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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우리 곁을 떠난 정군님의 리뷰를 하나 옮겨놓는다. 지승호의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에 대한 것이고, 형식은 '오마이뉴스'의 서평기사를 퍼오는 식으로 하겠다(정군님의 알라딘 리뷰들은 현재로선 모두 그와 걸음을 같이 했으므로). 딴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아침에 '필름2.0'을 읽다 보니까 이번주 인터뷰이(!)가 지승호씨였다. 이달에 나대로 고른 '사회적 독서'의 대상 중 하나가 <금지를 금지하라>였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고(이 인터뷰는 내주에 옮겨놓을 생각이다), 두 주 전쯤에 산 책을 아직 못펴들고 있지만 조만간 읽어볼 결심을 다시 하게 됐다.

그런 생각으로 '지승호'를 검색하니까 가장 먼저 뜨는 게 바로 오마이뉴스의 이 서평기사이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지. 서평도서에 대해서 그만한 애정과 부지런함을 갖춘 '서평꾼'이 이제 이 마을에는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고 씁쓸하다(물론 나도 '양다리 걸치기'에 대해선 충고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도덕적인 책임의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래의 리뷰는 그걸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오마이뉴스(06. 12. 11)  세상을 발전시키는 대화가 여기에 있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열 번째 인터뷰집을 내놓았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이들, 박원순,조정래, 마광수, 이상호, 정태인, 문정현, 최승호, 지승호 등 8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담긴 <禁止(금지)를 금지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 분야에서 자신이 믿는 것들을 위해, 그것이 권력을 지닌 자본의 논리에 비켜나는 것일지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열혈인사들이기에 인터뷰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맨 뒤에 있는 '지승호'와 한 인터뷰다. 저자가 다른 이를 만나서 인터뷰한 것을 담은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셀프 인터뷰'다. 10번째 인터뷰집을 기념해서 담아본 것이라고 하는데, 그 시도가 생소하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묵묵히 인터뷰집을 내놓았던 지승호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들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지승호 인터뷰부터 보도록 하자. 눈길을 끄는 것은 솔직함이다.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서 소를 연상케 하는 성실함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인터넷에 달린 댓글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며, '열등감으로 가득 찬 나르시스트'라는 자평은 예의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지승호씨 또한 알라디너인데, 나는 본인도 고백하는, 그리고 노출하는 그의 '피해의식'이 오히려 책읽기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저자는 적당히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이건 굳이 저자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일기장에 담을 법한 내용이라고 할까? 인터뷰집이라는, 아직은 생소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저자의 어려움과 고뇌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인터뷰를 계속하는 걸까? 지승호는 도올의 말, 즉 "대화는 편견의 확인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터뷰의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대화는 힘이 세다! 그것을 믿고 인터뷰를 하며, 더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일 게다. 자본은 뒤로하고, 오로지 그 믿음 하나만 갖고 사는 열혈남자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지승호가, 대화의 힘을 믿는다는 그가 책 속에서 만난 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시작은 참여연대를 나와 희망제작소를 만든 시민운동가, 얼마 전에 삼성에서 지원금을 받아 논란을 일으켰던 주인공 박원순이다. 인터뷰에서 박원순은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된 시민운동가의 고뇌를 털어놓는다.

그 고뇌란 무엇인가?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주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심지어 이름만이라도 빌려달라는 것도 있다. 박원순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곳에서 '너무 설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박원순은 이것을 농담처럼 말하지만 단순히 유명세로 얻은 병치레라고 치부하기에는 커다란 고민이 있어 보인다. 그런 고민을 듣는 것 외에 참여연대에서 희망제작소로 옮긴 과정, 그리고 희망제작소에서 삼성의 기부금을 받은 것에 대한 생각 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도 반갑다.

