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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레몽 드파르동 지음, 정진국 옮김 / 포토넷 / 2015년 3월
평점 :
레몽 드파르동의 방랑을 읽다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방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솔직히 처음 사진에세이를 읽기 시작할 때 나는 막연히 '방랑'에 대한 겉멋으로 인해 이 에세이 안에 어떤 사진이 담겨있을까,가 무척 궁금했었다. 생각과는 달리 뭔가 개념이 잡히지 않는 사진들과 쉽게 와 닿지 않는 그의 글들이 '방랑'앞에서 당황하게 하며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아, 이건 뭘까. 사진과 글을 연결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런데 문득 그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방랑에 주제는 없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지도 부자를 고발하지도 않는다. 나는 구름을 찍고 땅바닥을 찍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또 너무너무 잘 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또 너무너무 잘 봐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멋'으로만 글과 사진을 훑어가려고 한 것이어서 당혹감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랑은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처럼 이리저리 시선이 가는 곳의 모습이 사진에 찍혀있다. 왜곡시키지도 않고 거짓을 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사진들.
주제도 없이 목적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떠도는 것 같지만 어쩌면 방랑은 그래서 더 자신의 주변을 가감없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의미없이 그저 떠도는 것이 아니라 방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한다. 방랑은 단순한 광기보다 더하다. 자취를 남기고, 시간을 붙잡는다. 늙을까 겁내고 죽을까 겁내지 않을까"
솔직히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는 도무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잘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멈추고, 문장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있으려니 글 하나하나가 세상을 방랑하듯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사진의 의미는 그렇게 잘 알수는 없지만, 사실 레몽 르파르동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일치할수도, 일치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괜히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얄팍하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수만은 없는 사진에세이가 조금은 더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