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제국과 사고전서

서지학에 과문한지라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중국 서지학의 고전도 출간됐다. 섭덕휘의 <서림청화>(푸른역사, 2011).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란 부제가 좀더 다가가기 편하다('중국책'이라곤 하지만 당연히 조선의 지식인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긴다. 뤄슈바오의 <중국 책의 역사>(다른생각, 2008)도 배경이 돼줄 수 있겠다. 수년 전 중국여행 시 소주에서 한 장서가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책을 사모으느라 가산을 탕진한 집이었다) 이런 책들을 미리 읽었다면 느낌이 조금 달랐을 듯싶다.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까...    

세계일보(11. 06. 18) 100년 전 중국의 서재를 엿보다

‘서림청화’는 청나라 말기 판본학·목록학의 대가 섭덕휘(葉德輝·1864~1927)의 저술로, 책 자체를 다룬 저작으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듣는 중국 서지학의 고전이다. 고서의 판본에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정리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으며, 또한 역대 출판기관과 그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판본학, 목록학 분야의 고전이 된 ‘서림청화’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저술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중국 고서의 판본과 고대 중국의 출판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저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옮긴이의 생각이다.

저자 섭덕휘의 가문은 대대로 유학을 했고 장서에 취미가 있었다. 섭덕휘가 수집한 고서 중에는 송·원대의 판본도 있었지만,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된 별집(別集)은 당대에 독보적이었는데, 이는 섭덕휘 장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시대 고문헌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옮긴이 박철상씨가 ‘서림청화’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국의 출판문화와 중국 고서에 대한 이해야말로 조선시대 우리 출판문화 이해의 첩경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물의 저본(底本)이었다. 조선시대 출판 방식의 하나는 중국에서 간행된 서적을 수입하여 활자나 목판으로 재간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출판은 정보의 수입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추진되었고, 간행된 서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중국 고서가 조선의 출판과 장서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조선과 중국 출판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상업출판의 성행 여부에 있었다. 안정적인 수요층을 전제로 하는 상업출판은 광범위한 서적의 유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책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빈약한 경제력과 주자학 위주의 사상적 흐름, 일부 계층에 한정된 서적 수요는 관판(官版) 중심의 출판 시스템을 유지하게 했고, 본격적인 상업출판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이때 중국본의 수입은 조선 출판문화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출판되지 않은 서적들을 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또한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의 공백을 보충해 주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출판 시스템이 붕괴되었던 시기에는 그 역할이 더욱 컸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문화적 파괴가 자행된 시기였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중요한 전적(典籍)의 상당수가 멸실되었고, 출판의 핵심이었던 동활자와 고려조부터 전해오던 왕실도서들이 약탈당하거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출판을 하려고 해도 그 저본마저 구하기 어려운 출판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멸실된 전적들을 정비하기 위해 국내에 흩어져 있던 서적들을 수집하는 한편, 사행을 통해 명나라로부터 수입을 추진했다. 중국본의 수입은 빠른 시일 안에 부족한 서적을 보충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장서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문학과 사상에까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중국본을 대량으로 수장한 새로운 형태의 장서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후 정조가 등극하면서 출판과 장서문화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 정조가 청나라 문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본을 직접 수입해 지적 갈증을 채워나갔고, 청나라 문사들과 교유를 넓히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이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넘쳐나게 되었다.(조정진기자) 

