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세종서적, 2008)이 번역/출간됐다. 두 사람의 대표작인 <제국>(이학사, 2001) 이후에 '다중(multitude)'은 하도 많이 회자되는 말인지라(물론 <제국>의 역자인 윤수종 교수는 '대중'이라고 옮겼었지만) 두 사람의 이 후속작은 이미 번역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하지만 정작 이번에 출간된 게 '진짜' <다중>이다. 2004년 영어판이 나온 지 4년만이다. 한데 책소개를 위해서 관련자료들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건 <다중>, 곧 네그리와 하트의 정치적 기획을 지지하는 글이 아니라 비판하는 글이다. 미리 김부터 빼놓는 듯도 하지만 비판적인 리뷰는 책의 '급소'와 '논쟁점'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기에 미리 일독해봐도 좋겠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국역본은 '자율평론' 멤버들이 옮겼으며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가 그 부제이다.

 

프레시안(05. 12. 26)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프레시안 사미르 아민/정치경제학자,제3세계포럼 디렉터] 미국의 좌파 잡지인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가 최근호(2005년 11월호)에 〈제국(Empire)〉이라는 저서의 공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좌파 이론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관점과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글 '제국과 다중'을 게재해 전세계 좌파 진영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국내에는 <유럽중심주의>, <주변부 자본주의론>,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가치법칙과 사적 유물론>, <모택동주의의 미래> 등이 소개됐었다.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



〈제국주의와 불균등 발전〉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낸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민은 이 글에서 '제국(Empire)'과 '다중(Multitude)'이라는 키워드로 오늘날의 세계체제를 설명하는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투항하는 이론"이며, 두 사람의 이론적 관점에서는 "지배자본이 강요하는 일방적 세계화"를 극복해내고 진정으로 민중에 이익이 되는 "진보적 대안"을 창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 이론은 이들의 저서가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진보적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과 대중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데 그친 감이 있다. 〈프레시안〉은 이런 점에서 아민의 글이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먼슬리 리뷰〉의 허락을 얻어 그 번역문을 싣는다. 원문은 〈먼슬리 리뷰〉의 웹사이트(
www.monthlyreview.org/1105amin.htm)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번역문을 게재하는 것을 계기로 〈프레시안〉은 앞으로 〈먼슬리 리뷰〉에 게재되는 글 가운데 국내 독자들이, 그 논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오늘날의 세계와 담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글을 선별해 비정기적으로 번역 소개할 예정이며, 이렇게 하는 데 대해 〈먼슬리 리뷰〉 측과 합의했음을 밝혀둔다.(편집자)



제국과 다중: 제국주의 이후의 제국인가, 제국주의의 새로운 확장인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현재의 세계체제를 '제국'이라고 부른다.(주) 두 저자가 '제국'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제국'을 구성하는 주요 특징들을 '제국주의'를 규정하는 특징들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다. 두 사람의 정의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엄격하게 정치적인 차원, 즉 '어느 한 국가의 공식적인 힘이 자국의 국경 너머로까지 확장된다'는 차원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제국주의가 식민주의와 혼동되고, 결국은 식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돼버린다. 이런 공허한 주장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영합하는 것이다. 이 담론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주의 제국을 구축하려는 열망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따라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렇다고 부시(미국 대통령-역주)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이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제시해주는 분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 분석은 자본, 특히 지배적인 자본의 축적에 필수요건이 되는 것들을 식별해내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이 분석은 지구적 차원에서 부와 권력의 양극화를 낳으면서 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 체제를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해낼 수 있게 해준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정치경제학파 사람들이 그동안 제시해 온 모든 분석들을 일관되게 무시한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모리스 뒤베르제(프랑스의 정치학자-역주)의 법칙주의나 저속한 앵글로색슨 식 경험주의 정치학을 채택한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제국주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러 다양한 제국들, 예를 들어 로마제국, 오스만제국, 영국 또는 프랑스의 식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와 소련 등에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특징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제국들 각각이 붕괴한 것도 '서로 유사한 원인들'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런 견해는 어떤 진지한 역사 독해라기보다 피상적인 저널리즘에 훨씬 더 가깝다. 더욱이 두 사람의 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특히 현재 유행하는 경향에 영합하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에 걸친 자본주의와 세계체제의 전개과정에는 당연히 모든 영역에서의 질적인 변환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과학과 기술의 혁명은 그 자체로 최근까지 국가이익의 수호와 관련되던 수준을 넘어 지구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관리의 형식들도 창출할 것이라고 보고, 더 나아가 이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보는 지배담론을 두 사람이 신봉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배담론은 심각한 단순화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사실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초국가적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그들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확고하게 국가적인 성격을 가진 금융그룹들(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 또는 독일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들을 말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럽'이라는 곳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은 존재하지 않으니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의 수중에 들어있다.

게다가 이 체제의 경제적 재생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 변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행위들과 병행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공허하고 통속적인 자유주의만 자본주의 경제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볼 뿐 그 외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초국가적인 세계국가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세계화에 관한 지배담론은 회피하고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중심 자본주의의 지배적 부분들(즉 과점집단들)의 지구적 축적 논리와 그런 체제의 정치를 지배하는 논리 사이의 모순이다.



발음이 듣기 좋은 '제국(Empire)'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하트와 네그리가 제시한 체제는 세계화의 모습에 대해 지배담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초국가화(超國家化)'가 이미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적 갈등을 근절시키고 제국주의를 '중심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체제로 대체했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관계의 정의인 '중심과 주변 간의 대립'은 이미 극복됐다.

여기서 하트와 네그리는 제3세계 안에도 부(富)의 제1세계가 존재하고 제1세계 안에도 빈곤의 제3세계가 존재하므로 제1세계와 제3세계를 대치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진부한 담론을 채택한다. 물론 미국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는 모두 계급적으로 나뉜 채 세계 자본주의에 통합된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사회구성과 미국의 사회구성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일부 사람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그 나머지 사람들의 수동적인 역할, 즉 세계화된 체제의 요구에 단지 적응하기만 하는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현실에서 보면 이런 구분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타당하다. 현대 역사의 초기단계(1945~1980년)에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피지배 국가들 사이의 역관계가 그래도 주변부 국가들의 '개발'을 의제에 올리고 피지배 국가들도 세계의 변혁을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행위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런 관계들이 오늘날에는 지배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변했다. 개발의 담론은 사라졌고, 그 대신 적응의 담론이 들어섰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세계체제(즉 '제국'이라는 것)는 과거의 세계체제에 비해 제국주의의 성격을 덜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갖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가 만약 지배자본의 대표들이 글로 써놓은 것들에 주목하기만 했다면 위와 같은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두 사람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미국의 기성 주류세력(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의 주요 분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계획이 지향하는 목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들의 목표는 다른 국민들에게 해악을 초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낭비적 생활방식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지구의 자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독점하는 것, 그 어떤 중간 규모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 세력이 워싱턴의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경쟁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지구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통해 이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완전히 패배했고 세계화된 형태로 자유주의가 복원된 것은 객관적으로 진보를 의미한다는 유행담론을 채택했다. 체제에 결함이 있다면 그 결함은 체제와의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체제 자체의 논리 안에서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네그리가 범대서양주의(대서양 양안에 위치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역주)적 유럽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동참해 워싱턴에 종속적인 극단적 자유주의 헌법을 제정하려는 그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실제 역사는 자유주의 선전가들이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르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에서,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그리고 제3세계의 급진 민족주의 성향을 띤 대중주의 경험들 속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난 30여 년 동안 촉발하고 고무해 온 사회적 변혁들은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배논리가 초래한 사회적 요구들에 적응하도록 강제하고 제국주의적 야망들을 억제했다. 이런 사회적 변혁의 프로젝트들은 급진적 성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데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변혁들은 대단한 것이었고, 대체로 보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 역사의 초기에 시작된 이런 변혁의 프로젝트들이 훼손되고 붕괴됨으로 인해 가능해진 자유주의의 복원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일보전진이라기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올바로 하려면 하트와 네그리의 자유주의적 담론을 폐기해야만 한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던져진 질문들에 대해 그동안 중요한, 그리고 물론 다양한 이론적 답변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 특히 새로이 다듬어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나온 이론적 답변들이 눈길을 끈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이론적 답변들을 무시한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제시한 이론적 답변의 개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과거에는 제국주의가 복수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서로 영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과거에는 과점적 자본집중의 증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삼극동맹(三極同盟, the triad, 미국과 유럽 및 일본)이라는 집단적 제국주의가 등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삼극동맹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나오는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 체제에 대해 통합적인 정치적 관리를 하려는 시도는 복수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삼극동맹 내부의 모순은 지배적 과점자본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대변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모순을 "경제는 제국주의 체제의 파트너들을 통합시키지만, 정치는 관련 국가들을 분열시킨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왔다.



다중은 민주주의를 형성하는가, 자본의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가?

