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지 않아 매일 먹고 싶어지는 구움과자
마오 슈엔훼이 지음, 김수정 옮김 / 윌스타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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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지않아 매일 먹고 싶어지는" 구움과자,를 펼치는 이유는 말 그대로 '달지않아' 때문이다. 사실 달지 않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버터가 들어가는 구움과자가 달지않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죄책감 비슷한 마음을 좀 눅일 수 있는, 입에서 단맛이 조금은 적게 느껴지는 맛있는 스콘이 많은 것을 보고 이번에는 정말 베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다. 오븐을 구입하고 싶지만 부엌의 공간이 안되는데다 아직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베이킹을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강하게 아쉬운 것이다. 


베이킹을 해보지 않은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베이킹 과정 설명은 사진과 함께 알기 쉽게 되어 있어서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각 과정에서 초보자에게 필요한 메모가 팁처럼 담겨있어 베이킹 전문가의 노하루를 배울 수 있고 모양을 이쁘게 내기 위한 포인트도 있다.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구움과자를 제대로 보관하는 법,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데 갓 구운 스콘을 뜨거운 상태보다 한 김 식고 속이 따뜻한 상태에서 먹는 것이 좋고 상온에 보관된 스콘을 토스터기에 데워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스콘은 너무 퍽퍽하거나 바삭거리기만 하거나 간혹 너무 질척거리기도 해서 잘 먹지 않았었는데 동네 까페에서 정말 맛있게 구워서 자주 사먹곤 했는데 다음에 한번 살짝 데워 먹어봐야겠다. 


홍차맛 쿠키도 좋아하는데 진한 향을 내기 위해 리큐어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구움과자에 필요한 재료나 베이킹 도구도 짧게 설명되어 있고 구움과자를 보관하는 법에 대한 칼럼 외에도 구움과자와 어울리는 그릇과 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일반 상식 이상으로 도움이 된다. 가장 기본이라는 마들렌에서부터 파운드케이크, 스콘에 이어 그래놀라까지 다양한 구움과자 베이킹이 담겨있는데 보면 볼수록 오븐을 구입해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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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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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왜 제목을 '한류미학'이라고 했을까 궁금해진다. 제목만을 봤을 때 왠지 한류에 편승하는 역사서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미학' - 한국 고유의 미,에 대한 글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우리 유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단순히 보기에 화려하고 멋진 장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용성과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봐야한다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구석기 시대의 투박한 돌도끼도 달라보일 수 있다. 오래전에 선사시대의 돌도끼와 그저 우연히 도끼처럼 날카로운 모양이 된 것은 당연히 구분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같은 평범한 눈으로는 절대 알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얼핏 했었던 기억이 난다. 

미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빗살무늬토기이다. - 이 이름 역시 일본인 학자가 지은 것으로 그릇의 용도나 실용성에 대한 언급은 없이 오로지 빗살무늬에만 집중하게 해버렸다는 것에 새삼 학창시절 국사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뾰족한 그릇의 밑둥을 보면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냐는 물음에 다들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잘 정리해주고 있듯이 해안가에서의 생활, 모래사장에 쉽게 세울 수 있는 주거환경에 최적화된 형태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알수록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지게 된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를 해도 그들의 화려하고 기교가 들어간 무늬 장식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디자인과 실용성이 강조되는, 그래서 얼핏 보면 너무 밋밋해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단순하고 소박한 미의 아름다움이 화려함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많은 유물들에 대한 조형적 아름다움과 실용성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백제전돌은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도 활용을 했으면 좋겠다. 보도블록이나 기와가 백제시대의 아름다운 문양이라면 길을 걸을때도 괜히 운치있을 것 같지 않은가.

