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과 나의 일상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3시의 나]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느끼게 되었어. 사실 나는 평소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이잖아? 그래서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걸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면 책을 읽게 되더라'고 말을 하면 다들 한마디씩 하곤 해. '네가 책을 좋아하는게 아니면 누가 책을 좋아하는거냐?'라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책을 그렇게 읽을 수 있냐고 묻는데, 가만 생각해봐.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날마다 밥을 먹을 수 있어? 라고 물으면 그 대답에 진지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책이란 것이 그런거라고 생각해.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가 불러도 밥을 더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때로는 입맛이 없어서 건너 뛰기도 하고.

그래도 다들 밥과 책은 다르다고 해. 물론 다른거야 맞지. 하지만 '3시의 나'를 읽고 나면 '책'이라는 것이 꼭 문학이라거나 인문학이라거나 어려운 것을 읽지 않더라도 조금씩 재미있게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내 생활의 변화가 생겨날 때, 어느덧 내 옆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가 1년동안 매일 오후 3시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답게 글과 일러스트로 그 기록을 남겼다. 처음의 결심을 뭔가 한가지를 하기로 결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아서 일정한 시간에 날마다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기로 생각을 바꿨고 그 결과물이 바로 `3시의 나`인 것이다.

일기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같지만 하루하루는 또 날마다 새롭다. 그리고 또 그것은 1년이라는 시간속에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후 3시의 기록 역시 그날 하루하루의 일상은 별것아닌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일들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서 오늘의 3시를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대충 그려넣은 듯한 일러스트와 별것도 아닌 일상의 기록이 아주 재미있지만은 않지만, 작가의 기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자신의 기록을 그려보게 된다. 한동안 날마다 같은 시간, 그러니까 시간이 되는 대로 쓰던 일기를 저녁 11시에 맞춰 쓰게 되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게 되었던 시간은 내게 그날 하루의 특별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3시의 나`는 그것으로도 큰 의미가 되어준다. 하루하루의 일기가 시들해져갈즈음, 나도 프로젝트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해볼까...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러면 아마도 날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똑같은 일상인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만큼 나의 일상이 소중해지고 좀 더 애정어린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리라는 것도 기대하게 된다. 왠지 생각만으로도 설레이게 되는 그런 마음은 `3시의 나`가 전해준 기분좋은 느낌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3시를 기록하게 되면서 나의 하루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거야.

그런데 저 초라하고 조악하게 생겨먹은 잡목그림 보이니?

[3시의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답게 일러스트가 한가득이야. 그래서 나도 조금씩 그림일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뭔가 좋은 거 없을까 막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이 책을 발견했지. [일러스트 레슨]

 

'일상을 바꾸는 즐거운 그리기'가 부제로 되어 있을만큼 정말 일상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만 같아.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미즈타마의 그리기 노하우가 담겨있는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따라 그리고 싶어지는 귀여운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를 그려넣음으로써 표현이 풍부해지고 메모 한 장이라도 괜히 더 정성스럽게 써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 꼭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 책의 한쪽 공간에 따라하기도 나와있고, 일러스트를 찻잔받침이나 카드, 포장지에 활용하는 법도 나와있고 그래서 완전 다양하게 써먹을 수가 있는거야.

왠지 너도 따라해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지 않니? 난 책을 보는 순간 막 그렇던데.

그래서 3시의 나,는 자꾸만 이렇게 캐릭터들의 집합장소가 되어버리고 말기도 해. 앗, 근데 실제 책에 나온 일러스트 캐릭터들은 완전 귀여워. 나의 엽기스러운 작품들을 보면서 실망하면 큰일나는 거 알지?

 

 

 

 

 

 

 

 

 

 

 

 

 

이건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야? 일상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야, 뭐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돼? 날마다 책읽기가 쉬워? 라면서 '나는 책과는 담 쌓았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들고 조금씩 자신의 생활과 책의 이야기를 섞어보기 시작해 봐.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가지 않을까? 내 연습지가 쌓여가듯말야. ㅋㅋㅋ

 

 

 

 

 

 

책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보물지도'야. 내 안에 있는, 또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보물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지도. 어떤 보물지도를 갖게 될지, 같은 보물지도를 보면서도 각자가 얻는 보물은 또 다를지도 모르고, 내가 미처 해독하지 못한 보물지도는 시간이 흐른 뒤 엄청난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는 그런.

그리고 [3시의 나]를 읽은 후에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구나. 너도 알지? 내 카톡 프로필에 있는 문구말야.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그렇게 나는 변화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야.

그러고보니 어느 덧 올 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네.

2013년, 올 한해를 생각하면 넌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금방 떠오르는 게 없는거야. 나는 정말 단순해서 오늘 드라마 '상속자들'이 결국 마지막회를 맞이하는구나, 라는 생각만 떠오르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니.

