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네버랜드
최난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의점보다 편하고 백화점보다 더 꿈같은 국민 힐링소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소설 홍보 문구겠지만 왠지 이 홍보문구를 먼저 봤다면 소설의 내용이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카페 네버랜드가 그런 꿈 속의 공간일 것 같다는 생각은 지극히 사실적인 T형의 성향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요즘의 내게는 와닿지 않는 곳이라 치부해버리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꿈의 네버랜드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찔피노 -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 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한연주는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무원 시헙에 합격하고 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어린나이지만 연차가 높은 7급공무원이다. 오직 월급과 호봉을 생각하며 승진을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그녀가 계획안을 세운 노인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형태인 카페네버랜드의 실제 운영이 결정된다. 

승진의 발판이 될 카페네버랜드의 성공을 위해 연주는 여러가지로 애를 쓰는데...

카페에서 일하기 위해 이력서를 낸 사람도 딱 네명뿐인데 커피를 만들기는 커녕 암기외에는 융통성도 없는데다가 귀까지 잘 들리지 않는 기복, 흥신소를 하다가 공공근로로 연명하던 만영, 아내와 가족이 있지만 손주를 봐주기 위해 딸에게 간 아내가 몇년째 돌아오지 않아 홀로 생활하는 준섭, 뇌물을 받아 교장에서 평교사로 강등된 후 불명예퇴직을 한 석재 등 각자 사연많고 하자(!) 많은 할아버지가 카페 네버랜드를 운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철밥그릇이라 하지만 옷차림새에 대한 불만 민원까지 받아야하는 담당공무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나 싶다가도 힘든 일은 모두 계약직 공무원에게 떠넘기고 어떻게하면 민원과 맞닥뜨리지않고 무사히 업무시간을 넘기려하거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무위도식하는것처럼 그려지는 상급공무원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역시나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입신양명(!)을 위한 발판이 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다가도 어느새 스며들어가 의외의 행동을 하는 연주와 네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뭔가 감동을 주는 포인트들이 다 예상이 되는 전개로 이어지는건가 싶지만 행복한 네버랜드로의 직행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큰 의미가 있는 카페 네버랜드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완전무결하지는 않더라도 모든것을 잘 해내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네버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아니 우리 모두에게는 약점을 뒤집을 강점이 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힘이 되어주는 사람일 수 있으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초반에 등장하고 해고된 계약직 루리에게 열살 된 아이가 있다는 것이 선입견을 깨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터득한 기술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서 세상살이의 정의실현에 대한 쾌감을 느껴보는 것이 더 큰 놀라움이다. 그리고 그녀의 성이 '이'씨라는 것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리는 모두가 꺼리는 ‘민원 불만 접수창구‘에서 일했다.
대체인력 계약직으로 연주와는 동갑이었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연장계약이 가능했다. 그녀도 그걸 원하는 눈치였으나,
쉽지는 않을 듯했다.
그녀는 민원인들의 불만사항을 듣는 데 주력했다. 원체 말수가 적은 탓인지 차분하게 청취하는 일에 뛰어났다. 성난 황소처럼 창구로 들이닥치는 민원인도, 평온한 얼굴로 돌아가게 했다. 연주는 그녀의 그런 점이 신기했다.
말수는 적으나 할 말은 정확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민원인의 불만사항을 각 업무 담당자에게 전해야 했는데, 똑 부러졌다. 문제는 때때로 민원인을 대변하느라 업무 담당자와 얼굴을 붉힌다는 점이었다.
누구보다 맡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기에 계약 연장이 힘들 수도 있다. 그녀는 그 법칙을 모르는 듯했다. 일을 제대로하는 것과 잘하는 건 엄연히 달랐다. 이 세계, 이 공간에서는,
이상하게도 그랬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 당시 소녀첩보원들의 활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설명은 소녀첩보원에 대한 정보를 먼저 찾아보게 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쓴 소설이라고 하는 설명을 보면서도 쉽게 믿지 못했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2차세계대전에 여성전투원을 투입하려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훈련 중 계획파기로 여성전투원의 이야기는 사라졌다는 내용의 소설을 떠올리니 우리나라의 소녀첩보원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역사적 기록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내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들에 대한 내용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은 이 소설을 서둘러 읽어보게 만들었다. 아니, 사실 기록에 근거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이 너무 소설 - 꾸며진 이야기 같아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심마니 홍주는 한여름 뒷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흰토끼를 만나고 토끼로 인해 산삼을 발견하게 된다. 흰토끼를 산신님으로 여기며 자신에게 쫓아오라는 듯 뛰어가는 토끼를 따라 산위까지 올라가게 되고 그 윟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반갑게 손까지 흔들어준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홍주가 사는 마을을 폭격해버렸고 홍주는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폭탄과 같은 것이고 가족을 잃게 하고 생활의 터전이던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려버리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며 소설은 시작하고 있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적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첩보전이 치열해지고 그 와중에 어린 소녀들이 적진에 파고들어 정보를 캐내고 확인하는 활동을 하지는 못할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과감히 그들을 모집했고 그 소녀첩보원들을 래빗이라고 칭했다. 홍주는 그런 래빗이 되었고 홍주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이어지는데......


