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니제도의 신석기시대 농부들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세계의 패턴을 파악했다. 오랫동안 온건한 기후가 이어졌고 곡식도 풍요로웠다. 하늘의 별들은 늘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이며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사람들은 파종과 수확의 계절 사이에 거대한 거석기념물을 세웠으며 무너뜨리고 다시 세웠다. 그러다 기후와 환경이 변화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이러한 환경 변화를 겪지 않았고 따라서 경로를 수정할 필요도 없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동일한 삶의 패턴이 부단히 반복되었다. 강이 범람하고 곡식이 무르익었으며 농부들은 곡물을 수확하고 저장했다.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관리 감독했던 엄격한 관료제를 통해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집결시켰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묘비를 세웠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죽음을 준비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죽은 자의 집은 변치 않는 돌로 지었으나, 허리 굽혀 일하는 사람들이 살 집은 곧 사라질 진흙 벽돌로 만들었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은 삶 이후의 시간을 꿈꾸었다.
반대로 오크니제도의 사람들은 불안정한 환경 탓에 역동하는 삶 자체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곳의 생활은 고단하기 짝이없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는 일에 몰두했다. 오크니제도에서는 청동기와 철기, 그 밖의 모든 혁신이 탄생했고켈트족, 로마인, 바이킹 등 새로운 민족들이 유입되었다. 고대이집트는 3000년 동안 변함없는 위용을 자랑했으나, 그 변함없음 때문에 변화를 겪지 못했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이지만 큰 변화가 없는삶. 또는 굽이치는 파도를 따라 쉼 없이 나아가 변화를 일궈내는 삶,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둘 중 어느쪽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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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2-07-2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은 다 굽이치는 파도 속에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말부터 계속 격동의 세월을 살고 있는 한국인...
 

땅속에서 찾아낸 화석들은 우리에게 여러 역사적 사실과 지식을 들려주지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왜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딱히 명백하지 않은 수만 가지 이유로 귀하고 특별한 존재다. 약 5만 년 전 야수들과 함께 살아가던 우리의 조상들은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보는 수만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서둘러 판단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아예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만 곁에 있는서로를 배려하고 보살피자. 우리 옆의 누군가가 사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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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 존중받을 것이다.
고양이가 존중받는 세상에서는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는 내 행동도 존중받을 수있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혐오 발언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나이와 성별과 종에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일도 고양이의 일도 결국 하나의 의미로수렴된다.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도전하고 싸우고 때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모든
‘생명이 하나의 엔들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캣맘의 엔들링이면 좋겠다.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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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포식동물이 사냥하고,
피식동물이 피 흘리며 죽는 장면, 온갖 동물이 사체주변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며 잔인하다거나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동물은 그렇게 본능대로 살고 사람은 그런 본능을통제하는 이성적인 존재라며 동물과 사람 사이를 구분짓는다. 점순과 흰눈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런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냥과 폭력을 동일한 행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슴이 성나서 풀을 뜯는 게 아니다. 사자가 화가 나서 사슴의 숨통을 끊는것이 아니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포식동물이 사냥을 할 때는 사냥감에게 은혜로움을 느낄지언정 군림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폭력은 관계를 묵살하고 군림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행위다. 육식동물의 사냥을 ‘폭력적‘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묘사하는 것은 사람이 저지르는 폭력을 마치 본능인 것처럼 정당화하려는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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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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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소설을 떠올려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15소년 표류기와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시절에는 그저 흥미롭다고 읽었던 소설이지만 지금 다시 쥘 베른의 글을 생각해봤을 때 그의 소설 속에는 그저 허구의 세계와 호기심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관찰과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읽어보는 '지구 속 여행'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현대의 과학으로는 이 소설 속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맹랑한 이야기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촌인 리덴브로크 교수의 집에서 함께 생활화는 악셀은 아이슬란드의 고문서에서 발견된 암호 쪽지를 뒤적이며 보다가 우연찮게 암호의 비밀을 풀게 되고 그 메모의 내용이 지구 속으로 탐험 해 들어가는 길 안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악셀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광물학자인 리덴브로크 교수는 즉시 메모에 표시되어 있는 지구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아이슬란드의 분화구를 찾아 떠나기 위해 서둘러 여행 짐을 꾸린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길 안내인 한스를 소개받아 그들은 사크누셈의 표시대로 지구의 중심을 향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사람이 만들지 않은 천연 광산이라거나 거대한 호수, 완벽한 인체를 구성하는 시신의 뼈 무덤, 거대한 동물에서부터 시각을 잃은 거대 물고기까지 우리가 고대의 세계를 상상할 때 등장할 것만 같은 지구 속 환경의 묘사도 흥미롭지만 나는 악셀이 길을 잃거나 실신해 쓰러졌을 때 항상 그를 구해내는, 아니 삼촌 리덴브로크 교수에게도 없어서는 안되는 안내자 한스의 존재가 더 흥미로웠다. 그에 더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조력자는 현지인일수밖에 없는 것인데 책을 읽다가 한스의 보수에 대한 짧은 내용이 나와서 쥘 베른의 소설은 항상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 새로운 모험으로 뛰어드는 이야기일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야기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스가 원하는 만큼 보수를 줄 것이며 교수가 주는 만큼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여정이 끝나고 한스는 충분히 넘치도록 넉넉한 보수를 받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일한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시대이며 차별이 존재하는데 스치듯 언급되는 그 이야기조차 마음을 훅 치고 간다. 모험에는 동참하지 못하지만 망설이는 악셀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모험을 떠나게 하는 매력적인 그라우벤의 존재 역시 남다르지 않는가. 


지구 속 여행을 읽고 나니 달나라 탐험, 신비의 섬, 바다 밑 여행뿐 아니라 어린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15소년 표류기까지 다 읽어보고 싶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쥘 베른의 소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모험이 끝나고 선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마음이 좋아지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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