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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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 모리어티의 죽음


요즘 미드와 영드에서 많이 쓰이는 드라마 전개 방식중에 스핀 오프(spin off) 방식의 드라마가 있다. 이를테면 NCIS와 JAG 사이의 관계처럼 이야기와 이야기의 빈 공간을 새로운 형식으로 매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소설 역시 셜록과 모리어티 사이의 마지막 사건이후의 틈새를 비집으면서, 그리고 그 틈을 매우면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셜록과 모리어티 사이에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셜록이 돌아오기까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셜록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려보았을 법한 일들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늘 셜록에게 당하기만 했던, 그러나 셜록의 추리를 흠모해 마지 않았던 스코틀랜드 야드의 애설니 존스 경감, 그리고 동료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 미국에서부터 찾아온 프레더릭 체이스. 

두 사람의 마치 버디 무비를 보는 듯한 추적. 셜록의 죽음과 모리어티의 죽음 그리고 두 사람의 공백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데버루 일당들...


우리가 전에 알고 있었던 셜록의 소설이 아닌, 셜록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읽다보면 마치 코난 도일이 쓴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그만큼 저자가 주인공인 애설니 존스 경감 처럼 열심히 셜록을 공부하고, 쫓아갔기 때문일 것일 것이다. 


셜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본 서평은 황금가지의 셜록홈즈 :모리어티의 죽음 사전 서평단의 일원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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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경상도
김수박 지음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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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창비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경상도는 왜 그래? 라는 말을 늘 들어왔고, 해왔고,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기자 마자 단숨에 읽고 말았습니다. 


경상도 부모님으로부터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경상도에서 다니고, 중학교 이후로는 주욱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대구에서 삼년간 사회생활을 한 저로써는 경상도에 대한 진한 동질감과 함께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질감도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다가도 바깥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울말을 썼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가웠던 것은 김수박 작가가 저와 같은 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제 기억 한 켠에 동일하게 남아있더군요. 그래서 만화속에 등장하는 찌질했던, 찌질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마치 저자가 제 기억을 스캔한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낄낄거리면서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만화속에 그리고 있는 슬픈 기억들 역시 동일하게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광주사태공산폭도들이 전남도청에 폭탄을 설치했는데, “우리의 공수부대 아저씨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해결했다고 믿었습니다. 집 앞 벽에 붙어있던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 명의의 담화문을 보면서, “다마담화가 뭐가 다른지 한참을 고민했었던 유년의 기억입니다. 특히 어린시절의 시청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였죠. 

전라도 사람들은이란 말을 듣게 된 것도 아마 그 즈음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유년기를 지나 사춘기 시절 교회 한 켠에 있던 대학생 형이 두고 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몰래 읽으면서, 그리고 어머니의 노래를 몰래 보면서, 세상에 이런일이 다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당황함이 미안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진리인줄 알았던 아버지와의 불화는 그때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가가 말한대로 물어보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대구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때가 한창 IMF 직후 때라 DJ 정부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와 대구를 다 쳐 죽일라꼬 그라는지모르겠다는 말을 늘 듣곤 했습니다. 막상 올림픽 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로 출장을 갈 때 왕복2차선의 고속도로를 보면서 이게 국도인지 고속도로인지 많이 헷갈리더군요.


