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우석훈의 자칭 '명랑좌파'란 말이 나름 신선하다고 생각했으나 문화사적으로 짚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명랑'조차도 일제하의 강요된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니 말이다.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의 저자 소래섭 교수의 신작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11)가 전해주는 바가 그렇다. '명랑사회' 건설이 국가 이데올로기였다면 우울은 그에 대한 저항이었겠다(우울이 불온하다면 명랑은 불순하다?). 금지곡이었던 송창식의 '왜 불러' 같은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서울신문(11. 05. 14) 식민지 조선의 강요된 ‘명랑화 운동’

대략 2년 전쯤의 일이다. 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는 1930년대 작가인 박태원과 김기림의 작품 속에 ‘명랑’(明朗)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 교수는 이후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를 탐색해 ‘명랑’의 문화사적 의미 변화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명랑’의 끝자락에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뜻의 평범한 단어 하나에 놀라운 역사적 역설이 숨겨져 있었던 것.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명랑이란 단어에 주목해 우울한 근대를 읽어낸다. 총독부와 근대 자본주의가 강요한 명랑의 홍수 속에서 1930년대는 웃음이 넘쳐난 시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다수 지식인과 예술가, 학생, 노동자들은 우울에 젖어갔다.

저자는 일제가 당시 조선에선 잘 쓰이지 않던 ‘명랑’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앞세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총독부가 벌인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경성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보건 위생과 치안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자, 총독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며 도시 명랑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압하고 체제순응형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경성에 ‘명랑’이란 감정이 이식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언행일치의 명랑한 인격’을 양성하라는 지침에 따라 ‘모범 인간’ 양성에 나섰고, 주류 언론들은 퇴폐적이고 저속한 유행가 대신 명랑한 유행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산책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스틱 걸’과 당구장에서 손님과 함께 게임을 하는 ‘빌리어드 걸’, 주유소의 ‘가솔린 걸’ 등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명랑을 꽃피우는 온갖 ‘걸’들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러한 ‘강요된 명랑’의 잔재는 ‘명랑화 운동’이나 ‘사회 명랑화 캠페인’ 등을 통해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명랑화’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순응만을 강요하는 명랑화는 ‘행복화’나 ‘쿨’ 등의 레토릭으로 대체된 채 여전히 살아있다고 꼬집는다. 88만원 세대의 ‘쿨’ 또한 1930년대 ‘명랑 가면’의 21세기 버전에 불과하다는 것.

저자는 만화 명랑소녀 캔디를 통해 ‘외로워도 슬퍼도’식 명랑화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진정한 명랑이란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대면하고 슬픔까지 껴안을 수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니,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며 쿨한 척 애쓰지 말고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되라.”고 말이다.(손원천기자) 

11. 05.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엊저녁에 임시저장해놓은 페이퍼를 올려놓는다. <신경제사회학>(성균관대출판부, 2011)란 책에 대한 소개기사이다. <경제사회학>이나 <경제의 사회학>이란 제목의 책들이 더러 나온 적이 있고, 이 책은 그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신경제'사회학이 아니라 '신'경제사회학이다.  

  

서울신문(11. 05. 04) 유홍준·정태인 교수가 말하는 ‘신경제사회학’은

“아이폰 쇼크에 당황하는 삼성을 보며 안타까웠다. 대기업이 관료들보다 더 관료화됐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던진 ‘말폭탄’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외국 유명대학 출신 재벌 2, 3세들에 대해 “파이낸싱(자금조달 기법)만 배워 와서 막상 물어보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고 평가했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안 한다는 현 정권의 불만이나, 그렇기에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선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이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의 관점과 유사하다. ‘혁신’(Innovation),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내놓은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생산’ 노동 개념을 대공장제 생산이 일반화되지 못한 초기 자본주의 단계의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지도’ 노동 개념을 내세웠다. 생산 그 자체보다, 시장의 흐름을 보고 무엇을 생산해서 얼마나 공급할지 결정하는 경영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덕분에 경영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냉혈한’에서 ‘창조적 파괴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모험가(Entrepreneuer)’로 위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슘페터의 경제학적 논의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학적 논의가 있다. 이 지도 노동을 수행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슘페터는 전문 기술관료, 즉 테크노크라트를 지목했다. 한국과 같은 재벌가 2, 3세 세습오너들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철폐·고환율 정책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행보를 해도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터져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사회학적 이유 때문은 아닐까.

