문의 오늘 이 기사(3월20일자 1면 ‘반운하=반여당 최대 이슈 부상’)는 매우 좋은 기사입니다. 사실 선정의 기준이 공익적입니다. 그러나 제목 ‘최대 이슈 부상’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대 이슈라면 유권자들이 이것을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공익적인 판단 기준에서는 아주 중요한 대목을 드러냈지만 ‘부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성이 약한 것이지요.”

- 정의와 국익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신문을 만드는 데 있어 항상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국익이 있고, 야당이 생각하는 국익이 있고, 신문도 저마다 다르게 국익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문은 국익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십니까.

“공익이나 국익, 정의가 중요한 가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판적 입장은 늘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인 행동도 국익이나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없어요. 그것이 참으로 정의, 국익이 되려면 실현하는 수단은 정의로운지 봐야 합니다. 정의나 국익이란 것이 책임을 기피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구체적인 예를 말씀 드리자면, 며칠 전 여러 신문에서 대학 강사가 미국 오스틴에서 자살한 사건을 다뤘어요. 비정규직 강사들의 부당한 대접에 공감하기 때문에 유심히 기사를 봤어요. 전적으로 강사들의 처우가 부당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16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호텔에서 자살한 것을 보면 책임 있는 어머니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볼 때 사회정의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어요. 한국이 아닌, 미국까지 가서 자살했으면, 다른 이유도 있을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살하지 않으면 안될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해요. 사회정의의 관점에서만 처리하지 말고 좀더 사실적인 보도를 했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강사 처우 문제로 가버려 충분히 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사회정의 국익, 이런 것이 우리의 사고를 단축하는 역할을 하면 안됩니다. 사실을 먼저 탐색하고,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해요.”

- 신문 역할이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사회를 선도하고 계몽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신문의 역기능으로 사회 갈등을 확대, 증폭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문이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말고 조화로운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이 돼야 합니까.

“계몽, 선도와 사실 보도, 이것들이 모두 어울려야 해요. 그러나 사실 보도가 1차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공익의 관점에서, 사회의 건전성에 대한 관심으로 선정돼야 합니다. 여기에 계몽과 선도가 이미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입장을 지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으로 되기 쉬워져요. 사실을 통해 주관적인 입장을 나타내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지만,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인 입장이 앞서서 공정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 현재 한국 언론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신문에서 공익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신문 각자 나름의 공익에 대한 준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마다 다른 여러 가지 공익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공익이란 것이 자기가 서 있는 입장에서 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티베트 문제가 좋은 예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진압이 공익이고, 티베트 입장에서는 아니겠지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탄압이 옳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문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공익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고려대학교에 있다고 해서 그 대학에 모든 것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제 충성심은 진리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이 신문사 공동체로서 충성심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합니다.”

- 티베트 얘기가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신문 책임자라면 어떤 관점에서 보도하겠습니까.

“티베트, 중국, 세계시민의 세가지 관점을 모두 보도해야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티베트가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와 자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내 개인적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티베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요. 중국의 52개 소수민족이 모두 자치를 원할 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일 넓은 관점, 즉 인간의 공적인 정의와 국가 현실 안에서의 정의, 이것이 어떻게 타협될 수 있는가도 보도해야 합니다.”

- 그러면,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티베트 사태를 올바로 보도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대체적으로 티베트 입장에서 보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요. 현재 세계적으로 공정한 보도라면 티베트 사람들의 소망을 그대로 보도해줘야 합니다. 지금 국내 사정도 그렇습니다.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서 경제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과 복지 등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 이 두개를 모두 고려해서 어떻게 수렴해야 하는지도 보도해야 합니다.”

- 여론의 다양성이 중요한데 일부 보수 언론이 여론을 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행한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시장을 관리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매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전 신문에 쓴 적은 없지만 사석에서는 비판했어요. 정치권력을 통해 다른 신문이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안됩니다. 전 시장을 지지해요. 이런 얘기해도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지원을 통해 한국문학 번역해서 외국에 보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검증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역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아무 책이나 번역돼요. 그러면 그런 지원이 오히려 외국 보급을 어렵게 합니다. 번역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문학이 있으면 왜 외국출판사가 자기 돈으로 번역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 하지만, 시장경쟁도 중요합니다. 지금 열세에 있는 신문들도 제도나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 경향신문이 좋은 신문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경향신문만큼 비판하고 사실보도한 신문은 없었어요. 결국은 좋은 것이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기 바랍니다.”

- 여론형성에 있어 신문이 얼마나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다른 미디어가 그런 기능을 해야 하는지요.

“신문만큼 여론형성에 중요한 기구는 없어요. 인쇄매체의 선택적 기능이 중요해요. 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뒷받침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사회 전체가 깊이 생각하고 지적 규율을 존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특히 시청각 매체를 보면, 너무 여론을 쉽게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방송들을 일본 NHK와 비교할 때 한국 기자들이 너무 급하고 긴박한 느낌으로 보도를 하더군요.”

