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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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갔다가 내년 부제품을 준비하는 신학생을 만났다. 내가 그 신학생을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1학년때였으니 벌써 20여년이 지났구나. 어렸을때부터 본 녀석은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보이기 마련인지 정장 양복을 갖춰입고 성당에 나타난 신학생은 왠지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해보였는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저 멋있다는 칭찬만 할 뿐이었다. 선배의 조카로 알고 지내다가 성당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되어 만나고 이제는 머잖아 신부님으로 만나게 되겠지. 오늘 인사하면서 농담처럼, 부제품을 받고 나면 막말도 쉽게 못하니 못본척 피해다녀야겠다고 하며 웃었지만 어렵게 대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니 그런 말도 할 수 있는것이었겠지?

 

문득 그 신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주일학교 담당교사를 발표하는 시간에 내 이름이 호명되자 머리가 커진 녀석들은 '에이~'하면서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소리를 내뱉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던 녀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곤한다. 원리원칙을 따지고 열정은 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융통성을 찾기 힘들던 교리교사 시절,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과 대립하듯 날 선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가 내 모든 정성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쏟아넣던 때였음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있기 전에 어쩌면 그때의 아이들이 더 먼저 깨닫고 내게 다가와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언니, 누나라고 크게 부르는 녀석들을 보면 더 그런 확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맙다.

 

폴리나,는 내게 자꾸만 보진스키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폴리나의 이야기는 그녀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고통, 상처와 아픔, 노력과 새로운 도약의 삶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지만 그 지난한 세월속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이는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보진스키 선생님의 모습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후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커다란 감동으로 느껴졌고,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폴리나의 이야기는 여섯살에 유명한 보진스키 발레 아카데미에 입단테스트를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날 폴리나는 보진스키 선생님으로부터 뻣뻣하다는 말을 듣는다. '6살 때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 16살이 되어서 유연해질 수는 없는 법이지. 유연성과 우아함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은 폴리나의 발레 인생에 대해 의심하게 하지만, 특별 케이스로 그녀는 보진스키 선생님에게 발레를 배우게 된다.

"춤은 예술이다.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 댄서는 타고나는 거다. 그리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지. ...우아하고 유연해 보이지 않으면 관중들에겐 네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일거야"

보진스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폴리나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자신을 후회하게 만들지 말라는 엄격함은 폴리나가 그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고 춤에 대한 이해도 어렵게 할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자신의 춤에 대한 이해를 하기 전에 보진스키 선생님을 떠나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기 시작하면서 폴리나는 혼란을 겪고 그 과정을 잘 이겨내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과 실연은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갖게 한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놀라운 성장을 한 그녀는 비로소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데...

 

간결한 선과 인물의 묘사에서 예전과 똑같은 모습의 보진스키 선생님이 폴리나의 마음을 듣고난 후 묘사되는 백발과 주름진 얼굴은 그 기나긴 세월을 보여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는 여전히 어린 폴리나를 제자로 생각하며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내가 너와의 관계에서 모든 걸 망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위로한단다..."

어떻게 보면 그저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는 폴리나의 이야기는 격한 반전이 없지만, 그 짧고 무덤덤히 그려지는 컷은 무심히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섬세하게 감정 표현을 전달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컷 사이에, 조금은 생략되어있는 듯한 표현 사이에 전해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속에서 더 커다란 감동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폴리나를 읽으면서는 그렇게 폴리나와 보진스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바라보고 있지만, 두번 세번 읽어보게 될때는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한번 슬쩍 훑어보면서는 폴리나의 삶의 여정을 생각해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왠지 모르게 뒷부분으로 가면서 봇물터지듯 터져드는 감동이 폴리나를 다시 보게 한다. '나는 춤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라고 말하는 이에게도 추천을 해 주고 싶은 댄서 폴리나의 이야기는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은 처음 접해보지만 앞으로 또 그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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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 제니퍼소프트, SAS,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리더들
박상욱 외 지음, SBS 스페셜 제작팀 엮음 / 북하우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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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좀 흥분됐다.