유홍준(53)·정태인(51) 성균관대 교수가 내놓은 ‘신경제사회학’(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은 그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경제학 책과 함께 사회학 책을 펴 보자고 제안한다. 두 저자는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인 ‘권력’과 ‘계층’ 문제를 기존 경제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해버린 점을 문제 삼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이론을 추구하다 보니 현실에서의 ‘더러운 손’(Dirty Hand)을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는 19세기 유럽의 ‘방법론 대논쟁’을 일부 다룬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논쟁은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비합리적인 가정을 했는지 드러내준다.

예컨대 ‘아노미’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1858~1917)은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나가던 경제학에 대해 “인간을 사회적으로 일탈된, 즉석사진(snapshot)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경제학적 인간을 두고 ‘합리적 바보’ 혹은 ‘사회적 저능아’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는 산업혁명이 인간을 상품화했다고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듯 인류학적·문화적 관점에서 경제에 접근하는 폴라니 진영은 ‘인센티브’(Incentive)라는 경제학적 개념으로 사회현상 전반을 설명하려 드는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괴짜 경제학’은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번역돼 큰 인기를 끌었던 스티븐 레빗(44)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다.

유홍준·정태인 두 저자는 폴라니의 핵심 개념(배태·Embedness)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괴짜 경제학’ 또한 거리낌 없이 인용한다. ‘통섭’이란 이름으로 사회학이 경제학을, 혹은 경제학이 사회학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장점을 한데 따서 모아야 ‘경제사회학’이라는 분야가 확립될 수 있다는 저자들의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사회학 콘서트’ 같은 대중적인 책을 다음 작품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경제사회학’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은 여기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조태성기자)  

11. 05. 09.  

P.S. 학부시절 가장 관심이 없던 분야가 경제학 쪽이었는데(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혐오감!), 최근 들어서는 자주 손에 들게 된다. 손에 든다고 물론 다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자주 눈에 띈다는 얘기는 된다. 이정전 교수의 <경제학을 리콜하라>(김영사, 2011)와 천진의 <하버드경제학>(에쎄, 2011)이 책상에 놓여 있고, 던컨 폴리의 <아담의 오류>(후마니타스, 2011)은 곧 받게 될 책이다. 주류 경제학이 어떤 것인지(<하버드경제학>), 그리고 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왜 필요한지(<경제학을 리콜하라>, <아담의 오류>)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oza 2011-05-11 04:11   좋아요 0 | URL
'배태'의 원어는 embedness가 아니라 embeddedness 입니다. 기자분이 잘못 쓰셨네요.

로쟈 2011-05-11 16:14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책장에 가로로 꽂아둔 책 가운데 하나를 빼서 책상에 올려놓았다. 엘렌 러펠 셸의 <완벽한 가격>(랜덤하우스, 2010). 우석훈 박사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통해 일상의 디테일에 자본주의 지역경제의 큰 힘이 숨어있다는 교훈을 얻고, 부디 하루하루 지갑을 열면서 내 돈은 어디로 가고 이 물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딱 한 번씩만이라도 상황을 살펴보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그런 권고 때문은 아니고 필요 때문에 읽어야 하는데, 책을 읽기 전에 리뷰기사를 먼저 챙겨놓는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 <배고픈 유전자>(바다출판사, 2003)도 눈길을 끈다. 