- 신문의 당파성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파성, 인민성, 이념성은 레닌주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레닌주의의 당파성도 그렇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강조한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계급의식을 강조하고 노동자계급을 중요시한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 받는 계층, 보편계급이기 때문이죠. 보편계급이란 이들만 해방되면 사회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붙여진 것입니다. 현재 이런 고통을 없애기 위한 해결 방식이나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 방식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신문은 모든 사람이 고통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쓰시는 장문의 칼럼에 대해 일부에서는 어렵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신문과 문학의 글쓰기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신문이 사실보도를 훨씬 잘해요. 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쓰는 것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콤플렉스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경향신문에서 칼럼을 실어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문에는)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끌려가다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08. 03. 30.

 

P.S. 대담에서 인상적인 건 "매체의 다양화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김우창에 대한 이해에도 요긴한 포인트로 여겨진다. 한편 계간 <비평>(2008년 봄호)에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한 패러다임'을 화제로 김우창 교수와의 심층대담이 실려 있다. 아직 읽을 짬을 못 내고 있는데, 요즘 이런 대담은 김우창 교수가 '전담'하는 듯한 모양새다. 한국 사회에 '공적 지식인'이 정말로 몇 안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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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신간 중에 '사회적 독서'에 가장 적합한 책은 아마도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8)일 것이다. 영국의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의 저작이고 제목과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란 부제에 내용이 이미 요약돼 있다(특별히 상식에 반하지 않는다). 나머지 400쪽 가까운 분량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들이겠다. 당장에 읽을 시간을 없기에(시간의 배분 또한 불평등하다!) 리뷰들이라도 챙겨둔다.

경향신문(08. 03. 29) '사회적 열등감’이 病 부른다

한 사회에서 건강 수준은 일반적으로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좋아진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가난할수록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겠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부유한 지역의 백인과 가난한 지역의 흑인 사이에는 기대 수명이 16년이나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다음의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세계 25위에 불과하며, 국내총생산(GDP)이 그 절반인 그리스보다 낮다. 미국 흑인 남성은 코스타리카 남성보다 실질소득이 4배나 높지만 수명은 9년이나 짧다. 뉴욕의 할렘처럼 미국의 극빈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다. 문제는 절대적 소득수준이 아니라 상대적 소득격차, 즉 ‘불평등’인 셈이다.

원제가 ‘(불평등의 효과)인 책이 파고들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건강’이 물질적 환경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우리가 이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들”에 밀접하게 반응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건강불평등과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연구하는 사회역학 분야의 선구자인 저자(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좀먹는지를 지난 30여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보여준다.



건강불평등은 단순히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불평등하다면 그 속에 사는 누구나 건강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책은 사회적 불평등이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이 스트레스가 다시 건강을 악화시키는 과정을 다양한 연구 성과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심혈관계나 면역 체계를 포함한 우리 몸의 생리적 체계에 악영향을 주고 수많은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또 담배, 술 등 기분전환용 약물이나 전문의약품에 의존하게 하고 우울증, 불안, 불행, 혐오감, 소외감, 불안정, 통제력의 상실과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책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심리사회적 요인 세 가지가 제시된다. 우선 낮은 사회적 지위. 이는 물질적 생활수준만이 아니라 멸시당한다는 느낌, 열등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느낌, 자신의 일에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느낌처럼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생기는 모든 사회적 감정을 포함한다. 두 번째 요인은 친구나 신뢰하는 사람이 없고, 참여하는 공동체가 없는 등 빈약한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연결망이 좁은 사람은 넓은 사람보다 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4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있다. 마지막 요인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의 결핍이나 불안정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요인들이 모두 ‘사회적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근저에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사회적 불안, 수치심, 우울, 폭력이라는 감정들은 모두 사회적 비교에서 생긴다”라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이 건강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강력 범죄 발생률과 10대 임신 비율이 높고,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성이나 인종적·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심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수치심을 느끼고 자기 존중감이 심하게 손상된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 약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자존감을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책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구사하는 방식을 ‘지배의 전략’과 ‘친화의 전략’으로 나누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전자를 강화시킨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가 희소자원을 둘러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 투쟁의 ‘가능성’ 속에 살아왔지만 ‘협력적 전략’도 개발해왔음을 진화론적 탐구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영장류들의 ‘털 고르기’처럼 인간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말하기’ 전략을 사용해왔다. 또 영장류 가운데 인간만이 눈동자에 흰자위가 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시선을 노출해 서로 이해받고 협력하는 전략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예다.

저자는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적극적인 방식은 전체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적 의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덧붙인다. 종업원 지주제나 협동조합처럼 좀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식을 우리가 일하는 조직에 이뤄내는 것이다.