사실 처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이런 책에는 좀 관심이 없는데,라는 마음과 더불어 내가 리더가 될 일은 없는데, 라는 마음이었다가 굳이 리더가 아니더라도 그 품성이나 자격조건들에 대해 알아서 나쁠것은 없다는 지극히 가벼운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었는데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 흥분으로 금세 책을 다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그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요즘 티비프로그램 중 하나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보장되는 꿈의 기업 입사프로젝트인 스카우트에서 장학금과 함께 사원증을 받는 학생들의 기쁨의 눈물을 보는 감동 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던 그 느낌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우리처럼 말로만 '가족같은 사원' '한식구'인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소개된 기업은 말 그대로 하나의 가족공동체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리더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우연히 티비에서 부탄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소년이 대통령이 직접 쓴 답장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장 가난한 나라지만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는 나라, 왕,이지만 평민 아내를 맞아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진정한 지도자...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과연 한 나라의 국왕이 지속적으로 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지켜봤었다. 그런데 리더의 조건을 읽고 나니,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들이 존재하고 있음에 괜한 감동을 받는다.

능력있고 카리스마 넘치고 통솔력과 결단력도 있어야 하고....리더라고 했을 때 내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단순한 그런 것이었는데 진정한 리더란 자신이 이끄는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철학은 곧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리더의 조건에 소개되고 있는 리더들의 철학은 회사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기업의 목적은 최대 이윤을 내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정리해고, 연봉삭감, 직원 복지예산 삭감 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던 틀에 박힌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진정 직원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직원의 복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회사의 이윤이 더 극대화된다는 것은 이 책에 소개된 기업들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할 때 리더의 철학은 빛을 발하고, 그 결과는 모두의 박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실제 통계자료와 설문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통용되는 문제이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흥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이런 대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규모가 아니라 리더의 철학에 따라 모두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복지실현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회사의 규모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부탄 대통령에게 모두가 감동하지만, 우리의 정치인이 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 또한 정치인에 대한 글을 읽는 내내 한숨만 내쉬었다.

직원의 가능성을 믿으면 회사도 성장하고,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리더가 꿈의 공동체를 이뤄낸다는 것에 감동받으며 희망을 갖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르게 소통하는 리더가 마음을 얻고, 리더가 버려야 하는 특권이 무엇인지,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지에 달려있으며 그것은 곧 부정부패없는 깨끗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들과 너무도 다른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면서 마음은 더 답답해졌지만.

책에 언급된 핀란드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전임대통령에 대한 특별예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일반 시민과 다름없는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되는 그들과는 너무도 다른 우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오래전에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착륙 후 아무런 안내도 없었는데 짐을 들고 내리려던 나를 승무원이 가로막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얼핏 보니 우리 고향 출신 국회의원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공무때문에 가는 것인지 개인적인 일로 가는 것인지, 아니 혹 공무로 출장을 갔다 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시급을 따지는 일이 아닌 한 다른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국회의원에게 길을 터 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자칭 리더라 하는 이들의 권력행사인 것이다.

 

리더의 조건은 새로운 세상이 비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비춰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과는 너무도 다른 우리의 현실에 답답해지는 분노를 주기도 했다. 정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철학도 없고 영혼도 없는 껍데기 리더들에게 이 책을 들이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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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 우리 내면에 숨은 무의식의 정체
김현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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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며칠동안 꿈을 꾸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엄청 긴 꿈을 꿨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꿈꾸었던 내용을 잊어버렸다는 것. 꿈에 대한 기억은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내용이 기억나고, 의식적인 그런 노력이 없으면 당연히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은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역시 내게 있어서 꿈은 무의식의 발현일뿐인것인지 의식적으로 떠올리려는 시도를 해 봤지만 흐릿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가끔 꾸는 꿈의 패턴에서 비슷한 현실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예를들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물에 대한 것인데, 꿈속에서 빗물이든 수돗물이든 내가 직접적으로 물을 만지게 되면 여유자금이 생긴다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돈을 친구가 갚는다거나 정기예금이 만기되었거나 뜻밖의 보너스 같은 수입이 생기게 되었을 때 그런 꿈을 꾼적이 많은 것 같은데, 나의 이런 체험이 있는데다가 우리 사무실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글귀, 그러니까 누구나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데 잠들기전에 고민거리나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잠들면 그것이 꿈에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를 보면서 '꿈'이라는 것을 무시할수는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숨은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나의 심리학적 이론서라기보다는 실제로 여러 사람들의 꿈 사례를 듣고 그 내용을 분석하면서 설명해주는 것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고 하나하나 개개인의 사연으로 엮인 꿈 이야기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각 주제와 내용별로 9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경우 주로 성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쳐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한쪽방향으로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이야기와 꿈 사례를 들려준 사람의 주위 환경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꿈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건강하고 밝은 생각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있어서 더욱 기꺼운 마음으로 쓱쓱 읽어나가게 된다.