11.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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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2011-06-27 03:05   좋아요 0 | URL
葉을 '섭'이라고 읽는 오류를 박철상씨도 범하고 있군요. 분명히 '葉'의 중국어 발음은 '엽'(ye, 중국음으로는 '예')과 '섭'(She, 중국음으로는 '셔') 두 가지입니다. '셔'(She)의 중국어 표기법이 대문자인 이유는 저 발음이 고유명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지명인 경우와, 고대인의 성씨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문만 공부한 사람들은 저 음을 무조건 '섭'이라고 읽습니다. 물론 이는 잘못이고요. 이런 오류는 중국 고대문헌에 '葉'자가 고유명사로 나온 경우, '섭'으로 발음한다는 주석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도 저 글자가 성씨나 지명으로 읽을 때 '엽'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달린 주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특히 명청시대에 들어와서는 성씨의 경우도 저 음을 '예'(ye)라고 발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청대부터도 '葉'을 '섭'(She, 중국음으로는 '셔')이라고 발음하는 경우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어떤 중국사람도 葉을 섭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고요. 따라서 우리는 엽덕휘도 근대인이니, 당연히 섭덕휘가 아닌 엽덕휘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중국어로 저 인물을 언급할 때 '셔더후이'(She Dehui)가 아니라 '예더후이'(Ye Dehui)라고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덕택에 유명해진 중국의 권법가 '엽문'(葉問)이라든가, 대만출신의 유명한 영화배우 엽천문(葉蒨文)을 영화계에서는 모두 '엽'씨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경우가 타당해 보입니다.
사소한 문제이겠지만, 국내 한학계 상당수의 학자들이 습관적으로 葉氏를 무조건 섭씨라고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지적해봤습니다.^^

로쟈 2011-06-27 10: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중국어는 너무 어려운 듯해요.^^;
 
부르주아 좌파와 우파 아나키스트의 만남

단짝인 남자 둘이 나오는 영화가 '버디무비'라면 두 남자의 고백을 담은 책은 '버디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난주에 나온 버디북은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의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푸른지식, 2011)이다. 이름에서 풍기지만 독일 남자 둘이다(사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보다 더 겸손한 표현은 '나는 가끔 성자일 때가 있다'이지만, 사람들은 전자가 더 겸손한 걸로 착각한다). 프랑스 남자 둘이 나오는 버디북 <공공의 적들>(프로네시스, 2010)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 둘이 아닌 남녀가 등장하는 책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정희와 유시민의 <미래의 진보>(민중의소리, 2011)도 같이.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가 제일 먼저 묻는 질문도 '나에게 정치란 무엇인가'이니 억지스런 연상은 아니다.  

  

한겨레(11. 06. 18) 우리의 투쟁은 젊은 날의 치기였을까

25년 친구인 두 남자가 작심하고 만났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50대 독일 남자들인 유명 작가 악셀 하케와 독일 유명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 조반니 디 로렌초다. 두 사람은 평생 남들에게 이야기 못했던 마음속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이 꽁꽁 마음속에 숨겨놓고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야기 못했던 부끄러움은 끔찍하고 커다란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속물근성’이었다.

학창 시절 새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사회운동을 했고, 부조리한 현실을 글로 고발해왔던 그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해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하며 살아왔음을 고해성사하듯 까발려 이 책을 썼다. 학생운동을 했으면서도 군대 신고식에선 신참에게 맥주에 담배가루를 넣어 마시게 했고,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가족이 많아 더 큰 차를 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나이가 들자 투표할 때 돈을 많이 버는 중산층한테 유리한 후보에게 표를 찍었던 등이 그들이 고백한 치부들이다.  

고백을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외면해왔던 자기 모습을 주체적으로 대면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영웅은 어떤 사람이며 자신들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지 다시 돌아본다. ‘배울 점이 있는 한 누구나 영웅’이며, 설령 내 마음의 영웅을 잃더라도 삶의 지표가 될 ‘모범’은 결코 잃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고백록은 끝을 맺는다. 마지막에 자기를 돌아보는 점검표도 곁들였다. ‘나의 투쟁은 젊은 날의 치기였을까’ ‘나는 정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이 있는가’ ‘나는 삶의 즐거움보다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등등.(구본준 기자) 

11. 06. 20.  

P.S.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문화 작가라는 하케의 책은 국내에도 여럿 소개돼 있지만 '인기'란 말이 무색하게도 대부분 절판된 상태다. 독일 역시 먼 나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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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6-20 22:0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요즘 하는 것 보면 이정희 유시민 사진을 보자마자 거부감이 드는군요.

