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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평점 :
교통사고로 인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사고사인 줄 알았지만 거기에 또 다른 무엇인가 숨겨있다 라는 내용에 무조건 장르소설인가보다 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언니의 얼굴을 봤을 때 그 얼굴에는 웃음기가 보였다니. 훌리아가 그런 언니의 죽음에 담겨있는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일까, 싶었는데 이 책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멕시코계 이민가정에서 자라 부모님 곁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착실하게 살아가던 스물두살의 올가가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죽어버린다. 늘 엄마의 완벽한 딸처럼 보인 언니의 죽음에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지만 훌리아는 그 이상으로 일상이 힘들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곁에서 정숙하게 지내며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이쁜 언니와 많은 것이 대조되는 훌리아는 언니 올가를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언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또다른 관심이 힘들다.
짧게 이야기한다면 멕시코계 이민가정의 십대 소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소설 안에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의 삶의 애환에서부터 동성애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부모와는 다른 문화에서 태어난 자녀세대와의 문화차이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훌리아를 둘러싼 가족, 친구, 친척, 학교.. 그녀의 일상 범위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한두문장씩 툭 튀어나오는 표현들을 읽을때마다 솔직히 흠칫하고 놀라게 된다. 훌리아는 세상에 적응하기 힘든 가난한 불법이민가정의 못난 여자애,여서 세상만사 불평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함과 불평등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당당해보이는 훌리아 역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지않아 부모를 떠나 대학교에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어하지만.
좀 쌩뚱맞을지 모르지만, 훌리아가 상류층 백인 코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서, 나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시카고라는 것에서 놀랐다. 시카고는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의 도시,라는 내가 가진 편견이 떠올라서였다. 부자동네에 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산다는 것을 잊어버린 나의 편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용이 산만해지지는 않는다. 훌리아를 중심으로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또 다른 의미에서 어떻게 완벽한 멕시코 딸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을뿐이다. 훌리아의 성장 이야기는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가 완벽한 멕시코 딸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평온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싶을뿐인 것인지도.
성장소설을 읽으며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해피엔딩이 불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래도 역시, 희망을 갖고 살아갈만한 곳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으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