이러한 저의 개인적 경험들과 고민들이 비단 나만의 고민과 생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 만화를 접하면서 알게되었고 많이 반가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조금은 가볍고 편한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읽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작가가 그렇다고 해서 무거운 이야기를 강요한 것도 아니고, 없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같은 시대를 비슷한 공간에서 살아왔다는 것 때문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먹먹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비겁하게 살지 말아야지,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당당한 부모가 되어야지라는 다짐을 해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써 지금 과연 내 앞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는 저 자신에게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고민을 다시금 하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경상도는 이래라고 정답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좀 더 이해는 하게 되었고,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70년대에서부터 90년대까지의 대구경북 내지는 경상도 사람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 당대를 살아왔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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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html version of the file http://www.usc.or.kr/iwpe/down/1-8.hwp. Google automatically generates html versions of documents as we crawl the web. 그람시의 사회주의 이행전략 이 용 우*1) 1. 서 론 80년대 후반 이후로 밀어닥친 소련과 동구권의 변화,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지난 수년동안 세계는 일찍이 없었던 격변의 시기를 지나왔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맑시즘을 둘러싼 논쟁도 이론적․실천적 차원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 제3세계 그리고 공산권국가에 이르기까지 그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먼저 맑시즘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이론적 차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 차원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프롤레타리아 중심의 19C혁명전략이 20C에 이르러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의 가능성’이 보다 희박해져 가는 현실을 ‘맑시즘의 체계’속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와 관련된 논쟁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맑스주의의 이론적․실천적 위기가 첨예화된 상황 속에서 이태리의 공산당 지도자 그람시를 통해 이러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Hegemony 개념을 발전시켰다. 헤게모니는 제2인터내셔날의 ‘경제주의적 결정론’을 거부하고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 인간의 의지력이 갖는 의미를 밝힘으로써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문제틀로 수렴되어지는 핵심개념이다. 그람시는 경제적 위기가 혁명을 가져오고 여기서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붕괴될 수 있다는 제2인터내셔날의 전통적인 ‘숙명론’으로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람시의 주요관심사는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헤게모니의 실천과정-이었으며, 헤게모니의 역할에 대한 그의 강조는 그가 맑스주의에 ‘정치학’을 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람시의 주된 관심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부분 또한 혁명 전략이었다. 그람시의 혁명전략은 첫째, 진지전(War of Position)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의 내재적 역동성의 측면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조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혁명전략을 제시하였고 둘째는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기존의 경제결정론적 경향을 정치와 문화 등 상부구조영역의 중시로 대체시켰으며 마지막으로 ‘과정으로서의 혁명’(process as a revolution)개념을 통하여 기존의 ‘정치혁명’적 성격을 거부하고 민중적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소극적 의미에서는 맑시즘의 일시적 위기를, 적극적 의미에서는 맑시즘의 창조적 계승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교조적 맑스주의자의 경제결정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역사적 현실에서 사회 제세력의 구체적 역학관계를 통일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맑스주의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람시가 우리학계에 소개된지도 이미 10여년이 지났지만1)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 페미아(J. Femia)도 지적하듯이 “때로는 변증법적 유물론자로 혹은 주관적 관념론자로,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자로 혹은 온건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비타협적인 혁명가 혹은 사회주의로의 평화로운 진화의 예언자로 다양하게 묘사된 한 사상가를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2) 그의 말대로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는 막대한 양의 2차문헌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그람시가 진정으로 무슨 얘기를 했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는 드물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람시의 혁명전략을 분석함에 있어 ‘그람시를 넘어서’가 아닌 ‘그람시로 되돌아가서’ 헤게모니론의 형성과 심화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회주의 이행전략이 무엇인가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 사회경제적 배경과 철학적 기초 (1) 사회․경제적 배경 그람시는 중세말기에 등장한 프로렌스, 제노아 등의 이태리 도시국가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을 도시국가의 부르죠아들이 경제적 이익을 초월해서 헤게모니에 기초한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점에서 구한다. 