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라는 단어가 오래전 처음 쓰였을 때, 그것은 생리학적 순결 상태가 아니라 어떤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 속한 심리적 상태를 의미했다. 처녀라는 것은 범해지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자연과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녀림이 수정되지 않았거나 불모의 땅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개척되지 않은 숲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한때는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라고 칭했다.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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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게 그저 세상을 거덜내는 욕구의 덩어리 같다. 그러니 전쟁 이 존재하는 것도, 땅과 물과 공기가 오영되는것도 당연하다.

때로는 우리 욕망들을 다 정지 시킬 수 있다면, 물과 집과 이 모든 음식에 대한 욕구를 벗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고민해야하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길래? 그래봤자 조금 더 숨 쉬며 살 뿐인데.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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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친구와 부딪쳐서 그대로 나자빠진 나츠.

 

선생님 : 괜찮아? 안 아파?

 

나츠 : ... 뭐가요? 하늘이 예뻐서 보는 것 뿐인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친구생각]

 

선생님 : 도넛이 두 개 있습니다. 한 개는 나츠가 먹었습니다. 몇개가 남았을까요?

나츠 : 0개

선생님 : 아깝다! 한 개야!

나츠 : 왜요! ** 한테도 도넛 주고 싶은데!

 

...... 원래는 잘못 계산했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애정이 듬뿍 담긴 계산법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츠는 친구를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아이예요. 정답입니다!

 

 

========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는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감탄 뒤에 이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남자 아이가 종이 상자를 잘라서 검을 만들더니 "선생님, 이것봐요!"하면서 내게 자랑했다. "우와, 멋지다! 누굴 무찌를거야?" "누굴 무찌르는게 아니에요! 누굴 지킬 거냐고 해야죠!"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 마음을 소중히 지켜갔으면] 이라는 짧은 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볍지만 울림이 있는 글이 많다. 이 모든 이야기가 6살짜리 꼬맹이들이 한 이야기라니. 놀라울뿐이다.

 

 

 

 

 

 

 

 

 

 

책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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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내게 묻다 - 당신의 삶에 명화가 건네는 23가지 물음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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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자화상 그리기를 한 적이 있었다. 거울도 잘 안보는 내가 자화상을 꼼꼼히 그렸을리는 없고, 개학 한 후 숙제 검사를 하면서 선생님이 한명씩 그림을 갖고 나와 감상과 평의 시간을 가졌을 때 대부분 다 고만고만한 그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고만고만한 그림들 중에서 유독 한 친구의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시더니 우리를 향해 '정말 잘 그린 그림이다'라고 칭찬을 하셨었다. 우리가 모두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지 선생님은 그림을 다시 보고 친구의 얼굴을 보라고 하면서 '이쁜 얼굴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는 자화상에 딱 맞게 자기 자신의 얼굴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라고 설명하셨다고 기억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화상이란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사진같은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명화가 내게 묻다]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그림은 사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게 그림은 그런것이다.

 