 

꿈이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서로 다른 사람들의 꿈 간에도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의식은 잉여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연 내 꿈에서 나타나는 나의 무의식은 무엇인지... 내가 꿈꾼것과 비슷한 사례가 나오면 나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펼쳐들었지만, 내가 실제로 꿨던 꿈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슬며시 실망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이제부터 다시 내가 꿈꾸는 무의식의 발현을 주의깊게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물론 좀 더 나은 나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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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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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청률 때문에 종영되어버렸던 별순검이 생각난다. 나는 무척 흥미롭게 봤던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좀 놀라웠지만 그것을 즐겨보던 매니아층이 생겨났고 케이블이긴 하지만 후속 시리즈가 나와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는 그 시간에 그 드라마를 보는 것이 어려워 결국 후속 시리즈는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최근들어 조선시대의 미시사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다양한 주제로 접근하는 조선 이야기책을 좀 읽었는데, 접근할 수 있는 기록들이 조금은 한정되어 있어서인지 똑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의 명탐정들'에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반인륜적인 사건 사고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이라기보다는 미궁에 빠져드는 사건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희대의 엽기적이고 비도덕하고 반인륜적인 패륜아의 사건이라 일컬어지던 사건도 그 끔찍함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결국은 죄가 밝혀지고 그 과정에서의 논리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세종대왕에서부터 정조, 정약용처럼 잘 알려진 사건의 해결사도 나오지만 의외로 연산군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산군에 대해서는 역사적 재평가를 할만한 부분이 없다면서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연산군에 대한 의외성에 대한 언급은 조금 놀랍기도 하다. [조선의 명탐정들]은 이렇게 조선 시대의 널리 이름이 알려진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기록에서조차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서흥 부사에 이르기까지 16명의 명탐정이 미궁에 빠져들거나 거짓판결이 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16명의 명탐정 이야기지만 사건은 13가지가 언급된다. 조선의 투캅스로 비유된 사건과 여럿이 함께 두뇌를 맞대고 사건을 해결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각 사건의 말미에는 소설로 만나볼 수 있는 비슷한 유형의 탐정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서 실제 사건 해결의 사실적인 부분들에 더하여 비슷한 느낌의 소설 속 인물을 만나볼수도 있다.

별순검에 대한 기억때문인지, 사실적인 사건을 좀 각색하여 흥미롭게 써내려갔으면 훨씬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또 모든 것은 호기심으로 시작해 사건의 해결을 짜맞추기하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니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조선시대의 사건사고와 그 해결방법,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 개입되어 진실을 은폐하기도 하는 권력과 속임수까지... 예나 지금이나 억울한 사람들은 생겨나고, 언젠가 그들의 진실은 밝혀지리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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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과 나의 일상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3시의 나]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느끼게 되었어. 사실 나는 평소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이잖아? 그래서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걸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면 책을 읽게 되더라'고 말을 하면 다들 한마디씩 하곤 해. '네가 책을 좋아하는게 아니면 누가 책을 좋아하는거냐?'라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책을 그렇게 읽을 수 있냐고 묻는데, 가만 생각해봐.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날마다 밥을 먹을 수 있어? 라고 물으면 그 대답에 진지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책이란 것이 그런거라고 생각해.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가 불러도 밥을 더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때로는 입맛이 없어서 건너 뛰기도 하고.

그래도 다들 밥과 책은 다르다고 해. 물론 다른거야 맞지. 하지만 '3시의 나'를 읽고 나면 '책'이라는 것이 꼭 문학이라거나 인문학이라거나 어려운 것을 읽지 않더라도 조금씩 재미있게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내 생활의 변화가 생겨날 때, 어느덧 내 옆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가 1년동안 매일 오후 3시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답게 글과 일러스트로 그 기록을 남겼다. 처음의 결심을 뭔가 한가지를 하기로 결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아서 일정한 시간에 날마다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기로 생각을 바꿨고 그 결과물이 바로 `3시의 나`인 것이다.

