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자가 아닙니까? - 성x인종x계급의 미국사
벨 훅스 지음, 노지양 옮김, 김보명 해제 / 동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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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성차별적 역할 패턴, 지배,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314)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며칠 전 아침 뉴스에서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남아시아 여성의 가사도우미 도입방안을 논의중이라고 했던가, 뭐 그런 내용을 스쳐들었다. 이것이 어떻게 저출산에 대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연결고리가 궁금해서 뉴스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이런 성차별, 인종차별, 노동차별이 되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이런데 노예제가 있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흑인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라는 소설은 시간여행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현시대의 여성이 과거 노예제시대로 가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은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현시대에 독립적이고 유능한 여성이어도 노예제 시대로 돌아갔을 때는 혼자 돌아다닐수조차 없는 흑인여성노예일뿐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시각의 전환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역시 은연중에, 시간여행이라는 공상과학소설속에서도 '흑인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를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선입견으로 가진 내가 좀 많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노예해방을 위해 흑인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차별에 대한 반대운동은 잠시 뒤로 미뤄야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었던 것이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선뜻 확신에 찬 대답을 하기 힘들다. 이 논리는 정치와 연관되어 진보와 혁신을 논하기 전에 중도주의자들과 협력하여 권력과 주도권을 잡은 후 소수의 권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현실성을 따진다면 더욱 할말이 없어진다. 

노예해방을 위해 - 이 말에서 '노예'는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여성의 투표권을 얻기 위한 운동에서 '여성'은 백인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예해방을 부르짖던 흑인남성들은 해방 이후 백인남성들과 같은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흑인여성을 바라보게 된다. 심지어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흑인여성조차 여성성을 강조하며 남성의 주도권하에 있는 것을 당연시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다르지만 노예시대에 흑인여성은 흑인남성과 똑같은 노동을 해야했으며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남성에게 종속되기를 거부하면 여성스럽지 못하고 드세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는동안 수많은 밑줄긋기를 하며 다시 읽어보게 되는 내용이 많았다. 

벨 훅스는 다시 페미니즘의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성차별적 역할 패턴, 지배,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하려고 한다"(314)고 말하고 있는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성구별을 하지 못하고 다시 성차별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백번이라도 필사를 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쓸모없는 소맘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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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남성 우월주의를 끝내려는 투쟁도 아니고 모든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만들어주는 운동도 아니다. 성별, 인종, 계급 등 서구 문화의 여러 결에스며들어 있는 지배/피지배 이데올로기를 근절하겠다는 결심이며 미국 사회를 재조직해 제국주의, 경제적 팽창, 물질적 욕망보다 사람의 성장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결심이다.313








백인 여성이 인종차별적인 여성해방운동을 조직하고 수많은비백인 여성을 배제한 것은 분명 모순이었다. 그러나 모순이 존재한다고 해서 페미니즘 이슈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종종 흑인여자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세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운동에 협조한다는 뜻이아닌가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묻고또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왜 페미니스트인지가 아니라 인종차별적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입니다."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을 도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한 것도 사실이고 특히 이 운동의 전면에 섰던 백인 여성이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도용을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싶지는 않다.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재도용하여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성차별적 역할 패턴, 지배,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 는 사실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흑인 여성이 페미니즘 투쟁을 통해 얻을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페미니즘을 두려워한다. 고정된 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움직이고 싶어 하지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재 갖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마저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인종차별적인 백인 페미니스트 성차별적인 흑인 남성, 또는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모두갖고 있는 백인 남성과 대치하는 것을 겁낸다. 그동안 나는 여러가정의 부엌 식탁에 앉아서 수많은 흑인 여성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면서도 현대 여성운동을오목조목 비판하면서 왜 동참하지 않는지 설명했다. 여러 모임들에서도 동일한 관점을 표현하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의두려움이 왜 존재하는지 잘 안다. 그동안 우리는 짓밟히고, 강간당하고, 학대당하고, 학살당하고, 조롱당하고, 멸시당해왔기 때문이다. 몇몇 흑인 여성들만이 우리 19세기 자매들의 머리와 심장을 뜨겁게 했던 페미니즘 투쟁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지지했던 흑인 여성들은 진정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와 우리 자매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더이상 희생되지 않고 더 이상 간과되지 않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않을 것이며,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용기와 신념을 갖고 따르게 될 것이다. - P314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남성 우월주의를 끝내려는 투쟁도 아니고 모든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만들어주는 운동도 아니다. 성별, 인종, 계급 등 서구 문화의 여러 결에스며들어 있는 지배/피지배 이데올로기를 근절하겠다는 결심이며 미국 사회를 재조직해 제국주의, 경제적 팽창, 물질적 욕망보다 사람의 성장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 P313