지승호의 질문이 날카롭기 때문일까? 박원순은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았다. 참여연대에서 나오게 된 과정, 기업으로부터 돈 많은 것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박원순을 비판했던 이들에 대한 생각까지 들을 수 있다. 박원순, 나아가 오늘날의 시민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체크해 볼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한강>과 <태백산맥>, 그리고 <아리랑>이라는 말 많은 작품의 주인공 조정래다. 이 작품들이 말이 많다는 건 왜일까? 고발된 문학 작품! 마광수, 장정일과 달리 조정래의 작품은 '레드 콤플렉스'로 인해 무성한 말이 오고 갔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다른 인터뷰들은 기이할 정도로 이것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작품의 의미만을 파고드는 반쪽짜리 인터뷰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조정래에 관해서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승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것을 파고들었다. 또 조정래에게 정치에 관해서도 물어보고 있다. 덕분에 조정래는 <금지를 금지하라>에서 작품으로 말할 기회에 이어 '대놓고 말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은 예의 치레에 박힌 말들이 아니라 인간 조정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말들이기에 반쪽이 아닌 정상 인터뷰가 만들어졌다. 조정래에 관한 인터뷰 중에서 가장 성실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인터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자유정신 선동가' 마광수다. 마광수는 속칭 '야한' 소설로 말이 많은 작가다. 지승호나 마광수 또한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때문에 이들은 이것부터 파고든다. 마광수는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이 억울한가? 마광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 예컨대 무라카미 류의 작품처럼 야한 정도로 따지면 더 노골적이 있는데도 국내 작가들의 작품만 차별한다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서운함도 빼놓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작품을 읽어본 뒤에 '비판'을 한다면 감수할 수 있겠지만, '너무 야하다!'는 말만 듣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광수의 말은 듣기에 거북한 것이지만, 근거가 있는지라 간과할 수 없다. 외국의 것은 작품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의 것은 작품성과 별도로 '위험하다'는 이상한 이중성의 잣대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광수의 인터뷰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리로만 전락한 것은 아니다. 다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며 자유로우면서도 '올바른' 성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들은 농담 같지만 진지하고 장난 같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는 뼈있는 말들이다.

이외 대추리에서 만난 문정현과의 인터뷰에서는 '낮은 곳'에서 나이를 잊고 고군분투하는 종교인의 속마음을, 정태인과 한 인터뷰에서는 한미FTA의 위험성을 이상호와 최승호가 만난 인터뷰는 한국 언론에 대한 문제점을 들을 기회가 된다.

인터뷰 하나에 질문을 140개 만들 정도로 성실하게 준비했기 때문일까? 이들과 나눈 대화는 살아 있다.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라 인터뷰만 봐도 그들을 직접 만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 있고 굳세다. '대화의 힘'은 묻히지 않았고 활자 위에서 생동하고 있다. 덕분에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대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엿보게 해준다.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 등 그들의 말만 갖고도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법한데, 그들 8명을 한 권에 담아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금지를 금지하라>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우는, 진실을 찾는 이 사회의 일꾼들의 목소리가 담긴 <금지를 금지하라>, 세상을 발전시키는 대화가 담겨있다.(정민호 기자)

07. 01. 16.

P.S. 참고로 저자가 가장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인터뷰는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라고 한다. '사회적 독서'는 취향이나 형편에 따라 읽으면 좋고, 가 아니다. 의무적인 독서이고 강제적인 독서이다. 물론 그래도 각자의 사정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많이 봐드리자면, 한권씩 그냥 사서 꽂아두시길. 그래야 책이 계속 더 나온다. 지승호 인터뷰집의 근간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 속편이라고. 그의 계획대로 홍상수, 김기덕 감독 편까지 포함한 인터뷰집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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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6 23:05   좋아요 0 | URL
'작금의 현실'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비로그인 2007-01-17 06:36   좋아요 0 | URL
이 글보니 더 쓸쓸해지네요......

