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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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갔다가 내년 부제품을 준비하는 신학생을 만났다. 내가 그 신학생을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1학년때였으니 벌써 20여년이 지났구나. 어렸을때부터 본 녀석은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보이기 마련인지 정장 양복을 갖춰입고 성당에 나타난 신학생은 왠지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해보였는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저 멋있다는 칭찬만 할 뿐이었다. 선배의 조카로 알고 지내다가 성당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되어 만나고 이제는 머잖아 신부님으로 만나게 되겠지. 오늘 인사하면서 농담처럼, 부제품을 받고 나면 막말도 쉽게 못하니 못본척 피해다녀야겠다고 하며 웃었지만 어렵게 대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니 그런 말도 할 수 있는것이었겠지?

 

문득 그 신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주일학교 담당교사를 발표하는 시간에 내 이름이 호명되자 머리가 커진 녀석들은 '에이~'하면서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소리를 내뱉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던 녀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곤한다. 원리원칙을 따지고 열정은 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융통성을 찾기 힘들던 교리교사 시절,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과 대립하듯 날 선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가 내 모든 정성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쏟아넣던 때였음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있기 전에 어쩌면 그때의 아이들이 더 먼저 깨닫고 내게 다가와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언니, 누나라고 크게 부르는 녀석들을 보면 더 그런 확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맙다.

 

폴리나,는 내게 자꾸만 보진스키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폴리나의 이야기는 그녀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고통, 상처와 아픔, 노력과 새로운 도약의 삶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지만 그 지난한 세월속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이는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보진스키 선생님의 모습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후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커다란 감동으로 느껴졌고,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폴리나의 이야기는 여섯살에 유명한 보진스키 발레 아카데미에 입단테스트를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날 폴리나는 보진스키 선생님으로부터 뻣뻣하다는 말을 듣는다. '6살 때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 16살이 되어서 유연해질 수는 없는 법이지. 유연성과 우아함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은 폴리나의 발레 인생에 대해 의심하게 하지만, 특별 케이스로 그녀는 보진스키 선생님에게 발레를 배우게 된다.

"춤은 예술이다.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 댄서는 타고나는 거다. 그리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지. ...우아하고 유연해 보이지 않으면 관중들에겐 네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일거야"

보진스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폴리나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자신을 후회하게 만들지 말라는 엄격함은 폴리나가 그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고 춤에 대한 이해도 어렵게 할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자신의 춤에 대한 이해를 하기 전에 보진스키 선생님을 떠나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기 시작하면서 폴리나는 혼란을 겪고 그 과정을 잘 이겨내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과 실연은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갖게 한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놀라운 성장을 한 그녀는 비로소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데...

 

간결한 선과 인물의 묘사에서 예전과 똑같은 모습의 보진스키 선생님이 폴리나의 마음을 듣고난 후 묘사되는 백발과 주름진 얼굴은 그 기나긴 세월을 보여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는 여전히 어린 폴리나를 제자로 생각하며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내가 너와의 관계에서 모든 걸 망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위로한단다..."

어떻게 보면 그저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는 폴리나의 이야기는 격한 반전이 없지만, 그 짧고 무덤덤히 그려지는 컷은 무심히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섬세하게 감정 표현을 전달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컷 사이에, 조금은 생략되어있는 듯한 표현 사이에 전해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속에서 더 커다란 감동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폴리나를 읽으면서는 그렇게 폴리나와 보진스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바라보고 있지만, 두번 세번 읽어보게 될때는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한번 슬쩍 훑어보면서는 폴리나의 삶의 여정을 생각해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왠지 모르게 뒷부분으로 가면서 봇물터지듯 터져드는 감동이 폴리나를 다시 보게 한다. '나는 춤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라고 말하는 이에게도 추천을 해 주고 싶은 댄서 폴리나의 이야기는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은 처음 접해보지만 앞으로 또 그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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