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다.


나무 판때기에 누워 자는 건 참을 만했습니다. 말을못 하는 것도 견딜 수 있었지요.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형편없는 음식이나마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도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제지도 받지 않은 채 쉼 없이 떠들고 울먹이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독설을 날리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평을 일삼는내 생각과 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정시키려 애써도 제 마음은 끊임없이 인신공격과 자기 회의로 반격을 가했습니다.57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자기 내면에 참된 친구이자 소중한 동반자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며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편이지요.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못하고 다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가 되어 수시로 상처받습니다.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든마찬가지입니다. 제 상처에 신경 쓰느라 지혜로운 선택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우리 삶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에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말 그대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는 삶에서 존엄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유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대부분 의도치 않게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섬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간에 길러진 방식, 그동안 경험한 것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타고난 것들, 우리가 속한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마주치는 메시지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됩니다. 생각 또한 그 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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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 아침 나치가 롬인 아이들에게 행한 의학적 잔혹 행위에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저는 롬인의 바이올린 음악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하는데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주아주 신중하게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나도 어떨 때는 문장 하나를 쓰는 데 석 달이 걸리곤 합니다. 글은 평생을 갑니다. 만약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207


그는 그날 아침 나치가 롬인 아이들에게 행한 의학적 잔혹 행위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저는 롬인의 바이올린 음악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하는데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주아주 신중하게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나도 어떨 때는 문장 하나를 쓰는 데 석 달이 걸리곤 합니다. 글은 평생을 갑니다. 만약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 P207

수녀님은 일요일 아침 나를 노숙자를 위한 미사에 데려갔다. 성당 뒤편에는 구호 물품으로 보이는 배낭이 잔뜩 쌓여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에 모든 참석자에게 제공될 아침식사였다. 우리는 제대에서 가까운 앞쪽 자리에 앉았고 우리 뒤의 신도석은 금세 노숙인들로 가득 들어찼다. 그들 가운데는 긴 치마를입은 롬 여인들도 흩뿌린 것처럼 섞여 있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강론 말씀이 끝나고 성체 성사 차례가 되었다.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나는 수녀님께 속삭이듯 여쭈었다. "왜 롬 여인들은 아무도 제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거죠?" 그러자 수녀님은 아예 모두가 들으랍시고 크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롬인들에게 성체 주는 걸 반대하는 교구사람들이 있거든!" 나는 오랫동안 피렌체를 사랑해왔지만, 그날은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본 것만 같은 기분에 내가 과연 이곳을 제대로 알고 있긴 했던 건가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롬인. 흔히 비하의 뉘앙스를 담아 ‘집시‘라고 부르는 유랑 민족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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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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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형사의 귀환‘이라는 말에 잠시, 가가형사 시리즈를 떠올려본다. 기억력이 좋지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 하나가 ‘붉은 손가락‘인 것은 기억한다. 사실 사회파,라고 하기보다는 감성파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내용이 담겨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그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바로 가가형사인지라 ‘희망의 끈‘ 역시 그런 의미에서 좀 기대가 됐다. - 성급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의 끈‘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게 해주고 있다는 것에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희망의 끈‘은 미스터리보다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더 중점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세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어서인지 예상이 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져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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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5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패스해요. ㅠ.ㅠ

chika 2023-02-15 07:03   좋아요 0 | URL
ㅎ 패스해도 괜찮을듯한 작품이기는하죠. 저도 받은책이 아니라면 뭐.... ^^;;;
 

축축한 이불에 둘둘 싸여 버려진 채로 구호원에 도착한 아기라도 가치를 알 수 없는 교회 바이올린을 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마달레나 롬바르디니가 좋은 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의 딸로 태어나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였지만 걸인 구호원을 졸업한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바이올린 비르투오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래가 바뀐 여자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이 같은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물건을 만드는건 사람이지만 때로는 물건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98


교회의 이중구도는 이렇게 선순환을 갖게되기도.


바이올린은 보통 뒤판 안쪽에 제작자 서명을 한 레이블을 붙인다. 앞판의 에프홀을 통해 들여다보면 보인다. 그러나 레프의 낡은바이올린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에프홀 안쪽을 쌔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블이 떨어졌나보다-종종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애당초 레이블이 붙지 않은 악기라고 했다. 교회악기는 제작자 서명을 붙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발주한 바이올린의 가치를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책략이었다. 유명 제작자의 서명이 붙은 악기라면 해를 거듭하면서 가치가올라갈 게 분명한데, 그렇게 되면 교구 사제나 주교, 추기경 같은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바이올린 딜러로 제2의 인생을 열지말란 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교회로서는 상표를 제거하는방식으로 악기의 가치를 틀어짐으로써 교회 관리들의 부정부패라는 난감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그렇지만 크레모나의 솜씨 좋은 장인들이 이처럼 수상쩍은 거래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유혹이라면 전문가 집단인 교회가 솜씨를 제대로 발휘한 덕분이다. 교회 내 관리들의 청렴성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악기 제작자들에게는 상표를 붙이지 않은 악기를 만들어 척척 공급만 해주면 비과세 소득을 보장하겠다고 꼬드긴 것이다. 레프 바이올린의 주인이 한 말에 따르면 이례적인 이윤 창출의 기회를 주겠다는 유혹에 심지어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들마저 넘어갔다고 한다. 88-89

17세기 중반에는 이미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미사 제례의 노래 부분에 곁들이는 전주곡과 간주곡으로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삽입하기시작했고, 때로는 성가 대신 바이올린 음악을 연주했다. 부유한 교회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제1독서와 제2독서 사이에 는 현악 합주 협주곡을, 사제의 성체 거 도중에는 엄숙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성체 성사 도중에는 명상적인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이러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교회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의 주교와 추기경과 교황은 새로운 음악을 가장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후원자였다. 90

축축한 이불에 둘둘 싸여 버려진 채로 구호원에 도착한 아기라도 가치를 알 수 없는 교회 바이올린을 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마달레나 롬바르디니가 좋은 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의 딸로 태어나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였지만 걸인 구호원을 졸업한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바이올린 비르투오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래가 바뀐 여자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이 같은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물건을 만드는건 사람이지만 때로는 물건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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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나는 이런 디테일로 바이올린을 구별할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갔다. 그렇긴 해도 악기 전시실은 슬픈 장소였다. 바이올린을 보고 있으면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행위처럼 느껴졌다. 바이올린은 제작되는 동안, 그리고 바이올린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동안, 꾸준히, 가까이, 친밀하게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물건이다. 유리장 안에 갇힌 바이올린들은 야생동물이 자유를 갈구하듯 인간과의 접촉을 갈망하는 듯 보였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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