한겨레(10. 07. 10) 할인점 싼 가격에 숨은 ‘폭탄 돌리기’

엘렌 러펠 셸 보스턴대학교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의 <완벽한 가격>을 읽노라면, 한국 사회는 1세기 전, 그러니까 20세기 초부터 줄기차게 진행돼온 미국 사회의 또 하나의 부정적인 측면을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모방하기 위해 왜 이토록 기를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제 ‘CHEAP: the high cost of discount culture’(싼 가격: 할인문화가 부른 고비용)가 잘 드러내고 있듯, 이 책이 다루는 얘기는 주로 대형 할인점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국 유통자본 저가정책이 초래한 고비용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다. 미국을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몰아갔고 그 부정적 파장을 전세계로 퍼뜨렸다는 미국 소매유통산업의 저가정책이 어떤 배경 속에서 시작되고 진행됐으며 어떻게 귀결됐는지 역사,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마케팅과 문화이론 등을 구사하며 파헤친다.

중대형 할인점들이 지역·동네 차원까지 파고들면서 소상인이나 영세점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한편으로 대규모 유통자본의 무차별 침투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저가의 노예’가 된 미국 사회 위험의 본질은 그레셤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에 응축돼 있다. 고품질 우유 1쿼트(0.946리터)가 도매가로 1달러에 판매되고, 물을 섞은 우유 1쿼트는 60센트로 팔린다고 가정한다. 일반적 최종소비자는 물 섞인 우유는 80센트 정도까지는 기꺼이 치를 것이고, 100% 우유는 1달러 20센트 정도까지는 주고 살 것이다. 우유의 품질을 서로 알고 하는 거래여서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이익을 보는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고객이 우유 품질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면, 말하자면 어느 것이 순도 100%고 어느 것이 물 섞인 우유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면 두 우유 모두 같은 가격(예컨대 1쿼트에 90센트)에 팔릴 것이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순도 100% 우유를 파는 정직한 상인은 파산하고 물 탄 우유를 판매하는 부정직한 상인은 떼돈을 벌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모든 상인이 우유에 물을 타서 재미를 보려 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실은 속고 있는데도 싼값에 우유를 샀다고 착각할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다른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마 물이 섞인 우유처럼 질이 떨어지는 제품에 익숙해질 것이다. … 우리는 우수한 제품을 구매할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품들을 구매하지만 정말로 싸게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제품이 좋은 제품을 몰아낼 때, 우수한 제품을 위한 시장은 줄어들 것이고 우수한 제품들은 더 비싸질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할인점 저가상품들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파악할 길이 없다. 세계화로 그 정보는 더욱 오리무중이 되었다. 할인점들이 모든 제품의 값을 낮추는 것도 아니다. 대폭 가격을 낮추고 눈에 잘 띄게 진열해 놓는 것은 부피가 크고 원래부터 가격이 싼 품목들이다. 아웃렛에서 판매되는 저가품들은 고품질 제품을 할인해서 내놓는 게 아니라 미리 저가품용으로 계획해서 내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코치 아웃렛’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의 약 80%는 애초에 아웃렛용으로 제작된 저가품들이라고 한다. 이때 판매자들이 늘 동원하는 게 준거가격(정가로 표시된 가격) 속임수. 예컨대 100원짜리 물건에 500원 정가를 매겨 놓고 50% 세일한다며 250원에 판매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상술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도 당장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몇 푼 싼 할인품을 사기 위해 몇십분간 자동차로 달려가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 부자들은 가격에 신경쓰지 않고 비싼 명품을 선호하지만, 서민들은 명품 살 돈을 마련하려고 저가품 구입에 더욱 집착한다. 하지만 ‘부피가 크고 싼 품목’들에서 아껴봤자, 오르는 사교육비와 의료비, 전자제품값, 집값 인상분을 감당할 수 없다. 소비자는 양극화하고 상품도 양극화한다. 중간급의 다양한 제품, 장인의 솜씨가 밴 질 좋은 물품들은 사라지고 중산층도 사라진다.