그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군주론’은 바로 이러한 점을 주장한 것이라 보고, 그를 조숙한 쟈코뱅(Precocious Jacobin)3)이라고 부르고 있다. 19C 이태리의 근대적 통일국가 형성운동(Risorgimento)의 과정에는 두개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마찌니(Mazzini)와 가리발디에 의해 주도되는 행동당(Action Party)으로서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카부루(Cavour)에 의해 주도된 온건파(The Moderate)로서 국가중심주의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람시는 행동당이 농민대중과 중하류계층으로부터의 기본적 요구를 수용하고, 이들과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온건파를 제거하고 프랑스 혁명에서의 쟈코뱅의 역할을 수행했어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행동당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온건파의 헤게모니의 종속그룹이 되었으며, 결국 통일국가 형성운동도 온건파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이다.4) 결국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의 성격은 농민이나 인민의 참여와 동의의 확보를 통한 민족적-대중적 집단의지(national-popular collective will)를 형성하지 않고, 지주계급과의 동맹을 통해 국가 주도하에 형성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인민에 대한 헤게모니의 장악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람시는 헤게모니 없는 독재(dictatorship without hegemony)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태리의 통일국가형성운동은 정치적 통치권이 성장해나갈 여지가 있는 진정한 사회혁명은 아니었고, 그 결과 리소르지멘토 이후의 이태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협소하고 허약하게 제도화된 통치체제에 반대하였다. 또한 이태리의 리소르지멘토는 민족혁명이자 사회혁명인 이중적인 복합성을 가진 것으로 민족적인 측면에서 이태리의 재통일을 달성하였으나 사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근대화 과정이 북부의 산업부르조아에 의해서 출발되었기에 그 한계성을 갖는다. 그람시는 리소르지멘토를 인민적․민주적 기반이 없는 위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from above)이라는 의미에서 수동적 혁명(passive revolution)이라고 했다.5) 그는 부르조아의 헤게모니에 위기가 발생할 때 그 헤게모니를 재편성하기 위한 부르조아의 재조직 과정은 언제나 수동혁명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고, 1930년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국가개입을 통해 해결하려한 New Deal 정책과 1920년대의 자유주의 국가의 위기에서 등장한 파시즘도 수동혁명의 하나의 형태라고 주장한다.6) 1870년대 이후 이태리 통치계층이 직면한 문제들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은 남부문제의 해결이었는데, 남부문제의 심각성은 이태리 사회를 후진 자본주의 사회로 잔류케하는데 결정적이었다. 또한 낙후된 남부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실질적인 개혁없이 파시스트 국가체제 속으로 통합됨으로서 이태리의 혁명적 상황은 비관적 분위기를 갖게 된다. (2) 철학적 기초 ① 경제결정론적 맑스주의 해석 거부 그람시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일반적인 맑스주의 역사 맥락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 당시의 일반적인 맑스주의는 과학과 비판, 이론과 실천 중에서 과학과 이론의 요소들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함으로서, 인간의 의지가 배제된 결정론적이고 속류화된 맑시즘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카우츠키(Kautsky)를 중심으로 한 제2인터내셔날의 기본교리로 형성된 이래 플레하노프(Plekhanov), 부하린(Bukharin)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실증적이고 결정주의적인 맑스주의 해석을 의미한다.7) 소위 기계적 맑시즘(Mechanical Marxism)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당시의 지배적인 맑시즘은 ⓐ 모든 변화는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적 토대로서 설명될 수 있으며, 따라서 맑시즘의 핵심은 객관적인 경제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경제주의(economism)의 경향과 ⓑ 이 경제법칙에 의하면 모순이 첨예화되어 나타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 따라서 역사는 객관적 법칙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의 진행으로부터 인간의지는 배제되어 인간은 수동적 존재가 되는 결정론(determinism)적 경향을 갖는 것이다.8) 이러한 기계적 맑시즘은 실재 역사과정에서의 변칙(anomaly)의 발생9)으로 인해 경제주의적, 결정론적 도그마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맑시즘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람시도 기계적 맑시즘을 비판하고 맑시즘의 재해석을 통해 실천철학으로서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옥중수고’에서 기계적 맑시즘을 대표하는 부하린(Bukharin)을 비판하고 있다. 