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해킹 - 탐하라, 허락되지 않은 모든 곳을
브래들리 L. 개럿 지음, 오수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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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시 탐험가는 가상공간의 해커처럼 도시 건축의 균열들을 샅샅이 탐색한다. 이들의 목적은 우리가 매일 생각없이 지나치는 공간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다"

 

도시 해킹이라는 것이 생소한 나는 해커의 이야기와 얽혀있는 흥미로운 소설인가,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며 도시를 탐험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다큐멘터리같은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 탐험이란 '호기심 많은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이면을 발견해가는 내부 관광'이라고 제프 채프먼이 개념 정의를 내렸는데 트로이 파이바라는 '일시적이고 낡고, 버려진 공간'을 찾아내고 탐험하는 작업이라고 정의내렸다.

사실 개념정의가 어찌되었든 도시탐험가들은 진입 금지된 공간에 잠입해 사진을 찍고 탐험한 내용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것은 도시 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도시탐험가들과 함께 8개 국가의 300개가 넘는 공간 침입에 참여한 개인적인 모험담을 담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이 도시탐험가가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도시 해킹이라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고 그 다음 도시 공간의 그 모든 곳을 탐하며 탐험하는 활동과 도시탐험가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그들의 도시 탐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왠지 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이 위험한 탐험을 하는 이유가 단지 재미를 느끼고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리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도시탐험대의 작업이 도시의 권력을 시민들이 되찾는 일들 중 하나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에게 금지된 것들, 그 많은 것들이 진정 누구를 위한 금지인 것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무심히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인터넷 이슈라며 한 여고생이 학교를 휘저어 다니며 3층 높이의 옥상에서 지상으로 닌자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조작한 화면인가 싶어 흥미롭게 보고 있었는데 그 소녀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가 흔들리더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역시 소녀의 뒤를 쫓아 높은 곳에서 너무 쉽게 바닥으로 착지하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단지 '위험'이라는 말을 앞세워 금지시켜야 하는 행동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스개처럼 까따꼼베에 들어가 혼자 헤집고 다니다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해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실제로 도시 탐험을 하는 이 중에 프랑스의 지하 미로에 들어갔다가 10년이 지난 후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유럽의 지하통로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소설과 역사에서 많이 접해왔는데 언젠가부터 그곳은 금지구역이 되었고 접근금지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위험하기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그런 조치가 취해졌으리라 생각하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중세 시대에 기득권을 가진 귀족들이 그들의 살 궁리를 위해 지어놓은 지하통로를 현대에 와서 역시 모두에게 개방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고소공포와 낯설고 막힌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내게 이들의 도시탐험 이야기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도시에서 시대와 역사를 같이 했던 공간에 대한 탐험은 모험과 즐거움이 가득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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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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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잭 리처 시리즈는 처음 읽어보는데 이거 의외로 재미있었다.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그냥 빤한 이야기 전개가 있을 것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생각보다 분량도 많고, 글자 크기도 좀 작은 듯 해 읽기가 그리 만만치 않겠다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야기 전개가 시원시원하게 빠르고 장면 전환이 역동적인 느낌이라서 그런지 금세 읽어버렸다. 며칠동안 열대야에 급격히 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이 계속되었었는데 그 사이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름에는 역시 리 차일드의 작품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수가 없다. 여름철 책읽기의 즐거움, 독서 피서법이란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일것이다.

 