이 소설은 어린 소녀들을 첩보활동에 이용하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믿지 못해 끊임없는 상호정찰을 요구하고, 죽기 위한 첩보활동이 아님에도 살아남은 래빗들에 대해 변절하지 않았는지 의심을 해야하는 상황들에 대해 홍주의 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늘 임무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설명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아군의 총에 허망하게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라는 홍주의 마음 한 조각에도 전쟁의 비정함이 담겨있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은 한국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활동을 했으며 전후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수많은 참전용사들, 특히 여성 군인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전쟁에 대해, 그 비극에 대해, 피폐해져가는 사람들 사이에 그래도 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배려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그저 흥미로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극적인 결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행복한 결말도 아닌 느낌에 래빗에 대해 기사검색을 해 봤는데 정말 말 그대로 그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첩보활동에 대한 함구령으로 인해 보상은 커녕 알려지지도 않았고 수많은 동무들의 죽음을 겪었으면서도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 못받은 현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읽으며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의미를 읽고 새겨본다. 나 역시 그들의, 우리 모두의 미래를 응원하겠다.


"전쟁 중 서로의 감시자로 만날 수밖에 없던 홍주와 유경이 동무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쟁 중이기에 모든 것들이 쉽게 사라지던 시대를 되돌아보며, 그 시대여서 잃어버린 것들을 고민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시대를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제 마음은 미래를 택했습니다. 꿈을 이루는 미래, 연인과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미래, 가족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미래. ... 꼭 그 미래에 가 닿으시길 응원하겠습니다."(작가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귀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억 전당포,라는 말은 뭔가 이해가 될 것 같은 말이지만 '반짝반짝'이라는 수식어는 왜 붙어있을까.

뭐 책을 읽고나면 추억은 방울방울이 아니라 추억은 반짝반짝,이라는 말이 바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는 것이 있어서 왠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도서인 것 같아 덥석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가볍게 시작했고 책을 읽는 것도 어렵지 않게 쓰윽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추억에 담겨있는, 너무 뻔해보이는 이야기에도 새삼스럽게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을의 바닷가 절벽 어딘가에 마법사가 운영하는 전당포가 있다. 그 전당포는 스무살 이전의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추억'뿐이다. 어떤 추억이냐에 따라 마법사가 금액을 정하고 추억을 저당잡는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 돈을 갖고 오면 맡겨두었던 추억을 찾아갈 수 있지만 오랜시간 추억을 찾아간 아이는 없다고 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할때도 '잊어버린거야?'라는 말로 무심코 넘길 수 있으니 어린시절의 추억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이다.


날마다 엄마와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맡기러 마법사를 찾아가는 단골손님 하루토, 추억을 맡겨본적은 없지만 인터뷰를 한다는 것을 계기로 역시 마법사의 전당포를 편하게 드나드는 리카, 당당하게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줄 알았지만 학교에서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는 메이, 증조할머니의 교통사고 뺑소니를 찾고 싶다며 마법사에게 할머니의 추억을 보고 싶다며 찾아간 유키나리. 각자 성격도 환경도 다른 네명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추억'과 추억을 기억하는 '마음'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물론 사람과 마법사, 사람과 동물, 물건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태도에 담겨있는 의지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가득찬 마법사이지만, 아니 냉소라기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마법사와 그를 친구처럼 대하는 리카와 하루토의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래, 뻔한 이야기지 뭐.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상에 파묻혀 그 생각이 희미해질즈음 그 중요성을 다시 꺼낼 수 있고,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다가도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금세 떠올리며 더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 책을 읽기전부터 그래왔던 태도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판타지 소설을 통해 한번 더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되는 낙관을 움켜쥐고 싶어서 하는 일이 가드닝인 것 같다'


내가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는 가드닝에 대해 이렇게 짧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아, 물론 책을 구입만 해 두고 읽지는 못하고 - 아니, 안하고 있는건지 못하고 있는건지는 이제 나도 구분을 못하겠다. 몬스테라, 고무나무... 막 이런 이름들을 아는 척 대보지만 여전히 나는 식물을 죽여먹는 킬러가 되고 있을뿐이고.


이동되는 수녀님이 그동안 키우던 다육이 식물을 모두 넘겨주고 가서 지금 집에는 화분이 넘쳐난다. 대부분 다육이이거나 식초보가 키우기 쉬운 식물들이 많기는 하지만, 과연 키우기 쉬운 식물이 있던가. 환경이 바뀌면 세심한 배려 없이는 바로 생명을 다하는 것이 식물이고, 죽은 줄 알았지만 꾸준히 돌봄을 하면 살아나는 것 또한 식물이다. 실내에 있던 몬스테라는 집으로 가져간 다음 날 햇빛을 받고 바로 잎이 타버렸고 기왕 그렇게 된거 밖에 두고 키워볼까 하고 있는데 점점 타들어가는 이파리의 면적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다.



"뿌리가 있고 뿌리를 심는다. 지키고 싶은 여름이 있고 그 여름날들을 지킨다"


해마다 해바라기가 다시 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여름에도 우리집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에서만 본 기억이 있는데 날마다 마당에서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얘가 죽어가는구나,가 아니라 내년의 여름을 기다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인간은 태어난 이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