부하린은 인간의 지식은 객체의 반영이라고 보며 맑시즘을 자연과학의 정확성을 가지고 미래사건을 예측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10) 그람시는 이에 대해 인간의 의지가 배제된 예측은 불가능하며 맑시즘의 사회발전법칙은 오직 경향(tendency)법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부하린의 기계적 맑시즘의 가정과 원칙이 부르조아 과학의 테두리를 재생산하고 맑시즘의 총체성(totality)의 변증법적 특질을 무시하고 있어 부하린의 주장을 조야한 유물론(crude materialism)또는 잘못된 객관성(false objectivity)이라고 비판한다.11) 그럼으로써 그람시는 역사에 대한 개별적 인간의 의지의 힘이 작용할 여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사적 유물론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② 그람시의 맑시즘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기계적 맑시즘과는 달리 상식-시민사회내에서의 지배에 대한 피지배자의 동의 등 어떠한 말로 표현되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가 그 자체로서 물질적 토대로부터 상당히 자율적으로 작용하면서 부르조아 지배를 가능케한다는 점에 있다. 상부구조는 그 자체로서 역사를 가지며 거꾸로 계급투쟁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럼으로써 경제구조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12) 그람시에게 있어 맑스주의는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이론에서 인간적인 조직과 제도들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이론으로 지양하게 된다. 혁명적 변화는 진보적인 세력의 행위이며 새로운 역사구성체는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들과 함께 새로운 혁명적 실천으로부터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람시의 철학작업은 확고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회복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람시는 ꡔ옥중수고ꡕ에서 맑스주의를 실천철학(Philosophy of Praxis)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의 맑스주의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이념은 실천과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발전한다는 그람시의 입장은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혁명적인 재정의를 요구하며 따라서 철학으로서의 맑스주의는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며, 역사는 의식적인 인간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은 현실의 중심이 된다.13) 요컨대 맑스주의는 본질적으로 ‘절대적 역사주의’(absolute historicism)이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은 절대적 역사주의, 사고의 절대적 세속화, 역사의 절대적 인간주의이다. 새로운 세계개념의 실마리를 추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이다.”14) 그람시가 맑스주의를 절대적 역사주의라고 본 것은 맑스철학에서 모든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하고, 또한 제2인터내셔날 이래의 맑스주의에 대한 실증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맑스주의의 본질을 현실역사의 적극적 비판과 변혁을 위한 실천적인 역할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것들을 종합해 볼 때, 그람시는 기계적 맑시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상부구조-하부구조의 상호관련성을 파악하고, 맑시즘을 절대적 역사주의로 파악함으로써, 맑시즘을 정치와 역사에 개입하는 실천철학, 혁명철학으로 위치지우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15) 3. 헤게모니 개념의 형성과 심화 헤게모니 개념은 그람시 맑시즘의 기본적인 이론적 출발점이다.16) 그러나 원래 이 용 어는 19C 말부터의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서의 논쟁적 용어였다. 1883년에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플레하노프(Plekhanov)는 짜리즘과의 투쟁에서 러시아의 부르조아가 주도권을 잡기에는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조직적인 노동계급이 절대주의에 대항하는 정치투쟁을 벌임으로써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헤게모니 개념을 ‘지배’ 또는 ‘우월성’의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조아 혁명을 수행함으로서 결국 지도계급(leading class)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소산이었다. 그후 악셀로드(P. Axelrod)도 전제체제에 대항하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와같은 역사적 지위 때문에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는 절대주의와의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7) 레닌은 멘셰비키와의 논쟁에서 노동계급이 조합적 단계를 넘어 농민과 동맹을 맺어서 짜리즘에 대한 민주주의적 투쟁에서 지도적인 세력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 그는 이 짜르전제에 대한 민주투쟁에서 노동계급은 농민과의 동맹을 형성 헤게모니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이것을 통해 소수의 노동계급이 농민다수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19) 이상에서 보듯이 헤게모니 개념은 러시아에서 짜르의 전제정치를 타도하기 위한 부르조아 혁명의 전략적 사고에서 발전되어 왔으며, 특히 레닌이 그것을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력(political leadership)으로 개념화하고 또한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람시는 이를 위대한 형이상학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20)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프로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도력’이라는 레닌적 의미로 출발하고 있다.21) 그러나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ꡔ옥중수고ꡕ에서 보다 풍부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ꡔ옥중수고ꡕ에서, 헤게모니 개념은 정치적 지도력(=지배)과 지적․도덕적 지도력(=지도)의 