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머니와 뉴스를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백남기 선생님의 사인 규명을 두고 부검을 하려고 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며 왜 저러냐, 하는 게 아니라 부검을 막는 이유가 뭔가 유족측이 걸리는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라는 듯 말씀하시는거였다.

응? 아니, 도대체 이건 뭔 말인가.

한때 노동자들의 시위장면을 보면서도 편집을 저 따위로 했다며 노동자들이 나쁜거 아니지? 라거나, FTA가 왜 나쁜거냐며 반대하는 이유가 뭔지 알려달라거나. 정치뉴스가 나오면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거나. 그랬던 어머니가 변하셨다. 저들의 말도 안되는 주장, 백남기 농민의 지병을 숨기고 있었던 거 아니냐라는 말 한마디에 불온한 이야기라도 들은 듯 어머니보고 어디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가서 이상한 할망들이영 이상한 말만 듣고 다니지 말라고, 낮에 채널A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 지껄이는 방송 좀 보지 말라고 막 큰소리를 냈다. 하아. 흥분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나마 자분자분 얘기한 건 물대포가 집에서 쓰는, 마당의 화분에 물을 주는 그런 호수인 줄 아냐고. 오죽하면 물'대포'이겠냐고. 대포같은 물줄기에 맞았는데 사람이 말짱하겠냐고.

그러다가 반성을 좀 했다. 어머니와 대화가 필요해. 날마다 뉴스 시간에 저따위 뉴스 - 어머니는 제이티비씨뉴스는 뉴스같지 않다고 싫어하시고, 뉴스는 꼭 봐야하는 분이기에 9시 뉴스를 보는데 나는 항상 뉴스가 저 따위니! 라며 온갖 트집이나 잡고 상대를 안하고 있으니. 그건 아니지. 대화가 필요해, 라는 걸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건.

요즘 뉴스를 보면서 욕을 해대도 아무 말씀을 안하신다는거. 아니, 어머니도 어찌나 어이없다 생각하시는건지 별다른 말 없이 최순실이 대장이여,하고 마신다는 거. 팔순넘은 노친네까지 저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보며 어이없어 하는데 여전히 눈가리고 아옹하는 저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말해 뭣하겠는가.

 

이런 판국에도 책은 읽는다. 아니, 이래서 더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아닌가? 책보다 행동,일지 모르겠지만 행동을 부르는 책읽기는 대환영,이니까.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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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족이니까 더 말 못한 거라고!"

 

다른 남자와 눈 맞아 도망간 엄마에게 17년만에 엽서가 도착한다. 엄마는 몸만 가지 않았다. 동생의 사망 보험금도 함께 들고 갔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엄마를 찾으러 삼 남매가 길을 나선다. 이 강제 가족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남이지만 또 결국 '나'이기 때문에 미워할 수만은 없는 가족의 맨얼굴을 만나게 된다.

 

 

 

 

 

 

 

 

 

 

 

 

 

 

 

 

 

 

 

 

 

 

 

 

 한 장서표에 적힌 경구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저자의 소장품 중 19세기 말에서 지금까지 통용된 유럽 각국의 각 시기별 장서표 200매를 수록했다. 대부분 장서표의 주제나 등장하는 소품이 '책'과 연관된 것으로, 장서표의 주인에 관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 안에 숨은 코드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무서운 책이 다 있던가. 그래도 장서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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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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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도 한참을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싶었다. 소설을 읽었지만 세상살이를 읽었고 과거를 잃어버린 스파이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그 의미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미 잊혀져버린 과거의 의미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며 현재를 잃기 시작했다. 패자의 서가 시작되면서 나는 패자의 역사에 속하고 있는가, 확신없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

 

고요한 밤의 눈,은 스파이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멋진 첩보의 활약을 펼치는 스파이의 세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15년의 기억을 잃고 깨어났는데 스파이였었고 지금도 스파이인 엑스, 그의 잃어버린 시간속에 들어가 기억을 조정하며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되는 와이,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갑자기 행방불명되자 언니를 찾기 위해 언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 실존자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디, 그리고 그들의 보스인 비...