자본주의에 고유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처음 성립된 계몽주의 시대에는 개인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理性)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여야 했다는 사실을 지금의 자유주의는 도외시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주의는 자유를 향한 인간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불멸의 진보였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인 사회주의도 개인을 부정함으로써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해 협소한 한계 안에 갇히게 되거나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단지 형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분명 실질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런 진술에 필수적 보완조건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민주적 진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진보는 분리될 수 없다.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들은 이 보완조건을 존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민주주의 없이도, 또는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만큼의 민주주의만 있어도 진보를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지점에서 한 마디를 더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더 이상의 요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있거나,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의문시하는 것은 차치하고 가시적인 사회적 진보 없이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범주의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섰는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개인주의적 토대는 개인을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로 설정한다. 그러나 개인이 역사의 주체라는 주장은 구체제(계몽주의의 정의에 따르면 구체제는 개인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체제였다)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고, 계급이 역사의 진정한 주체가 된 시기에 계급들 사이의 갈등을 토대로 해서 성립된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의 발전된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우리가 바로 그런 역사적 전환점에 이미 도달했으며, 따라서 국가나 민족과 더불어 계급도 더 이상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이미 됐거나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달한 전환점에서는 두 사람이 말하는 '다중', 즉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들 전체'로 정의된 '다중'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환점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하트와 네그리의 글은 아주 모호하다. 두 사람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로의 이행, 비물질적인 생산,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 탈영토화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또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로부터 통제사회(society of control)로의 이행에 관한 푸코의 명제들을 거론한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말해져 온 모든 것, 각자의 관점에 따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는 상투적이고 당연해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든 강력히 논박해야 할 것이든, 모든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거대한 단지 안에 뒤범벅 상태로 집어넣어진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는 그 어떤 주장도 쉽게 확신하게 하지 못한다.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마뉴엘 카스텔이 정식화한 이론적 주장이나 제러미 리프킨과 로버트 라이히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적 저술가들이 퍼뜨린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생각들의 뒤범벅 속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새롭고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는 문제의 '다중'이라는 용어가 창안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시기는 20세기를 형성해 온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운동들(즉 노동자들의 운동,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민족해방운동)이 패배한 시기다. 그 중 어떤 패배의 경우에도 그 패배에 내재된 전망의 상실이 일시적인 불안정을 낳는 동시에 그 불안정을 정당화하는 한편,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불안정이 세계를 변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된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준 이론적 주장들을 양산한다. 그러나 과거의 '리메이크'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과거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에 의해, 그리고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 진화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현실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에 의해 점진적으로 새로운 이론적 정식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는 다양한 기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그런 기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트와 네그리가 다중에 관한 자신들의 담론으로부터 이끌어낸 명제들은 그들 자신이 정식화한 형태로도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곤경을 증언해준다. 이런 그들의 명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될 가능성을 막 보이기 시작했다는 '민주주의'에 관한 명제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은 다중을 민주주의에 구성요소적 세력이 된다고 정의한다. 이는 참으로 엄청나게 단순한 명제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실시되는 선거들 가운데 일부와 같이 자유주의 권력들, 특히 워싱턴의 권력을 만족시키는 것이 분명한 소수의 표피적 겉모습들을 제외하면, 필수적인 민주주의든 미래에 실현가능한 민주주의든 민주주의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 정당성을 상실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상황은 종교적 또는 인종적 근본주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고슬라비아에 인종관료주의(ethnocratic) 정권이 들어섰던 것이 민주적 진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예를 들어 러시아의 독재정권에 봉사했던 것과 같은 한 범죄집단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대신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또 다른 범죄집단의 권력을 세우는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인가, 아니면 하나의 조작된 소극(笑劇)인가를 묻고 싶다. 지구를 통제하기 위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전개가 미국 국내에서도 기본적인 민주적 인권을 위축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공격이 저질러지는 데 발단이 된 것은 아닐까? 유럽에서 주요 우파 및 좌파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서로 손을 잡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유주의 콘센서스는 선거과정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든 질문들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하트와 네그리의 명제는 '다중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다중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정의하는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그 다양성을 창출하거나 위축시키는 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하트와 네그리의 모든 글에 걸쳐 중대한 모순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화는 중심과 주변 사이의 격차를 축소시킨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세계화는 계속 제국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하트와 네그리가 말한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 말한(사실은 북미와 서유럽 사회들에 대해서만 그들이 말했지만) 전체 체제의 지역적 구성부분들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그 자체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서와 같이 인종적 또는 준 인종적 지역사회들도 있고, 종교와 언어상으로 다양한 지역들이 있으며, 아마도 변혁된 사회현실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것이 좋을 듯한 계급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성들이 열거된 뒤에도 실제로 이야기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사회체제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변혁의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내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고 부르는 것을 개념화하지 않고서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진지하고 적극적인 기여들이 있다. 그 중에는 분명 논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여를 한 것이 전혀 없다.



개인을 역사의 주체로, 다중을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역전시켜 설정한 것은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발상이다. 이런 발상은 현실의 사회관계들에는 아무런 변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 사고의 세계에서만 역전이 일어난 것과 같다. 내가 여기서 사고 또는 사상은 늘 현실의 수동적인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견해를 각각의 '심급(審級)'이 지닌 자율성을 인정한 토대 위에서 발전시켜 왔다. 사상은 시대를 앞설 수 있다. 나의 문제제기는 이런 일반적인 명제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트와 네그리의 사상을 포함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시대를 앞선 것인가, 아니면 아직 극복되지 못한 '패배한 시기'의 현실을 단순하면서도 혼동되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인가? 패배한 시기의 여건에서는 다중이 확정적이지 않고 다양하며 분절된 상태의 '다양한 것들'을 구성하는 실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선거에서의 강력한 다수와 같이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듯한 외양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 이상이 아니며, 역사에서 흔히 그랬듯이 하나의 '접합되었지만 내부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구조'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중에 관한 이야기는 1970년대의 노동자주의(workerism)가 그랬던 것과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힐 것이다. 이는 〈제국과 제국주의(Empire and Imperialism)〉(Zed Books, 2005)라는 책에서 아틸리오 보론(Atilio Boron)이 지적한 대로 '부분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에의 고착'이 두 경우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에 배후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는 미국 자유주의의 정치문화다. 이 정치문화는 미국독립전쟁과 그 당시에 채택된 미국헌법을 근대 개막시기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다. 하트와 네그리에게 영감을 준 한나 아렌트는 미국독립전쟁이 "무한한 정치적 자유 추구"의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늘날에 비로소 '세계적 차원에서 최초로 가능해진' 민주주의의 구성요소적 세력인 '다중'의 등장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세계의 미국화'가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너도나도 미국 자유주의로 몰려드는 경향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다른 경로들을, 특히 한나 아렌트가 프랑스혁명을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제한된 투쟁'으로 축소시키고 그렇게 축소된 프랑스혁명에 미국독립전쟁을 대조시키면서 정식화한 '옛 유럽'의 다른 경로에 대한 평가절하를 수반한다. 냉전의 시기에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 근현대의 위대한 혁명들이 모두 폄하당해야 했다. 2차대전 이후에 반혁명의 선봉이 된 미국의 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그런 혁명들은 애초부터 전체주의 경향에 의해 오염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필요로 하는 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의문시하지 않는 개척적인 혁명을 이루고 그런 내용의 헌법도 갖춘 '미국 모델'만이 살아남은 것은 그런 혁명들, 즉 자코뱅파에 의한 프랑스혁명의 급진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요구사항들에 의문을 제기했던 혁명들의 유산이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문화에서는 프랑수아 퓌레(프랑스의 역사학자-역주)가 퍼부은 것과 같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난, 흔해빠진 반소비에트주의, 그리고 마오주의에 대한 공격을 주요 반혁명 메뉴로 삼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대중적 일탈의 위험성을 완전히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성됐음을 확인해주는 내용의 비판적인 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게다가 이런 글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씌여졌다. 그럼에도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이 이룬 성공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과 같이 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는 유럽의 반동세력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지스카르 데스탱은 극단적 자유주의 유럽 프로젝트의 헌법은 미국의 헌법만큼이나 '좋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미래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설정된 다중의 열망은 아주 작은 것들로 축소됐다. 예를 들면 자유, 특히 다른 나라로 이주할 자유,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권리와 같은 것들이다. 위에서 말한 유럽의 프로젝트는 미국 자유주의에 의해 허용되는 범위 밖으로는 감히 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태도를 분명히 보이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으로 인정될만한 것들은 모두 다 무시하며, 특히 미국의 정치문화에 의해 거부당하는 '평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새로 생겨나는 글로벌 시민권(또는 유럽 시민권)으로부터 그 효력을 근본적으로 빼앗는 정책들만 실행된다면, 그런 시민권이 변화의 추동력을 갖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화된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데는 다른 요건들, 특히 전 세계에 걸쳐 대중 계급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열망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트와 네그리는 전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주변부 사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분명하다. 세계의 상이한 국가들과 지역들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여건들 속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전술과 전략에 관한 논의가 하트와 네그리에게 흥미를 유발한 적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촉진된 '민주주의'가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선거 소극'을 넘어서는 것을 허용할까?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풍요로운 서구로 이주할 권리 정도로 축소시키는 게 합당한 일인가?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요구는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이 실현되면 자본에게 노동을 고용하도록, 그리고 그 결과로 노동을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허용하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파괴되어 그 시점부터는 누구나 자본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을 확인하게 되는 노동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단순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역사의 주체를 '개인'들로 축소시키고 그런 개인들을 '다중'으로 합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도전과제들에 상응하는 역사적 주체들을 재구축하는 일과 관련된 진정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한다. 이 주제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답변을 해준 많은 기여들이 있다. 과거의 역사에 나타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들은 분명 현대 역사의 주제들을 '노동계급' 하나로 축소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과거의 네그리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주의자들에게 이런 질책을 할 수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피지배 계급과 민중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적 역관계를 효과적으로 변혁하는 대중투쟁의 각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유능한 사회적 집단들로부터 형성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해 분석해볼 것을 제안해 왔다.