로쟈 2011-06-21 07:34   좋아요 0 | URL
요즘 욕을 많이 먹는군요...

2011-06-21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는 눈에 띄는 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주인데, 그래도 분야별로 한권씩은 꼽아볼 수 있다. 경제쪽이라면 리오 휴버먼의 <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란 베스트셀러의 저자 휴버먼이다.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원제가 <자본론>으로 탈바꿈한 게 얼핏 이상해 보이지만 목차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본주의가 어째서 지속가능하지 못한가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구분의 출처가 휴버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6. 18) 먼저 이해한 후 싫어하라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1903~68·사진)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제목을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책은 [The Truth about Socialism](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악마의 도구’로 여겨지던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책은 첫장 ‘계급’으로 시작해 잉여가치-축적-독점-분배-공황-전쟁-국가-효율-합리성-몽상가(오언, 푸리에 등)-두 사람(마르크스와 엥겔스)-계획-자유-권력을 거쳐 ‘인간’을 다룬 마지막 장으로 이어진다. 제목 흐름만 봐도 책의 구성과 내용,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60년 전 분석이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4대강 사업장에서 수십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 한국 자본·권력과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적확히 진단하고 있다

책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다. 휴버먼은 로버트 오언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혹한 환경에 저항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가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는 있을 수 없고, 두 계급 간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본 휴버먼은 “특혜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자본계급의 주된 관심사다. 반면 노동계급의 관심사는 비하와 수모에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일”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휴버먼은 “사회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둘을 구분하면서 공산주의적 분배 원리는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주의적 분배 원리는 즉각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봤다. 공산주의 전 단계로 토지·원료·공장·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우선 공적 재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버먼은 책의 여러 곳에서 자유와 수정헌법 같은 미국의 가치를 역설하는데, ‘노동 계급의 생산수단 소유’ 주장도 미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증기기관이 가난한 이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존재로 비쳐진다면, 그들로서는 그것을 장악해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혁명적 제안이 담긴 토머스 스키드모어의 <재산에 관한 인간의 제 권리>는 마르크스가 11살 때 나온 것이다.

휴버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가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사회주의 시스템의 목도를 예견했다. 책 출간 이후 60년 동안 벌어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감안하면, 그의 예견은 성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백년 전 ‘왕권신수설’이란 개념에 대한 도전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그의 예견은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파탄이 목도되고 운위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이 그 진행형을 증거하는 것일 수 있다.(김종목 기자) 

11. 06. 18. 

 

P.S. '자본주의의 종말'을 다룬 책으로 엘마 알트파터의 <자본주의의 종말>(동녘, 2007)과 함께 김수행 교수의 <세계대공황>(돌베개, 2011)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사이'가 부제라서다. 안토니와 네그리의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그린비, 2009)까지 나란히 읽어봄직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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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6-21 06:27   좋아요 0 | URL
The truth about socialism는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인데 번역이 나왔군요.(이 블러그에서 보고 그런 책이 있는 걸 처음 알았읍니다.) Man's Worldly Goods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라는 이름으로 나온 듯 합니다. 1936년 초판인데 아직까지 미국에서 출판이 되고 있으니 거의 명저나 고전에 반열에 속한 책이라 할 수 있읍니다. 경제사 관련 있으신 분은 읽어보기를 권하고요. 70년-80년대에는 이 책 영문 해적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요즘 한국의 번역서를 보면 정말로 엄청난 양의 책이 나오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번역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역자의 사정들이 별도 좋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로쟈 2011-06-21 07:36   좋아요 0 | URL
네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꽤 지명도가 있는 책입니다. 번역서가 쏟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인문번역서로 먹고사는 건 굉장히 어렵고 드문 게 이곳 현실입니다.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어서요. 반전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4:24   좋아요 0 | URL
겨우내 아내와 아내의 전공인 철학 영문서 번역에 매달렸습니다. 저는 영어가 짧아서 교정을 보았는데 며칠전 출간이 되었구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번역료 한 푼 못받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같은 저자의 책을 같은 출판사에서 두번째로 번역하는 건데 3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네요. 지인들은 책을 구입해 준다는데 구입비가 역자에게 오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영어 공부한 걸로 자위해야 할테죠?

