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아닌?

너무 더워서 쉬는 날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앉아있다가 티비를 켰는데 이웃집찰스가 나온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보고있었는데 대화의 자막이 이상하다.

누가봐도 딱 모범생 아니?

이 말뜻은 누가봐도 모범생이다, 인데 자막은 모범생 아닌? 이라고 되어있다.

이러니 또 어제 서진이네를 볼 때 차이니즈푸드, 라는 말이 들린것 같았는데 자막에는 한국음식 만든다 그러고.

괴리감이란 이런건가.
내 귀가 이상한건가.
내 선입견이 센건가.

차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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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잡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에 담긴 은밀하고 사적인 15가지 스캔들
김태진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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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안내자도 없이 루브르 박물관을 들어가게 되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잘 찾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넓은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하나,하고 있을 때 마침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고 한무리의 아주머니들 옆에서 한국말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으려니 우리의 귀동냥을 눈치채신 분들이 가까이 와서 함께 다니자고 해 주셨었다. 그때 본 모나리자의 실제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처음 그 존재를 알았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역시 잊을수가 없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설명을 해 줬던 가이드는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이라고 했고 유독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 이야기를 유난히 길게 하면서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어 그런지 그냥 스쳐지나쳤을 그림이 역사적 사건을 담은 대단한 그림으로 느껴진 것이다. 

[명화잡사]는 그렇게 그림을 통해 그림이 담아내고 있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저자가 잡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림을 그린 화가나 모델에 대한 개인사와 흥미를 일으킬만한 여러 소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런 이야기로 인해 조금은 가볍게 글을 읽다보면 그것이 곧 당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포인트가 되기도 해 좋았다. 


책의 표지 그림은 '제인 그레이의 처형'의 일부인데 그림이 낯설지는 않지만 자세한 그 배경에 대해서는 들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제인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를 살리고 싶었지만 죽일 수밖에 없었던 메리 여왕의 이야기는 그동안 앤 불린을 중심으로 알고 있었던 단순한 치정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다시 살펴보게 해 주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으로 시작해 그림 속 인물 개개인의 입장을 스토리텔링하듯 묘사하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복잡해보이던 영국 역사의 일부가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 책을 읽으면서 4개의 장으로 나뉘어있는 글을 별 의미없이 무심코 읽어나가다가 이 개별 그림들이 역사속에 어떤 의미로 언급을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각 장마다 [인문학까페]라는 글로 시대의 흐름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전체적인 역사의 틀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림과 화가들의 생애는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저자의 필력이 좋아서 그런지 간결한 설명이 이해하기 쉬웠고 좀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도 갖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림과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그림과 역사에, 특히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흥미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마리앙뜨와네트의 목걸이 사기사건이나 막시밀리안 황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흥미롭기도 했지만 관심이 더 컸던 것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와 그림이었다. 그림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림이 많지는 않아 아쉬움이 조금 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그림과 설명이 있어서 명화잡사,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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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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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것에 비하면"(233)