현 시점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제국주의 헤게모니 블록과 매판 헤게모니 블록이 행사하는 권력에 맞서 그것을 물리칠 능력을 지닌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국가적(민족적)인 헤게모니 블록의 형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민주적, 대중적, 국가적(민족적) 블록의 형성은 나라마다 다른 구체적 여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다중'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일반적인 모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중과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긍정은,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에서 찬양한 '지배자본에 의해 강요되는 일방적 세계화'를 '협의된 세계화(negotiated globalization)'로 대체함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는 민주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는 세계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긴 이행과정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다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깊이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인 게 분명하다.



제국과 다중의 정치문화는 도전과제에 상응하는가?

몇 가지 문화적 요소들, 특히 종교적 요소와 인종적 요소를 불변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인류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 즉 '문화주의(culturalism)'가 요즘 유행이다. '공동체주의'의 발달과 '다문화주의'를 인정하라는 권유도 바로 이런 역사적 관점의 산물이다. 이 관점은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과 다르다. 역사적 유물론은 계급투쟁을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형식 및 조건들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분석들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거쳐 온 다양한 경로들을 이해하고, 각국의 사회 내부에, 그리고 세계체제의 수준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모순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분석들은 내가 '현대 세계에 사는 대중의 정치문화 형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내가 문제제기를 한 대상은 하트와 네그리의 저작들에 바탕으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다. 그 정치문화는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 안에 있는가, 아니면 문화주의의 전통 안에 있는가? 나는 〈자유주의 바이러스(The Liberal Virus)〉(Monthly Review Press, 2004)라는 책에서 각국 국민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두 개의 경로, 즉 한편으로는 유럽적인 경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적인 경로를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이 책에서 내가 전개한 주장의 개요만을 간략하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유럽대륙의 정치문화는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창출, 프랑스혁명,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 및 마르크스주의의 등장, 러시아혁명 등 형성적 기능을 가진 일련의 대사건들에 의해 구축돼 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각각의 경우에 생겨난 '좌파'들에게 유럽 사회에 대한 정치적 관리권을 갖도록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럽대륙에서 우파와 좌파가 대치하는 정치문화를 구축했다. 승리한 반혁명 세력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이후에 그랬듯이 구체제의 복구, 정교분리로부터의 후퇴, 귀족집단과 교회의 담합,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등에 나섰다. 그들은 민중으로 하여금 지배자본의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지지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1914년의 전쟁 발발 직전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과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했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주요 사건들은 유럽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사건들은 프로테스탄트 중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분파에 의한 뉴잉글랜드 건설, 식민지 부르주아들, 특히 노예를 소유한 지배적 부르주아 분파에 의해 수행된 미국독립전쟁, 변경(프런티어)의 확장을 토대로 한 대중과 부르주아 사이의 동맹 및 그 결과로 나타난 인디언 학살, 사회주의 정치의식의 성숙을 저해하고 그 대신 공동체주의를 들여앉힌 대규모 이민자 유입 등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우파의 영속적 지배'라는 미국 정치문화의 특징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장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미국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미국화'의 목적은 유럽의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파괴하고, 그 대신 미국에서 지배적인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유럽에 들여앉히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 반동의 길이 오늘날 유럽의 지배적 정치세력들이 추구하는 길이 돼 있고, 그 완벽한 유럽판이 유럽 헌법 프로젝트로 나타났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지배자본, 즉 '북(North)'과 지구인구의 85%를 차지하면서도 삼극동맹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남(South)' 사이의 싸움이다. 이 두 개의 중요한 싸움의 중요성을 하트와 네그리는 무시한다.

미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섣부른 찬양은 북미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가들의 글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이들 비판적 분석가는 '반미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애초부터 비판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돼 버리고 만다(그런데 누구의 눈에 그들이 그렇단 말인가? 미국의 기득권자들의 눈에?).

여기서 나는 아나톨 리븐(Anatol Lieven)의 저서 〈미국, 옳은가 틀린가(America Right or Wrong: An Anatomy of American Nationalism〉(Oxford University Press, 2004)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리븐과 나는 이념적 출발점도 학문적 출발점도 다르지만, 이 책의 결론은 나의 결론과 대동소이하다. 리븐은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그 실재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을 이 나라의 태생적인, 그리고 거듭된 이민자들의 유입에 의해 지속되고 재생산된 '반계몽주의(obscurantism)'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사회는 결국 영국 사회보다는 파키스탄 사회와 더 흡사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치문화는 서부정복의 산물이며, 이는 미국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미국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계속 살아갈 권리를 갖는 인디언으로 간주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미국 지배계급의 새로운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공격적 국가주의를 배증시킬 것을 요구하며, 배증된 공격적 국가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미국은 오늘날의 유럽이 아닌 1914년의 유럽을 상기시킨다. 모든 차원에서 지금의 미국은 '옛 유럽'에 비해 더 진보하기는커녕 1세기가량 뒤진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이 점이 바로 '미국 모델'이 우파에 의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미 자유주의에 투항한 하트와 네그리를 포함한 일부 좌파에 의해 선호되는 이유다.

"제국주의는 시대에 뒤진 구식 용어"라는 '제국'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됐다"는 '다중'이라는 두 개의 개념 외에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체념의 어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현 단계의 자본주의 발전이 긴박하게 요구하는 것들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으며, 그런 자본주의 발전에 스스로 통합되는 것만이 그 결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패배한 시기'의 담론이며, 그 '패배한 시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자유주의에 투항한 사회민주주의의 담론이고, 범대서양주의에 투항한 유럽주의의 담론이다. 이런 종류의 담론과는 단호하게 결별해야만 좌파라는 이름에 걸맞은 좌파, 즉 민중의 이익을 위해 진보를 고무하고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좌파가 부활할 것이다.



(주)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and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New York: Penguin, 2004). 두 저자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된 많은 근본적인 쟁점들, 예를 들어 인지자본주의나 금융자본주의, 노동과 생산의 조직, 그리고 지정학과 관련된 쟁점들은 직접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갖고 내가 두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이보다는 그들이 새로이 전개된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상황으로부터 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어 자신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다. 문제의 상황변화에 대한 독해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그런 독해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하겠다. 〈제국(Empire)〉은 2001년 9월 11일(9.11 테러사건-역자주) 이전에 저술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자국의 물질적 이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대중의 요구에 따라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저속한 선전의 담론을 하트와 네그리가 수용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번역/이주명 기자)

08. 02. 20.

Майкл Хардт, Антонио Негри Империя EmpireМайкл Хардт, Антонио Негри Множество: война и демократия в эпоху империи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P.S. '제국'과 '다중'에 대한 옹호로는 역자의 한 사람인 조정환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541984). 참고로, <제국>과 <다중>은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왔다(특히 검은색 표지의 <제국>의 경우엔 자주 드나들던 모스크바대학의 구내서점에서 발견하고 잠시 놀랐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너무 고가에다가 무거워서 구입하진 않았지만).

<다중>을 잠시 뒤적이다가 '축제와 운동'이란 절을 잠시 먼저 읽어보았다. 그건 바흐친을 다루고 있어서이다. 두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문제들>)에서 '다성성'과 '대화성'이란 개념을 빌려다 '다중'을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접한 바로는 '다중'에 대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정리해두어도 좋겠다. 그러자니 아쉬운 건 국역본 <도스토예프스키 시학>가 유감스럽게도 절판된 상태라는 점. '대중'을 위해서나 '다중'을 위해서라도 다시 나왔으면 한다. 아래는 1929년의 초판본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제문제>(왼쪽)와 개정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의 제문제>(1963)을 합본해놓은 책(오른쪽, 1994). 둘다 희귀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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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2-20 02:04   좋아요 0 | URL
인구에 회자되었던 회수에 비할 때 <다중>의 국역은 그 시기가 조금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네요. 감사드립니다. 일독해봐야겠습니다.^^ 덧붙여, 제게도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문제들> 국역본의 절판은 참으로 아쉬운 일들 중의 하나인데(국역본의 '성취도'는 어땠는지 사뭇 궁금합니다), 소장하고 있는 두 종류의 불역본도 새삼 다시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호모 사케르> 국역본의 출간 소식도 들리던데, 로쟈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8-02-20 09:24   좋아요 0 | URL
<시학>은 읽을 만한 번역입니다(아마도 저작권 문제로 다시 못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어본은 두 종이나 나왔나 보군요. <호모 사케르>는 덕분에 확인했습니다. 사실 '비공식' 번역본도 갖고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소문만 무성하던 책이 나와서 반갑긴 합니다. 내달에 읽어봐야겠습니다...

