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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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틀린 것 같아. 우리는 늘 같은 강물, 늘 같은 무한한 현재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 매 순간 물은 더 맑아지고 더 깊어져. 경사를 따라 흑해로 내려가고, 흐름을 받아들이고, 소용돌이와 파도와 함께, 수면과 얼굴에 주름을 그리며 노는 거지. 199




파우스트의 찰나일까, 아니면 슈티프터의 로사리오일까.198


토마스 만이나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위대한 작가들이기는 하나, 만약 그들이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 그들의 글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비해 쓸모없는 하찮은 문학이 됐을 것이다. 192.



왜 다뉴브일까, 싶었는데.
여행기.
강의 흐름처럼 의식의 흐름속에 관통하는 역사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졸면서 읽는 와중에도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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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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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에서 1868년, 즉 사망할 때까지 슈티프터는 그 창문들을 통해 다뉴브 강, 오스트리아의 정겨운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에게 그풍경은 자연이 된 역사의 시간, 바스러진 낙엽이나 나무들처럼 땅에 흡수돼버린 제국과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강한 색채나 두드러진 요소가 없는 익숙한 그 풍경은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존중하고 소소한 사건들에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가르쳤다. 삶은 큰 변혁이나 현란한 장면에서보다 소소한 사건들에서 더한층 삶의 본질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풍경은 그에게 빈약한 개인적 야망과 열정을 자연, 세대, 역사의 위대한 객관적 법칙 아래에 내려놓으라고 가르켰다.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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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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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느낌을 적는 경우 행복을 가장하며 창작하게 되는 듯하다. 사실 글쓰기는 극도의 고적감, 실존과 무, 삶이 공허할뿐인 순간들, 상실, 공포를 진정으로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감정을 쓰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그 공허감은 다시 채워져 그것에 형태를 주며 공포와 대화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조금이나마 의기양양하게 해준다. 비극을 그린 훌륭한 글들이 존재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고 싶은 사람에게 이 글들은 죽음의 순간 혹은 죽음을 갈망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이 찰나의 고통에는 끔찍이도 맞지 않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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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생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상을 분석하려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일단은그 아이디어를 존중해야 합니다. 검증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감각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의욕 없는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에요."
"게으름뱅이라고요?"
기타하라가 물리학자를 노려보았다.
"그렇습니다. 게으름뱅이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늘 점검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 일이에요. 그에 비해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건 편안한 일입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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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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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습적으로 당나귀를 천시해왔다. 실제로도 당나귀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평소에는 말로 모욕을 가했다. 당나귀는 수레를 끌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삶의 무게를 지탱해왔다. 삶은 자신을 도와준 자에게 감사할 줄모르고 불공평하게 대한다. 연애소설들과 총천연색 영화들에서나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삶은, 무미건조한 현실보다는 빛나는 운명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시골길을 걷는 당나귀보다는 애스컷의 경주마들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삶보다 더 똑똑해서 당나귀의 위엄을 노래할 줄 안다.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따뜻하게 해드린 건 경마장 종마가 아니라 당나귀다. 호메로스는 트로이군의 공격에 맞서 혼자 싸워 아카이아배들을 구했던 아이아스를 당나귀에 비유한다. 무거운 짐과 구타에도 당나귀의 등은 텔라몬의 방패처럼 위대해진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당나귀는 사람들을 돕다가 박해를 당한 그리스도와도 비교된다. 148


***********

삶은 무미건조한 현실보다는 빛나는 운명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아니. 근데 이제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빛나는 삶을 보게 되기도하니.
좋은것인가 모르겠다만. 새사제의 탄생이 뭐 그리 기쁜일인가 하게 되는 반작용이.
아니. 이건 부작용인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랑 뭔 상관,이었는데. 그래도 딱 잘라 말할수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것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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