 

경쟁우위를 통한 판매 확장을 위해 오로지 싼 가격에 매달리는 대형 할인점들이 나라와 서민 경제에 보탬이 될까? 1992~2000년 월마트 효과를 조직적으로 분석한 애린드라짓 두브 등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노동과 고용연구소’ 연구원들에 따르면, 월마트가 개장되면 해당 지역의 전체 임금과 복리후생비가 최대 1%까지 줄고, 식료품점 노동자들 소득은 약 1.5% 줄었다. 미국 전체로는 월마트 때문에 소매점 노동자들 총소득이 45억달러나 줄었다. 소득이 준 서민은 더 싼 값에라도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지역경제는 더욱 졸아든다. 그렇게 해서 올린 월마트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주로 경영진과 주주들이다. 서민들은 불황일수록 더 할인점을 찾는다. “할인산업이 가난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할인산업을 이롭게 한다.”

싼 것을 찾아 어디든 가는 유통자본의 해외 진출은 미국내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날렸다. 미국인들의 저가 선호가 부른 악영향은 전세계로 파급됐다. 값싼 미국 식품은 아이티 경제를 붕괴시켰다. 1995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이티에 쌀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35%에서 3%로 내리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아이티는 쌀 수입이 150%나 증가했고 원래 쌀 수출국이던 아이티 농민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가 슬럼을 형성했다. 아이티 수입쌀의 4분의 3은 막대한 정부보조금을 받는 미국쌀이다. 멕시코 옥수수와 의류, 타이의 새우양식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미국 할인점을 떠받치고 있는 최대 기둥은 중국 민중들에 대한 광범한 노동착취다. 저가의 노예가 된 미국인이 노동착취와 환경파괴를 대가로 미국에 저가품을 수출하는 빈국을 인권과 근로윤리 등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인지부조화에 따른 자가당착이다. “불안정한 저임금 근로자들을 착취해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 생산업체들이 파산하지 않으려면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과도하게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저렴한 가격을 찾아 미국 중산층들이 교외로 대거 이동하는 것은 번영의 길도 성장의 길도 아니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중국 민중의 착취, 중간급 소비재와 중산층의 몰락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도 그 지속 불가능한 길을 가파르게 따라가고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11. 05. 08.  

P.S.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론 일단 '할인문화'의 대명사격인 월마트의 문제점을 다룬 찰스 피시먼의 <월마트 이펙트>(이상미디어, 2011)가 있다. 부수적으로 가격 일반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서로 에두아르도 포터의 <모든 것의 가격>(김영사, 2011), 그리고 한편으론 '비싼 가격'에 목 매다는 또다른 문화에 대한 진단으로 로버트 프랭크의 <사치열병>(미지북스, 2011)에도 손길이 가볼 만하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세상 모든 것의 가격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09 17:59 
    이번주의 경제학 관심도서는 에두아르도 포터의 <모든 것의 가격>(김영사, 2011)이다. 제목을 보자 마자 곧바로 주문을 넣은 책이다(<완벽한 가격>이란 책과 같이 읽어보려는 계산에서).리뷰기사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11. 05. 09) 선택을 통제하는 '가격'의 비밀"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 보편의 원칙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모든 것의 가격'(김영사 펴냄. 원제 'The price of every
 
 
2011-05-0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 이후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하게 된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자전적 에세이가 번역돼 나왔다. <어머니>(사계절, 2011). 한 어머니의 생애를 회고하고 있지만,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도 한다.    

경향신문(11. 05. 07) “일본서 온갖 차별 받던 어머니… 하지만, 한국을 가르친 어머니”

강상중 도쿄대 교수(61·사진)는 거대한 ‘폐허의 산’을 봤다. 지난 3월 말 방문한 동일본 대지진 참사 현장인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에서다. 그는 “거기서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폐품수집업을 했던 어머니는 큰불로 잿더미가 된 가옥에서 금속이나 빈병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주웠다. 폐품을 줍기 전 어머니는 항상 ‘의식’을 치렀다. ‘불에 탄 폐허 위에 소금을 뿌리며 화재로 숨진 넋을 달래곤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 강 교수의 기억엔 생생하다. 