털세곰 2008-03-29 12:11   좋아요 0 | URL
오홋 1929년 초판본의 표지는 저렇게 생겼었군요...^^ 근데 로쟈님은 저런 사진들은 다 어디서 찾으세요?

로쟈 2008-03-29 12:14   좋아요 0 | URL
그냥 몇 군데 검색할 따름입니다.^^;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건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이다. 그걸 옮겨놓으려고 하다가 최근 문제가 된 '영어 몰입 교육'에 관한 기고 기사를 대신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078000/2008/02/021078000200802180698012.html). 두어 주 넘게 화제가 되고 있으니 '이달의 토픽'이라고 부름직하다(물론 '이달의 과일'은 '오렌지'인 것이고). 더불어 아침에 읽은 박노자 칼럼도 덧붙여놓는다(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70368.html).

한겨레21(08. 02. 18) 지적 식민지, 잿더미가 된 우리 말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이란 강대국의 말을 열심히 배워야 살 수 있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이 운명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완강해서, 때로 우리는 이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자주 의식의 산물에까지 이 힘이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조선말과 조선글자를 일치시키겠다며 만든 훈민정음이, 오히려 중국 발음을 이상적인 발음으로 상정하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표기원칙을 제시하는 일이 이런 예 중 하나라 하겠다(‘중국’을 ‘듕귁’으로 발음하라는 동국정운식 표기원칙이 이것이다).

이는 우리 문자의 어떤 면을 폄하하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약소국의 운명과 이것이 배태하는 순응적 삶의 관성은 문화적 무의식의 뿌리를 점령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의 말은 ‘외국어’가 아니라 사실상 ‘모어’(母語)의 지위를 대체한다. 그리고 이런 언어의 식민화 상황은 삶의 식민화와 다를 바 없는 사태를 낳곤 한다. 여기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언어와 사유 간의 소외 상황이 심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자기 사유를 담는 모어의 지위는 지극히 격하되는 반면, 자기 사유와 무관하게 힘을 가진 강대국의 언어는 물신화돼, 남의 나라 말이 아무런 내용도 없이 ‘신성한 기호’로 현성해 현실에서 전능한 힘을 얻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족대학’도 ‘글로벌’하게 영어 강의
한국사의 주요 지배세력들의 일단의 출세 사례는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원나라가 위세를 떨치던 13세기 고려 권문세족에는 몽고어 역관 출신이 많았고, 조선의 주요 개국세력인 조준이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 말을 잘하던 유명한 역관 집안 출신이었으며,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조선 부호들 중에는 다시 변한 세상에서 만주어 통역을 하며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역관들이 많았다.

1900년대 초반까지 조선사 어디에도 특별한 자료가 없는 별 볼일 없던 이인직이 한일병합을 사실상 주도하고, <만세보>와 같은 친일 신문의 주필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도, 이완용조차 잘할 줄 모르던 일본어를 그가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는 ‘일본어-소련어-영어’로의 변신을 통해, 일제시대-인공 시절-1950년대 이후를 초인적으로 살아나오는 카멜레온적 인물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들은 더 이상 ‘반역사적’ 풍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조차 우리말로 대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글로벌’ 시대에, 철저히 강대국의 언어만으로 자신의 생존전략을 극대화한 그들은 오히려 ‘글로벌 선구자’들로 재평가돼야 하는 게 아닌가? 이미 세상은 ‘민족대학’을 전통적 상징으로 외치던 국내의 한 유명 대학조차 ‘글로벌 프라이드’로 모토를 변경한 지 오래된 시대가 되었다. 이 ‘글로벌리즘’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이 이른바 ‘영어 강의’다. 단지 영문과에서의 영어 강의가 아니라,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강의에 의무적으로 영어 강의가 개설되기 시작했으며, 신임교수는 영어 강의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만 교수 임용 자격이 주어지는 학교들이 늘어가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시간강사를 하며 사는 나 역시 앞으로 전임교수가 되려면 이 서약서를 써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도무지 내 전공을 영어로 강의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난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를 어떻게 글로벌하게 발음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며, 이 민요조의 율격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대 한국어로도 번역이 쉽지 않은 <관동별곡>의 수많은 고전어들을 어떻게 영어로 번역해서 수업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춘향전>에 나오는 수많은 사투리나 해학과 풍자로 넘쳐나는 민중적 어법들, 자진모리·중모리·휘모리로 이어지는 그 숨가쁘며 때로는 유장한 우리말의 호흡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낭독하고 번역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륀지’ 요구하는 반지성적 흐름

뜻글자(표의문자)로 이루어진 한문학을 어떻게 소리글자(표음문자)인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지도 난감하다. 예컨대 ‘道’는 ‘road’(길)인가 ‘law’(법)인가, ‘logic’(논리)인가 ‘principle’(원리)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do’로 번역해야 하는가? 한국어의 어법 체계를 흔들며 다의성을 증폭시키는 김수영 시의 그 모호하고 격렬한 언어의 정치성을 도대체 어떻게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촌스러운 나는 한국말로는 쉽게 떠오르는 서정주 시의 마술적 이미지와 토착적 방언의 세계가 도무지 글로벌 스탠더드화돼서는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이 능력에 관한 한 현재에도 앞으로도 전혀 가망이 없다.

바야흐로 ‘최고경영자(CEO) 총장’ 시대다. 대학은 이제 학문이나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장사꾼들의 천박한 시장논리가 대단한 선진 정책인 양 거짓 선전되고 또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먹히는 시장통이 돼가고 있다. 평생 토목건축업에 종사하며 부동산과 주식으로 부를 축적한 대통령 당선자가, 새 건물 짓기와 대학기금 마련 같은 것을 학문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신과 비슷한 CEO 총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그 인수위원장이 주도가 된 얼치기 글로벌리즘이 과목 불문의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등 교육현장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려던 찰나에 간신히 ‘유보’됐다. 말의 식민화가 삶의 식민화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 우리 역사의 뼈아픈 사례이긴 하지만, 21세기에 이러한 사례의 극복이 아니라 오히려 노골적인 심화의 모습을 보는 심정은 비통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무슨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가 아니라, 이러한 말의 식민화가 말과 사유의 괴리를 부추기며, 내용 없는 껍데기 언어의 물신성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정책은 사고의 심도를 높이고 지적 시야를 넓히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관심이 아니라, ‘오렌지’를 ‘아륀지’로 발음할 줄 아는 기업형 인간이 필요하다는 ‘글로벌 장사꾼들’의 요구 이상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대한민국은 사물에 대한 복합적 사고와 세계에 대해 성찰적 시야를 열어주는 깊이 있는 독서가 아니라, 토익·텝스 시험을 위해 자신들보다도 훨씬 일천한 교양 수준을 지닌 원어민 영어 강사들에게 쩔쩔매고 매달리면서 소모되고 있다. 이 현상이 참으로 위태로운 것은, 이것이 사회 전체의 지적 깊이를 현저히 ‘얇고 평평하게’ 하는 반지성적 흐름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불타는 것만 보이는가
그리스어와 계보가 연결돼 있지 않은 독일어는 원래 유럽어 중에 가장 ‘미개한’ 궁벽한 언어였다. 그러나 그 ‘시골말’을 통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유 능력을 보여준 것이 괴테나 칸트, 헤겔이나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같은 지적 거인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독일어는 세계적인 언어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진정으로 야심 있는 지도자라면, 자기 언어로 말하고 사고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강대국의 언어를 맹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언어로 이루어진 지적 문화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우리말로 된 책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번역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말의 지위를 세계적인 것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적 식민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숭례문이 불타는 것만 보이시는가? 이미 오래전에 잿더미가 된 것은 당신들의 사고요, 우리의 말이다.(함돈균 문학평론가)

한겨레(08. 02. 19) [박노자칼럼] ‘영어 제국’, 종말이 온다

1792년 가을, 혁명의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의 국민 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채택했다. 영국은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침투 기반을 다지고자 정객 조지 매카트니(1737∼1806)를 대사로 위촉하여 중국행을 명했다. 러시아의 통상 요구에 부닥친 일본의 에도 막부는 영주들에게 연안 방어 강화를 명하여 유럽인들의 도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세계가 요동쳤던 바로 그때, 조선의 통치자들은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을까? 1792년 10월19일, 국왕 정조는 신하들을 불러 과거 답안지에 패관소품(稗官小品-중국 소설의 문체)을 이용하면서 경전류의 우아한 문체를 멀리하는 일부 지식인들을 지탄하고 중국 소설 수입 금지를 명했다. 이옥(1760∼1815) 등 문단의 이단아들의 벼슬길을 막을 ‘문체 반정’은 그렇게 예고됐다.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었던 시점에 중국 소설 문체의 ‘악영향’을 국정의 핵심 문제로 삼은 정조에게 조선의 공용어로서의 한문의 수명이 100여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뛰어난 국왕이었던 그도 ‘성현의 어문’인 한문이 영원토록 세계의 중심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전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 몰입교육과 ‘오렌지’ 발음을 갖고 열변을 토하는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패관소품 문체의 퇴치에 올인했던 200여년 전의 국왕을 떠올려본다. 특정 제국이 영원하리라는 맹신과 어리석음으로 나라를 그르친 적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또다시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려 한다. 몰입교육을 논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것이 있다. 과연 영어가 ‘공부의 중심’이 돼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문제다. 일부 특수 직종(학자·기자·외교관 등)을 제외한 다수에게 외국어가 필요한 것은 교역 등 회사에서의 대외 업무 수행과 외국여행 때일 것이다.

