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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산티아고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1월
평점 :
오랫만에 읽어보는 것 같다. 산티아고 여행기는. 그러니까 한때 산티아고 순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 나 역시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서 '산티아고'길을 걸었다는 에세이는 기회가 닿는한 거의 다 읽어보곤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순례의 길은 걷지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부러워하고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씩 현실성을 띄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부터 준비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에서부터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알아채버렸었다. 내 안에 있는 열망보다 더 큰 두려움이라는 것의 존재를.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마음이 시들시들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그렇게 고된 길을 왜?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부터 산티아고는 아득히 멀어져만 갔는데...
왜 갑자기 다시 산티아고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두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내 안 깊숙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지금 여기'라는 말에 혹했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걸 다 내려놓지 못해 나 자신이 정말 잘 해내지 못하고 실패한 듯이 보여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산티아고를 마음으로 걷게 되었다.
이 책은 다른 산티아고 책들보다 이쁘다는 건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쁜 사진이 많이 담겨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겠지만 그냥 보기에도 할머니 등에 업혀 방긋거리는 아기의 모습, 순례자들을 위한 쿠키와 사탕 바구니, 누군가에게는 길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들녘의 바람, 뒷모습에 보이는 부부의 사랑....
글을 읽다보면 나도 바로 따라 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산티아고를 걷는 모두는 누구나 다 각자의 체험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과 날씨, 환경에 따라 그날 그날의 경험과 하루의 감상이 달라질것이다. 그런데 그 각각에서 또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 삶의 여정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 성공, 실패, 좌절, 행복... 그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축복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그런 체험이야기에서 나 역시 간접적으로 나의 삶과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저자는 혼자 길을 걷기를 소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 대부분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길을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에 동의하면서도 온전히 혼자가 되어 걷는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나로서는 또한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는데 나였다면 과연 그 기나긴 길을 어떻게 걸어갔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두 발로 그 길을 걸었지만, 그것은 내면으로의 순례여행이기도 했다. 나를 믿어주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고, 그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좌절시키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나를 시험대에 올리듯 떠난 여행이었다.
인생의 틈,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할 때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내가 믿지 못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내게 순례길 그 이상으로 다시 다가서봐야하는 길,이라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