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유명하다는 아나운서 '손미나'라는 사람이 쓴 에세이다.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 기껏해야 그곳에서 살다가 돌아댕기며 끄적거린 감상문 정도일지도...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건 손미나라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로 재밌을 것 같지 않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북소리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도 한번 읽어볼까, 싶은 생각을 해보면서 책을 읽었는데.

그래, 바로 엊그제. 후배녀석과 통화를 하다가 또 내가 잊고 지냈던 얘기를 들었다. 언.제.쯤 시작하냐는 얘기를 후배녀석들끼리 얘기나눴었다고. 후원자가 되어주기로 한 것도 잊지 않고 있더라.
아, 삶이 부끄러워지는 이 시점에서 이런 책을 읽어버리고 있으려니 더 허무해지려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구나.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인데. 안그래? 언제나 주말은 휴식이었는데.
그래서였나. 엄청 먹어대고 배가 아파 화장실로 뛰어가고, 또 먹어대고.. 몸을 움직일수가 없네. 생각...도 멈춰버렸고.

이 여름에 여전한 건,
혈기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모기녀석들뿐. 내 한몸 지탱할 피도 모자랄판에 극성인 모기녀석들에게 너무 많은 피를 넘겨주는거 아닌가!

아, 정말 덥다!


일주일쯤 전에 나는 땀을 삐질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그저 그런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가 심심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 읽어버리고 책을 읽고 난 후의 마음같아서는 정말 나도 '자유!'를 외칠 수 있는 심정으로 리뷰를 쓸꺼야, 였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너'는 자유,만 남아버렸다.
어딘가 소설처럼 이야기가 풀리고, 운명같은 도움의 손길이 그녀에게 흘러들어가고, 멋진 만남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처음엔 화가 나려고도 했다. 모든게 다 잘풀리기만 하는 것 같은 이야기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다보면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바뀌는 것이지 '행운'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
'자유'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찾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꿈꾸지만, 여전히 자유는 멀리 있다.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은 소망한다,로 끝나면 안되는 것이다. 박차고 일어나 외치고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아득한 밤 하늘의 별을 따는 심정이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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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구판절판


복수다! 생트집이라고 욕을 해도 좋다. 재취업센터에 다니다 지쳐버린 자신과, 어깨를 늘어뜨린 채 휠체어를 밀고 있는 이구치를 위해 복수할 거라고 도요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명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사사로운 분노, 개인적인 원한, 뭐라 해도 좋았다.
공적인 이유로 일어나는 전쟁이나 내분에 비하면 훨씬 더 건전하다. 개미나 벌은 자신들의 집과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지만, 자신의 원한 때문에 상대를 쓰러뜨리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복수가 훨씬 인간적이라고 도요타는 생각했다.
인간이 그렇게 위대해? 휴머니즘이란 말이 제일 싫어, 늙은 개가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261쪽

-플라나리아가 뭔데?
- 2센티미터밖에 안되는 작은 동물. 뇌도 없을 것 같은 원시적인 동물이지.
-플라나리아는 물이 없으면 못 살아. 그 녀석을 용기에 넣고 들어있던 물을 빼는 거야. 한 곳에만 물을 붓고 그곳에 불빛을 비춰. 그러면 물을 찾아 이동해.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 실험을 반복하면 플라나리아는 불빛이 비치는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는 거야. 물이 없어도.
- 학습된다는 얘기군
- 맞아. 불빛이 비치는 곳에 물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지. 그 실험을 여러차례 반복했어. 어떻게 됐을 거라고 생각해?

- 어느때부터 움직이지 않는거야. 아무리 불빛을 비쳐도 이동하지 않아. 그래서 결국 물을 못 만나 죽어.

- 글쎄, 플라나리아가 싫증을 냈을 거라는 말도 있어. 똑같은 반복에 싫증이 난거야. 그 증거로, 용기 내부의 재질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면 다시 학습을 해. 아무튼 그 원시적인 동물조차 자실을 선택할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지겹다는 거지.

- 그럴듯한 얘기 아냐? 인간은 더더욱 그래. 몇십 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살아. 원시동물도 질려버리는 그런 반복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알아?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그렇게 받아들여. 이상하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이는지 난 모두 이해가 안 가

- 좋지도 않은 곳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거야. 반복해서 같은 실험을 당하는 플라나리아 신세가 되는거지..... 자네가 옳았다는 거야. 독립에 실패하고, 약간의 빚을 지고, 배신감을 맛보았다고 해도, 무작정 똑같은 매일을 사는 것보다는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거지.-271-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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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구판절판


단순한 이야기도 뼈대에 조금 손을 대면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게 돼. 정의나 악, 그런것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해.
파괴 활동을 계속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이야기도, 원주민과 개척자의 이야기도, 익충과 해충의 차이도, 모두 보는 각도에 따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달라지는거야.