확고한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22) 여기서 그람시는 정치적 지도력은 경제적 우위에 기초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도덕적 주도권에도 기초해야 하며, 지도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립하기 위한 노동자 계급과 인민대중의 투쟁의 무기이자 방법이 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는 프로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도력 외에 지적․도덕적 지도력의 의미가 강조되는 한편, 그의 헤게모니의 문제틀이 프로레타리아의 전략에 한정되지 않고 또 하나의 기본계급인 부르조아의 정치적 실천에도 적용됨으로써, 역사과정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사쑨(A. S. Sassoon)은 그람시의 헤게모니에서 동의의 측면과 지적․도덕적 지도력의 의미에 대해 그람시가 두 측면을 항상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고 주장한다.23) 즉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동맹집단들내의 동의를 이루려는 것인 한편 강제력에 의해 달성되는 적대집단들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두 측면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24) 그람시는 이런 의미에서 헤게모니 개념을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켄타우르스(centaur)-반은 짐승이고 반은 인간-의 두가지 성격과 상응하는 강제의 계기와 동의의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로서 인식하고 있다.25) 이와같이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서 강제와 동의의 두 측면의 구분은 분석적 목적을 위한 것일뿐, 실제적으로는 결합되어 행사되고 있다.26) 그람시는 이러한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의 성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와 강제력에 의한 지배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가 보다 정상적인 상황이고, 힘과 강제력은 위기시에만 지배적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조아 계급은 헤게모니 지배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의 형성을 저지하고, 심화되는 위기 속에서도 지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헤게모니 지배가 계속되는 한 프로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의 논리는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가 특정계급을 중심으로 결합되는 ‘역사적 블럭(historic bloc)’개념으로 연결된다.27) 즉 노동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계급의 이익을 위한 계급투쟁과 대중적․민주적 투쟁을 결합시켜서, 민족적․대중적 집단의지(national-popular collective will)를 형성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역사적 블럭’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가 사회의 현실적인 변증법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역사적 블럭 개념은 토대(구조)와 상부구조 사이의 필연적인 상호연관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블럭개념은 정치적 지도력과 지적․도덕적 지도력이라는 헤게모니의 두 측면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어떤 헤게모니적 집단의 지도하에 있는 하나의 동맹체계를 표현하는 한편, 지식인과 민족-민중, 지도자와 대중사이의 유기적 결속에 의해 서로를 대변하는 상호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블럭은 세력관계의 정치적 계기에서 특정계급이 헤게모니를 창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수평적 차원을 갖는 한편, 구조(토대)와 상부구조의 통일이라는 점에서는 수직적 차원을 갖는다.28) 이와 같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간의 관계개념을 정교화함으로써 그람시는 사적유물론의 발전에 독창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며, 특히 헤게모니의 논리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를 정치의 이론가, 즉 상부구조의 이론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29)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영역을 국가(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두 수준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우선 두개의 주요 상부구조의 차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부문으로 불리워지는 시민사회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사회 혹은 국가의 차원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은 지배집단이 사회를 통하여 행사하는 헤게모니 기능과 법의 통치를 통하여 행사되는 직접적 지배 혹은 명령의 기능에 상응한다.”30) 여기서 국가는 정치사회와 같은 의미로 생산형태와 경제와 일치해서 대중을 통제하는 독재나 강제기구의 영역이고, 반면에 시민사회는 학교, 교회, 노동조합 등과 같은 사적 조직으로 헤게모니가 행사되는 영역이라고 구분한다. 이러한 그람시의 시민사회와 국가의 구분은 헤겔이나 맑스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31) 이러한 구분에 의해서 그람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는 정치사회나 국가에 비해 시민사회가 우세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혁명전략은 국가권력의 급격한 장악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시민들을 장악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 시민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본다. 4. 