모든 투쟁에서 우리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미국에 깊게 자리 잡은 성향과 싸워야 한다. 그 성향이란 긴장이 형성되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원칙이 어떤 것인지 질문하는 것을 회피하는 성향이다. 우리는 근본적이고 변증법적인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진보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만 찾아올 수 있다.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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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정상이 아닌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깜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자가 말하는군요 여자는 탈것으로 모셔다드려야 하고, 도랑에서안아서 건네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로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이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 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난 여자가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고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어떤 남자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난 여자가 아닙니까?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자만큼먹을 수 있었어요 남자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난여자가 아닙니까? 난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난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정상이 아닌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깜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자가 말하는군요 여자는 탈것으로 모셔다드려야 하고, 도랑에서안아서 건네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로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이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 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난 여자가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고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어떤 남자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난 여자가 아닙니까?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자만큼먹을 수 있었어요 남자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난여자가 아닙니까? 난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난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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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가모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백인과 흑인이왜 지속적으로 흑인 여성을 가모장으로 몰아가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백인이 흑인 여성의 가치를 폄하하기 위해서 모든 흑인 여성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신화를이용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가모장 신화를 이용해 모든 미국인들에게 흑인 여성은 남성화된 남성을 무력화하는 위협적인 여성이라는 인상을 열심히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흑인 여성은 이 가모장 이름표를 끌어안았다. 그래도 스스로 특권이 있다고 여길 수 있어서였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왜곡하여 원주민들이 자신들에게 득보다 실이 되는 개념들을 받아들이게 했었고, 이 또한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백인 노예소유주가 노예들의 반란과 봉기를 막은 방법은 자유인으로 사는 것보다 노예로 살며 관리를 받는 편이 더 좋다고 노예를 세뇌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방법이 흑인 여성을 세뇌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성차별과 인종차별로 인해 경제적으로 박탈당하고 희생되는흑인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가모장이라 믿으라고,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있다고 믿으라고 말한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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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3-06-22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놨었는데 더 읽고 싶어져요!

chika 2023-06-23 09:21   좋아요 1 | URL
네. 개념도 명확하고. 좋은책이예요!!
 
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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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로움'이란 것에 대해 언제쯤 생각이란 걸 멈췄었을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서, 아니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성향이라 나는 단순히 혼자,라는 것이 외로움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 순간 나는 이 시대를 살고있지 않은 줄 알았다. 이름을 들어본적도 없고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뭐가 다를지...


22명의 작가가 제각각 저마다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각자가 느끼는 그 외로움이라는 것의 의미가 각자가 살아 온 삶의 시간 속에 담겨있는, 때로는 삶의 모습을 바꿔버리기도 하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 경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그래도 기억에 강렬한 느낌으로 남는 것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다가 결국 요양시설로 보내게 되는데 오히려 어머니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며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마야 산바그 랭의 '놓아보내기'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가끔 언젠가는 - 사실 그리 먼 시간은 아니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어머니와 함께 하던 집에서 나는 상실감과 엄청난 외로움을 느낄 것 같아 그 시간이 무서워질때도 있다. 마야 산바그 랭의 이야기는 약간의 결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녀의의 담담한 이야기에 다독임을 받는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 하늘은 반짝이는 푸른빛을 뿜어낸다. 밝은 빛 아래 우뚝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내게 원했던 모습이다. 이제 나는 놓아 보낸다고 해서 잃는 건 아니란 걸 놓아 보내는 행위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다시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안다. 이렇게 다시 자신과 재회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실로 엄청난 기쁨이다"(86)


물론 개인적인 상황과 조건으로 인해 어머니의 이야기가 강하게 남는다고 하지만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것과 인종차별로 인해 무고한 목숨이 희생된 사건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그 외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느껴보게 되기도 하고 이중의 이민으로 인해 문화뿐 아니라 언어도 잃어가는 고독감이 무엇인지, 아이를 잃은 유산으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외로움, 어린 시절 책 속에 파묻혀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 외로움.... 

내가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 경험치와 너무 다른 이야기들에도 공감하며 빠져들어갔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나 혼자뿐일것이라는 마음일까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 외로움 속에서도 연대할 수 있고 혼자이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평온한 마음이 된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사람, 고독 앞에 담대해지고 싶은 사람, 은밀하게 고독을 갈구하는 사람, 모두 환영한다"는 편집자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유난히 '모두 환영한다'는 문구가 새삼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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