라로 2007-01-17 15:38   좋아요 0 | URL
푸훗~ 그러네요~.ㅎㅎㅎ
로쟈님 남자분이세요?
줄곳 여자분인줄 알았다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면 할말 없지만...
님의 유머감각 좋아요~.찡긋

로쟈 2007-01-17 15:40   좋아요 0 | URL
라라님/ 그렇죠? 가을도 아닌데...
nabi님/ 제가 머리는 밀었어도 (여자처럼) 세심한 면이 있지요.^^

이방인 2007-12-11 01: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실 시작은 Film 2.0에서 시사IN이었는데, 로쟈님도 Film2.0을보고 지승호의 책을 다시금 꺼내들었다는 말씀에 묘한 운명같은게 느껴지네요.
저는 Film 2.0메니아로, Film 2.0의 지승호씨 인터뷰를 무척 인상깊게 보았다가, 최근 시사IN의 알라딘 리뷰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로쟈님이 말씀하셨던 특정분야의 1등은 먹고 살게 해줘야 한다는 말에 필이 꽂혀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 다시 들어오게 된 이유는 금지를 금지하라 책 읽으면서 또 필이 꽂혀 박원순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혹시 추천해놓으신게 없나 싶어서...
 

'사회적 독서'를 위한 점검으로 일단 한국사회의 현단계를 짚어보는 두 칼럼을 읽어둔다. 하나는 정치학자가 진단하는, 한국사회 20-30대의 급격한 보수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학자가 꼬집는바 좌파연하는 사회적 엘리트층의 생활우파화 경향이다. 나는 이게 2007년을 맞는 우리 사회의 '액면'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얼마만큼 변화할 수 있을까? 이달에 새로 바뀐다는 천원권, 만원권 지폐의 도안만큼이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액면'은 언제나 그대로 보존되는 것일까?

한국일보(07. 01. 01) 젊은 보수

새해가 밝았다. 지겨운 한 해가 끝난 것이 다행이면서도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얼마나 이전투구를 벌일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에는 무엇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지금 현재 워낙 인기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 노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대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소한 3김 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사당정치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성과도 있다. 그것은 국민통합을 이룬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대부분 “연초부터 무슨 헛소리냐”고 분노할 것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전투적 언행으로 증오의 정치를 부추기고 국민분열을 가속화시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노 정부가 엉뚱한 방식이긴 하지만 국민통합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이 반(反)노무현으로, 그리고 그 결과 한나라당 지지로 뭉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특히 지역대립에 이어 새로운 사회적 갈등으로 부상하던 세대갈등을 깔끔하게 해소시켜줬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사회는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20~30대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50대 이상이 부딪쳤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젊은 표 덕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 탄핵 사태도 이들의 절대적인 지지 덕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와 관련해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취약층이었던 20대에서 49.5%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특히 최취약층이었던 대학생들에서 54.5%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는 한나라당의 평균지지율 47.9%보다도 높은 것이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 덕분에 심각한 세대갈등이 해소되고 젊은이든 노인이든 모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대통합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가 젊은이들까지도 정치적으로 보수적 생각을 갖는 ‘??은 보수’의 시대를 활짝 열어준 것이다. 대학생의 54.5%의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이라,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다.

지난 대선 당시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 20~30대가 50~60대와 다른 것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서였다. 이들은 친북적인 주사파나 반미운동세력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력에 기초한 자신감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했고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자주노선을 지지했다. 한마디로, 탈냉전적 사고를 가진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핵심정체성인 냉전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한 20~30대의 지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이 변하지 않는 한, 잇따른 재보궐선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선거이고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대통령선거의 경우 인구분포 면에서 가장 비중이 큰 20~30대의 지지를 얻지 못해 또 다시 패배할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냉전주의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30대가 한나라당지지로 돌아섰으니 이변 중의 이변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라는 포괄적인 답을 넘어서 20~30대가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청년실업과 폭등한 집값에 따른 절망감 등을 추측해볼 따름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탈냉전적 사고를 가지고 있고 한나라당과 상극인 20~30대를 한나라당 지지로 만들어낸 것을 보면 역시 노 대통령이 재주 하나는 비상하다는 감탄이다. 낡은 냉전주의의 망령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 덕에 한국에도 ‘젊은 보수’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 놓고 지난 연말 갑자기 내놓은 병역 복무기간 단축이라는 깜짝 카드로 돌아선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손호철의 정치논평)