사회주의 이행전략 그람시는 그의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과 계속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부르조아의 지배가 유지되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조아는 강제력 뿐만 아니라 전체사회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보편화시키고 대중의 동의를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며, 이러한 부르조아의 헤게모니가 계속되는 한 프로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람시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전략으로 진지전(war of position)을 제시하며 그것을 기동전(war of manoeuver)과 구별하고 있다. (1) 진지전 그람시는 기동전과 진지전을 구별하기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비를 통해 동의 세계(East)와 서의 세계(West)를 구분한다. “러시아(동의 세계)에서 국가는 모든 것이고, 시민사회는 원시적이고 유동적인데, 서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에는 적절한 관계가 있어서 국가가 흔들릴 때 시민사회의 강한 구조는 즉시 나타난다. 국가는 오직 외피일 뿐이고, 그 뒤에는 진지와 요새의 강력한 체제가 있다”32) 이것은 서구의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의 경험(볼세비키전략)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국가에 대한 직접적 공격인 레닌적 의미의 기동전33)보다는 시 민사회에서의 진지전이라는 장기적 전략이 유효함을 의미한다. 그람시가 보기에 시민사회는 겨우 원시적인 상태이고 단지 국가가 전부였던 러시아에서는 기동전을 통한 국가권력의 장악이 가능했지만, 서구에서는 국가기구의 배후에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버티고 있어 부르조아 헤게모니 장치의 다양한 형태들을 공격할 수 있는 진지전으로써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지전이란 부르조아 정치체제를 ‘국가기구와 시민사회’라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 체계로 바라봄으로써, 국가기구라는 외곽벽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이전에 시민사회라는 참호체계에 대한 분쇄투쟁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혁명’을 수행하여 프로레타리아 계급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배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전략노선이다. 따라서 진지전은 시민사회의 모든 모순에 대한 비판이자 적대세력에 대한 부단한 포위공격이다. 이러한 진지전은 부르조아 헤게모니와 프로레타리아 헤게모니 사이에 치열한 각축장을 형성한다. 즉 지배집단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헤게모니적 ‘진지들’을 강화시키려고 하며, 반면에 혁명적 노동계급은 그러한 진지들을 점령함으로써 부르조아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Counter-Hegemony)를 창출하려고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34) 또한 이러한 진지전 전략은 부르조아 헤게모니의 통상적 형태인 ‘수동적 혁명’ (Passive Revolution)에 대한 ‘반수동적 혁명’ (Anti-Passive Revolution)의 성격을 띠게 된다.35) 그람시에 의하면 수동적 혁명은 대중의 ‘수동적’합의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갖게 되는데, 광범위한 대중이 정치적 수동성의 상태에서 능동성의 상태로 넘어갔을 때 지배계급은 합의를 상실한 채 헤게모니의 위기-권위의 위기, 혹은 국가의 일반적 위기-를 맞게 된다.36) 따라서 반수동적 혁명이 성공하기 위한 관건은 노동계급이 광범위한 대중의 ‘능동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노동계급은 자신의 경제적․조합적 이해를 초월하여 대다수 민중의 이해를 수용함으로써 진정한 민족적-민중적 집단의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혁명의 지도자 그람시의 이론에서 지식인과 정당이론은 그의 헤게모니 개념, 혁명전략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그람시는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투쟁에서 지식인과 정당에게 대중의 초기의식을 체계화하고, 그들을 조직화하며 또한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지식인 그람시는 지적활동이 배제된 인간활동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잠재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사회적 기능에서는 모든 사람이 지식인일 수 없으며, 따라서 지식인은 한 사회에서의 사회적 기능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7) 그람시는 지식인을 전통적 지식인(traditional intellectuals)과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s)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인은 봉건사회와 그 이전의 생산양식에서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토지소유귀족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독점했던 성직자나 예술가, 철학자, 의사, 선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정치사회적 형태의 복잡하고 급격한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급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협을 하게 되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고 본다.38) 이러한 전통적 지식인들의 진정한 의무는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내렸던 처방, 즉 스스로의 뿌리를 절단하고 “미래를 그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계급”인 혁명적 계급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그람시는 시사한다.39) 유기적 지식인은 역사의 운동방향을 이해한 전통적 지식인, 그리고 혁명적 계급 자신에 의해 그 지도자로 봉사하도록 발탁된 지식인으로서 정치․경제․사회의 제영역에서 특정한 사회계급의 두뇌이자 조직자이며 그 사회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문가들이다. 