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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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서히 내 마음에 떠오른 단어는 '낭만 킬러'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이라는 것은 내 개념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낭만 킬러'라는 말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일을 생업으로 삼을 작정은 아니었어. ... 그러다가 점점 그게 내 정체성이 되었는데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 어떻게 알게 됐느냐면, 누군가 내 말을 듣는 사람을 만났는데, 두려움인지 존경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보여준 반응이 놀랍더라고. 그 사람은 킬러에 대한 반응을 한 건데, 나는 어리둥절했지. 내가 킬러라는 사실을 몰랐으니까"(157)

어쩌다보니, 그러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가 킬러가 되었어, 라는 말을 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켈러는 킬러, 좀 더 격하게 들리는 표현으로는 '살인청부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는 꽤나 섬세하고 자상한 면을 보여준다.

살인을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있으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 "마을을 떠나면서 휘틀록의 신분을 벗어버릴 켈러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진자 데일 휘틀록에게 괴로움을 얹어줄 이유는 없었다. 진짜 데일 휘틀록은 따로 있는데다 켈러는 그 남자를 살인 용의자로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괴롭히고 있었으니 말이다"(55)

켈러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나고,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며 한적한 시골마을에 가면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을 하는 살인청부업자의 일상은 잦은 출장을 다니는 직장인이 느끼는 삶의 고달픔과 그리 다르지도 않다.

살인을 하러 갔다가 잘못 전해받은 정보로 엉뚱한 사람을 죽여버리기도 하고, 서로의 살인 의뢰를 받았는데 과연 누구의 의뢰를 받아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엉뚱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 자살로 위장한 살인 의뢰가 그 당사자의 의뢰인 것을 무서운 예감으로 파고들기도 하고...  좀 더 이야기하면 켈러가 벌이는 하드보일드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나와버릴 것 같아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살인해드립니다 라는 제목에 걸맞게 비정한 킬러의 일상을 그려낸 끔찍한 하드보일드,일까 싶었는데 그 끔찍한 살인의 모습은 희미하게 감춰져 있다. 킬러인 켈러는 시간이 나면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나라없는 남자를 읽기도 하고, 킬러의 이야기가 그려진 이 책에서 새뮤얼 존슨의 말이 인용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한 추리소설인데도 죽은 이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고민하며 서툴게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운명의 여신이 모든 것을 그의 무릎에 떨어뜨렸다.(384)라니... 킬러의 잔인함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살인의뢰를 받고 장소와 때를 물색하러 들어갔다가 엉뚱하게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내는 킬러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켈러가 살인청부업자라는 것에만 신경이 쏠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켈러가 감상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킬러가 낭만적일수도 있다거나 비정한 직업을 통해서도 삶의 고달픔과 애환이 있다는 생각따위의 흐름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내리는 지혜에 대해 생각했다. 제멋대로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그게 원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구름 위 어딘가에서도 턱수염을 기른 노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동전을 던진 후 어깨를 으쓱인 뒤, 열차 사고와 심장마비 들을 분해해서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지도 몰랐다."(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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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산티아고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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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읽어보는 것 같다. 산티아고 여행기는. 그러니까 한때 산티아고 순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 나 역시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서 '산티아고'길을 걸었다는 에세이는 기회가 닿는한 거의 다 읽어보곤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순례의 길은 걷지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부러워하고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씩 현실성을 띄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부터 준비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에서부터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알아채버렸었다. 내 안에 있는 열망보다 더 큰 두려움이라는 것의 존재를.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마음이 시들시들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그렇게 고된 길을 왜?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부터 산티아고는 아득히 멀어져만 갔는데...

왜 갑자기 다시 산티아고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두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내 안 깊숙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지금 여기'라는 말에 혹했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걸 다 내려놓지 못해 나 자신이 정말 잘 해내지 못하고 실패한 듯이 보여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산티아고를 마음으로 걷게 되었다.

 

이 책은 다른 산티아고 책들보다 이쁘다는 건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쁜 사진이 많이 담겨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겠지만 그냥 보기에도 할머니 등에 업혀 방긋거리는 아기의 모습, 순례자들을 위한 쿠키와 사탕 바구니, 누군가에게는 길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들녘의 바람, 뒷모습에 보이는 부부의 사랑....