우리문화유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좋은데 그 아름다움을 설명해주고 있어서 더 좋았다. 두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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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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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급하게 책장을 덮으며 느낀 첫 마음은 '이건 뭐지?'같은 약간의 정체불명스러운 혼란이었다. 애써서 뭔가 '진실'이라는 것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이 소설의 줄거리와 그 흐름, 그리고 결말을 생각해봤다.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여기서 무엇을 끄집어내야하는지 따위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보여지는 이야기를 바라보려 해 봤다. 일본에서 올해 서점대상 수상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라는 기대치를 버릴수는 없다는 생각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것이 이 소설을 읽은 순수한 느낌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화목하고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던 사라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집을 떠나버린 후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이모가족과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사촌을 피해 늘 공원에서 늦게까지 앉아있다가 돌아가곤 하던 사라사는 어느 날, 그곳에서 로리콘이라 소문이 난 남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 그 남자는 후미라는 대학생이며 그의 집에서 지내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 사라사는 이모집으로 가지 않고 후미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로운 동거생활과는 달리 세상의 시선은 소아성애자인 후미가 사라사를 유괴해 감금시킨 것이 되었고 그로인해 후미는 옥살이를 하고 사라사는 보육원에 보내진다. 이후 그녀, 사라사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로리콘이라는 오해를 받는 후미는 로리콘이 아니었고 범죄자도 아니다. 후미에게 상처는 커녕 오히려 위안을 받은 사라사 역시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이야기의 화자는 대부분 사라사여서 가끔 그녀가 자신의 상처에 대해 드러내지도 못하고 견뎌내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속에서 더욱더 현실적인 편견과 거부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범죄자로 한번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 가해지는 의심의 시선, 겉보기에 멀쩡해보이지만 실상 폭력을 가하며 집착하거나 성추행과 성폭력을 행하는 인간쓰레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또 어쩌면 모두에게 행해지고 있는 2,3차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오해를 받은 사라사와 후미가 성인이 되어 결국은 행복해졌다, 라는 단순한 이야기일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뜻밖의 전개에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금세 읽을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첫번째 읽었을 때의 감상과 두번째의 감상,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의 환경이나 세상의 편견과 의식이 바뀌면서 사라사와 후미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느껴질테니까. 물론 지금 현재는 사라사와 후미가 유랑하는 달의 모습에 비견되는 떠돌이 생활에 만족해야하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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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쉽게 세울 수 있는 빗살무늬 토기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체로 용도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물을 따르는 용기는 주전자라고 하고, 물을 따라 마시는 용기는 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컵에 장미무늬가 있다고해서 장미무늬 용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용도는 물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빗살무늬 토기라는 이름은 좀 이상합니다. 구조나 용도를 반영하지 않고 표면에 있는 무늬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그릇류의 유물들 이름을 정할 때는 표면의 그림이나 색채 등을 이름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자나 백자, 분청사기 등이 그렇게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 도자기들을 보면 용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빗살무늬 토기는 형태만 봐서는 구체적인 용도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이름이 용도나 구조를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이 토기에 붙은 이름은 구조나 용도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못할 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그릇 표면의 장식으로 가둬 버립니다. 그래서 빗살무늬 토기를 보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토기의 용도나 구조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시선이 토기의 표면 장식에만 머무르다 떠납니다. 이런 그릇을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 유물은 박물관의 진열장을 채우는 차가운 물체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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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적은 민주주의
가렛 존스 지음, 임상훈 옮김, 김정호 추천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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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수결의 폭력,이라는 말이었다. 민주주의가 가장 완벽할 것 같지만 현명한 판단과 대다수의 판단이 동일하다고 볼수는 없는 것이며,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이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진 후 결론을 내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 부분이 배제되면서 다수결의 폭력이라는 말이 나온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부분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정말 도발적이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본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젠가부터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에 따라서 치매에 가까운 노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해야한다거나 성숙한 정치적 인식을 할 수 있는 십대들에게 투표권을 줘야한다거나 (쓰고보니 이 둘의 맥락이 같은 말인 듯 하지만) 하는, 주권을 가진 모두에게 평등하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제한을 두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 제한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다면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바, 학력이 높거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일부 제한된 (저자의 제안은 상원에 한정해 대학학위 소지자에게만 투표권을 준다는 등의) 투표권에 대한 내용과 민주주의는 상충되는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10%적은 민주주의인 것을 이해하게 되지만.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정치와 권력이 먼미래를 봤을 때 중요한 것은 알지만 과연 모든 유권자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제대로 된 정치인에게 투표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제한된 투표권에 대한 의견으로 기울어지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임기가 길수록 더 책임있고, 근시안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이상적인 것은 누구나 미래를 보고 정책을 세우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임기동안 내세우려는 성과에만 급급해 정책만이 아니라 우리의 지구환경까지 말아먹는 것을 보면 말이다.


10%적은 민주주의 - 그러니까 적절한 분량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찌보면 말도안되는 소리인 것 같지만 또 절대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 '적절한 분량'이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어떤 근거로 측량할 수 있겠는가가 또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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