무역부터 보자. 2007년에 한국은 영어가 통하는 미국(12.3%), 영국(1.8%), 독일(3.1%)보다는 중화권인 중국(22.1%), 대만(3.5%), 홍콩(5.0%)에 약 2배 더 많은 물건을 팔았다. 외국여행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 여행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미국으로 간 이들은 7.2%에 그쳤다. 작년 입국자 통계를 봐도 중국·대만(21%)과 일본(35%)은 미국(9%)과 비교해서 한국 관광산업에서 훨씬 더 중요한 존재다.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외국어 수요를 파악하면 학교에서는 앞으로 제1외국어를 중국어로 바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술·기술·국제정보망의 주요 언어로서의 영어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중국어 구사 인구(12억여명)가 영어 구사 인구(약 3억4천만명)에 비해 거의 4배 가까이 된다는 점이나,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되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26년쯤에는 미국을 능가할 전망이어서 결국 이 우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어가 공용어로 통할 상황이 그보다 훨씬 이른 약 15∼20년 안에 올 것에 대비하면서 영어 몰입교육보다는 영어와 중국어 교육 사이의 균형과 효율성을 논해야 한다.

한문을 절대 신성시하고 고전 문체를 벗어나는 일까지도 일탈로 간주해 앞을 보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 못지않게 지금 한국 사회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자본인 영어를 국가적 물신으로까지 만들려 하고 있다. 실사구시 정신이 결여된 그들의 언어관은 자연스레 도래할 동아시아 시대에 역행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08. 02. 19.

P.S. 애당초 옮겨놓으려고 했던 인터뷰 기사(http://h21.hani.co.kr/section-021067000/2008/02/021067000200802130697013.html)에서 흥미를 끌었던 대목. '노회한 이데올로그'도 간혹 입바른 소리와 예리한 통찰을 내놓는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놓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위주 정책 등을 보면 지나치게 보수층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당선자가 하는 것을 너무 보수적이다, 성장 위주적이다, 효율만 추구한다, 이렇게 말할 만한 게 별로 많지 않다. 인수위에서 내놓은 몇 가지 정책을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보다도 훨씬 왼쪽이다. 좌파정권 안에서 좌우 대결을 하다 보니, 자연히 왼쪽으로 끌려간 면이 있다. 다만 영어교육을 너무 중시하는 것이 지나치게 효율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를 잘해야 국가 경쟁력이 있다는 허상을 하나 만들어놓고 영어수업 말고도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명박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방법론만 이야기하면서 교육의 목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국어, 국사 교육을 소홀히 하고 그 시간에 영어교육을 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국적 교육이다. 인수위 안은 학원강사들이 모여서 아이디어 짜낸 것처럼 아주 지엽적이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도 그렇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그렇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있다.
=문제는 내용이 정확한가인데, 그렇다고 대운하 같은 것을 논란에 붙이면 영원히 논란으로 끝날 것이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보면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던데 이게 이명박 스타일이다. 이게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하다 보면 반대 세력도 전선이 여러 개니까 분산이 될 것이고, 그렇다 보면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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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요즘은 '소설가' '시인' 혹은 '에세이스트'로서의 전력보다는 '보수 이데올로그'로 더 자주 '호명'되는 작가 복거일씨와의 인터뷰 기사이다.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1998) 이후에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그 책도 사실 고종석의 '권유'로 읽었다), 따져보니 그가 말 많았던 '영어 공용화론'을 제기한 지 어느새 10년이다. 그 '잃어버린 10년' 이후에 다시금 영어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복거일의 생각은 일견 나이브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가령 자신이 '주변부 지식인'이라고, '기지촌 지식인'이라고 내놓고 말하는 지식인은 많지 않다. 주로 그런 일들을 하면서도). 시간을 아껴준다는 얘기이다. 시간은 돈이잖은가...

경향신문(08. 02. 14) “지식인은 자기의사 펴야 한다”

보수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차기 보수정권은 그 첫번째 정책으로 영어 교육 강화를 내세웠다. 두 사안을 한 묶음으로 놓으면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다. 작가 복거일씨(62)다. 10년 전 홀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고 외쳤던 복씨. “독도 문제에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등 우파 지식인들이 드러내놓고 찬성하기 어려운 견해를 공론의 장에 던져온 그다. 그래서 최근엔 작가보다는 보수 이데올로그로 불린다.

영어 몰입교육이 한창 논란을 일으키는 와중에 그를 만났다. 보수 이데올로그들이 말을 아끼는 상황이지만 그는 선뜻 나섰다. “지면이 있으면 자기 의사를 펴야 한다”는 게 그의 변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토의와 설득이 부족했지만 방향은 옳다”면서 영어 공용화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밝혔다. 독설에 가까운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중심 문화를 인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뭘 하겠다고 나오면 의기는 가상하지만 현실적으론 열악한 형태의 문화를 재발명하는 것밖에 안된다”고도 했다. ‘아메리카 제국’이 중심이 된 지구촌의 외곽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주변부 지식인’이라는 인식이 문제 의식의 출발점이라고 부연했다.

인터뷰 중간에 “우리나라 역사 교과사는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성립된 것이 하나도 없다. 주변부의 빈약한 역사, 열등감을 감추려고 사회가 공모한 것”이라거나 “사회적으로 문학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등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문학 생활에 대한 아쉬움도 비쳤다. 그는 “시와 소설만 쓰려고 했는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할 지식인이 없어서 나섰다”면서 “한창 생산적일 때 혁명적인 작품 하나 못 쓰고 정력과 시간의 대부분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데 바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데뷔 소설 ‘비명을 찾아서’ 이후 이를 넘어서는 작품을 내놓지 못한 아쉬움으로 들렸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연극을 하나 올리려고 희곡을 준비 중입니다. 한·미 동맹이 우리 사회 안보와 번영의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그동안 그것을 너무 훼손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께서 한·미 동맹의 회복을 외교의 핵심으로 삼는 것에 부응해서 여기에 맞는 연극을 해보려고 해요. 지금 주한미군들이 (반미 감정에 대해) 섭섭해합니다. 미군이 6·25 때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외지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데, 2002년 대선 때 성조기가 찢어지는 것을 보고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분들에게 (성조기가 찢어진 게) 우리 국민 다수의 뜻은 아니었고,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현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6·25 전쟁을 미군 병사의 시각에서 본 연극을 올리려고 해요. 미군부대에 찾아가서 공연할 겁니다. 우리 배우들은 (한국어) 대사를 할 거고 청중은 미국인이니까 (영어) 자막을 무대에 투사해야 합니다. 우리말 대본과 영어 대본을 같이 쓰고 있는데, 영어 대본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제목이 ‘잊혀지지 않는 전쟁’입니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잊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요.”

-영어 말씀을 하셨으니, 여쭙겠습니다.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국제화 시대에 영어를 배우는 건 필수고, 영어를 결국 영어를 배워야 할 수밖에 없다’는 영어공용화론을 제기하셨습니다. 영어몰입 논란까지 부른 현 정부 영어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방향은 옳고 의욕도 참 좋아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의 영어교육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훨씬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인수위가 앞질러 나갔다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데, 과감하게 의견을 내놓고 시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실수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금이 선거철이라서 더욱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초·중등 교사들이잖아요. 그분들이 바꿀 수 있는 능력이나 의향에 한계가 있잖아요. 그걸 고려해서 충분한 토의와 설득을 선행했어야 하는데, 불쑥 목표를 내세운 셈이 됐지요. 인수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거기에 대해 저항하게 됩니다. 정권이 들어서서 집행하면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정책이 나오겠죠.”

-중심부인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변부 지식인‘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습니다.

“현재 지구에선 미국이란 나라가 수도가 됐고, 중심지가 돼 버렸습니다. 동아시아 자체가 주변부가 됐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 환경을 이해해야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어요. 중심부와 우리 사이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죠. 그게 주변부 지식인이 할 일이에요. 주변부에 있기 때무에 우리의 전략은 주변부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주변부니까, 지식인의 환경은 더 나빠지는 것 아닙니까.

외국에서 직수입한 게 싸고 자연스러우니까, 우리가 허브가 되기는 힘들겠죠. 창조적인 작업은 중심부에서 하고 우리는 그것과 연계돼 부차적인 역할을 하겠죠. 중심부로 통합되니까, 창조적인 작업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비관적인 전망을 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식인으로서 저 혼자 작업하는 거보다 (세계인들과) 같이 공동으로 작업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개인들에게 활동무대를 넓혀주는 겁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는 그것을 이용해서 국내에서 정치적인 자산을 쉽게 얻으려는 정치가들”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등 금기에 가까운 발언을 하셨습니다.