한국일보(06. 12. 20) 사상-생활 분리주의

탁석산씨의 <대한민국 50대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사상과 생활의 네 가지 조합'이었다. 그는 사람의 사상과 생활을 좌ㆍ우파로 분류해 ①사상 우파-생활 우파 ②사상 우파-생활 좌파 ③사상 좌파-생활 우파 ④사상 좌파-생활 좌파 등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②유형이 가장 바람직하고 ③유형이 최악이라는 탁씨의 주장엔 논란의 소지가 있겠지만, 이제 '사상'만 말하지 말고 '생활'과 '인격'에 대해서도 말할 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문제 제기는 소중하다 하겠다.

● '사상 좌파, 생활 우파' 엘리트의 문제

한국의 엘리트 계급을 놓고 말한다면, 가장 흔한 게 ①, ③ 유형이다. 사상에 관계없이 대부분 생활은 우파라는 것이다. 사상ㆍ생활 분리주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거니와 여전히 그 장점도 있기 때문에 ③유형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제는 ③유형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좌우 개념을 세력균형 중심의 상대적 관점에서 보아 개혁파까지 '사상 좌파'로 간주한다면 말이다. 그로 인한 문제는 대략 네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사회적 의제 설정의 왜곡이다. 개혁 의제를 민생과 동떨어진 의제 중심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생활 중심 의제에선 자신들이 '사상 우파'를 압도할 수 있는 차별성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 우파'인지라 서민 중심 의제의 절박성을 감지하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게다.

둘째, 출세를 위한 사상의 도구적 이용이다. 사상이 생활과 분리된 채 출세주의의 도구가 되면 '사상 좌파'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경쟁에선 생활이 우파일수록 강경파 노릇을 하는 법이다. 이는 권력의 자기성찰과 자기교정 기능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셋째, 불신 초래와 민심 이반이다. 민심은 처음에는 '사상 좌파'가 '생활 우파'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탈법ㆍ부도덕의 혐의가 짙은 '생활 극우파'의 모습이 드러나는 일이 빈발할 경우 등을 돌릴 뿐만 아니라 기만을 당했다고 분노하게 된다.

넷째, '생활 좌파'의 득세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생활 우파'는 사상에 관계없이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생활 좌파'보다 높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또 언론은 '사상'만 보도할 뿐 '생활'은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생활 좌파'의 진정성을 접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네 가지 문제를 이젠 본격적으로 거론할 때가 된 것 같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안겨준 가장 큰 실망은 '사상ㆍ생활 분리주의'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좌파쪽 입장에선 생활은 우파인데도 사상은 좌파인 사람들이 힘을 보태준다고 해서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득세로 인한 기회비용의 문제를 이젠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겠다.

● DJㆍ노 정권이 준 가장 큰 실망

고액 연봉을 받는 고위 공직자나 전문직 종사자라고 해서 곧장 '생활 우파'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사상 좌파'이면서도 소득 상위 20% 계층의 연간 가구소득(7,280만원)보다 더 많이 재산을 불려놓고선 자신을 '청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놓고선 가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한국엔 기부 문화가 없어서 큰 일이라고 개탄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부정한 돈 한푼 안 받으면 '생활 좌파'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한국에서 사상ㆍ생활 분리주의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데다 그럴 만한 역사적ㆍ구조적 조건이 있기 때문에 쉽게 극복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자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사상ㆍ생활 분리주의의 폐해를 더 겪어봐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07. 01. 01.

 

 


 

P.S. 한국사회의 현단계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읽어볼 만한 책은 손호철의 <해방 60년의 한국정치>(이매진, 2006)와 강준만의 <한국생활문화사전>(인물과사상사, 2006)이다. 서구의 이론과는 다른(짝퉁!) '한국적' 정치사와 생활문화사에 대해서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P.S.2. 겸사겸사 한겨레에 실린 박명림-김명인 교수의 대담도 옮겨놓는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더불어, 박명림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6>(한길사, 2006)과 김명인의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6)를 참고할 만한 책으로 추가해야겠다.

