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다리 산책
이종근 지음 / 채륜서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우리 집 근처에는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지역의 특성상 비가 내릴 때만 물이 차는 하천은 평소에는 항상 말라있는 건천이어서 굳이 높은 다리가 필요하지 않아 다리 흉내만 내는, 실질적으로는 이십여미터를 시멘트로 발라 길을 만들어놓은 것뿐인 다리는 배고픈 사람의 홀쭉한 배마냥 가운데가 휘어들어가 있어서 배고픈 다리였다. 비가 오면 물이 깊고 물살이 빨라져 위험한데 그것을 모르고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명이 빨려들어가 죽을뻔한 사고도 기억하고 있다.  그곳이 지금은 복개공사가 이뤄져 하천은 사라지고 수많은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다리는 구름다리이다. 산에서 흐르는 하천이 바닷물과 만나는 바닷가에 가로놓여진 구름다리는 나무판자들을 줄로 엮어서 이어놓은 다리여서 가운데쯤 가면 흔들거림때문에 무서워서 건너기가 쉽지 않은 다리였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바닷물로 뛰어들며 수영을 하고 놀았던 재미있는 놀이터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다리 역시 지금은 좀 더 튼튼하게 다시 놓여서 - 옛 정취를 살려 여전히 살짝 흔들거리는 구름다리 그대로이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어버려 한적하게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이런 다리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이 땅의 다리 산책]을 보니 너무나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에 있는 명승지 다리, 낭만적이고 이쁜 다리,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돌다리 등 수많은 다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글을 읽기보다는 그저 다리 구경에만 여념이 없었다. 가장 이쁠 때를 기다렸다가 쵤영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 다리의 사진들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첫번째 소개된 다리가 부산의 영도다리여서 - 솔직히 나는 영도다리가 어떤 다리인지 처음 알았는데 동양 최초,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식 다리라고 한다. - 이 책이 이런 건설용 다리, 그러니까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긴다는 잠수교 같은 그런 다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현대식 다리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리에 얽힌 스토리와 추억이 있는 곳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한때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가 있다면 얼마나 생활이 좋아질까, 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딴섬은 아니어서 비행기와 배를 타고 육지 나들이를 할수는 있지만 천재지변으로 하늘과 땅길이 막혔을 때 다리가 있다면 자동차로는 길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그런 현대적인 것은 잠시 담아두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른 다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라는 건 그저 길을 건너는 것, 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저 아름다운 다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다리가 놓여있게 된 스토리를 알고 나면 더 많은 애정이 생겨나고 의미깊어지는 것이다.

이쁘고 잘난 형제들과는 달리 못난데다가 잘하는 것도 없는 막내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릴때부터 다리밑에서 줏어온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고 한때는 정말 심각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기도 했었는데 이 책의 말미에 그 이야기가 나와서 혼자 웃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다리들을 찾아가보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쁜 연꽃이 피었을 때 연화교를 걷고 싶고, 상큼한 개나리가 피고 수양버들이 늘어졌을 때 영산 만년교를 걸어보고 싶고, 눈이 쌓여있는 선암사의 승선교 쌍무지개 다리를 걸어보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