“독도 문제는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풀 길이 없어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조금만 양보해도 그 정권은 그날로 무너집니다. 다만 일본은 여유가 있어서 지식인 중에 ‘한국이 옳다’는 사람이 나와요. 우리나라는 실수로 잘못 표현하면 그날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가 있잖아요. 이런 게 지적 풍토를 척박하게 만듭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공과가 있지만 시대에 주어진 핵심 과업을 잘 수행했다면서 긍정 평가를 하신 바 있습니다. 우파 진영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동의합니까.

잃어버린 10년, 저도 자주 씁니다만 어떤 면에서 보면 치러야 될 과정이었어요. 길었죠. 김대중 정권으로 끝냈으면 좋을 건데…. 역사적인 정황을 생각하면 호남 대통령이 언젠가 한번 나왔어야 했어요. 그거는 밟아야 할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신 것은 아쉽죠. 좌파정권이 두 번 들어설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히 나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좌파이념은 청사진일 때는 멋진데, 막상 적용해보면 많은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 판명됐거든요.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겁니다.”

-같은 보수논객으로서 이문열씨와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문열씨가 ‘유교적인 보수주의자’라면 ‘복거일은 글로벌한 보수주의자’로 분류하곤 하는데.

이문열씨와 비교적 친한 사이입니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도 비슷합니다. 우파라고 할 때는 같은 편에 섭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자유주의자일 거예요. 개인의 자유를 한 껏 늘리고 사회적인 간섭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죠. 예컨대 매춘이라든가 인공수정 등 사회적인 간섭이 심한 것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소수죠. 이문열씨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지만, 자유주의자는 아닌 것 같아요. 아마 영어공용화론 같은 것도 다를 거예요. 저는 ‘개인들이 한국어도 쓰고 영어도 써서, 자기에게 편리하고 좋은 언어를 쓰고 자식에게도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문열씨는 아예 거기에는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이야기는 안해봤지만, 그분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우리 말이 차지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볼 겁니다.”

-논쟁적인 화두를 던지셨지만 이문열씨처럼 ‘시대와의 불화’를 심하게 겪지는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이문열씨는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저는 비교적 무명이잖아요. 그 차이 같아요. 이문열씨 주장은 과격하지 않고 저같이 이론을 세워서 주장한 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핍박을 받으면 더 많이 받아야 하는데 이문열씨가 좌파의 표적이 된 것은 유명세를 치른 면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비판을 받으면 대개 응수를 안합니다. 지식인의 책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자기의 주장이나 아이디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보호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저는 인터넷에도 안 들어가요. 주위에서 시끄럽다고 하면 ‘그러냐. 반응이 있어서 좋다’고 하고 끝냅니다. (요즘도 인터넷에 안들어 가시나요) 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어떤 글에서 ‘나는 복거일은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이며,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니 보수주의니 하는 건 편의적으로 동원되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대쪽에 계신 지식인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나는 선배들의 글을 읽으면서 공부했으니까 뒤에 나오는 사람들의 글은 잘 못 읽어요. 강준만씨 같은 사람들의 글은 신문 같은 데서 보는 정도지 그 사람의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잘 몰라요. 저에게 비판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죠. 그 사람들은 비판을 하더라도 저 때문에 좌표를 어느 정도 수정할 겁니다. 본인들은 못 느끼겠지만 저 자신은 그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굉장히 거세게 비판한다는 것은 무언가 영향을 줬다는 뜻이거든요.”

-내시는 책들은 많이 팔립니까.

“많이 팔릴 리가 있나요. 돈은 못 벌고 출판사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나갑니다. 그게 지식인에게 건강해요. 돈을 많이 벌면 장당 만원을 받고 원고지를 메우지 못합니다. 맥이 풀리잖아요. 나한테 글 청탁오면 고맙게 여기고 자판 두드리는 게 고맙죠. ‘이 원고를 쓰면 안식구가 시장에 나가서 시장 볼 돈은 된다’고 생각하면 쓸 맛이 나죠. 그게 맞는 거예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무슨 공부를 하시는지.

진화론을 경제학에 도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론 시각에서 경제학 이론을 보고, 사회철학을 진화론에 맞추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방향으로 책을 썼고, 좀더 다듬어서 정교하고 발전된 사회철학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사회철학들을 재검토하고 제 나름으로 공헌해서 독창적인 무엇을 하려고 해요. 제가 볼 때 이거는 가능성이 보여서 여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까.

잊혀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쓴 작품들 몇은 남을 거 같습니다. ‘비명을 찾아서’ 외에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이란 작품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한국어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기 때문에 5세대 뒤에는 독자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어공용시대가 되면) 최인훈 선생은 번역이 되겠지만, 복거일은 번역이 안될 거 같아요. 말할 수 없이 섭섭하죠.”

-본업이 소설 쓰기인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습니까.

“소설로 걸작을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작품은 사회적인 환경과 어우러지는 것이거든요. 제가 그런 작품을 쓸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보죠. 어차피 우리는 1950~6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사회상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고 벗어날 수 없어요. 그 한계를 인식해야죠.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나는 왜 좋은 작품을 썼는데 사회는 알아주지 못하느냐’는 불만이 나와요. 그것이 작가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 교훈을 넣게 하고 장광설을 늘어놓게 하지요. 그런 작가들은 늙은 거예요. (소설은 자주 안 쓰실 겁니까) 쓰긴 써야죠. 기대를 않다가 특별히 뭐가 잘 맞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오잖아요. 그런 기대를 갖고 사는 겁니다.”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소설이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소설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15년 전인가,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에 대본을 주는 장르로 바뀔 거 같다’고 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형태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지금의 판소리 명창처럼 틈새시장에서 살아남겠죠.” (이용욱기자)

08. 02. 17.

P.S.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건 문학에 대한 복거일의 양가적 감정. 문학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믿고 한국어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작가가 자기 작품에 나름대로 애착을 보인다는 건 좀 특이한 일 아닌가(그는 왜 아예 영어로 글을 쓰지 않는 것일까?). 또 한가지는 진화론을 경제학에 도입하고자 하는 그의 구상. 21세기판 사회진화론자를 자임하고자 하는 듯하다. 경제학자 우석훈 또한 생물학과 경제학을 결합해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듯하다. 두 사람의 '작업'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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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7 22:35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뇌구조가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런 사상이 주류가 되는 세상을 생각하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로쟈 2008-02-17 23:01   좋아요 0 | URL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건 '주변부 작가'라는 콤플렉스입니다. 흥미롭게도...

kimdan 2008-02-19 22:18   좋아요 0 | URL
(이미 아실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경제학 분야와 진화론 분야가 결합된 '진화경제학' 분야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습니다. 진화경제학 분야는 사회진화론에 가깝다기 보다는, 전화론에서 쓰이는 메커니즘을 도구적으로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진화론과 진화경제학은 많이 다른 분야죠. 우석훈씨는 생태경제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쪽 분야는 저도 잘 몰라서... (제가 진화론 관련 생물공부를 하거든요..)

로쟈 2008-02-19 23: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기억엔 진화경제학 관련서라 할 만한 책으로 작년에 <부의 기원>이란 책이 나왔었지요. 그런데 경제학과 진화론을 결합하는 방식에 우파적인 방식과 좌파적인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복거일은 전자를, 우석훈은 후자를 대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정확하게 그런 포지션을 자임하는 건 아니더라도요.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저도 언제나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7)를 읽다가 검색해본 기사를 옮겨놓는다. 작년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을 다룬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가운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다룬 꼭지이다.

경향신문(07. 06. 18)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더 이상 문과와 이과의 구별이 공식적으로는 없다.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1학년에 공통 과목을 끝내고 2학년부터는 자신들의 지적 관심사와 졸업 후 진로를 고려해 다양한 선택 과목 중에서 골라 듣게 된다. 그러나 물론 실제적으로는 문과와 이과의 구별은 학생들 사이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학교가 다양한 선택 과목 모두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과거 문과와 이과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선택 과목을 고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을 싫어한다면 덩달아 과학 심화 과목도 더 듣지 않고 주로 사회과학 과목을 더 듣는 식이다. 이런 현상을 볼 때 형식적 제도의 변화만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최근 소개된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사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민사고는 외국 대학 준비반이 따로 있는데 이곳은 외국 대학 입시를 위해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과목을 조합하여 공부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1학년 때는 별 차이가 없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되면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교육 받은 학생과 그런 구별없이 교육 받은 학생들 사이에 아주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세상에 정말로 문과형, 이과형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동료압력, 문화적 동질화 등을 통해 그런 틀에 박힌 인간형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게 키워지다보니 우리 대학생들은 왜 철학수업 시간에 최근 영장류학의 성과를 소개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우리와 근연관계에 있는 영장류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지 경험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상식적인 생각이 그들에게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윤리란 도둑질 안 하고 거짓말 안 하면 되는 것이지 자연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과는 철저하게 무관하거나 주변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박성래·김영식 등이 ‘중인 의식’이라고 이름 붙인 이러한 생각이 널리 퍼지다보면, 과학자들은 현대 과학연구는 수많은 사회적 자원과 지원을 필요로 하며 그 파급 효과도 크기 때문에 연구 설계와 진행 과정 모두에서 윤리적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연구 선진국에서는 널리 공유되고 있는 사회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대체적으로 분류해서 인문사회계열의 지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이공계열의 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차이와 그 차이로 인한 폐해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 일찍이 과학 배경을 가진 영국의 문필가 스노는 ‘두 문화’라는 개념을 통해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들 사이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차이가 그들 사이의 생산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아 결국에는 영국이 산업부문에서 다른 나라에 뒤처지게 되는 피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스노의 주장은 산업부문에서의 영국의 절대 우위가 경쟁국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무너지고 난 이후에 나온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결과에 ‘두 문화’의 폐해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두 문화’ 문제가 유독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폐해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 주제에 대해서는 김용준, 홍성욱 등의 연구가 있다.