책은 소비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고 해서 상대적 박탈감과 관련된 문제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여전히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된다면 건강 불평등, 약물 남용, 폭력과 같은 사회 문제들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사회적 분열, 편견, 배제와 대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근거 없는 허상을 붙잡는 것과 같으며 엄청난 환경비용까지 지불해야 할 것.”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김진우기자)

한국일보(08. 03.29) 불평등의 毒에 사회가 병든다

최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평등주의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들은 경쟁력 격차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은 합리적인 것이라면서 평등주의야 말로 선진화의 걸림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영국 노팅엄대의 사회역학 교수인 리처드 윌킨스는 평등과 건강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의 허점을 파헤친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구성원 개개인의 수명이 길다는 생물학적 건강은 물론이고 구성원간 신뢰가 있는지,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참여는 활발한지, 살인 등 강력범죄의 비율은 높은지, 인종이나 지역차별 같은 적대감은 심한지 등 사회적 건강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정밀하게 관찰하면서 건강을 정의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선 물질적으로 부유할수록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갈파한다. 책에 따르면 일정수준의 부를 축적한 사회는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더 이상 기대수명이 높아지지 않는다. 가령 199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평균기대수명을 조사한 결과 부유하지만 비교적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인 미국은 스웨덴, 일본 같은 부국들은 물론 GDP수준이 절반에 해당하는 그리스보다도 기대수명이 낮았다.

사회적 건강성도 마찬가지. 미국 50개주들의 주민에게 “기회가 된다면 타인들은 당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을 던지자, 경제적으로 가장 평등한 주의 주민들은 10~15%만이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불평등한 주에서는 35~40%를 육박했다. 살인율의 경우 주 사이의 불평등 정도에 따라 10배 가량 차이가 났다.

책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물질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갖가지 사회적 실패를 우려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소비에 집착하도록 압박할 것이며 이는 ‘경제성장-자원고갈-환경오염’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이들의 경우 소득격차가 커질수록 직장, 집, 자가용 등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재화를 획득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을 열등하게 취급하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폭력적 성향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저자는 “만약 우리가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진심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이제 더는 불평등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말로만 떠들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불평등이 인간에게 미치는 파장을 더욱 철두철미하게 분석하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8. 03. 29.

 

 

 

 

P.S. 저자의 다른 책으론 <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당대, 2004)가 출간돼 있다(저자가 왜 '윌킨스'라고 표기돼 있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불건강한 사회(Unhealthy Societies)'이다. 관련서로는 사회역학 분야에서 윌킬슨과 쌍벽을 이룬다는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2006), 그리고 한국사회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보고서로 이창곤의 <추척, 한국 건강불평등>(밈, 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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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세곰 2008-03-29 11:45   좋아요 0 | URL
멕시코에서는 비만을 개인의 식생활 습관의 문제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물 대신 값싼 탄산음료를 마실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수도사정 그리고 치안의 불안으로 인한 극도의 제한적 생활로 인한 운동부족 등 이른바 "사회적"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멕시코의 비만인구 비율이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뚱땡이 국가 미국도 찜쪄먹는다고 하더군요. 근데 로쟈님은 이 토요일날 최소 아침 8시 전에 기상해서 작업모드로 들어가시나요??? 이 페이퍼 작성시간이 불과 am 8:45 ???

로쟈 2008-03-29 12:09   좋아요 0 | URL
네, '사회적 비만'이라고 해야겠죠(사회적 영양실조가 있듯이).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토요일이라 일없이(?) 저도 일찍 일어나야 했고, 일어난 김에 리뷰기사들을 좀 읽다가 옮겨놓은 것뿐입니다.^^;

2008-03-29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9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위스 2008-03-29 20:59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2008-03-29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de 2008-03-29 20:39   좋아요 0 | URL
이 책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는데, 건강불평등 저자였군요. '구조적 책임'이 좀 더 두드러졌음 좋겠는데, '건강불평등'은 애매한 대안을 제시해서 좀 그랬어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들이 좀 더 잘 제시된 책은 없을까요? ^^;;

로쟈 2008-03-29 21:46   좋아요 0 | URL
대안 제시에 앞어서 문제의식의 공유가 우선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특히 정책입안자들이 필독해야겠다 싶고요...

에링 2008-03-30 22:26   좋아요 0 | URL
그리스 GDP가 미국 GDP의 절반이나 될리가요...

로쟈 2008-03-30 22:32   좋아요 0 | URL
1인당 GDP입니다. 최근 수치로는 2/3쯤 되는 거 같은데요...
 

매주는 아니고 가끔 눈에 띄는 기획기사들이 있을 때 '씨네21'을 사서 본다. 보통은 전철에서 읽는다. 지난주에는 '미국영화는 지금 다시 태어났다'는 특집좌담 때문에 사보게 됐는데(세 주 연속특집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이 좌담 외에 특별히 재미있게 읽은 건 김소희 기자의 '오마이이슈'. 매주의 시사 이슈를 정리해주는 꼭지인데(원고지 6매짜리다), 나는 가끔씩 읽어보지만 그 입담에 경탄하곤 한다(한겨레21의 '오마이섹스'보다도 더 섹시하다!). 급기야는 이번주의 '진짜 유별난 DNA'를 며칠 전에 읽고서 몇 편을 모아놓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한달치의 '이슈' 총정리이다.    