로쟈 2011-06-21 15:03   좋아요 0 | URL
인세로 계약을 하신 건가요? 번역료를 못받으신다고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데요. 인세라고 해봐야 아주 소액일 테지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9:21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말은 저자가 로열티를 많이 부른탓에 그 금액을 충당하느라 번역료는 따로 없다고 한답니다...

로쟈 2011-06-21 20:21   좋아요 0 | URL
그건 말이 안되는 조건인데요. 그런 걸 알고도 맡으셨다면...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20:54   좋아요 0 | URL
5년간 미국을 다녀오면 인문학 출판계의 이런 현실이 바뀌어 있을까요? 그러길만을 바라야죠^^
 

육아에 별로 관심이 없기에 읽어본 육아책도 따로 없지만, '인간 본성을 존중하는 육아법'을 다룬 진 리들로프의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양철북, 2011)란 책은 눈길을 끈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허다한 인물들이 '잘못된 육아법'의 소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서구 합리주의 육아법'에 더 익숙한 우리로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한다. 저자의 '애착육아'론('캥거루 육아법'이라고도 부름직하다)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이어서 반갑다(물론 실천은 별개였다)...

경향신문(11. 06. 04) 인간의 본성 거스른 서구식 육아법

진 리들로프는 19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올해 3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의 선상가옥에서 세상을 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25세 때 유럽 여행에 나섰다가 완전히 다른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남미 밀림으로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는 두 남자를 만난 뒤 즉석에서 그들을 따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카우라 강 상류에서 석기시대를 유지하며 사는 예콰나족은 리들로프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75년 처음 출간된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원제 The Continuum concept)는 예콰나족의 육아법을 통해 본 현대인의 잘못된 육아법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기술한 책이다. 이후 이 책은 ‘서구 합리주의에 기초한 육아법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며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한다. 출판사는 “16년 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 제기한 문제를 육아의 차원에서 먼저 제기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연속성 개념’을 먼저 살펴보자. 이는 ‘종을 그 종으로 지속시키는 성질’이다. 진화의 산물인 인간은 환경 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바꿔왔으므로, 현재 인간을 이루는 성질은 ‘필연’이며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없이 강해진 이성은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지를 잘 아는 우리의 타고난 감각”을 크게 훼손했다. 예를 들어 아기를 어떻게 기를지 결정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님에도, 엄마들은 낯모르지만 권위있는 남성이 쓴 육아책을 보면서 잘못된 육아법을 익힌다. 

Yequana Mother with baby in sling.

예콰나족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서 기어다니기 전까지 하루 종일 안고 다닌다. 아기에게 특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고, 그 상태로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수다를 떤다. 아기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젖을 빤다.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기는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엄마는 “안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콰나족 아기들은 그렇게 ‘자유방임’되지만, 다치거나 사고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리들로프는 전한다. 이는 어려서부터 품에서 떨어져 재우며, 정해진 시간에 젖을 먹는 습관을 들이고, 가지 말아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두는 서양 엄마들의 육아법과 크게 다르다.

그래서 서양 엄마와 아기들이 더 행복한가. 서양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기에게 신경을 쓰느라 걱정과 짜증이 극에 달한다. ‘(엄마)품의 박탈’을 경험한 아기들은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독립심이 부족해진다.

‘인간 본성을 존중하는 육아법’을 이야기하던 리들로프는 책 종반부에 접어들면서 잘못된 육아법에서 서구 사회의 온갖 병리 현상이 유발됐다고까지 말한다. 엄마 품을 빼앗긴 경험에 사로잡힌 성인들은 새 옷, 새 자동차, 승진 등을 끝없이 갈망한다. 병적인 자아도취에 빠지는 배우, 여러 개의 학위를 수집하는 학자, 끝없이 모험을 떠나는 모험가에게서도 엄마품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을 원인으로 찾는다. 