실업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경제학이나 환경공학처럼 그 문제와 직결되어 보이는 한 가지 전문분야의 지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여러 측면의 복잡한 쟁점이 얽혀 있는 특징 때문에 이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려면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협력 작업이 필수적이다. 실업은 단순히 일자리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사이의 수적 불일치가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심리적 박탈감에 대한 고려와 적절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학기술정책 등과 연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는 환경오염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일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망에 맞추어 우리 삶의 태도를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 부쩍 관심을 끌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논란거리인 원자력 발전이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중요한 선택은 단순히 발전단가에 대한 산술적 효율성 계산을 넘어선 국민적 수준의 공감대 도출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합의라는 개념 자체가 원자력과 같은 과학기술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절박한 문제의 해결은 원점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잡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현실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할 필요가 있는데 각자의 좁은 전공분야의 시각에 갇힌 전문가들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종종 이러한 ‘학제적’ 논의는 본질적인 논의에 접근하기도 전에 ‘윤리적’이나 ‘합리적’ ‘효율적’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이 분야마다 다르게 정의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문과형 전문가와 이과형 전문가들의 소모적 논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버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이과형 전문가는 특정 정책이 기술적으로 비용절감을 높일 수 있더라도 사회적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되어 결국에는 사회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문과형 전문가들은 관련 과학기술의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보거나 평가하기 전에 손쉽게 권력이나 이해관계에 근거한 분석에만 호소하기 일쑤다. 최근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충돌은 이 같은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상황이 정도는 좀 다르겠지만, 국제적 경쟁에서 문·이과 복합형 인재들을 두루 갖춘 세계 유수의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국내 기업의 기획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기업의 생존이 달린 만큼 이 경우에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생산적 소통에 대한 요구가 훨씬 더 절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생산적 소통에 대해 우리 지식인들은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들은 찾아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 분야에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 학자가 매우 극소수라는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두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의 지적 현실에 비추어볼 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인문학적·사회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예는 부지기수이고 역으로 과학기술자가 상당한 수준의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글을 쓴 경우도 꽤 된다.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이 두 문화를 넘나든 글의 대부분이 현대사회 대부분의 문제 배후에는 과학기술의 기계적 합리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추상적 비판이나 생산력으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 혹은 과학기술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글쓴이의 인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지성계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와 같은 두 문화 ‘가볍게’ 넘나들기를 뛰어넘는 일이다. 가볍게 넘나들기는 유용하기는 하지만 대화 상대방의 지적 깊이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저술은 수식과 도표가 잔뜩 나오는 본문은 제쳐둔 채 서론과 결론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자와 인문학에서 경쟁하는 이론이란 경험적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사람의 개인적 선호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 사이에서 생산적 협동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이지만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대중적으로까지 꽤 유행했던 신과학 운동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신과학 운동이 관심을 끌었던 주요 이유는 쿼크 이론과 같은 당시 최신의 물리학 이론에 내재한 원리들이 동양사상의 고전적 저술에 이미 담겨져 있다는 주장의 신선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과학 운동은 두 학문 분야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고 말았을 뿐, 각자 분야의 고유한 학문적 논점을 진행시키는 데 별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라카토슈식으로 말하자면 적극적 발견법이 부족했던 신과학 운동은 그로 인해 금방 지적 추동력을 잃어갔다.

이와는 달리 최근 유행하고 있는 ‘통섭’의 움직임은 여러 학문 분야들 사이의 유사한 이론적 구조와 개념적 연관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본격적으로 학문들 사이의 생산적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진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유행시킨 ‘통섭’은 단순히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가 아니라 ‘정합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대 사회과학의 이론들이 가정하는 개인의 인격이나 사회성에 대한 가정들은 오랜 수렵 채집 시절에 인간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어 왔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제한조건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걸러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에너지보존법칙에 만족하지 않는 화학법칙이 허용되지 않듯이, 진화심리학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회과학 이론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섭의 움직임은 학문들 간의 대화를 강조하긴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대화의 성격은 위계적이고 환원적이다. 국내에서 이 논의를 이끌고 있는 최재천은 비환원적 통섭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추이를 지켜볼 만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생산적 소통에서 깊이 있는 이론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학자가 장회익이다. 그는 온갖 이상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서울 해석이라는 독특한 입장을 제안함으로써 우리 이론의 자생적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후 그는 서울 해석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기반을 확장하여 과학이론 일반에 대한 모형을 제안하였고, 최근에는 그 모형을 보완하고 확장하여 온생명으로 요약되는 생명의 본질과 인간 의식의 문제까지 해명하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장회익이 과학자의 시각에서 인문학적 주제들을 통합하여 연구하고 있다면, 송상용 등의 과학기술학자들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의 시각에서 자연과학의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 양방향에서의 생산적 소통의 노력이 좀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과)

08. 02. 09.

 

 

 

 

P.S. <이분법을 넘어서>를 읽은 소득 중의 하나는 '가이아론'과 '온생명론'의 차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러브록과 린 마굴리스의 가이론, 그리고 장회익의 온생명론을 한데 묶어서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회익 교수의 주저는 <과학과 메타과학>(지식산업사, 1990)과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 두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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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2-09 12:4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엔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 있고, 대개는 수학을 잘하냐 아니면 국어를 잘하냐의 여부에 따라서, 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경향이 있죠. 예전엔 또 이런 식도 있었어요. 남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 -_- 누가 만든 기준이고 분위기인지 모르지만, 참 거시기하더라고요. '적성'이란건 어쩌면 잘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건지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적성검사를 하면 언제나 토목, 기술 이랬는데 저는 그쪽엔 전혀 매력을 못느끼니.

로쟈 2008-02-09 20:23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 제 적성은 '전자공학'이었습니다. 이후로 적성검사란 게 다방에서 뽑는 오늘의 운세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한겨레21에서 강준만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며칠 눈감고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속 편했던 '한국 시사'를 따라잡기 위해 언론 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읽게 된 글이다(http://h21.hani.co.kr/section-021128000/2008/01/021128000200801310696017.html). 역시나 뉴스거리들은 차고 넘치는 나라가 한국인 것 같고 다른 기사들까지 정리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굳이 '정리'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냥 이 칼럼 정도만 '사회적 독서'에 올려놓는다(아직 알라딘에 퍼온 분들도 없고 해서). 돌아오는 기내에서 읽은 국내신문들에서 '영어 몰입'에 대한 유익한 비판칼럼들도 옮겨올 만하지만 좀 뜸을 들일 생각이다. '한국 시사'에 가장 강한 강준만의 칼럼은 역시나 대단히 한국적인 '댓글 문화'에 칼을 대고 있다. 우리의 '실생활'이기도 하므로 일독해봄 직하다. 개인적으로 '악플'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으나(비정규직 강사가 '유명세'까지 치른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불미스런 기억들은 몇 되기에 나름으로 '실감'나는 기사이기도 하다.

한겨레21(08. 01. 31) 댓글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

한국의 ‘댓글 문화’는 악명이 높다. 물론 ‘악플’ 때문이다. 악플이 범람하는 이유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지만, 그것이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한국 대학의 한 외국인 교수는 한국의 ‘댓글 문화’는 서방 국가가 200년에 걸쳐 이룬 민주주의를 50년 만에 압축 도입하면서 계층·세력 간에 형성된 ‘뒤집기 문화’에서 연유한다며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문화를 가진 선진국에는 한국처럼 무분별한 댓글 문화는 없다고 비판했다.

소속 집단 중심의 연대 ‘마을 의식’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 박노자가 최근에 출간한 <박노자의 만감일기>에서 한국 특유의 ‘관계 문화’를 지목한 게 더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가족이든 동창이든 친한 지인이든 정말 ‘관계’가 있는 사이라면 한국인만큼 잘해주는 사람은 없으며,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경우라면 ‘상대방’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니까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얌전한 척이라도 한다고 했다. 맞다. 누구든 동의할 수 있는 한국인의 유별난 특성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밀물이 있으면 그만큼 썰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특성은 완전한 타인들이 익명으로 서로 접촉하는 인터넷이라면 바로 정반대가 된다는 게 박노자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성향을 ‘마을 의식’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마을 안에서는 예의범절을 다 챙기지만, 바깥에 나가면 속을 풀대로 푸는 전근대적 ‘소속 소집단 중심의 사회적 연대’인 셈이다. 글쎄, 나 같은 사람들은 ‘민족주의’ 등의 거대 담론들을 자꾸 문제 삼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범주는 사실 무슨 ‘민족’보다도 이 ‘마을’(가족, 동창 집단,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인 듯하다.”