한겨레(07. 01. 01) 6월항쟁 20돌 ‘시대정신’을 찾는다

박명림-김명인 교수 대담

2007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국민의 마음은 밝지만은 않다. 1987년 6월항쟁 이래 더디지만 꾸준히 진척돼온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한 기로에 봉착했다. 노무현 정부와 민주주의 세력의 지리멸렬과 좌충우돌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에 상처를 입혔다. 희망보다는 불안이 큰 시기다. 그러나 전망이 어둡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구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어떤 사람을 다음 5년 대한민국호 선장으로 뽑느냐, 어떤 세력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기느냐에 온 국민의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눈앞의 안개를 걷어내고 길을 여는 시대정신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견 학자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모처럼 맞주앉아 오늘 한국사회에 절실한 시대정신을 찾는 일에 지혜를 모았다. 대담은 지난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렸고, 사회는 한승동 문화부문 책·지성 팀장이 맡았다.

사회= 2007년은 특별한 해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지만, 6월항쟁 20돌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20년이면 한국 민주주의가 풍성한 수확을 얻을 만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를 냉정히 진단해볼 필요가 있겠다.

박명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부터 짚어보고 싶다. 2007년은 6월항쟁 20돌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래 민주정부가 지속된 지 1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10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 문제가 불거졌다. 둘째, 민주주의 실천의 내용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느냐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셋째, 한·미 에프티에이(FTA)와 북핵문제를 포함한 국제적인 현안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가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 10년, 6월항쟁 20년을 맞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 사회통합 의제 손놔

김명인=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보면, ‘노무현 이후’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는 게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딱히 답할 만한 것이 없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떠안고 가야 할 과제로서의 ‘공안’(公案)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김영삼 정권 이래 공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세계화’밖에 없었다. 하다 못해 박정희 정권 때는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라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 오늘 이 자리가 그런 공안을 찾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노무현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실패한 것인가.

=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불안과 희망 없음이 우리 사회의 주조가 됐다. 노무현 정권 이후 불안이 더 확산됐다. 박탈감, 절망감이 더 번졌다. 민주 정권이 2기에 들어섰는데, 민주주의가 정착하기는커녕 오히려 삶의 활력을 빼앗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이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악마적 시장경쟁이 사람들을 완벽하게 포박해 실존적 궁지로 몰아넣었다. 국가는 그런 상황을 방치했다. 사회를 통합할 어떤 의제도 제시하지 못한 채 손놓고 있다. 노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그만큼 큰 것 같다.

=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성공적이지 못한 건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한국적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다. 국가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준비도 연구도 부족했다. 과거 반독재 투쟁의 열정에 비해 민주주의적 대안을 찾는 지혜는 현저히 부족했다. 그 결과 개인이 시장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삶의 집합적 안정성이 흔들렸다. 민주주의가 실현될수록 삶이 예측 가능한 것이 돼야 하는데 오리혀 그 예측 가능성이 크게 파괴됐다. 이 점에 관해서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로 책임을 다 돌려서는 안 되고, 한국사회 진보세력 전체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사회= 과거와 비교해 삶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줄었다고 했는데, 외환위기 사태와 무한경쟁으로 내몬 신자유주의 물결이라는 불가피한 흐름에 떠밀린 탓도 있지 않을까.

= 신자유주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면을 강조하고 싶다. 6월항쟁 이후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소극적 차원에 머물렀고 적극적인 내용을 창출하지 못했다. 우리가 상상한 민주화는 구성원의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사회 공동체가 자기 운명의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이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들이치면서 과거보다 더 강력한 구속상태로 떨어졌고 공동체적 자기 결정권은 더 약해지고 형해화했다. 개인의 자유, 의지, 희망을 보호해주는 장치가 사라져버리고 외적 강제에 내맡겨진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타율성을 강화하는 역설이 빚어졌다.

사회=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시민의 실패, 국민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민 몫으로 돌릴 잘못은 없는가.