<어머니>는 강 교수가 그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자전 에세이다. 어머니의 삶은 곧 차별과 질곡의 역사를 간직한 재일 한국인 1세의 삶을 투영한다. 2008년 봄부터 슈에이샤가 발간한 잡지에 연재된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지난해 6월 일본에서 펴낸 <母-オモニ-(어머니)>의 우리말 판이다. 



한국 국적자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교수가 된 그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는 ‘반쪽바리’ ‘조센진’이란 소리를 들으며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역사는 우리 가족의 역사이고, 또 일본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쓰고 싶었습니다.”

강 교수는 지난 3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지금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재일 1·2세들의 시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라고 이 책을 매김했다. 그의 기억에 어머니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종교는 없었지만 조상의 기일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일만은 철저히 지켰다. 멀리 시모노세키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일도 있었다. 강 교수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싫었지만 ‘사자(死者)를 위로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 행복이 온다는 순수한 바람’은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숱한 차별을 받았지만 의외로 밝았다. 강 교수는 “한국인답게 큰소리로 웃고, 기쁨도 웃음도 온몸으로 표현했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식 ‘음력’을 챙기는 것은 어머니의 신조였다. 언제 꽃이 피고, 언제쯤 잡은 게가 가장 맛이 있나, 이런 것을 알 수 있는 건 음력 달력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그런 박물학적 지식, 삶의 지혜는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재일 한국인 2세로서 고민하던 강 교수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것도 바로 이러한 어머니였다. 그것은 특히 음식을 통해서였다. “한국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가 해준 한국 요리를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머니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입으로 먹고 뒤로 싼다’는 게 지론이었고, 그래서 일본에서 먹기 힘든 한국 요리를 자식들에게 먹였다. 미나리김치, 물김치, 민물게장과 파전,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은 생선요리… 음식이 그에게 준 영향은 어떤 강연이나 설교보다도 더 큰 힘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존재로부터 내가 태어났고, 그 존재가 나를 지켜줬습니다. 어머니의 큰 날개 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랐습니다.” 강 교수는 그런 어머니를 “나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조홍민 기자)  

11. 05. 07.  

P.S.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어머니'란 주제가 떠올려주는 책은 역사학자 김기협 교수의 시병일기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 2011)이다. 지난 1월에 나온 책의 리뷰기사를 5월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01. 22) ‘제2의 인생’으로 일탈의 자유를 누리는 어머니

치매 걸린 어머니 간병기를 이렇게 ‘쿨’하게 쓸 수 있을까. 역사학자 김기협은 어머니인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92)의 병상 모습을 처절하게 폭로한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의 첫 여학생, 한국어 어원 연구의 개척자, 6·25전쟁 중 서울대 사학과 교수이던 남편 김성칠을 여의고 3남1녀를 키우면서 교수이자 불교 수행자로 살아온 어머니의 단단했던 삶은 세월의 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지금은 간병인 ‘여사님’들이 “할머니, 지금 식사가 아침이에요, 점심이에요, 저녁이에요?”라고 말을 걸면, 모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지금 나를 ‘시험’치는 거냐”며 호통을 칠 때나 “역시 박사 할머니는 달라”라는 말을 듣는 정도다. 

저자는 2007년 7월 하안거 도중 쓰러진 어머니가 자유로요양병원을 거쳐 다음해 7월 일산 시내 현대요양병원으로 옮겨진 뒤 점차 회복 기미를 보이자, 기쁜 마음에 그해 11월24일부터 ‘시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에 사는 큰 형과 어머니의 지인들에게 병세를 알릴 겸 시작한 글쓰기가 블로그 연재로 이어졌다. 2년여에 걸친 일기는 병원의 일상과 어머니 삶의 기록이면서 저자의 자아찾기 과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화해와 치유의 글쓰기가 됐다. 