골수 악플러들이 일상에서는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소심한 편이라는 조사 결과는 이 분석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 남궁기는 “상사의 불합리한 주문에는 순응하는 듯하다가 자기보다 힘이 약한 후배의 말에는 버럭 화를 내는 사람처럼, 특정 환경에서 평균 이상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람은 ‘악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이 또한 악플이 현실의 결핍에 대한 분풀이 또는 보상심리의 산물이라는 걸 말해준다.

박노자가 지적한 ‘마을 의식’은 댓글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작동 방식도 설명해준다. 왜 한국 정당들의 수명은 포장마차 수명보다 짧은가? 왜 한국 정치인들은 자주 철새떼나 들쥐떼가 되는가? 왜 선량한 보통 사람들은 정치 참여만 했다 하면 무조건적 열성 지지자로 변하며, 왜 또 그들 중 일부는 반대파 처단에 앞장서는 홍위병 흉내를 내지 못해 안달하는가? 이 물음들에는 ‘마을 의식’이 좋은 답이 될 것 같다.

소설가 조선희가 수년 전 ‘악취 진동하는 사이버 토론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온라인 공간이 “한국 정치의 드잡이 난투극을 그대로 닮아가면서 토론 문화의 첨단이 아니라 게토가 되어버렸으며, 오히려 오프라인 시절의 토론 수업 교양 과정을 훌쩍 월반해 최소한 게임의 룰조차 실종된 흑색선전과 편가르기와 극단적 주의·주장의 거점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한 것도 바로 그런 ‘마을 의식’에 대한 고발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선희는 “‘욕설·비속어·인신공격’ 글이 횡행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수질 관리를 하든가, 게시판이나 댓글 공간을 관리 가능한 만큼 줄이던가, 그것이 아니라면 쌍방향 소통의 대의를 당분간 접고 온라인 토론 공간을 폐쇄하는 고육지책이 필요할는지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첨단’ 인터넷에 주눅들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악플에 너그러운가? 이 물음에는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댓글이 특정 여론의 움직임을 읽게 하는 지표 구실을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합리와 이성, 절도가 없는 댓글의 폐해는 정도가 지나쳐 건전한 여론 형성 과정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터넷 강박증에 눌려버린 언론들은 댓글이 불러올 수 있는 민주주의 파괴 현상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고, 애써 눈을 돌리기도 했다. 세계적인 권위지라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인터넷판은 현재 기사에 대한 댓글 제도가 없다. 한때 기사 댓글을 운영했지만 쓰레기 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자 폐지했다. 절제가 없는 의견은 시민 여론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기사 댓글 폐지의 이유이다. …언론은 댓글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사 댓글을 과감히 폐지하고 제대로 된 시민의 추임새를 들을 수 있는 토론 광장을 활성화하자.”

언론의 ‘인터넷 강박증’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 대해 주눅이 들어 있는 ‘인터넷 콤플렉스’라고 해도 좋겠다.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는다고 해서 ‘텔레비전 맹(盲)’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준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인터넷 맹’이라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부적응자로 본다. 인터넷은 첨단을 상징한다. 모두 다 주눅이 들어 있다. 어느 정도인가?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법적인 문제조차 눌러버릴 정도다.

최근엔 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그간 언론은 악플 피해자들이 법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악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둔감해지는 것이다”라는 식의 조언을 많이 해왔다. “피해를 당하면 극히 일부 미성숙한 아이나 열등한 성인의 행동으로 치부하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는 조언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런 기사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악플을 다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조언까지 곁들여진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에선 어느 영역에서건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자질은 ‘악플을 참아내는 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왜 그럴까? 무언가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게 아닐까?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언론은 때론 악플러를 비난하지만,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공생관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터넷에서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개개인의 윤리적·도덕적 판단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수익을 얻는 언론매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통해 방문자를 끌어들이는 포털 사이트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악플의 문제는 단지 개개인의 인격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방법으로든 ‘주목’을 받아야 살아남는 포털 사이트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언론매체가 얽혀 있는 산업적인 문제다. 이것이 단지 몇몇 비정상적인 악플러들만을 비난할 수 있는 문제일까.”

인터넷 강박증, 인터넷 콤플렉스
한국을 가리켜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껍데기만 그럴 뿐이지만, 그 껍데기조차 그런 ‘인터넷 콤플렉스’와 ‘인터넷 상업주의’를 먹고 자란 것이다. 웬만한 나라에선 법적인 문제 때문에 불가능했을 일이 한국에선 마구잡이로 저질러져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찬사를 받기까지 했다. 한국 인터넷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관용은 ‘새것’과 ‘첨단’과 ‘세계 최고’에 걸신 들린 한국인들의 굶주림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 자유주의적 착각과 진보주의적 착각이 가세했다.

자유주의적 착각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했던 과거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된다. 악플의 폐해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그걸 통제하는 것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서 얻을 게 더 많다는 논리다. 권력감시, 내부고발, 창의력 발휘 등의 장점이 열거된다. 대놓고 말은 않지만, 이게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식이다. ‘흑색선전과 편가르기와 극단적 주의·주장’의 사회적 비용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거론된다 해도 ‘분열과 혼란은 민주주의 꽃’이라는 원론이 답으로 준비돼 있다.

내가 궁금한 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을 제대로 만들고, 모든 공적 영역을 투명하게 만드는 법과 규칙을 완비하는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가운데, 왜 그런 기능을 인터넷으로 대체하려는가 하는 점이다. 아니 인터넷을 그런 노력에 이용해야 할 텐데 과연 그게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보주의적 착각은 기존 거대 매체를 보수 세력이 사실상 장악했던 과거와 비교해 인터넷을 진보세력의 대안매체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일종의 이념적 ‘편가르기’ 논리가 인터넷에 적용된 셈이다. 실제로 ‘인터넷 실명제’만 하더라도 찬성하는 측은 대부분 보수파였고, 반대하는 측은 대부분 진보파였다.

초기엔 인터넷이 진보세력의 대안매체였을지 모르지만, 인터넷이 점점 더 돈이 되는 산업으로 커가면서 이제 그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보수 신문에 대한 견제 매체로 인터넷을 택해 큰 공을 들이면서 포털과 밀월 관계를 누린 건 정권 교체와 함께 부메랑이자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습관과 관성 때문인지 아직도 인터넷에 대한 진보주의적 착각이 횡행하고 있다.



‘배설물’ 염두에 두고 자기 검열하는 지식인들
지난 2006년 8월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영국 에든버러 국제TV 페스티벌에서 행한 연설에서 “권력과 돈으로 인한 미디어 통제 때문에 민주주의가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해결책은 인터넷뿐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반의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다. 기존 미디어 재벌들이 앞 다투어 인터넷 매체들을 사냥해온 건 보지도 못했나? 언제건 권력과 돈이 없는 사람이나 세력이 쉽게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쏠림’ 현상을 그 속성으로 삼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 가능성의 실질적 가치는 상징적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포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강력 통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거대 담론적 가치를 앞세워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무작정 예찬해온 자유주의·진보세력의 자세가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예컨대, 악플의 ‘표현의 자유’엔 너그러우면서 그로 인해 박탈되는 다른 ‘표현의 자유’엔 무관심했던 건 아닌가? 악플이 지식인의 자기 검열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공론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은 건 아닌가?

윤태진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지인 한 명이 칼럼을 쓴 뒤 느꼈던 참담함을 사석에서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의 악의적인 댓글들 때문이었다. 그는 왜 정당하지 않은 비난과 욕을 감내하면서까지 자기가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그냥 무시하라고 위로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그 불쾌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칭찬하리라 기대하며 글을 싣는 이는 없게 마련이다. 하지만 욕설과 비꼼, 비방과 인격적 모독으로 가득 찬 댓글은 글 쓰는 이들 대부분의 힘을 쏙 빠지게 한다”고 했다.

그래도 힘을 쏙 빠지게 하는 건 다행이다. 아예 글을 안 쓰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글을 쓰더라도 논쟁적인 글은 피하려고 한다. 실제로 어느 언론매체에도 기사화되진 않지만, 시사적인 글을 쓰는 많은 지식인들이 인터넷에서 튀기는 ‘배설물’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배설물’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의 소신을 더 세게 밀고 나가는 지식인도 있지만, 그것도 문제다. 아주 독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기계적 인간들만 제 목소리를 내고, 나머지 대다수가 ‘배설물’을 피하려는 글만 쓰려고 하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시장이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악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인터넷 콤플렉스’만큼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 이름’으로 책임져도 될 일
이 글의 첫머리에 소개한,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문화를 가진 선진국에는 한국처럼 무분별한 댓글 문화는 없다는 비판엔 불편하게 여겨지는 점이 있다.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문화를 가질 수 없었던 독재정권 시절의 아픈 과거가 떠오르며, 아직 그 상흔이 다 치유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책임져도 될 만한 일까지 자꾸 역사적 상흔을 앞세우거나,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익명성의 예외적인 사회적 가치를 앞세워, 계속 익명성의 보호막에 안주케 하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해 이제 더 이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기존 댓글 문화의 장점도 생각하는 동시에 그 사회적 기회비용에도 눈을 돌려보자.

08. 02. 03.

P.S. <박노자의 만감일기>에 대한 표정훈의 리뷰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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