=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가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경쟁을 보장하는 것인 반면에, 공화주의는 박애와 연대와 평등으로 자유의 빈 곳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급경한 좌우 이념논쟁에 휘말리면서 자유주의 원칙만 남고 공화주의 원칙은 실종되고 말았다. 경쟁의 원칙에 연대의 원칙이 짝으로 서야 하는데, 연대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여기에 위기의 원인이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임과 동시에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실천은 훨씬 정교한 디자인과 비전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 제도만 성립시키면 된다고 자만하다보니,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 실패는 실천의 영역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국민은 그걸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 노무현 정권 실패는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 자체의 실패라고 보아야 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에 무책임하게 자유를 의탁했고 수수방관했던 측면이 있다. 민주 정부는 민주주의의 조건을 확보한 것일 뿐인데, 그 내용을 채우는 일에 진보개혁 세력이 방관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 개혁이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됐는데, 거기에 편승하는 게 마치 민주화의 성과를 다지는 일인양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견제장치라도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장치마저 포기했다.

유럽, 우파가 집권해도 ‘사회국가’ 유지

사회=‘국가의 역할’이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듯하다.

= 신자유주의에 따른 문제는 정부의 실패이자 시장의 실패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건 정부밖에 없는데, 정부가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 유럽의 상황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유럽에서는 우파가 집권하더라도 헌법에 명문화된 ‘사회국가’ 원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시장의 실패나 정부의 실패를 보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국가’ 모델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권위주의 국가 모델 아니면 시장국가 모델 두 가지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사회=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좀더 논의해보자.

= 민주주의는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싸지 않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386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386세대가 너무 사회과학적 상상력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회과학은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일종의 오만이다. 사회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을 목적으로 보는 인문적이고 사회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경쟁과 연대가 공존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나는 70년대에 학생운동을 한 사람인데, 그 시절엔 사회과학적 상상력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마틴 부버의 <나와 너>,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을 먼저 읽었다. 내면적인 가치를 중시했다고 할 수 있는데, 386세대는 사회공학적 측면이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386세대 정치적 실패 겪은적 없어 성찰 부족

= 70년대와 80년대 학생운동의 독서행태를 조사해본 적 있는데, 정말 달랐다. 70년대 세대는 인문적 상상력을 소중히 여겼고, 소설을 많이 읽었다. 80년대엔 강령이나 지침으로서의 독서가 주종을 이뤘다. 게다가 이 세대는 정치적 실패를 겪어본 적이 없다.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민주정부를 성립시켰고, 또 386이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정권 집행세력이 전혀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성찰의 시간이 없었다. 이들이 주도한 한국 민주주의는 탈지성화, 탈인문화와 같이 갔다. 인문적 지성 없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

= 지식 담론이 김대중 정부 때 좀 나왔다가 ‘신지식인’으로 변질돼버렸다. ‘인문학적 지식’을 사회적 의제에서 빼버렸다. 특히 대학이 그 대열에 앞장섰다. 그러다 보니 낭만적 상상력,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고갈돼 버렸다. 속도·경쟁·양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고방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이런 인문학적 상상력이 복원돼야 한다.

사회= 이야기를 정치 쪽으로 돌려보자.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민주노동당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 87년 이후 ‘시민담론’과 ‘민중담론’이 분리됐는데, 그래서는 보수세력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분열돼서는 개혁을 집행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노동자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연대해 ‘노동-자유연합’을 만들고 그 힘으로 현재의 사회국가를 이루었다. 우리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 진영이 분화돼버렸다. 민주주의는 타협·대화·소통을 요구한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제도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세력의 분열이 희망의 소멸에 큰 책임이 있다.

= 그러다 보니 보수기득권층한테 헤게모니를 빼앗겨버렸다. 관료조직에 대한 어떤 통제도 하지 못했다. 보수적 지배구조가 민주적 절차라는 방식으로 옷만 갈아입은 꼴이 되고 말았다. 집권한 민주세력은 그걸 성공이라고 오인했다. 민중적 가치를 민주적 가치와 분리한 뒤 민중적 가치를 다 내버렸고, 그걸 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사회=그렇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뤄야 하나.