글을 읽다보면 나도 바로 따라 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산티아고를 걷는 모두는 누구나 다 각자의 체험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과 날씨, 환경에 따라 그날 그날의 경험과 하루의 감상이 달라질것이다. 그런데 그 각각에서 또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 삶의 여정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 성공, 실패, 좌절, 행복... 그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축복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그런 체험이야기에서 나 역시 간접적으로 나의 삶과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저자는 혼자 길을 걷기를 소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 대부분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길을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에 동의하면서도 온전히 혼자가 되어 걷는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나로서는 또한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는데 나였다면 과연 그 기나긴 길을 어떻게 걸어갔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두 발로 그 길을 걸었지만, 그것은 내면으로의 순례여행이기도 했다. 나를 믿어주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고, 그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좌절시키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나를 시험대에 올리듯 떠난 여행이었다.

인생의 틈,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할 때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내가 믿지 못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내게 순례길 그 이상으로 다시 다가서봐야하는 길,이라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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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내리는 지혜에 대해 생각했다. 제멋대로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그게 원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구름 위 어딘가에서도 턱수염을 기른 노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동전을 던진 후 어깨를 으쓱인 뒤, 열차 사고와 심장마비 들을 분해해서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지도 몰랐다. (307)

 

 

 

우리가 어떻게 삶에 매달리는지 생각하면 우습지. 새뮤얼 존슨이 이런 말도 했다네. 자기 삶에서 다시 살고 싶은 시간은 단 일주일도 없다고. 마이크, 난 나쁠 때보다 좋을 때가 더 많았고, 나쁜 때라고 해도 그렇게 지독하지는 않았네만, 그래도 새뮤얼 존슨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알 것 같아. 난 내 삶을 한순간도 반복하고 싶지 않지만, 기꺼이 잃어도 좋은 순간이 있다는 뜻은 아니라네. 다음에 오는 순간도 잃고 싶지 않아. 존슨 박사도 그랬을 거야. 우리는 그래서 계속 살아가는 거야. 그렇지 않나? 다음 물굽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고 싶어서. (347)

 

 

 

 

 

 

 

고민하며 서툴게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운명의 여신이 모든 것을 그의 무릎에 떨어뜨렸다. 태양이 동쪽 하늘을 기어오르는 오전 중반이었고, 그는 해변에서 일 킬로미터가 훨씬 넘도록 두 사람의 발자취 (흠, 배신자의 발은 땅을 딛는 법이 없었으니 그녀의 발자취라고 해야겠지만)를 충실히 따라간 후였다. 이제 배신자는 바다를 향해 휠체어를 놓고 앉아서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질긴 가죽 같은 피부로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  .......

켈러가 손을 놓자 배신자의 손이 한쪽으로 툭 떨어졌다. 켈러는 손을 다시 올리고 마치 잠든 츳한 모습으로, 햇빛의 따뜻한 포옹을 즐기는 도마뱀 같은 모습으로 두고 떠났다.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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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5-11-2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책감같군요. 제 이익은 다른 이들의 불운에서, 제가 다른 이들에게 가져다주는 슬픔에서 나옵니다. 94

모든것은 다 이어져 있어요. 아무것도 홀로 존재하지않고 아무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당신 이름마저도요. 94
 
명인명촌 - 우리의 맛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컬처그라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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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도 이제 조금은 깊은 맛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우리 선조들이 빚어낸 고유의 맛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간장을 만들어 놓고, 된장을 만들어 놓을 때 저게 뭐 별건가, 싶었는데 시커멓게 먹지 못하는 음식으로만 보이던 된장이 파는 된장보다 훨씬 더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된장국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이제 조금씩 어머니의 손맛을 배워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간장, 된장, 토종꿀, 식초, 매실, 수제 요구르트와 치즈, 참기름과 들기름, 토판 천일염, 토하젓, 조청, 하양주를 전통 방식으로 빚어내고 맛을 내는 장인들을 찾아 그들의 삶의 방식과 경제적 이익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들만의 전통적인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땅의 어울림, 바람과 햇살의 시간에 맡겨 자연적인 발효를 하는 여유와 기다림, 일일이 손으로 절구질을 하고 참나무를 때워 가마솥에서 휘휘 저으며 조청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니, 전통이라고 해서 그대로 보수적으로 옛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간장을 만들어내는 항아리는 천도씨 이상의 가마에서 구운 숨쉬는 독을 쓰지만 뚜껑은 속이 비치는 유리뚜껑을 쓴다. 햇볕이 좋은 날은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야 하지만 천개 이상 되는 항아리를 비 온다고 언제 다 닫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대적인 기술로 가능한 것은 그렇게 바꿀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현대적인 기술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청을 만들때도 기계에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기계가 다 알아서 해 주지만 그것과는 맛을 비교할 수 없는 손맛을 내는 가마솥 조청은 현대적인 기술이 해결해줄 수 없는 맛이다.