일기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같지만 하루하루는 또 날마다 새롭다. 그리고 또 그것은 1년이라는 시간속에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후 3시의 기록 역시 그날 하루하루의 일상은 별것아닌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일들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서 오늘의 3시를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대충 그려넣은 듯한 일러스트와 별것도 아닌 일상의 기록이 아주 재미있지만은 않지만, 작가의 기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자신의 기록을 그려보게 된다. 한동안 날마다 같은 시간, 그러니까 시간이 되는 대로 쓰던 일기를 저녁 11시에 맞춰 쓰게 되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게 되었던 시간은 내게 그날 하루의 특별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3시의 나`는 그것으로도 큰 의미가 되어준다. 하루하루의 일기가 시들해져갈즈음, 나도 프로젝트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해볼까...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러면 아마도 날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똑같은 일상인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만큼 나의 일상이 소중해지고 좀 더 애정어린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리라는 것도 기대하게 된다. 왠지 생각만으로도 설레이게 되는 그런 마음은 `3시의 나`가 전해준 기분좋은 느낌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3시를 기록하게 되면서 나의 하루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거야.

그런데 저 초라하고 조악하게 생겨먹은 잡목그림 보이니?

[3시의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답게 일러스트가 한가득이야. 그래서 나도 조금씩 그림일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뭔가 좋은 거 없을까 막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이 책을 발견했지. [일러스트 레슨]

 

'일상을 바꾸는 즐거운 그리기'가 부제로 되어 있을만큼 정말 일상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만 같아.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미즈타마의 그리기 노하우가 담겨있는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따라 그리고 싶어지는 귀여운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를 그려넣음으로써 표현이 풍부해지고 메모 한 장이라도 괜히 더 정성스럽게 써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 꼭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 책의 한쪽 공간에 따라하기도 나와있고, 일러스트를 찻잔받침이나 카드, 포장지에 활용하는 법도 나와있고 그래서 완전 다양하게 써먹을 수가 있는거야.

왠지 너도 따라해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지 않니? 난 책을 보는 순간 막 그렇던데.

그래서 3시의 나,는 자꾸만 이렇게 캐릭터들의 집합장소가 되어버리고 말기도 해. 앗, 근데 실제 책에 나온 일러스트 캐릭터들은 완전 귀여워. 나의 엽기스러운 작품들을 보면서 실망하면 큰일나는 거 알지?

 

 

 

 

 

 

 

 

 

 

 

 

 

이건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야? 일상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야, 뭐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돼? 날마다 책읽기가 쉬워? 라면서 '나는 책과는 담 쌓았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들고 조금씩 자신의 생활과 책의 이야기를 섞어보기 시작해 봐.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가지 않을까? 내 연습지가 쌓여가듯말야. ㅋㅋㅋ

 

 

 

 

 

 

책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보물지도'야. 내 안에 있는, 또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보물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지도. 어떤 보물지도를 갖게 될지, 같은 보물지도를 보면서도 각자가 얻는 보물은 또 다를지도 모르고, 내가 미처 해독하지 못한 보물지도는 시간이 흐른 뒤 엄청난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는 그런.

그리고 [3시의 나]를 읽은 후에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구나. 너도 알지? 내 카톡 프로필에 있는 문구말야.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그렇게 나는 변화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야.

그러고보니 어느 덧 올 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네.

2013년, 올 한해를 생각하면 넌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금방 떠오르는 게 없는거야. 나는 정말 단순해서 오늘 드라마 '상속자들'이 결국 마지막회를 맞이하는구나, 라는 생각만 떠오르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니.

사실 상속자들 보면서 주인공은 김탄과 차은상인데 왜 나는 자꾸만 최영도가 멋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그 절정은 영도가 내뱉은 대사가 아크라 문서의 인용문이라는 걸 알면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너도 그거 아니?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말야.

"그대의 적은 손에 칼을 든 채 그대와 맞선 사람이 아니라 등 뒤에 칼을 숨기고 그대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 대사는 최종회를 앞두고 어제 김회장이 쓰러지면서 칼날을 숨기고 있던 호적상 부인 (그녀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권력과 재산때문인거지) 제국학원이사장이 반역을 도모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어서 더욱더 영도의 그 대사가 완전 마음에 남아버리는거야.

