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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평점 :
"야, 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것에 비하면"(233)
드라마 속 지지리궁상인 엄마에게 진저리치며 말하는 딸에게 내뱉을만한 대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이 대사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이마이는 예전에 한때 유행했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말한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공부를 재능으로 여기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반장이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새 마이마이가 사라지고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평소 체벌을 전혀 하지 않던 담임선생님은 반 전체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후 교실을 떠나버린다. 그 다음 날 엄마가 다니는 축산공장 사장의 딸인 변민희가 나 혼자 있는 교실에 들어와 미화부장의 마이마이를 돌려놓고 떠난다. 못본척 해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변민희는 사라졌고 변민희의 가출 신고 이후 나는 그날 학교에서 변민희를 본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담임인 한정철과 변민희가 사귀는 사이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변민희의 아빠가 끈질기게 딸을 찾아 헤매지만 변민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선생 한정철은 뚜렷한 증거가 없지만 온갖 소문에 의해 학교를 떠나게 되고 나는 그 모든 것과 상관이 없는 듯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간다. 엄마의 가게운영을 위해 목돈이 필요한 나는 횡령을 하게 되고 결국은 회사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 즈음 고향의 공사현장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학창시절 종적을 감췄던 그 변민희가 시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뭔가 악의가 없어보이는데 한번 더 생각하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악의가 느껴지고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싶어진다. 소설의 중반까지는 도무지 예견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단 한문장으로 변민희를 죽인 범인을 예상하게 하는데 그 이후 또 단 한마디 말로 다른 전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아니, 그렇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좀 섬뜩한 느낌이다. 아, 이걸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어서 답답한 것은 나뿐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 찾기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범인 숨기기의 치밀한 구성에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데 솔직히 뭔가 불편하다. 어제 티비에서 본 이야기 하나가 느끼게 했던 그런 불편함같은 그런 것처럼. 초등학생이 같은 반 친구인 지적장애아를 간식사먹자고 데리고 간 후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거리로 내쫗는 모습이 그대로 동영상으로 녹화된 모습을 보는데 끔찍했다. 지적장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던 아이이고 알몸이 부끄러운 것도 인지하고 있는 아이인데 같은 반 친구라면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이 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태연하게 엘리베이터 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돌아갔다니, 얘는 촉법소년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 나는 이 소설의 뒷맛이 그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는 한가지 희망이 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 쇳소리가 섞인 변민희의 목소리가 뒤로 감기 후에 다시 플레이되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253) 그걸 떠올리고 옛 담임인 한정철을 찾아가 사과를 한다. "머릿속에서는 경보처럼 제발, 제발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위험에 처한 것만 같았으므로 최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반복했다. 제발, 제발, 제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두 손은 기도할 때처럼 가슴 앞에 모여 있었고 고개는 푹 속여져 있었다. ...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엄마를 쏙 빼닮은 나의 딸은, 아직은 따뜻한 나의 딸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258)
엄마와 나의 삶이 아닌 나와 딸의 삶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의 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