= 민주주의 사회는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런 확신이 넓게 공유돼야 한다. 기층민중과 소수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려면 이제껏 실종된 민중적 상상력이 다시 작동해야 하며, 새로운 변혁 역량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양산은 연대와 배려 없는 집단광기

=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가는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영혼이 부박해졌고 삶이 강퍅해졌고 핏발선 사회가 됐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고 과정이며 수단이다. ‘좋은 삶’이라는 집합적 가치를 이루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 최근 우리은행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이건 자본에게 여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얘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지, 자본주의적 합리화와는 별 관련이 없다. 연대와 배려를 부인하게 만드는 집단적 광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

= ‘경쟁에서 연대로’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사회적 영혼을 돌보고 사회의 인간화를 이끄는 것은 연대밖에 없다. 또하나 이야기한다면, ‘격물치지’의 가치를 들 수 있겠다. 우리 사회의 역할에 합당한 품격이 사라져버렸다. 대통령의 대통령다움이 없고, 언론의 언론다움이 없고, 지식인의 지식인다움이 없다. 말하자면 품격이 없다. ‘다움’이 없다보니 배려도 관용도 따뜻함도 없다. 이 가운데 지식인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데 지식인의 역할이 크다.

=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으로 ‘성찰적 행동주의’를 제시할 수 있겠다. 한 사회 전체가 성숙하려면 성찰과 배려가 행동 속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치를 사회 속에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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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01 15:19   좋아요 0 | URL
강준만씨의 글은 언제 봐도 참 예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궁금한 건 강준만씨 자신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③사상좌파 생활우파? 아니면 ②사상 우파-생활 좌파? ④사상 좌파-생활 좌파 요건 좀 아닌것 같고..-_- 로쟈님은 몇번 유형쯤?^^

로쟈 2007-01-01 22:07   좋아요 0 | URL
대학교수나 기자나 변호사들도 '서민'이라고 우기는 편이니 제가 생활우파 행세하는 건 턱도 없구요, 사상좌파를 하기엔 몸이 너무 무겁습니다. 분류하자면, 가장 바람직한 경우(사상우파-생활좌파)의 아류쯤 될 거 같습니다. 혹은 패러디...

마태우스 2007-01-01 22:12   좋아요 0 | URL
호호 손호철의 칼럼 재미있군요. 노무현이 전혀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군요^^

biosculp 2007-01-01 23:55   좋아요 0 | URL
서점에 갔다가 복거일지음.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이라는 제목이 보여 훓어보다 샀습니다. 정말 노무현 때문인지 복거일을 다시보게 되더군요. 한국사회의 현단계라는 글때문잊도 모르고.
복거일씨 후기에 도덕적 삶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리던데. 사상우파 생활좌파일런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알라딘에 이책이 뜨지는 않더군요.
 

신년이긴 하나 휴일의 하루인지라 느지막이 일어났다(돼지해이니까 돼지꿈이라고 꿔줘야 했을 텐데, 설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아침신문들을 읽다가 눈에 뜨인 기사는 '책읽기 365'를 제안하는 도정일 교수의 칼럼이었다. 365이니까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끈을 바짝 조이는 의미가 있겠다. 그간에 독서문화운동이나 독서캠페인 등을 많이 있어 왔지만, '사회적 독서'를 기치로 내건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 독서'의 짝이 될 이 말의 효용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방점은 '해보자'에 찍힌다. 뭐라도 해보기로 결심하는 게 또한 시년을 맞는 의례이기도 하므로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라는 제안에 한 표를 던진다.   

경향신문(07. 01. 01) 독자여, 당신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미국 일리노이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바락 오바마는 차세대 대통령 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떠오르는 별로 알려지고 있는 사람이다. 마흔 다섯 살의 초선 의원이 정계 진출 3년 만에 이처럼 빠르게 부상한 것은 존 F. 케네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오바마 현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정치에 실망하고 정치판에 덧정 떨어진 국민들에게 그가 신선한 희망으로 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희망’을 말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근년 한·미 두 나라 정치판은 기이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민은 극단적인 분열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풍비박산 쪼개져 있으나 정치는 이 분열을 치유할 힘이 없다. 정치 자체가 분열의 조장자이자 분열을 먹고 사는 독버섯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진지한 토론과 숙고 대신 막말, 욕설, 비방, 험담으로 날 새는 저열하고 잔인한 정쟁의 지옥이 되어 있다.