리들로프는 ‘품의 박탈’ 경험은 아동기와 성인기에 들어와서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특별한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좁은 곳에 갇혀 있느라 기어다니려는 욕구를 실현하지 못한 어떤 성인들은 언어 능력을 완전히 개발하지 못했는데, 몇 개월에 걸쳐 하루 한 시간씩 아기처럼 기어다니게 했더니 말더듬을 치유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의 진정한 욕구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지성’을 가진 어떤 독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다.(백승찬기자) 

11. 06. 11. 

 

P.S.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을 위한 교육법에 대해선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 마더>(민음사, 2011)도 참고할 만하다. 아이들을 엄격하게 닦달하는 교육법이라면 우리에게도 친숙한데 다만 중국계 예일대 교수가 전하는 '성공 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성공'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서. 달라이 라마가 서문을 쓰고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추천사를 쓴 <세상은 당신의 아이를 원한다>(에이지21, 2011)는 세계 최대의 청소년 자원봉사단체 '프리 더 칠드런(Free the Children)' 운동을 이끌고 있는 젊은이들이 엮은 책이다. '자비심'과 '용기', 그리고 '공동체의식'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자란 제안을 담고 있다. 거기에 한가지 더 보태자면 '전쟁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도 키워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화만들기 101>(동녘, 2011)이 청소년도 읽을 만한 가이드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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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2011-06-11 20:54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에이미 추아 교수는 "자녀가 시인,코미디언,록음악가보다 의사,과학자,변호사가 되길 바란다"고 했던데 그의 교육법에 지나치게 이목이 집중된다는 생각입니다. 또 이민 2세에 예일대 로스쿨 교수라면 그가 중국계라고 해서 그의 교육법이 반드시 중국엄마식이며 서구엄마식과 대비되는 성공적인 교육법인지도 좀 생각해볼 문제일듯 싶네요...

로쟈 2011-06-11 21:02   좋아요 0 | URL
교육관에서는 '한국계'라고 해도 무방할 듯해요. 그래서 '거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雨香 2011-06-13 13:02   좋아요 0 | URL
와잎에게 이야기했다가,,"애나 좀 볼 생각이나 하지"라는 핀잔 들을 일이 먼저 생각납니다.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백일도 안 된 둘째가 엄마와 붙어 있어서 첫째를 책임져야 하는 주말이 두려운 것이 바로 현대의 삶의 방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있기만 한 '오래된 미래'를 이제는 손에 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와 더불어 여름 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오래된 미래'부터 찾아내야 겠습니다. 어디에 있을라나..)

로쟈 2011-06-14 09:50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건 육아뿐만이 아니니까요...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몇종 소개하면서 주요 저작 가운데 빠트린 책이 있는데,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나남, 1996)이 그것이다. 책은 구입했지만 아직 페이지는 넘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 2002)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보다 온전한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기에.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입한 책은 최근에 나온 <역사와 지식과 사회>(나남, 2011)이다. '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가 부제. 한국전쟁 연구를 갈무리하면서 이에 관한 저자의 학문적 온축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은 오늘 받았는데, 책장을 넘기기 전에 먼저 인터뷰기사를 찾아서 옮겨놓는다. 

한겨레(11. 05. 08) 한국전쟁 연구, 지성사 되다

한국전쟁은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줬던 모든 사건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초래한 피해의 규모를 넘어, 두 한국이 아직도 겪고 있는 분단과 대결이라는 현실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뤄졌어야 하는 분야지만, 오히려 체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념에 휘둘렸던 역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박명림(사진) 연세대 교수가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의 흐름, 곧 한국전쟁 학지사(學知史)를 정리한 책을 펴낸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나남 펴냄)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연구 경향의 흐름만 나열하지 않고 학문과 사회가 어떤 관계에 놓여왔는지 또한 앞으로 어떤 관계를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탐구한 책이다.

