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있다는 것은 경제적 특혜이다. 또한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훨씬 많이 누리고 있다."

 

성공한 기혼 여성은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가정과 일, 두 가지 영역에서 균형을 잡으셨나요?" 누구도 성공한 기혼 남성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직도 여성과 남성이 꽤 동등하게 대우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사 노동의 불평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여성이 남성만큼 일터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추적하다가 '가정'의 영향으로만 설명되는 부분을 만났다. 풍부한 통계와 사례를 기운차게 설명하며 아주 평범한 성차별을 짚어낸다. 특히 성차별주의자가 되기 싫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남성들에게 매우 친절한 책이다. 워킹맘 '동지'들에게도 차별에 맞서는 실용적인 팁을 준다.

 

오래전에 친구가 선배를 소개받고 결혼 이야기까지 일사분란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뚝 끊겼던 적이 있다. 친구는 결혼을 하게되면 건강도 챙길 겸 쉴 겸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른들께 인사드리러 집으로 찾아 갔는데 장차 시어머니 되실 분께서 직장생활을 계속 할 것을 종용하셨댄다.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역시 니가 우리 아들을 먹여 살려라,인 듯 해서 그 이후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리 돈독하지 않았던 관계도 소원해져서 헤어짐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맞벌이 부부에게 있어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고 퇴근 이후 집에 돌아가면 쉬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터인데 왜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간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도 십여년은 더 지난것 같은데 여전히 현실은 그냥 그렇다,라는 느낌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은 그저 '아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아내가 해 주는 모든 것을 누리는 그 지위를 갖고 싶다는 바램이 담겨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현재도, 어쩌면 미래에도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씁쓸하다.

 

 

 

 

 

 

 

 

 

서울의 대형 서점은 왜 대부분 지하에 있을까.

금본위제를 포기한 후에야 대공황으로부터 회복이 가능했다.

물질이 넘치는 풍요의 시대, 이제 '지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당신이 지금 돈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밟고 이윤을 남길 수 있어.

일제 식민지 도시는 기본적으로 잡거와 혼종의 도시였다.

링컨은 '강요'가 아니라 '설득'이라는 자신만의 장점을 이용했다.

긴축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

빈대는 성스러운 침대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환상을 깨부수는 원흉이다.

주변의 모든 것은 지구라는 실험실 위에서 45억년 동안 진행한 실험의 결과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화나는 일이다.

 

 

 

초자연적 개입으로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는 것은 자칫 사회적 태만과 무책임을 초래한다.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였던 저자는 성서를 연구하면서 그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강간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된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삶이 당면한 고통은 너무나 강렬했다. 도대체 신앙은 어디 있단 말이가? 저자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이 옳지 않다고 보고 고통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책은 인류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성서가 고통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고통에는 해답이 없다. 저자는 이웃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고통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사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고통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다.

 

 

응? 근데 어째 결론적으로... 조금 이상하다. 인간의 고통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사는 것 뿐,이 고통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는 말은 어딘가 위험하다. 자칫하다가는 현재의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일수도...라는 생각을 하다가 기본적으로 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그저 그런 뜻의 말은 아니겠지 싶어진다.

 

감사하며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설에 세배를 드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점차 그 모든 것이 감사한 일임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또한 감사할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그 감사의 인사 역시 자신들이 받는 모든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나는 감사함을 모르는 것일까?

 

 

 

 

 

 

 

 

 

 

사용 후 핵 연료 어떻게 처리하나.

쓰레기를 버리면서 이 많은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를 고민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하물며 핵 연료의 처리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원자력 발전소의 핵연료에 관한 전과정은 선행주기와 후행주기로 나뉜다. 선행주기는 우라늄광산에서 채광한 우라늄 광석을 제련하고 이를 변환하고 농축시킨 후 이를 다시 재변환해 핵연료로 제조하는 과정이다. 후행주기는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처리, 처분하는 과정이다. 일본에서 원자력정책을 전공한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한국의 원자력정책이 사용후혁연료 후행주기의 여러방법 중에서 한가지에 불과한 건식재처리와 소듐냉각고속로의 병행추진만을 강조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는 이 방식만이 사용후핵연료의 최종처분장 면적 및 관리기간을 축소할 수 있으므로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는 온갖 가정아래에서 설계한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불과할 뿐 결코 신현 가능성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 방식은 경제성, 안정성, 친환경성, 핵비확산성 면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 한가지 방식만으로 고집할까. 지은이는 핵마피아의기득권 확대 때문이라고 말한다. 핵마피아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도박판'에 기생해 기득권 확대에만 몰두하다보니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본질적 문제에 대해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장밋빛 낙관론만으로 국민을 기만해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원자력 발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만큼 투명하고 철저한 설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행주기는 투명하고 철저한 설명 후에 국민투표를 통해 직접 처분 또는 재처리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정부가 사용후핵연료의 처분방법에 관한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말하기 이전에 폐기물 처분정책의 진행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도 지역사회가 자주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제3자 기관이 기술적 조언을 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조금 길지만 주간경향에 소개된 기자의 글을 그대로 옮겨왔다. -앗, 이거 저작권에 걸리던가? 뭐 많은 사람이 오는 곳도 아니고 내 글인냥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이렇게 나 편할대로만 하면 안되는 것이기는 하지만서도. 아무튼.

