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책&(395호)에 실은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한국전쟁'이었고, 요령껏 그림을 그려보았다. 애초엔 3권의 책에 대한 소개가 될 예정이었지만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니 몇권 더 언급하게 됐다. 거기에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책의 이미지도 몇권 더 추가했다. 아울러 지면에는 빠졌지만 병기된 책의 출간연도는 살려놓았다.

  

책&(11년 6월호) 역사가 돼가는 전쟁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해마다 6월이면 던져지는 질문이고, 이에 답하는 굵직한 저작들도 다수 출간돼 있다.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박태균의 <한국전쟁>(2005)이 입문서 역할을 해준다면, 정병준의 <한국전쟁>(2006)은 방대한 자료섭렵을 통해서 ‘한국전쟁’뿐 아니라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조감도 구실을 한다. ‘전쟁의 개전․성격․형성’보다도 ‘한국전쟁사의 역사’가 먼저 다뤄지는 이유다. 실상 휴전 이후에도 두 세대가 지나면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경험’이 아니라 ‘역사’가 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도 경험의 증언보다는 자료의 발굴․공개와 조사․연구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병준에 따르면 한국전쟁 연구는 두 차례의 전성기를 맞았었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전쟁 당사국들의 자료 공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첫 번째는 1970년대 중후반 미국측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비밀문서들이 대량으로 비밀 해제되어 공개됐고 이 자료들에 근거해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 2>(1981, 1990)는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커밍스는 연구대상을 남한과 북한 외에 미국으로 확대했고 1950년 6월 발발의 원인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의 연구 시야를 1945-50년 남북한 내부 정치상황으로 확장했다. 그로써 커밍스는 ‘냉전의 소련주도설’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주의 해석에 반대하여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수정주의적 시각을 제시했지만, 그의 작업은 접근자료의 제한에서 비롯된 한계도 갖고 있었다. 구소련 문서들이 1990년대 초중반에야 공개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자료의 공개가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켰다면 1990년대 소련 자료의 공개는 반대로 소련 또한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분과에서 펴낸 <역사학의 시선으로 읽는 한국전쟁>(2010)에 실린 기광서의 ‘한국전쟁 속의 스탈린’은 소련측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스탈린의 입장과 역할을 정리해준다. 당초 북한 지도부의 무력통일 방침에 대해 스탈린은 줄곧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1950년 봄 김일성과 박헌영의 모스크바 방문시 입장을 바꾼다. 입장 변화의 계기는 네 가지로 간추려지는데, 중국혁명의 성공으로 국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고, 필요시 중국군의 파병이 가능하게 됐으며, 중․소동맹 체결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원자폭탄 개발로 소련이 고무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탈린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불개입’, 즉 공개적 개입 금지 입장을 전쟁기간 동안 견지했다. 중대한 정책적 오류로 판명이 나지만, 안전보장이사회 불참 결정도 북한과 전쟁을 공모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계산이 앞섰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비록 전쟁의 주도권을 행사하진 않았더라도 전쟁기간 내내 스탈린은 ‘사회주의 모국의 수령’으로서 북한과 중국에 대해 ‘총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북한과 중국으로선 ‘무의미한’ 전쟁의 휴전협상이 장기화된 것 역시 유리한 조건을 고집한 스탈린의 완고한 입장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러시아의 구소련 문서 공개 이후로 후기수정주의 혹은 신수정주의적 접근이 본격화되지만 그에 걸맞은 연구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정병준이 <한국전쟁>에서 내리는 평가다. 게다가 러시아는 1950년부터 6월말까지 한국전쟁 개전 준비․발발과 스탈린의 역할과 관련한 핵심 문서들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기에 한국전쟁은 드러난 진실만큼이나 감추어진 수수께끼를 갖고 있다. 더불어 북한과 중국측 기밀문서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보완될 여지를 많이 남겨놓고 있다. 물론 새로운 자료가 등장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 간에도 전쟁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 뚜렷해서 전쟁의 명칭 자체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김학준은 <한국전쟁>(2010)에서 국제사회에서는 ‘the Korean War’라는 명칭이 통용되는 편이지만 이것을 바로 ‘한국전쟁’이라고 옮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과거 ‘6.25사변’ 혹은 줄여서 ‘6.25’라고 부른 대로 북한이 전면남침한 전쟁 개시일을 부각시켜 이 ‘코리아의 전쟁’은 ‘6.25전쟁’으로 지칭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신전통주의에 가깝다는 이러한 견해는 보수주의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이기도 한데, <6.25전쟁의 재인식>(2010)에서 제시하는 이유는 조금 더 명쾌하다. 미국과 ‘함께’ 싸운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이란 말은 자칫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민족과 ‘맞서’ 싸운 전쟁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와 함께 싸운 건 미국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도 유엔군의 일원으로 낯선 땅에서 피를 흘렸다. 1954년에 출간된 <강뉴>(2010)는 6,037명이 파병돼 124명이 전사한 강뉴부대의 한국전쟁 참전기이다.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란 질문이 한국인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해준다. 

11. 06. 09.  

P.S. 한국전쟁 관련서를 모으다가 범위가 좀 확장돼 아예 전쟁과 전쟁사에 관한 책들도 사들이고 있는데(최근에 구입한 것만 해도 20권 가까이 된다), 오늘 배송받은 것은 다케나카 치하루의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와 김동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그리고 후안 고이티솔로의 <전쟁의 풍경> 등이다. 전쟁의 이모저모를 짚어주고 있어서 모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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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9 23:26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을 몇종소개하면서 주요 저작 가운데 빠트린 책이 있는데,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나남, 1996)이 그것이다. 책은 구입했지만아직 페이지는 넘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 2002)도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이다.한국전쟁에 관한 보다 온전한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기에.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입한 책은최근에 나온 <역사와 지식과
 
 
꼬마요정 2011-06-09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참혹해요. 그 중에서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이승만이 생각나는군요. 어쨌거나 이 전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일본이겠구요..

로쟈 2011-06-11 09:42   좋아요 0 | URL
그런 이해관계가 생기기에 전쟁은 계속되는 거겠죠...

그림자놀이 2011-06-1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 민간학살 문제를 주로 다룬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돌베게, 200)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로쟈 2011-06-11 09:43   좋아요 0 | URL
네, 빼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책 3권에 초점을 맞추려던 글이어서 빠진 책들이 많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주의(이 용어도 좀 이상합니다만 관례대로 하겠습니다)가 우리의 사상을 오염시켰다고 비분강개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제로 80년대에 번역된 수정주의학파로 분류되는 책들 중 현재 절판 안 된 것은 커밍스 것밖에 없습니다.나머지는 다 절판되었고요.

로쟈 2011-06-13 08:50   좋아요 0 | URL
그런 거 저런 거 이전에 전쟁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만료된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