 

 

 

아니, 그런데 책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드라마 얘기만 하고 있냐고? ㅎㅎ (알잖아, 나 뜬금 대마왕인거. ^^)

 

근데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도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왔다고.

 

제국고등학교 아이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토론 수업을 하고, 김탄이 차은상을 생각하며 '꼭 같이 사는 것처럼'이라는 시집을 읽고, 잠적해버린 차은상이 서점 알바를 하면서 '원더보이'를 읽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니?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품인 책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있는 복선, 암시, 은유...로 다가오는 책들이야.

드라마 한 편도 이러한데 2013년, 한 해를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나 개인적으로만 봐도 어머니가 드디어 퇴원을 하셨고, 조카는 대학생이 되어 미쿡으로 들어갔고, 독자모니터링한 책이 두 권이나 출판되어 나왔고.... 그런데 이 연결되지도 않는 것 같은 짧은 문장 하나 만으로도 나의 주변 환경이 좀 그려지는 것 같지 않아?

그런데 나는 얼마전에 한 해를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역사인문서를 한 권 읽었어.

 

 

역사인문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흔들어대니 당연히 읽어볼 생각도 안했겠지? 그런데말야 이 책은 니가 틀에 박혀 생각하는 그런 역사책이 아니라는거, 모르지?

 

저자 플로리안 일리스는 1913년 당시 이 인물들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까지 고려하여 치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한다. 그는 3년에 걸쳐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신문 등 수많은 인물들의 방대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1913년 유럽의 한 해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냈다.

동시대의 유명한, 영향력있는 역사속 인물들은 모두 다 소환된 느낌이야. 그런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작품 출간되었다거나 프루스트의 역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출판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스물네살이 되었다거나 프로이트가 1인당 진료비로 그의 하인들이 받는 한 달 급료에 맞먹는 금액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게 뭐가 재밌겠냐고? 너는 '콜라주'라는 거 알지?

얼마 전에 피카소 샤갈 전에 가서 본 작품들 중에 판형이 커다란 콜라주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구석구석 각자 연관되지 않은 그림들이 마구잡이로 붙여진 것 같은데도 전체적으로 색감이 어울리고 하나의 통일된 작품처럼 느낌있게 다가오는거야.

[1913년 세기의 여름]은 바로 그 콜라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거지. 책을 읽어보면 너도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거야. 역사 인문이라고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읽어봐. 어쩌면 나보다도 더 이 책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지, 뭐. ^^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요. 나는 내가 본 것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고 배우고 성장하고 이해하고 하늘과 친해지라고 격려해요. 정말로 훌륭한 관측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우선 행성 관측부터 시작해야 해요. 거기서 인내심을 배울 수 있거든요. 시간을 충분히 주었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보는 법을 터득하는 걸 보면 정말 놀라워요. 시간, 시간, 시간, 이거야말로 관측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적 요소예요. 방정식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지만요."(84-85)

 

 

이건 우주를 느끼는 시간에 나온 말이지만, 왠지 책을 읽고 느끼는 시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아?

우연찮게 선물받은 [3시의 나]에서 시작된 나의 일상의 기록은 나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고, 문학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내 역사의 일부인 일상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떻게 날마다 책을 끼고 살아? 라는 물음은 정당하지 않은거야. 알겠지?

왠지 이제 머잖아 너도 책과 꼭 붙어 사는 사람이 될꺼같은데말야.(씨익)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좌절을 수없이 경험했지요. 우주는 늘 우리의 코를 납작하게 해요. 이제 뭘 좀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는 우리에게 분수를 깨닫게 해요. 하지만 우주는 아주 아름다워요. 우리는 허리케인에서 나선 구조를 보고,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에서도 나선형 소용돌이를 보고, 은하들에서도 나선 모양을 보지요. 이 모든 것은 자연에서 연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인데, 그걸 보면서 살아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고 느껴요. 모든 것은 아주 섬세한데,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수록 더 섬세한 게 보여요. 우리는 아주 경이로운 세계와 경이로운 우주에서 살고 있어요. 내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이고, 나는 단지 그것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우주를 느끼는 시간,128)

그러니까말야, 자, 일단은. 눈에 보이는 책의 세계부터 바라보기 시작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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