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과 악을 간단하게 나눌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산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 판단을 끊임없이 유보한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삶과 죽음을 바꾼다고 이야기 전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다시 새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고 생각한다면 지금 나는 선일까, 악일까.

(240)

 

 

 

 

 

 

점점 더 알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양심을 팔고 정의를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우리를,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처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

 

 

 

 

내가 젊었을 때 세상은 믿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지. 프롤레타리아가 결국에는 승리하리라는 믿음, 기계문명이 인간을 편안하게 살게 하리라는 미래주의적 믿음,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리라는 인간주의에 대한 믿음...... 우리는 모두 믿음과 신념의 인간이었지

 

한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때로 지극히 단순한 믿음이다. 251

 

 

 

 

 

 

 

제가 보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해드리죠. 사람을 조정하고 기억을 조작하는 조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도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기억을 지워버리죠. 감정과 기억, 개성, 그 인간을 그 인간이도록 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죠.

 

정신을 다시 만들었다는 건가요?

 

인간은 한두 가지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많은 요소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죠. 어떤 부보 밑에서 자라서 어떤 학교를 다녀서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 문화적 경험으로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책에서는 왜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조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복잡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은 조정이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 소설이 다른 측면에서 절 공포스럽게 했어요. 생각해봐요. 요즘 애들 말이에요. 그애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봐요. 먼 훗날에는 굳이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조정해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점점 더 알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양심을 팔고 정의를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우리를,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처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

 

 

선생님은 언제나 양심과 지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군요.

 

기억은 가장 섬세하고 복잡하며 존재의 사활이 걸린 창조적 과정입니다.

 

만약 내가 소설 속 인물이고 누군가 내 기억의 일부를 지웠다면 그 이유는 뭘까.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이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주아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영혼까지 자본주의자였던 내가 과연 작정하고 내가 속한 세상을 벗어나려고 했을까.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얼 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만약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다면 그들을 이길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들을 모아 함께 노력해야죠. 적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전을 이룬 것입니다.

 

지금 나는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선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그리고 둘 다 진실이다. 생각해본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정말 위대한 것까지. 상상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작은 것부터 정말 큰 것까지. 불리하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 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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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6-10-2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꺼이 패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패자의 서는 정해져 있는 책이 아니다. 이미 쓰여져 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책이 패자의 서가 될지 모른다. 패자의 서는 앞으로 쓰여질 책, 우리 모두가 쓰게 될 책이다. 310


누군가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물었을 때 그 누군가가 사랑이라고 대답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흔하고 뻔한 대답이라 미안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는 그 단어, 사랑을 말했죠.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도 보였어요. 지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나라, 이 지구,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처방전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시 배울 겁니다. 숨 쉬는 법, 사는 법, 사랑하는 법, 싸우는 법, 그래서 내가 내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287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이 글이 인용출처인 다큐멘터리는 11번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