박 교수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시기는 주로 1980년 ‘광주항쟁’ 때부터 최근까지 30년이다. 이전 한국전쟁 연구는 주로 무비판적 냉전반공주의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광주항쟁을 겪은 80년대에야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폭발한 현대사 연구에 대한 관심의 밑바탕에는 민족과 민중을 내세운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다만 민족해방이냐 민중민주냐 등 노선마다 필요에 따라 ‘꿰어맞추기’식으로 역사를 풀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박 교수는 “80년대 국내 연구에서 가장 뒤처진 부분은 역시 관심의 제고와 시각 전환을 넘는 사실의 발굴과 정리, 이론과 방법의 영역이었다”고 말한다. 급진주의적 시각으로 이뤄진 연구들이 나타났지만, 과거 반공주의를 대체할 정도로 객관적 평가를 받은 단독연구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 커밍스는 미국 비밀자료와 북한 노획문서 등 폭넓은 자료 발굴로 연구 주제와 시기, 영역을 대폭 확장했고, 미국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통해 기존의 친미-반공주의적 연구 접근법에서 탈피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학제적·융합적 연구의 시작을 열기도 했다.

급진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뤄진 커밍스의 연구는 한국전쟁 연구에 질적 도약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계 또한 존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한국 사회의 내적 모순에서 찾고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의 합의된 전략을 간과했다거나, 미국의 개입에 대한 강한 비판을 앞세운 나머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지점들을 놓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 현실사회주의 붕괴라는 또 한 차례의 전환을 통과하며, 한국전쟁 연구는 이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풀이다. 인물과 마을 연구 등 세세한 차원에까지 연구가 세밀화됐고, 전통주의니 수정주의니 하는 낡은 틀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전쟁 연구가 보편의 광장으로 나아가려면, 철학적이며 해석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이 남긴 유산은 평화와 인권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져야 하며, 이념적 굴레가 벗겨지는 최근에야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서 한국전쟁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이 책의 출간에 대해 “박명림 교수가 친북에 빌미를 제공했던 브루스 커밍스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며, 커밍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아직도 학문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머리에서 박 교수는 “언론이 주도하는, 사실보다 주장을 우선하고 진실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현상은 이제 병리적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최원형 기자) 

11. 06. 09.    

P.S. 말미에 언급된 '한 일간지'는 중앙일보이다. 아예 '박명림 VS 커밍스'의 구도로 프레임을 짰다. 인터뷰기사에서 한국전쟁을 표나게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선 링크해놓은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를 참고하시길.  

중앙일보(11. 06. 03) “누가 전쟁 시작했는지 묻지 말라니…브루스 커밍스의 6·25, 북한에 면죄부” 

6.25전쟁 전문가 박명림(48) 연세대 교수가 브루스 커밍스(68)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커밍스 교수의 대표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박 교수가 오는 8일 내놓을 예정인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나남·작은 사진)에서다. 박 교수는 신간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6·25 연구의 흐름을 두루 살펴봤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브루스 커밍스. 책의 한 장(章)을 ‘커밍스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미친 커밍스의 영향이 막대함을 반영한다. 

커밍스의 영향이 학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이념 분쟁의 뿌리가 그와 연관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커밍스는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하는 물음을 제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이 한마디가 한국전쟁과 북한 이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특히 80년대 사회운동과 급진 학문, 이념주의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 컸다. 친북주의와 반미 주사파는 이 한마디를 금과옥조처럼 삼았다”고 지적했다. 80년대 한때 커밍스의 영향을 받았던 박 교수는 “이제 커밍스 연구의 시대적 한계를 분명하게 할 때”라고 말했다. 책 출간에 앞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커밍스의 무엇이 문제인가.

 “민족·민중이라는 두 개의 기준에 초점을 두고 북한에 대해선 온정적이고 남한에 대해선 가혹한 비판을 가했다. 역사 서술의 객관성·균형성이 흐트러졌다. 전쟁 당시 남한과 미군의 민간인 학살은 비판하면서 북한의 학살은 간략하게 다루는 불공정성도 보였다.”