불확실한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지만 조작될 수 있는 기록은 신뢰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오히려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고 스파이와 이중스파이에 대한 불안은 더욱더 가중되고 스파이로 살아가는 이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이 소설속의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잃어버리고 만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있는 것인지, 내 정체를 잃어가고 있는 현재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있지만 세상을 읽고 있다는 것이 내가 잃은 기억을 자꾸만 헤집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움직일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서글픔이었고 패자의 서에 한걸음 다가설 수도 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어 힘들기만 했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261)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삶과 죽음을 바꾼다고 이야기 전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다시 새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꿀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일까, 악일까.(240)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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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필의 New 영어기초확립 불후의 명저 시리즈
안현필 지음 / 하리스코대영당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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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쯤 전, 갑자기 이탈리아어에 관심이 생겨 이탈리아어 독학 학습서를 잠깐 들여다봤었다. 영어 알파벳과 다르지 않지만 발음은 영어와 달라서 첫장은 이탈리아어의 알파벳과 발음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그와 똑같이 안현필의 영어기초확립은 영어 알파벳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냥 이 책을 먼저 봤다면 시시하게 알파벳부터 시작이야? 라고 했을지 모르겠는데 전혀 알지 못했던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알파벳부터 시작을 했더니 새삼스럽게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책은 말 그대로 영어기초확립이기에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지 기본적인 기초를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봐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해주고 싶은 이유를 꼽으라면 음성학 교재 못지않은 발음 기관의 구조를 그려 그림으로 설명하고 발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원어민이 없더라도 원음에 가까운 발음을 흉내내어 볼 수 있게 되어있는 것과 가장 기초적인 문장의 구성을 정확히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또 한가지 강점은 다른 대부분의 영어 교재들과는 달리 이 책은 영어문장과 우리말을 교차시키며 자연스럽게 영작문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독특한 점은 문장의 구조나 기본적인 문법을 설명하고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먼저 던지고 그에 대한 해설과 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별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실제로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생각을 해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문법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본 질문과 연습문제 앞에 체크박스가 있는데 정확히 아는 부분은 그대로 넘어가고 혹시 틀렸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체크를 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그 부분만 공부하고 넘어가면서 스스로 학습진도와 과정을 조절해나갈 수 있다는 것도 꽤 괜찮은 학습방법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기초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라는 것보다는 영어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영어를 접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 책은 별다른 가르침이 없더라도 혼자 독학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고 꼼꼼히 살펴보면 영어과외 선생님이 옆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영어기초과정이라고 해도 회화와 문법을 구분하여 따로 설명하는 것이 많은데 안현필의 영어기초확립은 그말 그대로 영어의 기초를 회화든 문법이든 영작이든 혼연일체된 느낌으로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솔직히 미국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학습 교재로 만든 것보다 이 책이 훨씬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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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과 악을 간단하게 나눌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산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 판단을 끊임없이 유보한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삶과 죽음을 바꾼다고 이야기 전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다시 새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고 생각한다면 지금 나는 선일까, 악일까.

(240)

 

 

 

 

 

 

점점 더 알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양심을 팔고 정의를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우리를,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처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

 

 

 

 

내가 젊었을 때 세상은 믿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지. 프롤레타리아가 결국에는 승리하리라는 믿음, 기계문명이 인간을 편안하게 살게 하리라는 미래주의적 믿음,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리라는 인간주의에 대한 믿음...... 우리는 모두 믿음과 신념의 인간이었지

 

한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때로 지극히 단순한 믿음이다. 251

 

 

 

 

 

 

 

제가 보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해드리죠. 사람을 조정하고 기억을 조작하는 조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도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기억을 지워버리죠. 감정과 기억, 개성, 그 인간을 그 인간이도록 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죠.

 

정신을 다시 만들었다는 건가요?