전문적인 분야의 이야기는 어려울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부를 신뢰하고 그 말을 믿는수밖에 없는데 국가권력은 그러한 것을 이용해서 정보를 더 통제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속여먹고 있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언젠가 밀양주민의 인터뷰를 보고 있는데 한분이 '휴대전화에서도 전자파가 나오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 장황하게 떠들어대고 있는데 이렇게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바로 밑에서 아무 걱정없이 안전하게 지내라는 게 말이 되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래,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이 많은데 그걸 눈가리고 아웅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런 근거 없이 안전하다고만 하고 있으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벙어리, 귀머거리, 눈 뜬 장님 신세로 국민의 의무만을 다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심 먹고 졸음이 쏟아질 즈음 페이퍼를 쓰기 시작해서 진즉에 끝내려고 했으나, 잠깐의 마무리를 남겨두고 계속 글쓰기 상태로 두고 있다가 책만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는 중이다.

작년부터 몸 상태가 안좋기 시작했는데 이게 그저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이 조금씩 축나고 이곳저곳에서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아무래도 이거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한번에 마구 터지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어제는 사무실에 혼자 있었고 더 많은 일을 했는데도 아프다는 걸 느끼지 못했단 말이지. 몸쓰는 일은 더 많이 했고.

그런데 오늘은 오후가 되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너무 힘들만큼 아파 죽겠다. 좀 전에 좀 걷다 올까 하다가 마땅히 이 시간에 혼자 나가서 길게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일어서서 허리를 펴고 있었는데. 아니, 사무실을 잠깐 벗어난 것만으로도 좀 덜 아픈 느낌이었어. 알게 모르게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아, 정말 이걸.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탕통 2017-02-1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안읽었어요. 너무 많은 책과 너무 긴 글.

chika 2017-02-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러시군요. 굳이 안밝히셔도 되는 것 같지만 덧글도 관심이라 생각하겠습니다. ^^

종이달 2021-11-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윤동주 DIARY (Future Me 5 years)
윤동주 100년 포럼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다이어리를 열심히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마다 다이어리를 장만해 짧게나마 기록을 해 온 습관때문에라도 다이어리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최근 몇년 동안 기록하는 내용은 점점 별것이 아닌 것이 되어가고 기록일수도 줄어들고 있어서 올해는 한해만 쓸 수 있는 다이어리 말고 2,3년은 쓸 수 있는 만년 다이어리를 구입해볼까 생각중이었다. 그러던차에 윤동주 시인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윤동주 100년포럼에서 기획하고 엮어낸 윤동주 다이어리를 알게 되었다.

 

윤동주 다이어리는 평소 윤동주 시인이 즐겨 읽었다는 정지용, 이상, 백석, 보들레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의 시인들의 시가 실려있고 최소 5년을 기록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사진들이 실려있고 다이어리 본문은 날짜별로 쓸 수 있게 구분되어 있는데 매일 그 첫머리에는 윤동주 시인의 싯구가 적혀있어서 날마다 윤동주 시인의 글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월과 5일정도의 날짜 사이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그가 즐겨 읽었다는 시인들의 시가 담겨있어서 이 다이어리를 기록하는 동안 늘 시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물론 시적인 구성과는 달리 -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일뿐이긴 하겠지만 한 날짜에 정확히 한쪽이 할애되어 줄을 그어놓고 2천 몇년도를 쓸 수 있게 딱 5등분을 해 놓은 것은 조금 맘에 들지는 않는다. 노트의 구성이기 때문에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테지만 여백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윤동주 다이어리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함께 꽂아둔다면 더할나위없는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하는 5년간의 나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이곤 한다. 그러고보니 다이어리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함께 선물한다면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아니 윤동주 시인을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되겠구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서자들 1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꽤 오랫만에 영화 시나리오 같은 책을 읽은 느낌이다. '분서자들'이라는 제목과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부제는 10대 소년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에서 잠시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야기 소재인지라 차마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덥석 집어들었다. 조금 장황하게 시작되는 이야기에 책정보를 다시 봤더니 단권이 아니라 무려 3부작으로 되어있는 책이다. 거기에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완결판이라니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이 과장은 아니었구나 싶고.