1030은 헌병에서 사용하고 있는 암호화 된 숫자로 동료들의 지원을 다급하게 요청할 때 헌병들이 사용하는 코드를 의미한다. 은행의 잔고를 확인하던 잭 리처는 누군가가 송금한 1030달러를 발견한다. 신용카드는 커녕 손전화조차 사용하지 않는 잭 리처는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1030달러가 단순한 은행의 실수일지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낸 구원 요청일지 확인을 한다. 가진것은 아무것도 없이 부랑아처럼 떠도는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지만 만약에 그것이 누군가의 메시지라면 그것은 그와 함께 생활하던 옛 특수부대 동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잭 리처는 과거에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특수부대 동료인 니글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또 다른 옛 동료의 죽음을 듣게 된다. 그것도 사막에서 발견되었는데 900미터의 상공에서 산 채로 포박당하여 내던져져 사망한 것이다.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잭 리처와 그의 특수부대원들은 다시 모여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캐면 캘수록 뭔가 더 커다란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아주 자그마한 단서 하나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도 하며, 무심코 넘겼던 사소한 일들이 복선처럼 의미를 가지며 사건의 반전을 갖고 오는데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중간에 멈출수가 없다. 그만큼 흡입력있게 읽히는 이 글은 세세한 부분의 묘사까지 정교해서 그냥 허투루 읽을수도 없다. 사실 총기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행동을 하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총 걸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는데 총알이 먼저 나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총을 쳐내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장면은 다 드라마적 허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그것이 허구인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총기류에 따라 근접사격이어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 있고 걸림쇠에 손가락이 걸려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곧바로 총알이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씌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리 차일드의 1030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과 세부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책을 읽고 있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읽은 잭 리처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잭 리처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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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는건가? 엄청 재미있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책이 좋다고 추천을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거다. 그 책이 왜 좋은데? 라고 물어본다면 뭐라 할 것인가. 이건 내 개인의 취향이야!라고 끝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도무지 상대방은 그걸 이해해주지 못한다. 나는 개인의 취향대로 읽을 뿐이고, 개인의 취향대로 재미있다 말할 뿐이고, 개인의 취향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왜 자꾸 어떤 책을 읽느냐, 좋아하느냐, 베스트셀러라고 하던데 아직 안읽냐.

아직 못 읽은 책이 엄청 많지만 그래도 간혹 안 읽은 책도 섞여 있다. 그냥. 마음이 가지 않는걸 어쩌라고.

 

 

 

 

 

 

 

 

마음이 가는 것과는 또 별개로. 방금 이 책을 다 읽었다. 글자크기가 다른 책에 비해 좀 작다..느꼈는데 아무래도 한 권에 다 넣으려고 좀 애를 쓴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 진행이 빨리 되어 한여름에 읽기 딱 좋은 책. 진행도 빠르지만 호흡이 길지 않아서 금세 쓱쓱 읽힌다. 역시 여름의 책 읽기는 이런 맛에.

아, 그런데 너무 집중해서 읽어버린걸까? 책을 덮고나니 일을 못하겠다. 오후의 식곤증이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하고 엄청난 박력으로 달려오다가 막상 끝,하고 도달하니 뭔가 허탈해진 기분이기도 하고... 그냥 졸릴 뿐 아무생각이 없어.

이제 읽어야 하는 책들은.

 

 

 

 

 

 

 

여름에 어울리는 책들이 많긴 하구나.

그래도 주말이 책읽기 딱 좋은 시간인데, 평일에 잠이 모자라서 그런지 주말이 되면 책을 읽기는 커녕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종일 잠만 잔다. 저녁에 퇴근하고 저녁식사, 씻고 젖은 머리 똘돌 말아 앉으면 열시. 드라마보고 얼렁뚱땅 시간을 보내다보면 십여분에서 한시간정도 잠이드는 시간에 따라 다시 새벽에 말똥거리며 깨어 있는 시간에서 여섯시반 알람으로 깨어나는 시간을 따지면 하루에 5시간을 채 못자는 것 같은데. 그러니 아침부터 정신을 못차리고 멍때리며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뭐니뭐니해도 눈에 화악 들어오는 것은 사신의 7일. 분명 오사카 코타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으로 사신치바를 바로 떠올리겠지. 몇년만에 나온 후속이라고했던가. 이사카 코타로여서 읽고 싶어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덥고 잠이 모자라 멍때리는 요즘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만화,나 가벼운 에세이겠지만. 신간도서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수학'관련 책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과학분야도 그렇고, 그렇게 따지다보면 온갖 분야의 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가 전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수학분야의 책들도 많이 읽기 쉽게 대중화되면서 나도 눈여겨보게 되었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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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권이 출간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은데. 잊고 있었다. 그런데. 살까? 연재가 계속 이어진다면 예판까지 서둘러 구매하고 싶지는 않다. 당장 읽어야하는 것도 아니지?

사실 그보다는 프란츠 파농이. 아니, 그러고보니 프란츠 파농 평전이 있었던가? 그 기억이 가물거리는 이유는 물론. 읽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책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손때를 안묻힌 듯.

온갖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책에 대한 소유욕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져.