[명화가 내게 묻다]에는 수많은 그림이 실려있다. 그림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데 그 그림을 보는 시각을 달리 할 수 있는 물음이 달려있다. 그에 대한 저자의 답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답일뿐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흥미롭다. 솔직히 처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저자의 이야기가 그저 그랬다.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느낌으로 바라 본 그림 해설인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그녀의 글은 나를 대신해 쓴 것이기도 하고, 내 친구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림의 겉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표정과 마음을 같이 보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 대한 물음, 일, 관계, 마음에 대한 물음으로 크게 네 파트로 구분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선택하여 그 그림을 통해 하나의 물음을 던져놓는다. 내가 예상치 못한 물음을 던질때는 그림을 다시 한번 더 유심히 보게 되기도 한다. 그림을 보며 빈칸을 채워보라고 하기도 하는데 대답이 일치할때는 역시 사람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렁크를 열어 웨딩드레스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그림을 보면서 저자는 저자의 위치에 맞는 상상을 펼쳐보이고 나는 또 다른 나 자신의 상상을 펼쳐보이면서 사람마다 삶의 모습이 다르듯 그림을 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그림은 내가 흔히 봐왔던 그림들은 아니다. 몇몇의 그림은 익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처음 본 그림이 많다. 평소같으면 내 취향이 아니라며 그냥 지나쳤을 그림들인데 저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왠지 다시 한번 더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그녀가 언급하지 않은 저 구석의 자그마한 꼬마 모습이나 풍경의 쓸쓸함도 바라보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공감 너머 또 다른 나의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아, 그래서 '명화가 내게 묻다'라는 책의 제목이 더 와닿게 되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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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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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소설을 읽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타임슬립에 대한 이야기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의 소재로도 등장했으며 미래, 과거로의 시간여행뿐만 아니라 행성을 오가는 시공간의 타임슬립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은 그런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첫느낌부터 낯설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로 빨려들어간 곳에서 내가 자유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좀 더 솔직히 내 느낌을 이야기해보자. 언제나 백인의 관점에서 과거로 간다면 미래를 점지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거나 미래로 간다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온갖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되는 것, 이런것이 타임슬립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킨은 한세기 이전의 과거로 타임슬립을 했는데 그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고 그곳으로 타임슬립하게 된 사람이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면...

이야기의 시작부터 허를 찔리는 느낌이었지만 그 전개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노예제도의 인권유린과 차별은 그 어떤 논픽션보다도 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킨은 갑자기 과거로 불려가는 다나의 타임슬립 이야기이다. 첫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 흔한 영웅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첫 문장에서부터 강렬함을 느끼고 멋진 시작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솔직히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 첫문장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만큼 영웅에 대해 떠올렸던 이미지는 사라져버렸다. 과거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아야 현재의 내가 있게 된다는 것에 집중을 하다가 다나가 타임슬립해 간 과거의 시대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예 학대와 다나가 흑인이라는 것에 허를 찔린 느낌이 한동안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어쩌면 나 역시 은연중에 흑백의 차별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한마디 말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 성차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 담고있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차별이 비인간적이고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행이라는 것은 타임슬립을 한 다나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시대에 백인과 흑인의 결혼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지만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 가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된다. 과거로 타임슬립해 간 흑인인 다나는 백인인 케빈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일이 되어버린다. 자유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백인들이 붙잡아 자유증서를 찢어버리면 그는 바로 노예가 되어버리고 노예무역상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아이들이 친부모에게서 떨어져 팔려가버리고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어쩔수 없다. 저항을 하다가 목숨을 잃어도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 이중삼중으로 고통당하는 여성흑인노예의 삶은 처절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이지만 당시에는 -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 현실이라는 것을, 자유롭게 살아가던 현대의 다나가 타임슬립해 간 곳이 철저한 계급사회이고 흑인 노예가 사람으로 취급되지도 않던 시대라는 것이 더욱 대조적으로 강렬함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흑백 인종차별로 인한 사건이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는 잠재하고 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 물론 흑인뿐만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심하겠지만 백인 경찰이 유색 인종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으며 저항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으며, 지금은 그에 대한 반격으로 백인 경찰들이 습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생겨나기도 했다.

왜 이런 인종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어쩌다 보니 케빈이 모은 2차 세계대전 관련 책 한 권에 빠져들기도 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고를 발췌하여 묶은 책이었다. 구타, 굶주림, 오물, 질병, 고문, 그밖에 가능한 모든 인간성 훼손의 예가 들어 있었다. 마치 미국인이 이백 년 가까이 하려고 했던 일을 독일인은 몇 년 만에 이루려고 했던 것 같았다.

책 때문에 우울해지고 겁먹은 나는 케빈의 수면제를 가방에 넣었다. 나치 못지않게 전쟁 전 남부의 백인도 고문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싶지 않을 만큼은."(221)

 

뭔가 해결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모든 인간성 훼손의 시대가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그러한 일들에 대해 이성과 지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두 번 다시 그 시대가 도래하지 않기를, 우리의 후손들은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지만, 그 이전에 SF 소설로서도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있는 대단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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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1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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