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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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도 한참을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싶었다. 소설을 읽었지만 세상살이를 읽었고 과거를 잃어버린 스파이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그 의미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미 잊혀져버린 과거의 의미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며 현재를 잃기 시작했다. 패자의 서가 시작되면서 나는 패자의 역사에 속하고 있는가, 확신없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

 

고요한 밤의 눈,은 스파이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멋진 첩보의 활약을 펼치는 스파이의 세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15년의 기억을 잃고 깨어났는데 스파이였었고 지금도 스파이인 엑스, 그의 잃어버린 시간속에 들어가 기억을 조정하며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되는 와이,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갑자기 행방불명되자 언니를 찾기 위해 언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 실존자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디, 그리고 그들의 보스인 비...

불확실한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지만 조작될 수 있는 기록은 신뢰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오히려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고 스파이와 이중스파이에 대한 불안은 더욱더 가중되고 스파이로 살아가는 이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이 소설속의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잃어버리고 만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있는 것인지, 내 정체를 잃어가고 있는 현재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있지만 세상을 읽고 있다는 것이 내가 잃은 기억을 자꾸만 헤집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움직일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서글픔이었고 패자의 서에 한걸음 다가설 수도 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어 힘들기만 했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261)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삶과 죽음을 바꾼다고 이야기 전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다시 새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꿀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일까, 악일까.(240)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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