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오경아 지음 / 몽스북 / 2024년 4월
평점 :
이 책은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님의 생활에세이이다. 사실 '생활에세이'라고 했지만 오랜 세월 정원을 가꾸며 식물과 함께 하는 삶에서 깨달은 지혜는 새겨들을 이야기가 많다. 식물과 동물을 구별할 필요없이 모든 생명체는 닮은 꼴로 살아가고 있으며 각자 나름의 수고로움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지만 구체적인 식물의 성장과 같이 비유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한꼭지 한꼭지가 다 마음에 남는다.
"가드닝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뭔가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대답도 한다. '그런 거 없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배워도 매번 풀한테 이겨본 적이 없는데요'... 필요한 건 노하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어쩌다 들여다보는 정원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142)
어렸을 때는 꽃이 피는 것만 좋아했었는데 - 물론 지금도 꽃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 지금은 쑥쑥 자라나는 다육이들도, 잎의 모양과 색이 독특해서 꽃처럼 보이는 관엽식물, 공기정화를 한다고 해서 키우기 쉽다고 해서 등등 꽃이 피는 녀석들보다 오히려 다양한 식물을 더 많이 키우고 있다. 솔직히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화분 몇개를 놓고 간혹 너무 크게 자라서 큰 화분으로 옮긴 후 마당에 방치해두는 식물들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있어서 내가 가꾼다 하지 않고 얘네들이 알아서 잘 커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오경아님의 가드닝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매일의 일상 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라는 말을 새겨 보게 된다.
특별히 식물을 살리기 위해 약을 쳐본적이 없지만 거의 말라 죽어가고 있는 식물을 포기해본적도 없기는 하다. 벌레를 없애기 위해 약을 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식물은 자체 화확물질을 생성해내어 올해는 벌레에게 먹히더라도 벌레가 번식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생성해 미래를 도모(?) 한다고 하니 오늘을 사는 식물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식물이 아닌가. 이런 놀라운 이야기들은 새삼스럽게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지구환경의 변화로 많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었다. 약을 치는 것도 그렇지만 양봉을 하며 설탕으로 벌을 키우고 있어서 꽃이 피면 수정을 하는 역할을 하는 벌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꽃 사진을 찍으려면 늘 찍히는 꿀벌이 어느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그래도 우리 집 마당에 비파나무 꽃이 필 때쯤이면 꿀벌이 모여드는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삼아본다. 꽃이 피어 사진을 찍으려면 늘 벌이 모여들어서 꽃과 같이 찍었으니, 올해도 지구환경을 위해 소소한 행동 하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당의 비파나무는 비파를 먹다가 씨를 묻어뒀는데 내 키만큼 자라났고 5년이 되어가도록 열매를 맺지않아 잘라버리자는 것을 1년만 더 기다리면 열매가 열린다고 하며 기다렸는데 그 해에 첫 비파열매가 많이 열려 내심 뿌듯해했었다. 해피트리도 꺾어진 가지를 물에 담궈뒀더니 뿌리가 나와 화분에 옮겨심고 지금은 나무로 성장해가고 있다. 물론 실패도 많지만 이렇게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늘 성격이 급한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나 교사들에게 나의 이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진즉에 죽어버렸을 것 같은 식물이지만 끝까지 정성을 다하고, 몇년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같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열매를 보게 된다고. 그리고 사실 나무는 내가 가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고 자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올해도 나는 맘대로 안 되는 정원이라는 우주에서 라벤더에게 잘 살아보라고 독려도 하고, 쑥에게 너는 왜 이렇게 사냐고 원망도 하고, 꽃 피면 찾아오는 벌들에게 그 꿀은 어디에 모아두고 사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 볼 참이다"(67)
나도 그렇게 살아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