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문 뒤의 야콥
페터 헤르틀링 지음, 김의숙 그림,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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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문이 빼꼼 열려 있고, 그 문 뒤에서 멈칫 거리고 있는 야콥의 이야기는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이야. 그래서 가만히 야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죄어드는 느낌이 들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나는 야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야콥은 지금 어디있지?'라는 생각이 떠올라 읽던 책을 덮어버리고 두리번거리며 야콥을 찾아봐야 했지.

야콥,과는 좀 다르지만 어릴적을 떠올리면 도무지 내 주위의 모두가 나를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괜히 울고 싶어 답답할 때가 있었을거야. 나는... 그런 일이 많았지. 나는 한마디도 안했는데, 어느새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거야. 그게 아니야, 라는 말도 소용없지. 아니, '그게 아니란말야'라는 것조차 밖으로 튀어나오기 힘든 말이었지만 가끔 안간힘을 쓰고 그 말을 밖으로 내보냈다해도 '그게 아니야'라는 외침은 되려 엉뚱하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변해버리곤 했었어.

그런데 참, 이상해. 상실감이나 외로움같은거... 내 어린시절에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를 떠올릴수는 없는데 왜 야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이 그리 아픈거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어린시절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로인해 나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그들 맘대로 정해져버리고 말았던 그때의 답답함과 억울함 같은 감정때문에 야콥의 이야기가 슬픈 것이 아니었어. 이해받지 못하던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슬퍼 그런게 아니라는거야.
야콥의 이야기가 정말 슬펐던 것은 지금의 내가 수많은 생각을 담고 있고 수많은 말을 품고 있는 야콥을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래서말야 사실, 야콥의 엄마와 청소년보호청의 레만씨가 야콥이 얘기한 '베노'를 찾아냈을 때 그들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버렸어. 야콥에게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베노'라는 이름만으로 야콥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을 찾은 그들의 신뢰가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거야.

그렇지만 야콥의 이야기는 여전히 슬퍼. 눈에 보이는 야콥의 행동과 귀에 들리는 야콥의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을꺼라 생각하니까 말이야.
그런데말야 조그맣게 열린 파란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 내게 그런 얘기를 해 주는거야. 내가 야콥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해서 야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 마음안에 있는 파란 문을 열어놓고 귀를 기울여 이해하려고 하면 야콥이 문을 좀 더 열어서 더 많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꺼라고. 그러면 야콥이 하는 이야기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꺼라고.

 

*** 나는 야콥의 안에 담겨 나오지 못한 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조차 잊고 살았다. 야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맘이 울적해졌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정말 슬프게 했던 것은 며칠 전 말없이 앉아있던 중학생 꼬맹이에게 행동의 결과에 대해 나 혼자 마구 떠들어댔던 기억이었다. 너, 이랬지. 아냐? 그럼, 이것이구나? 뭐야~ 따위의 말로 그녀석이 눈빛으로 하는 이야기를 나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너무 슬퍼졌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야콥에게 열린 문 틈으로 희망, 이 보이니 나는 그 희망을 찾아 헤맸을 야콥의 엄마에게 마음이 쏠렸다. 아이들의 마음 안에 담긴 말을 이해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야콥의 엄마처럼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잊고 살았던 만큼 더 절실히 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의 야콥, 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말들속에서 아주 자그마한 진실을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은 소망을 더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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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지음, 나기호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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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을 형상화 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재료인 스크린톤은 연마기에 올려진 광석이며 그것을 보석으로 연마하고 가공하는 그녀는 보석 세공사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밀하게 잘라낸 투명 절편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을 잠깐이라도 본다면 그녀가 진정한 보석 세공사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 해설을 대신하여 하토야마 이쿠코.