아니, 뭐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흥미만을 추구하며 재미외의 다른 것을 찾을 수 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유물이나 고문헌 등의 옛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는 많은데 이 책은 고문헌을 지켜내고 전파하는 임무를 가진 이들의 활약을 담고 있어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직 책의 완결까지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서막에 해당되는 첫째권을 읽은 느낌으로 말하자면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치고는 폭력의 강도가 조금 높은 듯 하고 - 이건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분서자들의 음모와 위협이 책수호자들의 목숨을 담보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정신병원 감금에 총기난사까지 이어지는 모험활극은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게임과 영화를 즐기는 십대들에게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나 라라 크래프트를 좋아한다면 말할것도 없고 책을 좋아하고 고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분서자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제 첫째권을 읽었기에 뭐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어렸을 때 세계적인 무술유단자에게 무술을 배우며 자신도 모르게 비밀결사단의 수호자가 될 자질을 키워 온 오귀스트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지만 사건해결의 열쇠 역할을 하는 세자린 남매의 이야기는 어린아이다운 천진함과 단순 명료함으로 사건을 보여주고, 때로는 재치넘치는 표현과 해학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통상적으로 자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세자린을 통해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찾아보고 그녀의 활약을 더 기대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오귀스의 친구 네네와 바르톨로메와의 우정이 앞으로 펼쳐지는 모험속에서 어떻게 견고하게 이어지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그에 더하여 조금은 진지하게 우리가 왜 책을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려고 한다면 - 저자는 이미 그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 이 책은 더욱 더 큰 즐거움과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의 종말은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 열림원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고향에서는 기와집을 많이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넓디넓은 마당을 끼고 있는 한옥을 보면 꽤 멋스럽게 보인다. 처마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것도, 맑은 하늘 아래 울리는 풍경소리도 모두 멋스럽게만 떠올리게 된다. 기와 지붕의 모습은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이 쌓여도 이쁘고 아무것이 없어도, 심지어 낡아서 이끼가 자라고 있어도 멋스러울것만 같다. 그런 기와의 끝을 장식하는 것이 와당이라고 한다. 처음엔 떠올리지 못했는데 와당을 우리말로 하면 '수막새'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수막새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것. 신라의 미소,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미소띈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멋진 모습들이 담겨있을까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사실 와당의 표정에는 뜻밖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어서 놀라웠고 책장의 마지막을 덮을때는 조금 아쉬운 것이 있었다.

 

와당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4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기나 지역, 국가별 구분이 아니라 와당의 '표정'이라는 제목답게 와당의 문양에 따라 반원형, 동물과 인간, 구름 꽃무늬, 길상문의 4종류로 구분하여 비슷한 문양끼리 모아놓고 저자의 감상을 짧게 덧붙여놓고 있다. 처음 책을 볼때는 와당의 모양만 보고 그 다음은 저자의 설명과 감상을 곁들여 읽었는데 굳이 저자의 설명이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와당도 있지만 솔직히 와당을 많이 보지 못했던 내게는 저자의 설명이 와당의 표정을 더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이 책에 대해서는 글로 설명하기 보다는 실제 와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 긴 글이 필요없겠지만 와당에 대한 저자의 글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꾸밈과 장식이 들어가고 좀 더 세심하고 풍부함을 보여주려고 한 와당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게 된다.

 

"와당의 문양에는 그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담겨있다. 그들이 꿈꾸었던 삶,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약호들이 그 속에 살아 숨쉰다. 집은 허물어져 자취 없이 되었어도, 와당은 흙 속에 묻혀 두 번의 천년을 넘겼다. 그 긴 세월을 잠만 자다 다시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 그 시대를 증언하고, 빛바랜 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서문에 저자가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와당들을 모양과 문양에 따라 모은 것'이라고 이미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막새에 대한 소개가 없어 아쉽다. 우리의 수막새는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지만 또한 저자의 말대로 '같은 종류의 와당도 그 미묘한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 아주 흥미롭다. 수없이 많은 와당들이 비슷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더 우리의 수막새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