씨네21(08. 03. 17) [오마이이슈] 진짜 유별난 DNA

아침 8시에 일어나기도 힘든 나에겐 아침 8시 전 회의는 경이로울 뿐이다. 세상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니, 월화수목일일일도 아니고. 남편이 공무원인 우리 옆집 언니 얼굴이 반쪽이 됐던데, 머슴처럼 봉사하겠다며 새벽 별보기, 노 홀리데이를 하면 진짜 머슴처럼 뒷수발 드는 이들의 노동환경은 더 가혹해진다. 운전기사, 경비아저씨, 수행비서, 기타 등등. 설마 한푼이라도 더 시간외수당을 챙기려는 심보는 아니겠지? 워낙 실용적인 분들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공무원들이 바삐 일한다면 고소한 면은 있다. 문제는 그게 진짜 일을 하는 건지 하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 종일 졸리고 멍하다는 ‘얼리 버드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통령이 닦달하니 청와대, 정부부처, 공공기관, 지자체까지 일사불란하게 회의시간을 당기고 휴일에도 나와 일한다. 그동안 다 널널하게 놀았다는 말씀인가. 기업지원과를 기업사랑과로 바꾼 지자체, 직원들에게 영어학원 등록을 의무화한 기관도 있다. 프렌들리가 지나치면 스캔들-리가 된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공기업·공공기관의 임원들을 “알아서 떠나라”고 한 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멀쩡한 절차를 거쳐 뽑힌, 임기도 한참 남은 이들을 겨냥해 “이전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이라며 역시 물러나라고 하고, 한나라당 대변인은 “좌파이념에 매몰된, 유별난 DNA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이렇게 색칠을 하는 이유는 당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자기 사람에게 한 자리 주려는 것이라는 걸 아침잠 많은 국민들도 다 안다.

정작 ‘유별난 DNA’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교육계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회장으로 있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애들에게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더니, 지역 등수, 전교 등수를 매겨 공개할 작정이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하려고 예상문제집을 나눠줘 달달 외우게 하거나(서울시교육청), 운동부 학생 및 장애 학생을 시험에서 제외하는(경기지역 한 학교) 작당을 하기도 했다. 학생 수준을 진단해 그에 맞게 가르치고 학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더니, 알고 보니 애들을 ‘대리인’으로 교육감들과 학교장들이 경쟁하는 꼴이 아닌가. 내 일찍이 당부한 바 있듯이, 그렇게 겨뤄보고 싶으면 깔끔하게 자기들끼리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시험 보란 말이다. 영어 시험에 말하기랑 듣기는 꼭 넣고.(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3. 10) [오마이이슈] 식량 주권

식당들이 메뉴판을 다 바꿨다. 500원, 심하면 1천원씩 올렸다. 아니, 밀과 옥수수값이 폭등했는데, 비빔밥 값은 왜? 밥집 아줌마의 싸늘한 일갈. “국제 곡물값 상승이랑 유가 급등 몰라? 미국이 콱 쥐고 비싸게 파니깐… 뭐든 덩달아 올랐어.” 그럼 왜 200원이나 700원도 아니고. 덧붙인 일갈. “잔돈 거슬러주기 귀찮아서.” 더 오를지 모르니까 미리 올려놓고 보자는 ‘확보주의’ 심리도 작동한 것일 게다.

십수년 전 우르과이 라운드 때부터 익히 들어온 ‘식량 주권’이 이러다 진짜 위협받는 건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우리 사무실 조계완 선배에 따르면 위협받는단다. 허걱. 그럼 앞으로 밥 많이 못 먹나? 다행히 우리가 쌀은 거의 자급자족한다. 그러나 다른 곡물 자급률은 5%. 그리하여 전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곡물값은 지난해 이미 전년도에 견줘 두배로 폭등했다. 기상이변으로 곡물 작황이 부진한 터에, 중국·인도 등 급격히 소비수준이 높아진 큰 나라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많이 하면서 사료곡물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이들 나라에서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경작면적이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그래 결국 고기 많이 먹는 게 문제야(이다혜 우리 이 참에 끊을까?). 바이오연료도 ‘곡물 먹는 하마’로 급부상했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연료 산업은 더욱 커졌다. 이런 얽히고설킨 상황에 따라 곡물 재고량은 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조만간 소비량이 생산량을 넘어서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격 급등에 확보문제까지 겹치니, 바야흐로 식량이 무기가 된 시대라고 조계완 선배는 설명했다.