나는 만화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이야기 할 때는 꼭 스크린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래서 나도 ''스크린톤''이 뭔가 뒤적뒤적거려봤다. 그렇지만 뚜렷이 ''아하~!''하는 느낌이 오지는 않아 뭔가 답답한 느낌이 남았다. 그런데 "스크린톤은 일정한 무늬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체로 배경을 마감하거나 배경화면으로 쓰이는 만화기법 중 하나다"라는 글을 읽고, 해설을 대신한 글을 읽은 후, 다시 그림을 쳐다봤더니 처음 볼 때는 무심결에 넘겼던 그림들이 색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그림을 보석세공사에 비유한 그 느낌이 오는 것 같다.
현실과 비현실, 상상과 꿈, 실제의 세계가 마구 섞여들어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야기의 흐름과 그녀의 그림은 일체를 이뤄 표현되고 있다고 느껴버리고 있다. 두번째로 책을 펼쳐들고 그림을 다시 보면서 뭔가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아하~!''라는 감탄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녀의 그림은 독특하다. 표지에 그려진 소년의 모습,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뭔가가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는 소년의 시선에서 선뜻 눈을 뗄 수 없는 독특한 끌림이 있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단지 스크린톤의 절묘한 사용이라는 그녀의 그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단편집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뭔가... 동화와 환상이 어우러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과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빠져들게 하다가 기묘한 분위기와 멈칫, 하게 되는 반전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그녀의 그림과 너무 잘 어우러져 있다. 이런 느낌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보면 볼수록 그림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고, 그림만큼이나 단편의 내용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만화, 라는 이유로 술렁술렁 훑어보고 ''뭔가 이해가 안되''어 다시 펼쳐보면 처음에 보지 못했던 그림의 뜻과 글의 뜻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느낌과 이야기의 의미를 알게 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책을 들춰보게 된다.
또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자꾸만 힐끔거리며 책을 쳐다보게 되는 또다른 이유는 독특한 그녀의 그림과 끝이 없는 심연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이야기가 그 환상과 현실의 묘한 경계로 유혹하듯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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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 김봉석의 일본 문화 퍼즐 48
김봉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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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 무겁지만은 않은 신나는 책, 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만화와 애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아주 잘 알고 있는 몇가지와 내용파악 정도는 하고 있는 작품들도 많이 있고, 또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해도 이 책을 읽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 그대로 신나게 책을 펴들었다.
일본 문화에 푹 젖어 살지는 않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애니메이션에 빠져있고 만화를 거쳐 노래와 영화, 이제는 심지어 드라마에까지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니 이 책은 정말 신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소화하는데 별 무리없으리라는 오만에 빠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즐거움''이라고 해서 가볍게 술렁술렁 지나쳐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겠는가.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 몇번을 다시 봤던 작품들을 되새기게 만들어버리고, 말로만 들었던 작품들이나 전혀 생소한 작품조차 꼭 구해서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버린 이 책은 들떠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이 책은 내게 ''일본 문화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을 준 책에 더 가까울지도....


"대중문화라는 것은 우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뭔가 인생의 의미를 더 얻는다면 좋겠지만, 그저 ''시간 죽이기''에만 성공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대중문화란 일상의 노동으로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대중문화의 그러한 기능을, 나는 사랑한다. 아니 즐긴다....... 나는 비평이란 것이 문화상품과 대중 간의 소통을 돕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즐거움의 정체를 알려주는 것"(저자 서문)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는 즐기면서, 아니 즐길 수 있었기에 더 일본문화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느낀것이지만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차원과는 달리 일본문화에는 (물론 일본문화 전반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그 영역을 넓히며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왠지모를 당혹감을 느끼게도 했다.
''나는 왜 일본 문화에 더 빠져들고 있는것일까''
그것은 저자의 말을 통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문화가 나타내고 있는 그 다양함과 그것이 매니아적 성향의 비주류이지만 충분히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과 형태를 담고 있기때문이리라.

저자는 그저 ''시간 죽이기''에만 성공해도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즐거움 속에 분명 ''순간의 쾌락이나 자기만족적''인 것만 들어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손에 붙들고 열심히 읽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면 너무 재미없게 되나?
문화상품과 대중과의 소통을 돕는 그 무엇, 은 아주 많을 것이고 특히 일본문화에 대한 것은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 책은 내가 소통하는데 90%이상의 도움을 주었다고 확신한다.

때때로 그들의 잔혹함과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태도에 흠칫 놀라기도 하지만 애써 그것을 이해하려 하거나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왜 즐거움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라는 자괴감도 갖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푹 젖어들어 있는 우리 문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문화는 즐거움이고 삶이고 소통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거나 너의 것이라고 구분지어야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일본 문화의 퍼즐을 맞춰보고, 그 퍼즐이 우리 문화의 퍼즐과 어찌 연결되고, 같이 어울리게 짜맞출 수 있는지 해보는 즐거움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이 책은 만화, 애니, 영화의 부분으로 나뉘어있지만 부록으로 문학과 드라마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어 전반적인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물론 일본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나처럼 편중되거나 일부분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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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8 - 아더 왕의 죽음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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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읽는 자여, 이 세상에 세가지 불행이 있음을 기억하라.

첫째는 어떤 선함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배우려 하지도 않는 것이며,

둘째는 선함은 알고 있으되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것을 실천할 생각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선함을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 악함을 저지르며 남도 선함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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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8 - 아더 왕의 죽음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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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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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3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