 

인간은 한두 가지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많은 요소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죠. 어떤 부보 밑에서 자라서 어떤 학교를 다녀서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 문화적 경험으로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책에서는 왜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조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복잡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은 조정이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 소설이 다른 측면에서 절 공포스럽게 했어요. 생각해봐요. 요즘 애들 말이에요. 그애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봐요. 먼 훗날에는 굳이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조정해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점점 더 알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양심을 팔고 정의를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우리를,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처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

 

 

선생님은 언제나 양심과 지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군요.

 

기억은 가장 섬세하고 복잡하며 존재의 사활이 걸린 창조적 과정입니다.

 

만약 내가 소설 속 인물이고 누군가 내 기억의 일부를 지웠다면 그 이유는 뭘까.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이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주아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영혼까지 자본주의자였던 내가 과연 작정하고 내가 속한 세상을 벗어나려고 했을까.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얼 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만약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다면 그들을 이길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들을 모아 함께 노력해야죠. 적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전을 이룬 것입니다.

 

지금 나는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선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그리고 둘 다 진실이다. 생각해본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정말 위대한 것까지. 상상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작은 것부터 정말 큰 것까지. 불리하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 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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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6-10-2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꺼이 패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패자의 서는 정해져 있는 책이 아니다. 이미 쓰여져 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책이 패자의 서가 될지 모른다. 패자의 서는 앞으로 쓰여질 책, 우리 모두가 쓰게 될 책이다. 310


누군가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물었을 때 그 누군가가 사랑이라고 대답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흔하고 뻔한 대답이라 미안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는 그 단어, 사랑을 말했죠.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도 보였어요. 지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나라, 이 지구,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처방전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시 배울 겁니다. 숨 쉬는 법, 사는 법, 사랑하는 법, 싸우는 법, 그래서 내가 내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287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이 글이 인용출처인 다큐멘터리는 11번째 시간.



 
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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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볼 때 - 특히 다작을 하는 일본 장르 작가들의 작품은 원작의 출판연도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우리가 흔히 '고전'으로 분류해놓는 작품이 아닌 이상 오래 전에 출판된 작품들은 좀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면 그러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내용의 짜임새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결코 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은 오래 전 작품을 읽게 되어도 그리 실망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 전 백야행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을 때, 원작이 출판되었을 당시 얼리어답터같은 등장 인물들의 컴퓨터 이야기는 증강현실 게임이 유행인 지금의 시대에 읽기에는 조금 심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95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어떤 내용인지 알기 전에 우선 작품 발표 연도 때문에 슬그머니 망설이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원전이야기라니. 어떤 내용이 담겨있고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모르지만 단지 그 한마디로 이 책은 그 값어치를 하지않을까, 싶어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95년에 이 책을 읽지 않고 지금 2016년에 이 책을 읽고 있어서 더욱더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공의 벌' 이야기는 프로젝트 비,의 실현으로 거대헬기의 시험비행을 하기로 한 날 아침부터 시작하여 저녁까지 하루 24시간도 아닌 겨우 10시간 정도에 일어난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며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 스토리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속 범인과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추격이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좁혀가고 있어 꽤 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읽힌다. 더구나 독자인 우리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고 그 범인을 어떻게 잡아나가는지의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흥미로움은 단지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과연 범인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게 될 것인지... 작가의 의도가 더욱 궁금해지게 됨에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장르소설이라는 생각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리 놀라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공의 벌은 그의 다른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주고 있다. 더구나 원전에 대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기에 더 그렇지 않을까...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강도높은 지진이 발생했다. 처음 뉴스보도에서는 아직 피해상황접수가 안되어서 그런지 그리 큰 피해는 없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각한 피해상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한참동안 우리의 원전은 안전한가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나 역시 원전이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아니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멀리 체르노빌 사건으로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 지역의 참사만 떠올려도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어떠한 경우에도 원전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국가와 정말 그 말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소설은 오히려 범인의 확신과 믿음에 반하는 원전 관계자들과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그 신뢰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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