그람시는 각 사회계급은 자신의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유기적 지식인을 창출해서 이 지식인의 역할에 의해 계급의 동질성과 계급의식을 유지한다고 본다.40) 그람시는 자본가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부르조아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노동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기적 지식인을 창출해야 하고 이것이 혁명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다.41)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과 노동계급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유기적 지식인은 노동계급의 체험으로부터 이론의 근거를 찾아내고, 이것을 통해 형성된 이론은 노동계급에게 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해 주는 변증법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지식인과 대중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하면서 지식인의 출발점을 민족․민중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와 느낌(feeling) 열정(passion)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42)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새로운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과 정열을 외향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웅변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보다는 하나의 지도자로서, 조직가로서, 단순한 변론가가 아니라 “영원한 설득자”로서 실제 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43) 혁명적 계급과 유기적 연관을 지닌 지식인은 그 계급의 지도력을 제공하는 정당의 일원이 됨으로써 실제생활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된다. ② 정당 그람시는 당 이론을 이태리 민중들을 정치적으로 자각시키고 교육시키기 위해 고안된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君主論」으로부터 유추한다. 정당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적 기능을 행사하여 새로운 집단의지를 형성함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현대의 군주’(The Modern Prince)다.44) 마키아벨리에 있어서 군주란 스스로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도시국가 시대의 시민적 부르조아의 지도자가 되지만, 그람시의 ‘현대의 군주’는 결코 개인은 아니며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자로 보고 있다. 그람시는 ‘현대의 군주’를 통해 「군주론」이 제시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정치적 모델 혹은 신화를 20세기에 제시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정치적 변동을 선도하고 실행하는 군주의 역할은 정당에 의해 수행된다고 말한다. “현대의 군주, 신화적인 군주는 실재의 개인, 구체적인 개인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체, 사회의 한 복합적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이 속에서 집단의지는…… 구체적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유기체는 이미 역사적 발전과정에 의해 주어져 있는데 곧 정당이다. 정당은 그 속에서 하나의 집단의지의 맹아가 출현하고 또 그것이 보편적이며 총체적인 것이 되어가는 최초의 세포이다”45) 마키아벨리의 목표가 당시의 지배계급을 교육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도그마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이태리의 당면한 정치과제들의 실상에 직면하게 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군주’ 역시 프로레타리아를 교육하고 훈련하여 장래의 지배계급이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정당을 노동자 계급에 의한 헤게모니 실현의 주요한 수단으로 봄으로써 정당을 노동계급의 ‘일부’로 간주하였는데46), 이는 당과 대중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강조하 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지식인과 정당, 그리고 대중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었을 때 진정한 대항 헤게모니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지식인과 정당, 대중이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관료제적 위험을 피하고 민주적 중앙집권제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47) 그리고 혁명정당, 현대의 군주의 임무는 ‘진지전’의 시기에, 필요하다면 대중의 의식을 점차 바꾸어 감으로써, 그러한 헤게모니를 수립하는데 있다는 것이다.48) 5. 결 론 1917년 후진 러시아에서의 혁명의 성공과는 반대로 오랜 경제위기를 겪었던 남부유럽에서의 혁명은 실패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내적모순에 의해 선진자본주의의 혁명은 필연적이라는 1847년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선진공업국가 중에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상황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가 고도화 단계를 지나 사멸했어야 할 시기를 넘기고도 존속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저작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가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해석을 논박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람시 이론의 토대는 1920년대 이태리의 역사적 상황이다. 당시 토리노에서의 노동계급의 의식과 혁명적 실천이 상당한 정도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1919-20년 토리노의 노동운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대신 뭇솔리니의 파시즘 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부르조아 반동이 훨씬 더 많은 농민과 노동계급을 끌어 들였다. 