사실 상속자들 보면서 주인공은 김탄과 차은상인데 왜 나는 자꾸만 최영도가 멋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그 절정은 영도가 내뱉은 대사가 아크라 문서의 인용문이라는 걸 알면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너도 그거 아니?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말야.

"그대의 적은 손에 칼을 든 채 그대와 맞선 사람이 아니라 등 뒤에 칼을 숨기고 그대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 대사는 최종회를 앞두고 어제 김회장이 쓰러지면서 칼날을 숨기고 있던 호적상 부인 (그녀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권력과 재산때문인거지) 제국학원이사장이 반역을 도모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어서 더욱더 영도의 그 대사가 완전 마음에 남아버리는거야.

 

 

 

아니, 그런데 책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드라마 얘기만 하고 있냐고? ㅎㅎ (알잖아, 나 뜬금 대마왕인거. ^^)

 

근데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도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왔다고.

 

제국고등학교 아이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토론 수업을 하고, 김탄이 차은상을 생각하며 '꼭 같이 사는 것처럼'이라는 시집을 읽고, 잠적해버린 차은상이 서점 알바를 하면서 '원더보이'를 읽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니?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품인 책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있는 복선, 암시, 은유...로 다가오는 책들이야.

드라마 한 편도 이러한데 2013년, 한 해를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나 개인적으로만 봐도 어머니가 드디어 퇴원을 하셨고, 조카는 대학생이 되어 미쿡으로 들어갔고, 독자모니터링한 책이 두 권이나 출판되어 나왔고.... 그런데 이 연결되지도 않는 것 같은 짧은 문장 하나 만으로도 나의 주변 환경이 좀 그려지는 것 같지 않아?

그런데 나는 얼마전에 한 해를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역사인문서를 한 권 읽었어.

 

 

역사인문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흔들어대니 당연히 읽어볼 생각도 안했겠지? 그런데말야 이 책은 니가 틀에 박혀 생각하는 그런 역사책이 아니라는거, 모르지?

 

저자 플로리안 일리스는 1913년 당시 이 인물들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까지 고려하여 치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한다. 그는 3년에 걸쳐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신문 등 수많은 인물들의 방대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1913년 유럽의 한 해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냈다.

동시대의 유명한, 영향력있는 역사속 인물들은 모두 다 소환된 느낌이야. 그런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작품 출간되었다거나 프루스트의 역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출판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스물네살이 되었다거나 프로이트가 1인당 진료비로 그의 하인들이 받는 한 달 급료에 맞먹는 금액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게 뭐가 재밌겠냐고? 너는 '콜라주'라는 거 알지?

얼마 전에 피카소 샤갈 전에 가서 본 작품들 중에 판형이 커다란 콜라주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구석구석 각자 연관되지 않은 그림들이 마구잡이로 붙여진 것 같은데도 전체적으로 색감이 어울리고 하나의 통일된 작품처럼 느낌있게 다가오는거야.

[1913년 세기의 여름]은 바로 그 콜라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거지. 책을 읽어보면 너도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거야. 역사 인문이라고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읽어봐. 어쩌면 나보다도 더 이 책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지, 뭐. ^^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요. 나는 내가 본 것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고 배우고 성장하고 이해하고 하늘과 친해지라고 격려해요. 정말로 훌륭한 관측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우선 행성 관측부터 시작해야 해요. 거기서 인내심을 배울 수 있거든요. 시간을 충분히 주었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보는 법을 터득하는 걸 보면 정말 놀라워요. 시간, 시간, 시간, 이거야말로 관측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적 요소예요. 방정식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지만요."(84-85)

 

 

이건 우주를 느끼는 시간에 나온 말이지만, 왠지 책을 읽고 느끼는 시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아?

우연찮게 선물받은 [3시의 나]에서 시작된 나의 일상의 기록은 나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고, 문학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내 역사의 일부인 일상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떻게 날마다 책을 끼고 살아? 라는 물음은 정당하지 않은거야. 알겠지?

왠지 이제 머잖아 너도 책과 꼭 붙어 사는 사람이 될꺼같은데말야.(씨익)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좌절을 수없이 경험했지요. 우주는 늘 우리의 코를 납작하게 해요. 이제 뭘 좀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는 우리에게 분수를 깨닫게 해요. 하지만 우주는 아주 아름다워요. 우리는 허리케인에서 나선 구조를 보고,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에서도 나선형 소용돌이를 보고, 은하들에서도 나선 모양을 보지요. 이 모든 것은 자연에서 연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인데, 그걸 보면서 살아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고 느껴요. 모든 것은 아주 섬세한데,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수록 더 섬세한 게 보여요. 우리는 아주 경이로운 세계와 경이로운 우주에서 살고 있어요. 내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이고, 나는 단지 그것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우주를 느끼는 시간,128)

그러니까말야, 자, 일단은. 눈에 보이는 책의 세계부터 바라보기 시작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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