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의 이 한 마디 - 단군에서 김구까지
김경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철학의 이 한 마디'가 책 제목이라니. 정말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이군요. 그런데 책 표지역시 암울하네요. 갑자기 철학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져버립니다.

이 책을 권한 사람이 숨은아이님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철학을 팔아먹는 책인가..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을지 모릅니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철학책을 누가 읽겠어요.

그런데 이 책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주는군요. 저자의 책 머리말을 읽으면서 겉보기로 판단한 선입견이 말끔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복잡하게 소개하기보다는 철학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전하려 했습니다. 지식을 쌓고 싶어서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느끼고 싶어서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느낀 점은 제 삶을 되비추는 반성의 거울이 되었고,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냉철한 지식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만드는 데 소용이 닿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과거의 철학을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현재의 삶을 음미해 보도록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도 결국은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 책은 한 마디의 말속에서 삶을 되비추고 사회를 바라보는 삶의 글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철학'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고리타분한 옛글이라고 생각이 되면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저자가 아니었다면 많은 말들이 그저 과거의 책속에 박혀있는 박제된 글로만 남아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 또한 저자의 바램처럼 많은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깁니다. 살아있는 삶의 글이 많이 읽혀야하는거 아닌가요?

오래전에 읽은 책을 이제야 정리하려니 전체적인 느낌밖에 쓰지 못하겠네요. 단군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많은 인물들의 삶과 중첩되어 저자의 삶 이야기도 나오고.. 그 삶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삶의 모습도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는 기억은 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역사속의 인물을 책속에 박힌 낡아빠진 박제로 만나지 않고 삶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우리 모두는 시궁창 속에 있지.
하지만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네"
- 오스카 와일드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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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3-1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읽었어요. ㅠ.ㅜ 따스한 리뷰 고맙습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막상 책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왜 조제만 떠오르는 걸까? 의문이 생긴다. 책을 읽으면서는 다른 여자들에게 더 눈길이 갔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선물받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엄청 좋다는 평이 난무할즈음에 읽어보고 싶다는 내 말에 후배가 보내줬다. 어쩌면 요즘들어 소설책 사는 것을 등한시 하는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는 후배가 없었다면 이유없이 멋지구리한 책 표지를 가진 책을 볼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첫 단편의 제목처럼 '어렴풋이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은 알 듯하지만 온전히 빠져들 수 없다는 것이 아마 내가 갖고 있는 나의 강박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이를 많이 먹고 여러 경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고방식이 철없는 아이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이런 책을 읽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뭔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라고 하면, 조제가 이유없이 조제인 것처럼 나도 이유없이 처음 읽어본 다나베 세이코란 사람의 글이 좋다, 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버려야겠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영화를 보면서 츠네오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조제는 꿋꿋이 길을 가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조제와 츠네오가 헤어졌다고 해서 조제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에 나오는 여러명의 여자들... 동생의 남자에게 다른 마음을 품게 되는 여자든, 조카를 사랑으로 유혹하는 여자든 유부남을 사랑하는 여자든.. 그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을 진작에 던져버렸을지 모른다. 내가 어찌 행복하지도 않는 그들을 이해하겠는가.

"나는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면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펼쳐든다. 그리고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 해도 그걸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무지한 나는 그냥 머리를 두 팔로 감쌀 따름이다. 어려운 이론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작품해설, 야마다 에이미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는 야마다 에이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느껴지게 될지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신을 더 사랑하는 그녀들에게 누가 돌팔매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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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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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세기말, 잠든 감성을 일깨우는 가슴 아픈 동화!"

- 가위손의 감독, 팀 버튼이 노래하는 우리 시대의 슬픔

사랑하지만 사랑 받지 못하는 이,
함께 있어도 언제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
가슴저린 아픔으로 세상에 등을 돌린 이,
그 외로운 영혼들에게 보내는 우울한 동화!

차마 버리지 못한 띠지에 적혀 있는 현란한 광고문구들이다. 아, 뒤쪽에도 또 있다.

외로운 굴 소년의 영혼에 바치는 사랑의 시.......

메모처럼 적는 리뷰에 다른 제목을 적어놓기는 또 오랫만이다. 이 책을 받은 날, 항상 점심을 같이 먹던 직원은 일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고 나는 혼자 안에서 라면을 끓여먹은 기억이 난다.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고, 점심을 굶기에는 덜 귀찮은 그런 날, 혼자 라면을 먹으며 책 한권을 읽어버렸다.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책 한권을 다 읽을 때까지 라면을 먹었다. 그릇에 덜어놓지도 않고 냄비하나, 김치 그릇하나 달랑 꺼내놓고 책장을 넘겨가며 읽다가 <굴 소년의 외출> '할로윈 날에 굴 소년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이것이 팀 버튼 동화의 끝임을 알고, 굴 소년의 마음과는 별 상관없는 라면을 먹고 뭔가 내려가지 앉는 느낌으로 설거지를 하고 책상에 앉아 다시 책을 펴들었다. 리뷰를 쓰려고 하는 지금 다시 책을 펴들고 또 하나하나 읽은 것처럼.