-82쪽

- 오리엔티어링(독도법)이란 말, 알아?
- 지도를 보고 목표 지점을 찾아가는 거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나이 들었다고 놀리나?
- 나이는 상관없어. 다시 말해 미래란 그런거야. 찾아내는거라고. 먹구름 속을 걸어서는 미래가 저절로 다가오진 않네. 자네도 잘 생각해보는게 좋을거야.
-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나?
- 그 다음을 생각하라는 걸세. 자네뿐만이 아니야. 정치인도, 아이들도, 도무지 생각을 안 해. 반짝 생각하곤 끝이야. 흥분하고 끝, 단념하고 끝, 외치고 끝, 야단치고 끝, 얼버무리고 끝이지.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아. 텔레비전 보는 데만 익숙해져서 사고가 정지된 거야. 느끼기는 해도 생각하지 않아.-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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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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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
미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7월
절판


냉장고 안의 콜라 한 병

카리바 호수가 있는 잠비아 남부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더운 기후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 해는 남아프리카를 내려친 최악의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말라붙고 있을 정도였다.
카리바 호수에 파도가 이는 게 신기할 만큼 이 곳에는 잔잔한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금방 짠내 나는 땀에 절어버린다.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면, 온수기도 달려있지 않는 샤워기에서 일부러 끓인 것 같은 뜨거운 물이 쏴 쏟아졌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 게스트하우스 지붕의 양철탱크를 펄펄 끓여 놓고 있었다.
첫날 저녁,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콜린스와 플루덴스가 다음날 아침에도 도시락을 싸들고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왔다. 플루덴스가 내민 도시락 통에는 계란프라이와 토마토를 넣고 식빵을 3층으로 포갠, 아프리카에서는 고급요리에 속하는 "에그와 토마토 샌드위치'가 들어있었다. 그동안 아프리카인들이 얼마나 간소한 아침밥을 먹는지 목격해왔던 나는 그 샌드위치를 보자마자 마음이 울컥해졌다. 나는 "너희도 계란이랑 토마토 먹었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대신 그 샌드위치를 정말로 맛있게 쩝쩝 소리를 내며 먹어주었따. 그리고 아침부터 땀흘리며 도시락을 쌌을 그들을 위해 게스트 하우스의 냉장고 안에 든 차가운 콜라 두 병을 주문했다.
-138-139쪽

그동안 내가 아프리카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아프리카 친구를 가장 기쁘게 하는 선물은 냉장고 안에 든 차가운 콜라 한 병이란 사실, 전기없이 한여름을 나는 게 얼마나 끔찍하게 힘든 일인지, 이 뜨거운 날씨에 냉장고도 선풍기도 없는 좁은 방에서 햇볕에 끓는 뜨거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는 물 한 병이 콜라 한병보다 비싸다. 대도시가 아니고선 슈퍼마켓에서 물을 사먹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 물을 산다는 건 정말로 별나고 호사스러운 짓이다. 그나마 2-3백원밖에 안하는 콜라 한 병도 아프리카의 서민드에겐 값비싼 포도주 한 병처럼 큰 맘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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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뒷골목 엿보기
홍하상 지음 / 예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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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프랑스 여행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나는 지금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싶단 말이지.
하지만 어쩔건가. 프랑스 여행도 나와는 거리가 멀지만 맛있는 와인을 마시는 것조차 나의 일상은 아닌데.

프랑스의 뒷골목은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했지만 - 그 골목의 풍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느끼는 프랑스의 예술적이고 낭만적이고 감성이 풍부한 그런 느낌이 아닌 살벌하고 추악한 풍경이 예상되었다는 뜻이다. - 무미건조한 나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뒷골목의 그늘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그 인상이 너무 강해 뒷골목의 그늘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외방 전교회의 앙베르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 감동없이 읽어가다 결국은 책의 끄트머리에 나온 프랑스 가족의 사진을 보고, 앙베르 신부님의 동생마저 한국에서 순교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에는 어쩔 수 없이 뭔가 뭉클함이 올라와버린다.

이 책의 느낌은 딱 그정도인 것 같다. 어릴적에 즐겨 뛰놀던 정감어린 우리네 뒷골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프랑스의 뒷골목은 그리 유쾌한 여행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래서 입맛이 좀 쓴 듯 하지만, 그래도 뒤끝맛은 향이 남으려한다.
그러니까... 모든 걸 다 잊고 - 프랑스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박물관을 찾아 골목을 돌아돌아 걸어가다 만난 길거리의 그 환상적이던 케밥 비스무레 한 걸 못먹어본 한도 잠시 잊어버리고 - 오늘은 맛있는 와인 한 잔으로 프랑스를 추억하고 갈망하고 싶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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