대규모 곡물 생산국은 미국·중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 등 큰 나라들이다. 그중 미국의 생산집중도가 제일 높다. 세계 곡물 수출시장을 쥐고 흔드는 주요 메이저 기업들도 대체로 미국 회사다. 이들이 결정적일 때 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개방 압력을 넣어 작은 나라들이 농업을 포기하게 만든 것도 이들이다. 그럼 유가 급등은 무슨 상관일까? 우리의 곡물 수입 의존도는 2000년 중국(50.2%), 미국(29.1%) 순이었으나, 2006년 미국(55%), 중국(19.6%)로 뒤바뀌었다. 운임 비용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이다.

결국 우리 밥상을 지배하는 ‘보이는 손’은 미국인 거네. 아줌마 말이 맞네. 무섭다. 내 삶의 유일한 밑천, 밥이나 먹어야겠다. 쌀만은 지키겠다며 아스팔트 농사 짓던 농민들의 은덕을 이렇게 입는구나. 모두들 라면, 빵 대신 밥 드세요. 밥힘으로 견딥시다.(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3. 03) [오마이이슈] 왜 언니들은 하나같이 문제지?

장관 후보자 세명이 사퇴했지만, 남은 사람들도 가히 의혹 종합선물세트다. 집·땅·아파트·오피스텔에 이어 국경까지 넘나드는 버라이어티한 투기, 탈세, 표절, 군사정권 부역, 허위 경력, 공금횡령, 외국적 자녀의 건강보험 무임승차, 부동산 실명제 위반…. 위법 내용도 어찌나 다양한지, 운전 중 속도위반을 일삼은 이도 있다. 이러다 정부 구성 못하겠다, 대사면시키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청문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제대로 일을 할까 의심스럽다. 노동·복지장관 후보자는 자기 분야의 현안에도 구체적인 답을 못하거나 의원들의 다그침에 말을 바꿨다.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공부 더 해야겠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개인의 ‘굴욕’을 넘어 부처의 ‘굴욕’, 나아가 그들에게 행정적인 권한을 위임한 국민의 ‘굴욕’이다. 날이 바뀔 때마다 ‘더 큰 의혹’이 터져나와 정신이 없다만, 간추려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사퇴한 세 후보 중 두명은 여성이었고, 논문 표절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청와대 수석도 여성이다.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 왜? 여자들이 공직을 맡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아니다. 구색 맞추기로 여성을 등용하다 보니 공들여 찾지 않고 가까운 데서 아무나 데려다 앉힌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술, 용인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녀국적·부인투기·정신세계 삼박자로 욕을 먹다 사퇴한 다른 한 남성후보는 통일부, 걸어다니는 ‘의혹 백화점’인 후보와 허위경력 기재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한 또 다른 후보는 각각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 장관 내정자이다. 모두 대통령이 없애려 했거나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부처다. 참,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도 복지 담당이지.

돈 되는 부서만 챙기고 나머지 부서는 잘나가는 부서의 지원부서로 여기는 ‘사장님 마인드’가 정부 구성에도 적용된 것이다. 거기에 부처 수장을 자기 수족 정도로 여기고, 여성은 말 잘 듣는 만만한 이로 고르면 된다는 생각이 더해진 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인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투기 의혹에 “남편 선물”이라느니 “땅을 사랑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최소한의 공적 훈련도 안 된 여성들이 여론에 밀려 사퇴하자 “여성 인재 풀이 워낙 적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하루아침에 여성의 지위와 권익을 퇴행시켜버렸다. 한나라당의 여성의원과 당직자, 전문위원들은 그럼 뭔가. 여성 등용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일천하고 위험한 이가 그려나갈 ‘실용’이 대체 어떤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2. 25) [오마이이슈] 단병호와 부자 정부

회사 동료 길사마가 최근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한 한 인사를 놓고 기염을 토했다. 일찍이 조기 유학을 떠나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다, 잘 안 됐는지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캐네디가 되려고 하는데, 혼자 잘나 잘벌고 잘먹고 잘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아무런 책임도 애정도 없어 보이는 성장 배경을 갖고 공공의 영역인 정치에까지 진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라는 주장이었다(헉헉 옮기기도 숨차다).