셋째 아들인 저자는 어머니와 불화했다. “수십년간 그 분의 훌륭한 점보다 그 분의 모순과 위선을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았다”는 그는 “어머니를 이 세상에 도움이 안되는 하나의 괴물로 보니까 나 자신도 그 괴물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괴물”이 됐다고 고백한다. 서울대 문리대에 수석 입학한 그는 물리학에서 중국사로 전공을 바꿔 계명대 교수를 지냈으나 교수직을 박차고 나온 뒤 재야인사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 속을 어지간히 썩였지만, 지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에게 남은 건 자신뿐이다. 애지중지하던 큰 형은 미국인이 됐고, 편애를 받았던 작은 형은 규범 바깥의 인물이다. 결국 사치품(큰형), 기호품(작은형) 대신 필수품(저자)이 병상을 지키게 됐다.

그는 어머니가 ‘독립선언’을 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 어머니는 “내가 너희를 혼자 키우느라 내 본성을 감추고 20년간 지내왔다. 이제 너희가 다 컸으니 나는 점잖고 엄숙한 시늉을 그만두고 편안하게 살련다”면서 훌쩍 외국으로 떠났다. 그런 어머니를 놓고 저자는 큰형과 e메일로 토론을 벌인다. 형은 “어머니는 자기 향상을 위한 노력을 그만두신 일이 없었던 분”이라며 “그보다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한 일이 걸린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사연을 쓰면서 저자는 “누워계신 분을 놓고 아들들이 이런 얘기를 주고받고 그중 한놈은 그분이 들으면 난처해하실 수도 있는 얘기를 이렇게 기록으로 정리까지 하고 있으니 무서운 세상”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단정한 지식인 이남덕의 파란만장한 삶은 ‘무서운’ 아들 덕분에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는 1942년 경성제대 강의실에서 늦깎이 사학도였던 김성칠을 만나 44년 충청도 봉양에서 피란살이 분위기로 살림을 시작한다. 당시 고향에 부인이 있던 김성칠은 중혼(重婚) 상태였으나 두 사람은 삶과 지식의 동반자로 맺어졌다. 신혼 초 김성칠은 이남덕에게 한문을 가르치면서 <열하일기>를 국역했다. 그는 46년 <조선역사>를 펴내 민족사 복원에 앞장섰으며, ‘고대지명연구회’를 만들었다. 6·25가 터진 뒤 9·28수복까지 3개월간 공산당 치하의 서울에서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의 본질을 겪었다. 이듬해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했으나 고향에 다니러 갔다가 괴한에게 피살됐다. 



이남덕은 남편이자 스승이던 김성칠이 45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썼던 일기를 36년간 몰래 보관해오다 87년 말에야 세상에 공개했다. <역사 앞에서>란 제목으로 묶인 일기는 좌우익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객관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일기의 존재는 저자가 어머니와 불화한 원인이기도 했다. 아무리 “반공독재 상황에서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혼자 지켜왔다”고 하지만, 역사학자인 아들에게 일언반구조차 없었던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병상의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들은 아버지와의 짧은 결혼생활이 남긴 상처가 어머니의 정신을 속박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김서방’(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 이야기를 슬쩍 흘려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지금 생활은 쓰러지시기 전의 인생과 구분되는 ‘제2의 인생’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내용은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20년 전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지방에서 살아가는 유복녀 ‘영이’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어머니는 “불쌍한 것”하고 한숨을 쉬실 뿐, 그 걱정 때문에 음식맛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어머니는 모처럼 먹어보는 연시맛에 행복한 진저리를 치고, 웨하스나 홈런볼을 안준다고 화를 낸다. 장난기가 발동한 저자가 어머니 웨하스를 날름 삼키자 “너 지금 무슨 지랄을 한 거냐?”는 욕도 서슴지 않는다. 왕년에 국어학의 대가였던 어머니는 간병인이 자세를 바꿔주자 “아이구, 아파라, 에이 쌍년!”이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쌍년’, ‘쌍놈’을 입에 달고 산다. 일탈의 자유를 누리는 어머니는 가끔 음식을 앞에 두고 “그렇다고 안 먹을 이유는 없지”라는 식으로 먹물 티를 내기도 한다.  

