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체로 용도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물을 따르는 용기는 주전자라고 하고, 물을 따라 마시는 용기는 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컵에 장미무늬가 있다고해서 장미무늬 용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용도는 물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빗살무늬 토기라는 이름은 좀 이상합니다. 구조나 용도를 반영하지 않고 표면에 있는 무늬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그릇류의 유물들 이름을 정할 때는 표면의 그림이나 색채 등을 이름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자나 백자, 분청사기 등이 그렇게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 도자기들을 보면 용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빗살무늬 토기는 형태만 봐서는 구체적인 용도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이름이 용도나 구조를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이 토기에 붙은 이름은 구조나 용도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못할 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그릇 표면의 장식으로 가둬 버립니다. 그래서 빗살무늬 토기를 보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토기의 용도나 구조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시선이 토기의 표면 장식에만 머무르다 떠납니다. 이런 그릇을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 유물은 박물관의 진열장을 채우는 차가운 물체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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