-희망의 원천은 시민의 자질-

대립과 싸움은 정치의 숙명이다. 민주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대립이고 싸움이냐에 따라 정치의 품질과 수준은 한참 달라진다.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오로지 권력잡기가 목표일 때 정치는 사회악이 되고, 국가적 현안과 국민생활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보다는 당략과 점수따기를 위한 진흙던지기가 될 때 정쟁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싸움질로 전락한다.

인권변호사, 공동체 운동가, 시카고 법대 강사의 경력을 가진 오바마가 정치에 투신한 이유는 미국의 ‘깨진 정치과정을 수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분열보다는 공통의 희망과 꿈으로 국민을 한데 묶어주는 일이 더 위대하고 시급하다는 것이 그가 최근 저서 ‘대담한 희망’ 등에서 말하는 희망의 정치 기조다. 당리당략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건강한 양식과 상식의 힘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는 주장도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 방법론이다.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 보자-

금년은 우리에게 대선의 해다. 우리에게도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고 정치과정의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 희망의 메시지도 그립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할 궁극적인 힘은 ‘시민’에게서 나오므로 그 시민의 판단력과 자질이 또다시 요긴해지고 있다. 시민적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 중의 첩경은 누가 뭐래도 책 읽기이고 독서를 통한 숙고의 능력 키우기다.

무슨 책? 독자여, 나는 당신에게 어떤 책도 권할 생각이 없다. 나는 오히려 당신이 뽑아주는 책, 당신이 만드는 책들의 목록을 보고 싶다. 그 목록으로 우리가 사회적 독서를 시작하고, 이슈를 가리고 문제를 토론해 보는 것이 금년에 우리가 해야 할 소중한 일의 하나다. 경향신문이 새해 벽두부터 책읽기 문화의 확산을 위한 연중시리즈 ‘책읽기 365’를 시작하는 의미도 거기에 있다.(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07. 01. 01.

P.S. 그러니까 논리는 이렇다. 새로운 정치문화는 시민에게서 나온다 -> 따라서 시민의 판단력과 자질이 요긴하다 -> 그러한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은 책읽기이다. 이 책읽기가 다가올 '파국'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나(지젝의 표현을 빌면, 소행성과의 충돌 같은 재난 앞에서 철학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기분이면 못할 것도 없겠다. 한데, '주최측'에서 어떤 책도 권할 의사가 없다고 하므로 좀 난감하다. '당신이 뽑아주는 책으로 시작해보겠다고 한다. 젠장, 민주주의의 고단함이여!

 

 

 

 

해서, 마지못해 몇 권의 책을 꼽아본다. 한국사회에 대한 책으로 지승호의 대담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 그리고 미국에 대한 책으로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 '인문서'로 어느샌가 출간된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그리고 시집으로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네 권을 1월에 짬짬이 읽을 책으로 정해둔다. '이슈를 가리고 문제를 토론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책임감'이 강제하는 책읽기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분단국에서 또 한 차례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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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7-01-01 11:46   좋아요 0 | URL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는 제게 좋은 화두를 던져주셨네요..감사합니다..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로쟈 2007-01-01 11:50   좋아요 0 | URL
제가 '화두'를 인수인계한 셈이군요.^^

승주나무 2007-01-02 09:13   좋아요 0 | URL
경향에서 1면마다 책 한 권을 소개하기로 했다네요. 경향의 기획력은 인정하지만, 제발 동아처럼 설대 교수가 추천하는 고전 100선처럼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에발~

로쟈 2007-01-02 11:15   좋아요 0 | URL
첫호를 보니까 김지하의 서평을 싣고 있더군요. 한데, 분량이 너무 짧아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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