현재 어머니에 대한 묘사는 시병일기가 아니라 육아일기를 보는 듯하다. 어머니는 상태가 호전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금강경>을 들으면서 잠이 든다. 죽음을 향한 과정이지만, 나름의 발전 단계가 있으며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어머니를 미워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어머니께 가는 것은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진다.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라는 교훈을 독자에게 전한다.(한윤정기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바다 2011-05-08 14:22   좋아요 0 | URL
김기협 선생이 김성칠 선생의 아들이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는 건 저도 금년 초 경향신문의 이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김성칠 교수의 <역사 앞에서>가 아들도 모르게 보관되어 있다가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함께요. 제가 가진 <역사 앞에서>를 꺼내보니 1993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군요. 2월 10일에 초판을 발행했는데 한달도 안된 3월 5일(제가가진 책) 3쇄가 발행된 것을 보니 빠르게 팔려나갔던 것 같습니다.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이 책 뒷부분에 실린 이남덕 교수가 직접 쓴 후기 (조국 수난의 동반자)를 읽었습니다. 출판 시기가 김영삼 취임전후인데 통일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읽히는 것을 보면 오래간만의 문민정부에 대한 희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구절이 인상적이군요.
"6.25 동란을 누가 먼저 저질렀느냐 하는 것이 이즈음 신문 보도에서도 발표되었었지만, 그것이 밝혀진다고 해서 우리의 고통이 극복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집단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으면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었겠는가, 인간이란 왜 전쟁 행위를 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해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다."

로쟈 2011-05-08 18:3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책을 주문했습니다.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을 읽을 일이 있어서요. 그간 몇쇄가 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날 '행사'로 아이와 함께 교보에 나갔다가 손에 든 책은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열대림, 2008)이다. 평대에 놓인 책이 눈에 띄기에 러시아 원정에 관한 부분만 읽다가 결국 다른 책 두 권과 함께 계산대에 올려놓게 됐다. 이 세계사적 인물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 거의 없다는 것과 막스 갈로의 다섯 권짜리 책이 평전이 아니라 대하소설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갈로의 소설보다는 보르도노브의 평전이 내겐 더 맞을 듯싶었다. 소개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마침 기사의 제목이 '어른이 되어 다시보는 나폴레옹'이다(세계위인전에서 나폴레옹 편을 읽은 게 어느덧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역시나 관심도서인 <나폴레옹 전쟁>(플래닛미디어, 2009)에 관한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4. 12) 어른이 되어 다시보는 나폴레옹

위인의 여러 기준 가운데 인지도를 근거로 한다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세계위인전의 주인공이겠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인기는 한국에서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을 능가한다. 근세 서구 열강의 정복자였다는 프리미엄까지 더해 지구촌 전역에서 그만큼 유명세를 누리는 역사적 인물을 찾기 힘들다. “나폴레옹 사후 오늘날까지 전세계에서 나온 나폴레옹 관련 출판물이 8만여권에 이른다”(이용재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사실은 그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루에 한 권 이상 출판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익숙함은 사람들에게 나폴레옹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유도한다. 유소년기 큼지막한 활자에 영웅적인 삽화로 소개된 나폴레옹 이상을 알고 있는 성인독자는 얼마나 될까. 한번쯤 역사적 맥락이나 인간적 면모, 또는 리더십이나 영웅으로서 삶을 총체적으로 얽어 나폴레옹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프랑스 작가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을 읽어봐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폴레옹은 1769년 8월15일 코르시카섬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났고,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생애는 프랑스대혁명과 중첩된다. 근세 유럽사의 가장 강렬한 현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분식’이 존재한다. 프랑스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숭상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코르시카섬이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1년 전 프랑스령이 됐고, 그가 어려서 프랑스말을 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족주의적 시각은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에게선 자신이 의식했든 안했든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국제주의자로서 삶이 준비됐고 또 그 길을 기꺼이 걸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해 모든 혁명과 진보는 초월과 통합을 꿈꾼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에 맞닿아 나폴레옹은 자신을 초월하는 삶의 역동성을 보여줬다. 영웅적인 인물은 고단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때로 그 선택은 영웅적인 삶을 고단한 삶으로 바꾼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안치용기자)  