드라마 속 지지리궁상인 엄마에게 진저리치며 말하는 딸에게 내뱉을만한 대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이 대사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이마이는 예전에 한때 유행했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말한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공부를 재능으로 여기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반장이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새 마이마이가 사라지고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평소 체벌을 전혀 하지 않던 담임선생님은 반 전체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후 교실을 떠나버린다. 그 다음 날 엄마가 다니는 축산공장 사장의 딸인 변민희가 나 혼자 있는 교실에 들어와 미화부장의 마이마이를 돌려놓고 떠난다. 못본척 해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변민희는 사라졌고 변민희의 가출 신고 이후 나는 그날 학교에서 변민희를 본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담임인 한정철과 변민희가 사귀는 사이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변민희의 아빠가 끈질기게 딸을 찾아 헤매지만 변민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선생 한정철은 뚜렷한 증거가 없지만 온갖 소문에 의해 학교를 떠나게 되고 나는 그 모든 것과 상관이 없는 듯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간다. 엄마의 가게운영을 위해 목돈이 필요한 나는 횡령을 하게 되고 결국은 회사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 즈음 고향의 공사현장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학창시절 종적을 감췄던 그 변민희가 시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뭔가 악의가 없어보이는데 한번 더 생각하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악의가 느껴지고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싶어진다. 소설의 중반까지는 도무지 예견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단 한문장으로 변민희를 죽인 범인을 예상하게 하는데 그 이후 또 단 한마디 말로 다른 전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아니, 그렇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좀 섬뜩한 느낌이다. 아, 이걸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어서 답답한 것은 나뿐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 찾기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범인 숨기기의 치밀한 구성에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데 솔직히 뭔가 불편하다. 어제 티비에서 본 이야기 하나가 느끼게 했던 그런 불편함같은 그런 것처럼. 초등학생이 같은 반 친구인 지적장애아를 간식사먹자고 데리고 간 후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거리로 내쫗는 모습이 그대로 동영상으로 녹화된 모습을 보는데 끔찍했다. 지적장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던 아이이고 알몸이 부끄러운 것도 인지하고 있는 아이인데 같은 반 친구라면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이 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태연하게 엘리베이터 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돌아갔다니, 얘는 촉법소년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 나는 이 소설의 뒷맛이 그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는 한가지 희망이 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 쇳소리가 섞인 변민희의 목소리가 뒤로 감기 후에 다시 플레이되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253) 그걸 떠올리고 옛 담임인 한정철을 찾아가 사과를 한다. "머릿속에서는 경보처럼 제발, 제발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위험에 처한 것만 같았으므로 최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반복했다. 제발, 제발, 제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두 손은 기도할 때처럼 가슴 앞에 모여 있었고 고개는 푹 속여져 있었다. ...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엄마를 쏙 빼닮은 나의 딸은, 아직은 따뜻한 나의 딸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258)

엄마와 나의 삶이 아닌 나와 딸의 삶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의 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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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역사는 그 자체로 생생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결코 이상적 인간이 아니다. 포장을 벗기고 가면을 열어젖히면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사롭고, 자질구레한 일에 연연하고, 비합리적인 생각에 휘둘리는 그런 인간이다. 여러 사건에 휘말린 그에게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러한 욕망의 드라마가 바로 [영화잡사]에서 말하는 잡스러움이다. 한 욕망이 다른 욕망과 부딪치고 뒤섞일 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삐걱거리며 앞으로 굴러간다. 이렇게 보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분명 사람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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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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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배경은 스웨덴의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유세르라고 하는 그 마을의 교회에서 인턴생활을 하던 여동생 매들린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그녀를 찾기 위해 언니 퍼트리샤는 여러 노력을 했지만 결국 동생을 찾지 못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며 동생찾기를 포기할 즈음 퍼트리샤는 자신이 동생에게 선물했었던 목걸이를 우편으로 받게 된다. 결국 퍼트리샤는 실종된 동생의 행방을 찾기 위해 다시 유세르로 떠나고...


소설은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유세르로 떠난 퍼트리샤와 유세르에 도착한 퍼트리샤가 묵게 된 유세르의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모나와 그녀의 친구 도리스와 마리안네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과거의 1987년을 현재 시점으로 살아가는 매들린의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되면서 실종사건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매들린의 이야기는 왠지 결론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조금 틀에 박혀있는 이야기의 전개일까 싶었지만 그녀의 행방을 찾는 현재의 퍼트리샤와 매들린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뭔가 새로운 전개와 미스터리함을 더해 주고 있어서 뻔한 스토리처럼 읽지 않게 된다는 것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심은 퍼트리샤가 매들린의 행방을 찾아 해결하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모나의 책이있는 B&B 호텔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뭐라 설명할수는 없지만 내 느낌은 다정함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등장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작가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순간 과거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소설 속 인물들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가 이제 현재의 삶에서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소설을 통해 느낀 마음이다.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는 소소함을 한가지 이야기하자면 독서모임에서 언급되는 소설들에 대한 반가움이 있고 마을 축제에서 문학작품속에 등장하는 음식으로 퀴즈를 낸다는 아이디어는 실제로 축제나 행사때 이뤄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의 문학은 문화속에서 다 비슷한 느낌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와이파이 속도가 빠른 곳을 찾는 10대 소년이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은 좀 낯설기도 했지만 뭔가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책임감있게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그마저도 좋은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막연하게 이야기할수밖에 없는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곧 이야기 전개에 대한 흥미로움을 반감시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는데 뭔가 자꾸 이야기를 덧붙이게 되면서 더 많은 것을 풀어놓고 싶어진다. 

그냥 내 느낌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주 재미있다라고 단언할수는 없지만 사람에 대한 다정함을 느낄수는 있다고 말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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