나는 솔직히 조금 무서워진다. 우리 사회의 ‘주류’는 언제부턴가 조기 유학을 떠나 내내 나라 밖에서 살아온(살고 있는) 이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선한 이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많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의 경험이다. 고급 세단 타고 비싼 사립학교 다니다 미국의 고급 주택가에서 역시 비싸게 공부해 고급 일자리 얻은 다음 비슷한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자기 자식도 비슷한 코스로 키우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은 제한돼 있다. 그들의 선의가 경험의 폭에 갇혀, “어머,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지만 저 사람들 길바닥에서 저러고 있으니 정말 불쌍해” 식으로 발휘된다면?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대한민국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고와 판단을 먼저 하기 쉽다. 자기를 버리는 수준의,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막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내각 인선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고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하나같이 땅땅땅 억억억 부자들이다. 집이 서너채에 전국 산지사방에 땅을 보유한 이들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기는 대체 누가 한 것일까.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요청 사유서’에 실린 재산내역을 분석한 기사를 보면, 이들은 대체로 ‘우연히도’ 부동산 개발 바람을 타고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배불린 10년이다. 그런 이들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까.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탈당과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부동산 부자 내각의 면면을 접했다. 단 의원의 부인 이선애씨는 경기 성남의 집 근처 상가에서 채소가게를 하고 있다. 남편이 노동운동을 할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국회의원을 할 때나 변함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도 이씨가 일찍이 분양받아 새벽일 해가며 대금을 부어 마련한 것이다. 단 의원 같은 이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평균 재산 40억원의 불로소득을 누려온 이들은 하루아침에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닐까.(김소희_한겨레21 기자)

08.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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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3-22 22:30   좋아요 0 | URL
저도 김소희 기자의 글 너무 좋아요.^^

로쟈 2008-03-23 11:37   좋아요 0 | URL
챙겨두시나 보군요.^^

섬나무 2008-03-23 12:21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의 1%들은 이런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일 겁니다.

로쟈 2008-03-23 13:01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이 '비지니스'에 도움이 안되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1:13   좋아요 0 | URL
마지막 사진은 하지원 누나? 이쁜 여자는 무조건 누나라고 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로쟈 2008-04-07 21:34   좋아요 0 | URL
^^
 

잇따른 시간강사들의 자살이 다시 뉴스에 오르고 있다. 남 얘기도 아니기에 관련기사들을 모아놓는다. 작년 봄의 관련기사는 http://h21.hani.co.kr/section-021037000/2007/05/021037000200705030658004.html 참조.  

경향신문(08. 03. 08) 대학강사, 그들은 왜 절망하는가…서울大만 3명 자살

지난달 11일 서울대 불문과 강사 박모씨(43·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3년 노문과 백모 박사, 2006년 독문과의 권모 박사의 자살에 이어 서울대 인문대학에서만 세번째다. 학교 측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입장이지만 주변에서 전하는 원인은 달랐다.

한 시간강사는 “노문과 백 박사 자살 때도 학교 측은 우울증이라고만 하고 넘어갔다”며 “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단순 우울증이 아니라 시간강사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숨진 박씨는 오랫동안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며 학업을 계속했으나 교수 임용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강의를 했으나 강의료는 턱없이 적었고,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병으로 수술까지 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박씨는 결국 설연휴 직후 학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캠퍼스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지방의 한 사립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한모씨가 자신이 학위를 딴 미국에 가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한씨는 유서에서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고 발버둥치며 4년을 보냈다…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다”고 시간강사의 부당한 처우와 설움을 고발했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 강의 중 시간강사들은 40%대. 그러나 강사들의 처우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 다른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50~55%를 받지만 시간강사는 교수 임금의 3분의 1도 안된다.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는 국·공립대는 시간당 4만원, 사립대는 시간당 3만원 수준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박모씨는 “지난해 2학기 주당 3시간 강의하고 월 42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용 자체도 지극히 불안정하다. 사립대의 한 시간강사는 “신학기에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강의하는 거고 안 오면 계약 해지”라며 “그나마 조교가 전화해서 통보하는 식”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간강사들의 모임인 비정규교수노조를 이끌고 있는 김동애씨(61·여)는 “강의료가 정해진 날짜에 안 나와서 경리과에 전화하면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귀찮게 하느냐’는 식”이라며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대학강사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인 이주호 의원(한나라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시간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이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강사들은 개정안의 조속 처리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지난해 9월부터 183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강사 30여명과 서양사학회 회원들은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각종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천막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시간강사 김영곤씨(59)는 “한창 연구와 강의에 몰두해야 할 학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다”며 “대학들은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정안에 난색을 표하지만 뒤로는 매년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지적했다.(박수정기자)

뷰스앤뉴스(08. 03. 07) 시간강사 또 자살,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대학강사 고 한경선씨 “학벌로 나눠먹고 비정규직 악용"
열악한 근무조건과 박봉, 대학들의 근무 및 임용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비관한 한 대학강사가 먼 이국 땅에서 자살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유서 3장이 담긴 한국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현실
7일 비정규직교수노조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건국대 충주 캠퍼스에서 시간강사로 일해오던 대학강사 한경선(44세, 여)씨가 지난 달 27일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한씨는 딸과 투숙하던 오스틴시 한 모텔에서 음독후 경련을 일으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오전 11시께 사망했다.

한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텍사스주립대에서 테솔 분야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러나 장기간 교원임용에서 떨어지다 2006년부터 충주의 모 대학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쳐왔다. 한씨가 자살을 단행한 모텔에서는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설움과 고통, 대학 임용의 부조리한 현실을 절절히 담은 유서 3장이 발견됐다.

