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은행나무 사진을 찍은 건,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파릇파릇한 새싹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어요.

창문을 열고, 사무실 바로 앞에 서 있는 놈(인지 확실하지는 않아요.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죠? ^^;)을 잔뜩 끌어당겨 찍었는데, 에라, 새싹은 카메라에 잘 안 나타나네요. 우웅.
그나저나 얘도 참 게을러요. 4월이 되어서야 겨우 눈뜰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4월 6일

 

게으르다고 그랬는데, 막상 싹이 나니까 그 다음은 순식간이에요.


4월 10일

 

잎이 쑥쑥 자라나는 거, 보이시죠?


4월 14일

그제랑 어제랑 비가 왔지요.
비가 오고 겨울 같은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이 놈은 굉장히 씩씩한 것 같더라구요.
그러더니 오늘 아침은 정말 기운차 보입니다.
그냥 연둣빛이 아니라 초록의 기운을 띠기 시작했어요.


4월 21일

이 사무실에서 이 나무를 보고 있었던 게 벌써 5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이렇게 변화한다는 걸 올해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무심한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겠지요.
세상에 무심하지 말자구요, 우리.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의 하늘입니다.
기분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무

                                    -  박재삼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을 보아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 스란치마의 물살이
어지러운 내 머리에 닿아
노래처럼 풀려가는 근심,
그도 그런 것인가.

사랑은 만번을 해도 미흡한 갈증,
물거품이 한없이 일고
그리고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다운 이여,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면
이 세상엔 너무나 할 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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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나무를 봐라~

chika 2006-04-2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세상에 무심하지 않도록 노력할께요.
나무의 새싹이 나는 걸 지켜보는 그 느낌을 알 것 같아요. 저도 성당에 이십년 넘게 다니면서 마당에 있는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빈가지로 있다가 봄이 되면 끝에서 조금씩 새 싹을 내밀고 여름이면 온통 잎으로 뒤덮여 그늘을 만들어 준다는 걸 요즘에야 느끼고 있거든요.
정말 멋져요!

sudan 2006-04-2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얼블루님 오늘 굉장히 문학적이셔요!
(아까 잠깐 이 페이퍼 없어졌길래 뭔일인가 했더니, 시가 덧붙여졌네요?)

urblue 2006-04-2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치카님, ^^

수단님, 이봐요? 제가 문학 전공이라고, 문학적인 인간이라고 누누히 얘기하지 않았나요? 흥.

sudan 2006-04-2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말하실 줄 알았어.)

sudan 2006-04-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이라도 인정해주는 사람은 그래도 저 밖에 없지 않나요? 히히.

urblue 2006-04-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진주 2006-04-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동깊은 은행나무 기록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저렇게 찍어보리라 맘 먹었건만...^^

chika 2006-04-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블루님, 말은 못했지만 저도 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