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구판절판


아, 마침내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듣고 말았다. 넌 우리 집 기둥이야.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추호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기둥이고 문짝이고 간에 나는 그냥 '나'이기도 벅찼다. 그런데 '기둥'까지 하라니. 기둥은 튼튼하고 단단해야 했다. 나는 튼튼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했다. ......
'너 아니면 엄마는 희망이 없어'
희망,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한꺼번에 이해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아버지와 모호면이 기둥이 아닌 이유와 내가 기둥인 이유 사이에 복병처럼 낀 희망, 나는 희망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희망이란 어둠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 내가 정의한 희망이란 이런 것이었다. 이 말대로라면 어째서 내가 희망이어야 할까. 유독 나만 한 줄기 빛이어야 될 까닭이 뭔지 모르겠다. 이건 필시 엄마의 오판이었다. 내가 우리 집의 희망이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기둥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들로 가둬놓고 엄마 방식대로 사육시키려는 게 틀림없었다.-140-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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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병신과 머저리 겨울밤 포인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21
이청준.이병주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참 오랜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내가 이청준의 소설을 읽은게 언제적이었드라...하고 '축제'를 뒤적여봤다. 96년 9월에 '내 마음에 가을이 오면....'이라고 적어놓은 글씨가 보였지만, 그 마음이 어땠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벌써 십년이 지난건가?

처음 책을 집어들고 최상규의 '포인트'를 읽으면서 짧지만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에 조금 당혹스러웠고, 간결하지만 그 느낌을 확연하게 전해오는 표현에 빠져들어버렸다. 아, 우리 소설의 맛이 이런거였던가...?

에세이류, 외국소설을 마구 읽어대면서 정작 우리 소설은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문득 내가 올해 읽은 한국소설이 있기는 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언뜻 생각나지 않아 수첩을 뒤적여서야 겨우 깨달았다. 다행히 '주몽'을 읽었고, 그 전에는 더욱 다행스럽게도 공선옥의 소설들을 읽었구나. 아, 그래. 좀 늦은감이 있지만.

자극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읽어서인지... 이야기 자체가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 내가 살아왔던 전 시대의 일상과 사회적인 배경, 전후시대의 이해가 그저 먼 옛 이야기처럼 느껴져버린 탓인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을 하면서도 작가가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섯불리 판단을 할 수 없게 한다. 요즘 읽은 책들은 거즘 그 결말에 대해 '아, 그렇겠지 머' 하는 간단한 생각으로 마무리를 해버리고 있다고 한다면, 아주 오랜만에 읽은 우리 소설 단편은 여운을 길게 가지게 한다. 결말이 아니라 그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서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인지 중심 뼈대를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어버리고 이야기는 마무리를 짓고 있는데, 나는 새삼 오누이의 심정이 어땠을까에 시선이 가고 있는 그런 것.

책을 읽었을때의 그 강렬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좋겠는데, 지금은 마구 뒤섞여 오히려 감정이 얽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치만 꽤 오랜만에 읽은 한국단편소설의 맛은 아주 좋았다는건 분명하다.
문학, 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말이 주는 그 맛깔스러움과 우리 단편소설이 주는 그 기나긴 여운이 참으로 좋았다는 것이다.


** 각 단편에 대한 느낌은 이미 읽어버린 해설과 줄거리, 평이 섞여들어가버려 끄집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온전한 내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 하나는 처음 최상규의 '포인트'를 읽으면서부터 번역이 아닌 우리말의 표현과 우리의 정서와 은근히 돌아서 비유하는 글이 참으로 좋았다는 것. 그건 마지막에 실린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까지 이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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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구판절판


나는 되도록이면 어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루종일 리모컨만 눌러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전공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 깨달았다. 너무 따지고 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게 세상이었다. 때로는 협상을 할 줄도, 어느 선에서 적당히 눈감아 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 '어느 선'이 문제였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선'이었다.-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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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0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 타워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이당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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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는 9.11 영상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충격적인 영상은 끔찍하고 처참했지만 머나먼 곳에서 작은 TV화면으로 본 많은 사람들은 또한 하나의 시뮬레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것도 사실이다. 충격이 너무 커서 믿을 수 없기때문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어버린 것일까.