이러한 이태리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람시는 모든 변화는 하부구조의 경제적 토대로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경제결정론적이고 속류화된 기계적 맑시즘을 비판하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통일적으로 파악했으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부르조아 지배는 전통적인 맑스이론이 상정하듯 억압적 수단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피지배층의 동의를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인식 위에서 동의와 강권력, 정치와 경제 간의 변증법적 역동성을 분석하려 하였다. ꡔ옥중수고ꡕ에서 보여지는 그람시의 주된 관심은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혁명전략을 모색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의 복합성을 인정하였으며, 헤게모니 개념의 성격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략적 차원에서 그람시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어적인 참호로서 존재하는 시민사회를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공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람시는 진지전이라는 장기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렇다고 진지전과 기동전을 완전히 배타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즉 그람시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폭력의 궁극적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고, 다만 복잡한 시민사회의 발달과 이데올로기적 지배라는 서구사회의 변화된 상황 속에서 진지전 전략이 기본전략이고 결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또 그는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가를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수동혁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비판하면서 인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의 성격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ꡔ옥중수고ꡕ를 통해 볼 때 그람시는 “국가의 강제적 요소는 사라지고 규제된 사회(윤리국가 혹은 시민국가)의 보다 현저한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49)고 표현하고 있 다. 또한 “국가는 정부와 동일시되던 단계에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동일시되는 야경 국가의 단계로 이행해야 하다”50)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람시는 사회주의 건설은 자본주의의 국가권력을 장악한 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체제내에서 대중의 사고의 지적, 도덕적 개혁을 통해 시작되고, 권력장악 후에도 계속적인 교육과 도덕적 쇄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51) 그람시 이론은 알튀세(Althusser)와 뿔란자(Poulanzas) 등 구조주의 맑시스트들에 영향을 미쳐, 그들의 정치와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사회구성체의 복합적 통일성에 대한 인식은 그람시의 정치의 독창성, 경제주의적 맑시즘에 대한 비판,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상호성에 대한 인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 뿔란자, 루카치, 콜레티, 사르트르 등은 알튀세의 ‘자본론 독해(Reading Capital)’의 5장 「맑시즘은 역사주의가 아니다」라는 제목하에 그람시의 맑시즘을 역사주의의 범주에 넣고 비판을 하고 있다.52) 특히 뿔란자는, 시민사회의 조직은 국가억압기구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기구의 분쇄는 그것을 유지하는 국가억압기구의 파괴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람시의 전략을 비판하고 있다.53) 그람시 이론의 한계는 서구혁명의 좌절 속에서 나타난 합법주의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진지전 전략은 지배세력이 지배전술의 고도화나 합법영역의 확대를 통해 헤게모니적 지배를 장악하고 있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상황에서 혁명계급이 지배세력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변혁적 관점과 원칙을 저버리고 ‘우경화’되는 개량주의와 합법주의의 길로 빠져 변혁으로 가는 과정이 아닌 개량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지전에서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대중들에 대한 교육을 통한 ‘의식화’를 중시하고 ‘조직화와 대중투쟁’의 문제는 부차시 하고 있다. 따라서 진지전은 주체역량을 확보, 강화해야 할 시기에 ‘의식화’라는 한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민중들이 대중투쟁을 통해 각자의 계급의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협소화시키고 있다. 진지전의 무기로서 상정되고 있는 정당에서는 개량주의적 관점과 합법주의적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은 서구의 경험에서 보듯 합법정당은 의회주의적 선거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그를 주도해 나갈 진정한 주체를 추상화시킴으로써 민중을 대상화하고 있다. 결국 그람시는 민중을 변혁의 주인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대상화함으로써 민중의 창조적 적극성을 사회변혁에 동원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된다. 여러 형태의 비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혁명운동의 와중에서도, 또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국가가 끊임없는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지배계급이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그람시의 통찰과 진지전 전략은 시공을 초월해서 보편타당성을 갖을 수 없겠지만 선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장기적인 운동전망을 수립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논문은 이론적인 면에서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 인물의 사상에 집착함으로써 다양한 쟁점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서술적인 설명에 그치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추후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이 필요함을 밝혀둔다. 참고문헌 졸(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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