한씨는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된다”고 유서의 첫 머리를 시작했다.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될 줄 알았지만...”
그는 대학 교수 임용과 관련해 “귀국 초에는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다”며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그것은 뜻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며 교수사회에 만연한 '학벌 나눠먹기'의 폐단을 질타했다.

“비정규직 신분 악용한 대학 횡포에 참담”
그는 또 “○○대학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있는 동안에는 그 신분상 약자인 점으로 인한 유형들로 나타나게 되었다”며 비정규직 시간강사라는 취약한 신분이 대학 사회에서 과다 업무와 부당한 대우로 이어졌던 경험도 토로했다. 한씨는 “책임시수를 책임학점제로 변경하면서 초과강사료를 주지 않으려 했던 부서장이 외국인교수에게 출퇴근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직접 모색하던 모습에 더욱 참담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고 적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 나오지 말기를...”
그는 또 “1년 단위로 3년까지 계약이 갱신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주임교수의 재임용 추천조항은 그의 부당한 처우에 무방비로 놓이게 될 소지를 야기할 조항”이라며 “구체적으로, 교재변경등의 이유로 부서장의 방에 한사람씩 불러 부서장과 과목주관교수 합동의 심문식 면담이라든지, 외부출강금지건과 관련한 동료교수 파면, 그리고 2006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어수준 평가도구인 모의 토익시험지의 공개거부 등 이곳에서 지낸 만 2년이 마치 20년같이 느껴지던 일련의 사례들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다”며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한다”며 장문의 유서를 끝맺었다.

대학강사 교원지위 관련법은 국회 표류
한씨의 자살은 동일한 석.박사 학위를 소유하고 연구업적을 쌓아도 여전히 전임교수가 아니면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 시간강사들의 절박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2003년에는 서울대 시간강사 백모씨, 2006년에는 서울대 시간강사 권모씨와 부산대 시간강사 김모씨가 현실을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고 최근에는 서울대 불문과 강사도 생을 마감했다.

국회는 지난 2007년 5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인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지만 2월 임시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고 국회 바깥에서는 비정규직교수노조의 1인시위와 천막농성이 1백83일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임을 잇따라 자살하는 시간강사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최병성 기자)

담비(08. 03. 07)  美 텍사스 오스틴서 자살한 시간강사 故 한경선씨 유서 전문

6일 서울신문은 <'국내大 부당대우 좌절’ 女강사 美서 자살>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의 시간강사 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결국 타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고 한경선(44·여)씨의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달 27일 새벽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의 한 호텔에서 모두 석 장의 유서를 남긴 채 쓰러져 있었다. 미국에 함께 동행한 딸이 발견, 병원에 옮겨졌으나 이날 오전 11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지 경찰은 딸의 증언등을 토대로 한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스틴 한인회는 고 한경선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오는 3월 15일 오후 7시 오스틴 한인장로교회에서 추모식을 갖는다.

담비는 오스틴시 한인 포털 <Austin114>에 올라온 한씨의 유서의 전문을 게재한다. 유서의 첫번째 장과 두번째 장에는 한국 대학의 교수 임용 부조리와 시간강사의 설움이 길게 적혀있고 유서의 세번째 장에는 "<첨부> 1. 한경선/이가영 미국비자 사본 / 2. 2006/2007년 강의교수 임용계약서 사본 / 3. 탄원서 / 4. 2007년 작성 한경선 영문이력서"라고만 적혀 있다. 이 첨부내용들은 한국에 거주중인 유족에게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USB 메모리스틱에 저장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편집자주]

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 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뜻 맞는(이해가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양가족을 지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고, 강의교수로 지내면서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기는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규모가 비교적 적은 이곳에서 기업체의 불공정 단합처럼 몇몇 학교들의 이해단합이 더욱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상생발전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개인과 학교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본인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공시한 2005년 1학기 교원임용에 원서를 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2005년 3월말에 가서야 1차 심사에 대한 연락을 통보 받고 다시 해당학기 중반까지 임용과정이 지지부진하게 흐르다가, 5월말경에 이의 결과를 학교측으로부터 통보 받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이와는 다르게, 2006년 2학기 중앙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 응시한 교원임용과정에서는 1차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연구나 강의 경력면에서 납득되기 어려운) 결과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 이러한 일들이 몇몇 학교들이 (즉, 건국대, 한양대, 성균관대) 주도한 협력하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이곳에선 원하던 연구활동을 하기 힘듬을 감지하여 미국대학에도 원서를 내었으나 일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저의 미국 비자사본(첨부1)을 보시면 어떻게 그러한 결정들이 이루어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있는 동안에는 그 신분상 약자인 점으로 인한 유형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즉, 비정규직이란 점을 악용한 고용자측에 유리한 조건을 담은 2006년도와 2007년도 계약서(첨부 2)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2007년도 계약서에 굵은체로 쓰여져 있는 책임학점은 이전 계약서에서 변경된 것으로, (주당 12학점(시간)에서 주당 12학점으로 변경) 현재 모든 교양영어과목 2시간 1학점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자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변경된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임시수를 책임학점제로 변경하면서 초과강사료를 주지 않으려 했던 부서장이 외국인교수에게 출퇴근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직접 모색하던 모습에 더욱 참담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둘째, 1년 단위로 3년까지 계약이 갱신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주임교수의(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재임용 추천조항은 그의 부당한 처우에 무방비로 놓이게 될 소지를 야기할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교재변경등의 이유로 부서장의 방에 한사람씩 불러 부서장과 과목주관교수 합동의 심문식 면담이라든지, 외부출강금지건과 관련한 동료교수 파면, 그리고 2006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어수준 평가도구인 모의 토익시험지의 공개거부등 이곳에서 지낸 만 2년이 마치 20년같이 느껴지던 일련의 사례들이었습니다.