 

조카님은 자기 욕심에 성적이 최상위로 안정적이지 못한것에만 매달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원래 두리뭉실해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조카님이었는데 엄청나게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되어간다고 해서 어떤 말을 건네줄까 하다가 결론적으로 '무조건 지지하고 있다' 전해달라고 말았다. 생일에는 축하메시지와 함께 잘 해내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공부하느라 미칠듯이 힘들지만 가끔은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인간임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만 보냈는데. 아무래도 본인 스스로 받았던 스트레스는 욕심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기대치에 대한 부담이 더 컸던건가보다. 기도해주고 있고, 지지한다고 했더니 조카님께서 너무 좋아하더라고. 답문이 온 것을 봤을때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으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공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제도권교육의 문제점을 고대로 안고 힘겨운 수험생을 보내는 이 땅의 혈기왕성한 십대청소년들. 더구나 입시를 앞둔, 이제 이십대가 되어 어른의 되어가는 길을 내딛을 아이들이 참...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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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간 1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1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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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제목에 이미 '최후의 인간'이라는 단서를 붙여놓고 있지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이 종말문학에 속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2073년이라는 숫자도 오타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길 정도였다. 물론 그 숫자로 인해 책의 앞뒤를 살펴보다가 과거 1900년대에 씌여진 이 글이 21세기의 미래를 그린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미래공상소설과는 달리 이 책에는 로보트라거나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왕정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이야기라거나 전염병에 의해 수많은 인류가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와 미래소설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어 황폐해진 도심을 무작정 지나치는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가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황폐함속에서도 등장하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 최후의 인간은 삭막하게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인간성을 찾고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지성인들의 노력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73년의 영국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어 있다. 난봉꾼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오넬과 퍼디타 남매는 고아로 자라지만 아버지와 전 국왕의 인연으로 인해 전 국왕의 아들인 에이드리언과 그의 여동생 아이드리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최후의 인간은 라이오넬 남매와 에이드리언 남매, 그리고 정치적인 야심가 레이먼드와 그리스의 공주인 에바드네의 서로 엇갈리는 인간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라이오넬의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 책 '최후의 인간' 자체가 바로 라이오넬의 기록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엇갈리는 남녀의 사랑과 애증, 정치적인 권력과 야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에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전염병으로 인해 피폐되어가는 세상의 모습과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는 최후의 인간을 이야기위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분의 차이, 사랑과 명예, 민족과 전쟁... 실상 최후의 인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착실하게 보여주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세상의 모습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 가상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꾸만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 글이 한세기도 더 전에 씌여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네. 우리 스스로가 먼저 바라야 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천국이 되기를 말이네. 인간의 의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죽음의 화살촉도 무디게 만들 수 있고, 질병이 머무는 곳도 위로할 수 있으며, 크나큰 고통의 눈물을 닦아낼 수도 잇다네. 하지만 인간이 그토록 뛰어난 힘을 동포들을 돕는 데 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불꽃은 희미해져버렸고, 내 체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바닥나고 말았어. 그럼에도 나는 내게 남은  지성과 힘을 모두 한 가지 일에 바칠 거라네. 그건 내 사명일세. 힘이 닿는 한 나는 인류를, 내 동포들을 이롭게 할 거란 말이네!"(1권 137)

 

종말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점차 희망이 사라져가는 듯 하고, 최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최후의 인간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라 예상하게 되지만 이야기의 곳곳에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저자의 이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또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으로 무너지고 황폐해져버린 영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어느 곳이든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여 죽음을 기다리거나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모든 광기와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의 종말을 외치며 신을 찾아 부르짖던 사이비 종교인들이 실제로 있었는데 최후의 인간에서도 역시 광기어린 맹목적인 믿음으로 무너져가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최후의 인간은 과거에 씌여진 미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의 시점인 지금, 책에서 그려낸 미래보다는 과거인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저자 메리 셸리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절친의 죽음 이후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소설로 재현해내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주인공들의 꿈이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은 프랑스 혁명 이후 당대 사회 현실에서의 진보주의에 대한 의문과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의문, 자연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물음을 도전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한다.

 

최후의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앞서도 말했든 인간의 본성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세상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비극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는다. 사실 메리 셸리가 백여년 전에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는 흔해져버린 현실이 되어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진리는 결코 옛것이라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인류의 수는 엄청나게 감소했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엄청난 역병은 몇 년 내에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이 명백했다. 이대로 놔둘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역병을 막아야만 했다. 역병이 수천, 아니 수만 명을 더 학살하기 전에, 인류가 역병의 지독한 장난으로 말살되기 전에 우리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이 이제 진정한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소위 왕들이 지녔던 보물보다 소중했다. 한 인간의 생각이 깃든 얼굴을 보라. 그 우아한 육신과 장엄한 얼굴,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보라.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 부서진 배처럼 한편으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인류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의 자식들과, 그 밑의 자식들의 최후의 시간까지 인류의 형태와 이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2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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