중앙일보(09. 08. 15) 울름에서 워털루까지, 전쟁 천재 10년의 기록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관한 책 한 권 쯤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어려서 읽은 위인전이든, 전쟁을 다룬 역사책이든, 인물에 관한 평전이든, 내면을 다룬 소설이든 나폴레옹에 관한 책은 너무 많아서 탈이다. 1821년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이래 지금까지 약 19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영국 작가 버나드 콘웰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관련 서적만 2000종이라고 한다.

세계적 군사 전문 출판사인 영국의 오스프리가 2004년 출간한 이 책은 나폴레옹의 침략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799년 11월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발표한 포고문에서 나폴레옹은 “문제는 더이상 국토 방위가 아니라 적국의 침공이다”고 선포한다. 그 때까지의 전쟁이 프랑스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방어전쟁이었다면 이후의 전쟁은 혁명의 이상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하기 위한 정복전쟁이 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1805년 오스트리아와 맞붙은 울름전투에서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된 1815년 영국과의 워털루 전투까지 나폴레옹 제국의 흥망성쇠를 10년간의 전쟁을 통해 보여준다. 각 전투의 전개 과정과 정치·외교적 배경은 물론이고 전투에 참가한 각국 지도자와 군사 지휘자들의 복잡미묘한 관계 등이 각종 도표와 지도, 그림, 초상화 등과 함께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아울러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병사과 종군악사, 배우, 외교관, 예술가 등에게도 시선을 돌려 그들이 직접 경험한 전쟁의 실상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전술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를 고발한 반전(反戰) 교과서로 읽힐 수 있는 이유다.

인간 나폴레옹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스 작가 막스 갈로가 쓴 5권의 대하소설 『나폴레옹』을 권하고 싶지만 정치·군사·행정의 천재 나폴레옹의 진면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 고증에 충실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점은 단점이다.(배명복 논설위원) 

11. 05. 05.  

P.S. 사실 내가 더 바라는 건 러시아 원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해주는 책이다. 알다시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기 위해서도 배경지식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론 도미니크 리벤의 <나폴레옹에 맞선 러시아>(2011)가 눈에 띈다. 조만간 구해봐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바다 2011-05-05 20:15   좋아요 0 | URL
어린이날 행사로 서점에 가셨으니 일석이조시네요.^^ 저는 오늘 헌책방에 갔었는데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프로이트주의>, 옹프레의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의 역자를 보고 약간 미심쩍어 하는 중입니다... 이번엔 잘 하셨겠지요?^^

로쟈 2011-05-05 20:42   좋아요 0 | URL
아이가 원한 거였습니다.^^; 옹프레의 책은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다섯 권이 다 나온다면 나름대로 유의미한 소개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5-07 20:40   좋아요 0 | URL
러시아 원정 때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입장을 보면 동맹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로쟈 2011-05-08 18:36   좋아요 0 | URL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건 일반법칙 같아요...

카스피 2011-05-07 23:59   좋아요 0 | URL
코르시카 섬이 아마 이탈리아 영토였으니 나폴레옹은 이태리계 프랑스인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대체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가들중에 자국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히틀러인데 원래 독일사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로쟈 2011-05-08 18:39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란 나라가 전통적으로 국가보다는 지역을 따진다고 하니까 '이탈리아계'란 말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해요. 코르시카의 나름 귀족가문 출신이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