국산콩을 써야 하는데 무농약 국산콩을 구입하는 것도 어렵고 확실한 신뢰를 얻기도 어려워 직접 콩을 재배하고 그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 그렇게 하다보니 생산량이 한정될수밖에 없고 많은 이익을 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장인의 맛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날마다 자연속에서 날씨의 변화를 보고 하루도 쉴 틈이 없는 농사일로 고되고 힘들지만 결코 쉽게 가려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일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맛있고 믿음으로 먹을 수 있는 우리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씻어서 비닐봉투에 담아 파는 시금치를 사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동네에 가면 집에서 직접 농사짓는 할머니가 시금치를 판다고 그걸 사자고 하셨었다. 예전같으면 더 튼튼해보이고 깔끔해보이는데다 같은 값에 양도 더 많아 마트가 낫다고 했을텐데 들었던 시금치를 그대로 두고 나왔다. 책을 읽다보니 농약을 뿌려 더 크고 벌레먹은 흠이 없는 깨끗한 매실은 무지한 소비자가 사가고, 오히려 일본인들은 매실이 자연적으로 크게 되는 적정한 크기와 어떤 것이 더 건강한 것인지를 알아준다는 말이 나와 속으로 조금은 뜨끔했다. 명인명촌을 지키는 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그들이 빚어낸 훌륭한 맛을 알아주고 그 맛을 즐길 줄 아는 우리의 몫도 크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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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다리 산책
이종근 지음 / 채륜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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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집 근처에는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지역의 특성상 비가 내릴 때만 물이 차는 하천은 평소에는 항상 말라있는 건천이어서 굳이 높은 다리가 필요하지 않아 다리 흉내만 내는, 실질적으로는 이십여미터를 시멘트로 발라 길을 만들어놓은 것뿐인 다리는 배고픈 사람의 홀쭉한 배마냥 가운데가 휘어들어가 있어서 배고픈 다리였다. 비가 오면 물이 깊고 물살이 빨라져 위험한데 그것을 모르고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명이 빨려들어가 죽을뻔한 사고도 기억하고 있다.  그곳이 지금은 복개공사가 이뤄져 하천은 사라지고 수많은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다리는 구름다리이다. 산에서 흐르는 하천이 바닷물과 만나는 바닷가에 가로놓여진 구름다리는 나무판자들을 줄로 엮어서 이어놓은 다리여서 가운데쯤 가면 흔들거림때문에 무서워서 건너기가 쉽지 않은 다리였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바닷물로 뛰어들며 수영을 하고 놀았던 재미있는 놀이터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다리 역시 지금은 좀 더 튼튼하게 다시 놓여서 - 옛 정취를 살려 여전히 살짝 흔들거리는 구름다리 그대로이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어버려 한적하게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이런 다리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이 땅의 다리 산책]을 보니 너무나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에 있는 명승지 다리, 낭만적이고 이쁜 다리,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돌다리 등 수많은 다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글을 읽기보다는 그저 다리 구경에만 여념이 없었다. 가장 이쁠 때를 기다렸다가 쵤영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 다리의 사진들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첫번째 소개된 다리가 부산의 영도다리여서 - 솔직히 나는 영도다리가 어떤 다리인지 처음 알았는데 동양 최초,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식 다리라고 한다. - 이 책이 이런 건설용 다리, 그러니까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긴다는 잠수교 같은 그런 다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현대식 다리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리에 얽힌 스토리와 추억이 있는 곳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한때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가 있다면 얼마나 생활이 좋아질까, 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딴섬은 아니어서 비행기와 배를 타고 육지 나들이를 할수는 있지만 천재지변으로 하늘과 땅길이 막혔을 때 다리가 있다면 자동차로는 길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그런 현대적인 것은 잠시 담아두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른 다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라는 건 그저 길을 건너는 것, 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저 아름다운 다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다리가 놓여있게 된 스토리를 알고 나면 더 많은 애정이 생겨나고 의미깊어지는 것이다.

이쁘고 잘난 형제들과는 달리 못난데다가 잘하는 것도 없는 막내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릴때부터 다리밑에서 줏어온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고 한때는 정말 심각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기도 했었는데 이 책의 말미에 그 이야기가 나와서 혼자 웃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다리들을 찾아가보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쁜 연꽃이 피었을 때 연화교를 걷고 싶고, 상큼한 개나리가 피고 수양버들이 늘어졌을 때 영산 만년교를 걸어보고 싶고, 눈이 쌓여있는 선암사의 승선교 쌍무지개 다리를 걸어보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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