 -박 교수도 진보성향의 학자로 알고 있는데.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의 문제다. 예컨대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제 명백히 밝혀졌다. 남침을 지적한다 해서 진보가 보수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커밍스의 책을 보면 6·25전쟁과 관련, 남침과 북침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일제시기에서부터 시작된 계급갈등이 해방 이후 더욱 증폭된 일종의 ‘내전(內戰)’으로 봤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한국전쟁을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으로 볼 수 없다. 한국전쟁의 핵심 기원인 한반도 분단은 내부 사회모순이나 계급갈등과 상관없는 국제요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선제공격을 감행한 북한에 면죄부를 주고, 북한의 독재와 폭력, 반인권 문제를 제대로 거론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또 “더욱 큰 문제는 소련의 깊숙한 개입이 증명된 이후에도 자신의 기본 가설을 회의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새로 발굴된 역사적 자료와 비교해 수정하는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80년대 커밍스의 영향을 받았고, 『해방전후사 인식』 필자로도 참여하지 않았나.

 “80년대 커밍스의 연구는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학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커밍스 책이 나온 후 국내외 큰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 북한의 파탄, 사회주의의 붕괴 등이다. 커밍스 책에는 이런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옛 소련, 중국, 동구권의 새로운 문서자료가 발굴, 공개됐다.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이 밝혀졌다. 북한의 주장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커밍스의 책은 새로운 자료들이 발견되기 전의 연구다.”

 -6·25전쟁과 북한을 분석할 때 중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유·인권·민주주의·평등·정의·개방 등 인간 사회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조명해야 한다. 자주·민족·통일 같은 특수과제도 중요하지만 보편적 가치보다 위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박 교수는 커밍스의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일제시대 사회변동, 농민의 존재조건과 인식의 문제, 지방인민위원회, 게릴라 투쟁, 토지문제, 미국의 한국정책에서의 관료 갈등 문제 등은 커밍스 이전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6·25에 대한 최근 연구 경향은.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기원 논쟁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한국전쟁 발발 관련 학위 논문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기억·생활·여성의 변화 등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으로 연구가 확대된다. 과거엔 정치학 중심이었는데 최근엔 사회학·인류학·역사학·신문방송학 등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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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jpolitics 2011-06-10 09:45   좋아요 0 | URL
커밍스의 연구는 그야말로 "도약"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당시 주어진 자료와 한계내에서는 최선의 연구였다고 생각되는데, 현재의 자료를 통해서, 과거의 연구를 "무비판적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것 같네요. 박명림 연구 역시 커밍스의 기초적 연구를 토대로 발전된 것인데, 모 신문사의 기자는 학문의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이념의 틀로써 한국전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로쟈 2011-06-11 15:18   좋아요 0 | URL
자칭 '학자'들도 그런 태도를 보이죠...

릴케 현상 2011-06-10 17:15   좋아요 0 | URL
정말 중앙일보 기사 읽고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로쟈 2011-06-11 15:19   좋아요 0 | URL
<6.25전쟁의 재인식> 같은 책은 그런 태도의 '학술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11 20:31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는 올해 한국현대사 교과서를 고쳐야 한다는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벌였습니다.그 결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이태진 씨가 건국의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화답을 받아냈고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또다른 보수인사들을 추가해서 한국현대사학회를 5월에 결성했죠.중앙일보는 이런 흐름을 주도한 데 대해 상당한 자부심이 있더라고요.그러니 박명림 씨와의 인터뷰 기사도 저런 식으로 쓴 거죠.
이태진 씨도 해방 이후사에 대해선 중앙일보나 교과서 포럼 쪽의 흐름과 동일하다고 봐야죠.

로쟈 2011-06-13 08:49   좋아요 0 | URL
결과적으론 박정희 재평가를 위한 사전포석일 거란 분석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