나는 이 동화들이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우울하기도 했던가? 아마도 혼자 끓여먹은 라면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안붙여도 좋을 뱀다리.. 나는 <마른가지 소년과 성냥 소녀의 사랑> <노려보는 소녀>가 조금 더 맘에 들었다. 왜냐, 내겐 뜨거운 열정, 아니지. 미지근한 열정조차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 열심히 노려보는 건, 눈이 아픈 일인데. 안그런가? 하...하...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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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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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전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가? 진실에서 진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p18)

책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없이 덜컥 사버린 책. 많은 사람의 추천도 있었고 '바람의 열두 방향'이라는 제목이 특히 더 맘에 들어 덜컥 구입은 했지만 막상 도착한 책을 보니 선뜻 읽히지는 않았다. 책을 받고 나서야 단편임을 알아챈 이유도 있고 어렴풋이 반지전쟁 비스무레한 책으로만 여겼던 내 탓은 더 컸다. 
소설은 분야를 가릴 것도 없이 주어지는 대로 읽는 나지만 그래도 선호하는 분야는 나름대로 있기에 평소에 내가 즐겨 읽는다고는 할 수 없는 SF를, 그것도 60-70년대 쓰여진 책을 읽는다니...
한달은 넘게 처박아 두기만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열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연휴즈음 인사를 다니기 위해 장시간 차를 타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길것이라 예상된 날, 서둘러 가방을 챙기다 짧게 읽을 수 있는 책, 작고 가벼워서 작은 가방에 담을 수 있는 책을 급히 고르다 바람의 방향이 내게로 불었는지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다. 가볍게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가볍게 읽으려는 내 마음은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샘레이의 목걸이를 읽을때까지만 해도 '어? 이건 뭐냐?'라고 멈칫했지만 파리의 4월, 명인들... 이름의 법칙....땅속의 별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점점 더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짓누른다. 인간에 대해, 탐욕과 이기주의에 대해, 고독에 대해,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본질'에 대한 질문을 자꾸만 던지는 것 같아서.

나는 도저히 그 광범위하고 깊이있는 르귄의 글에 대해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삽십년도 더 전에 쓰여진 그의 글들이 지금 읽어도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광고문구가 허튼말은 아니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노트에 빽빽하게 옮겨적은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도 다양한 주제들을 이야기했었나, 새삼 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눈에 번쩍 띄는 문장은 왜 "보잘 것 없는 인간 하나하나의 뇌가 별과 은하의 형태를 인식해 사랑으로 번역해 내쟎아요(372)"일까.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해 느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어서 그런걸까?
아니... 정말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바람의 열두 방향으로 끝없는 길을 나서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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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3-0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너무 긴 시간이 지난것 같다. ㅠ.ㅠ

깍두기 2005-03-0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르귄의 신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다음엔 어둠의 왼손을 읽어 보시지요.

chika 2005-03-0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그렇지요? '어둠의 왼손'이라구요? 네~ ^^

2005-03-0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5-03-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멋진 리뷰를 써내셨군요. 저는 반쯤 읽다 말았는데 언제 다 볼려나..

chika 2005-03-0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이어서 띄엄띄엄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아영엄마도 다 읽고 멋진 리뷰 써 주세요~ ^^
올리브님, 전도서 1장요? 호오~
 
바람의 열두 방향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구판절판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낯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외향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낯선 이를 만날 때는 어느정도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비록 스스로는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모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날 놀리고 내 자신에 대한 인상을 망가뜨리고 날 간섭하고 파괴하고 바꾸려는 게 아닐까? 저 사람은 나와 다르지 않을까? 그래, 그럴거야. 그리고 그게 무서운 일이다. 낯선 사람이 낯설다는 점. <아홉생명에서>-238쪽

하지만 난 이 친구가 외롭다고 생각해. 이 친구는 우릴 보지도 못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듣지도 못해. 그건 사실이야. 이 친군 전에도 다른 사람은 볼 필요가 없었어. 전에는 한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거든. 자기 자신만 보면 됐어. 평생 다른 아홉개의 자아와 말하고 살면 되었단 말이야. 이 친구는 외로울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이제 그걸 배워야 해. 시간을 좀 주자고.<아홉생명에서>-270쪽

그럼 클론을 만드는 건 모두 잘못된 거야. 그래선 안돼. 복제된 천재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우리의 존재조차 모른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아홉생명에서>-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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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3-0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사람이 낯설다는 건 정말 무서운일일까...
복제에 대한 글을 읽으며 느낀건, 아무리 똑같은 복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 존재에 대한 고유성은 복제될 수 없을것이라는 것... 자신안에 내재한 외로움은 나의 외향이 생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존재에 대한 고유성은 위대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당신'이 세상에 존재함도 감사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