과거에 바벨탑이라는 인간의 욕망의 탑이 있었다면 미래에는 인간 욕망의 결과로 초래한 황폐화된 지구에서의 블루 타워가 있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상징적인것일까. 과거의 신화나 미래의 SF라는 것은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지는 상상력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분명한 답이 나온다.
가진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빼앗긴 자는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어 모든것을 걸고 되찾으려 한다. 왜 서로 공존하는 방법은 배우려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 이 시대의 딜레마인 것일까?

9.11 이 있고 1년 후, 미국내에서 화해와 용서라는 의미로 희생자의 추모와 더불어 테러를 가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갖자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 '용서'라는 말 자체에도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글을 읽고 마음이 착잡했다. 그들은 그 한번의 충격으로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있지만, 수십년동안 억압당하고 착취당한 사람들의 마음은 헤아려보려고나 했을까?

블루타워에서의 각층간의 갈등과 전쟁은 현실과 똑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파키스탄이나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들...직접 겪어보지 못한 제3자의 입장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말을 선뜻 하기엔 그들의 분노가 너무나 컸다. 눈앞에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모습을 봤던 어린 꼬마가 갖는 분노와 증오, 이유없이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가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본 충격,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주지역제한과 바로 이웃집을 나눠버린 장벽.... 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그들이 느끼는 그 절망감과 증오에 대해 누가 감히 돌팔매를 던질 수 있을까.
이 모든것은 '공존'을 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자들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이시다 이라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는 블루타워가 아닌 지상에서의 소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이기심과 욕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공존'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의 분노와 증오는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한걸음 가까이 화해와 용서로 나아갈 수 있는것 아닐런지.


뱀꼬리처럼 하나 붙이자면, 이시다 이라의 LAST를 읽고 난 후, 그 적나라한 현실에 구역질날만큼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스럽긴 했는데 이시다 이라도 9.11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랬을까. 자극적인 표현에서 충격보다는 하나의 폭력적인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더 컸다. 좀 더 사회적인 풍자가 날카로울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만큼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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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6-09-0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소설도 썼구나....역시 다재다능한 작가네요. 치카님 리뷰 읽고 나니 더 읽고 싶어졌어요.^^

chika 2006-09-0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시다 이라, 다재다능 맞는거 같아요 ^^
 
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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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더운 여름이다. 샤워를 금방 하고 나와도 끈적끈적 땀이 배어나오는 무더운 여름... 이런 여름의 한나절을 나는 '두개골의 서'를 읽으며 보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책을 읽는동안은 참을만했던 더위가 갑자기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이 느낌을 뭐라 적어넣으면 좋을까? 급박하게 전개된듯한 이야기의 마무리에 나는 아직도 마음이 멍할뿐이다...

"여기서 얻은 게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네가 구하는 걸 얻을 수 있으리라고 정말로 생각하는거야? 무서운 공포의 순간, 울어서 충혈된 눈으로 차가운 미래를 내다보는, 내가 늙고 쭈글쭈글해져서는 헛된 세상의 먼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의심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막연한 불만의 정처없는 바람이 태평양을 향해 날아가다 잠시 멈춰서 나를 흔들고 지나간 것인지도 몰랐다"(360-361)
그래, 여름철 한줄기의 바람이 태평양을 떠돌다 내게도 불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시작은 네명의 친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아니 이미 길을 떠난 상태에서 서로의 이야기로 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필요한 네명의 인원, 그리고 그중 한명은 죽임을 당하지만 한명은 다른 두명의 영원불사를 위해 완전한 자의지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만 한다는 '두개골의 서'의 비밀을 찾아 떠난 네명의 친구. 영원불사를 믿든 믿지않든 그들은 길을 떠났고 그 길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이 어떤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

내게는 이 이야기가 SF의 장르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는데, 단지 네명의 친구들 각자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무.서.움을 느껴버렸다. 삶에 대한 이 끔찍한 이야기들은 단지 그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독백이자 고백으로 나타나는 그 감정으로 인해 무서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이들의 독백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책의 끝장을 읽고 나서야 휴우~하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건 영화 인디아나 존스식의 아슬아슬한 모험때문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그런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어린아이가 TV를 보다가 귀신이 나오면 무섭다며 울면서도 화면에서 얼굴을 돌리지 못하는 그런 느낌일까?
나는 이 이상 '두개골의 서'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하겠다. 중요한 것은 내 느낌이 아니라, 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깊이 각인되는 인상을 받게 될 당신의 느낌일터이니.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은 SF인가 아닌가가 논란이 될 만하다는 것이고 단지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모험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빠져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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