현 체제에서 최고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행하는 모순과 불공정한 처사는 같이 일하던 동료교수의 파면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첨부 3-탄원서). 그의 파면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학교측의 주장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의 행정적, 법적절차를 위해 그들이 제시한 서류들과 주장들을 보고 전해 들으면서, 이 기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위해 두서없이 이 글을 써서 전해 드립니다.

2008년 2월 25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한경선 드림 

08. 03. 08.

P.S. 아감벤식으로 말하자면 시간강사야말로 전형적인 '호모 사케르'이다. "성스러운 자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자" 말이다. 강의실에서야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대우를 받지만 현실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로마법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는 "‘희생양(제물)로 삼을 수 없지만,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이다. 한국의 대학사회는 여러 시간강사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지만 대학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는 그래서 '호모 사케르의 사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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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정규 교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5 21:21 
    이번주 신간 국내서 중에는 작년에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프레시안의 연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을 묶은 책도 포함돼 있다. 해가 바뀌어서 제목은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이후, 2009)이 됐다. 따로 서평이 뜨지 않아서 프레시안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9. 04. 25) 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때때로 묻
  2. 죽은 시간강사와 암흑의 카르텔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31 23:36 
    천안함과 선거 정국으로 인해 묻혔지만 지난주에 한 시간강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이튿날인 26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쪽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이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메일을 몇 차례 더 받았다. 개인적으론 엊그제가 시간강사를 하다가 2003년 목숨을 끊은 친구의 기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착잡했다. 대학사회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
 
 
marr 2008-03-08 17:06   좋아요 0 | URL
로쟈님, 동종업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동현장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온갖 불법과 비인간적 작태에 맞서 수십일 동안 120m 고공 농성을 해도 어디 기사 한줄 안나고, 꼭 분신이나 자살처럼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겨우 관심을 가지는 현실이 너무 냉혹합니다.
저희 학교는 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분회가 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논의하여, 월요일 학교 본관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선생님들과 연대의 마음을 모으고 싶습니다.

로쟈 2008-03-08 19:00   좋아요 0 | URL
전례로 보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한국사회의 의사표현 방식은 삭발, 단식, 분신, 자살 등에 한정돼 있으니까요...

라주미힌 2008-03-08 18:39   좋아요 0 | URL
치솟는 학비는 다 어디로 간걸까요 ㅡ..ㅡ;

로쟈 2008-03-08 19:00   좋아요 0 | URL
아시는 대로 대부분 재단으로 들어갑니다...

2008-03-08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8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ti 2008-03-08 21:21   좋아요 0 | URL
남의 일이 아니라, 가슴이 더 아픕니다.

로쟈 2008-03-08 22:41   좋아요 0 | URL
자살한 일부 강사들은 친구이자 지인들이기도 해서 저 또한 착잡합니다...

paviana 2008-03-08 23:00   좋아요 0 | URL
비정규노조의 김동애선생님한테 배운적이 있어요.
여전히 힘겹게 그러나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뵈니 반갑기도 하지만 역시 착잡하네요.
지도교수님 돌아가신 병원에서 뵙고 못뵜으니 5년도 더 된거 같네요.
갑자기 선생님이 뵙고 싶네요.참 좋은 분이신데..

로쟈 2008-03-09 21:21   좋아요 0 | URL
언젠가 TV에도 한번 나오셨더랬죠...

Mephistopheles 2008-03-09 01:37   좋아요 0 | URL
천만원이 넘어 가버린 등록금이 떠오르는군요..에휴.

로쟈 2008-03-09 21:21   좋아요 0 | URL
교육 '사업'이죠...

사량 2008-03-09 17:14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교수노조 및 천막농성과 관련하여 언급된 선생님들 연세가 환갑 전후네요. 더욱 가슴이 쓰라려집니다. ㅜㅜ

로쟈 2008-03-09 21:22   좋아요 0 | URL
구조적으로 젊은 강사들은 '투쟁'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2008-03-10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10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0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0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