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학(trolleyology)’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 사유 실험은 철학자들의 관념적 유희라거나 인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전히 철학적 난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한 명을 살릴지 다섯 명을 살릴지 선택을 하는 것과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요소를 지닌 트롤리 문제는 아래와 같은 다양한 윤리적 관점과 방법론을 포괄한다.
-의도적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타인의 목숨을 뺏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방어가 목적이라면 살인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이중 효과의 원리, 토마스 아퀴나스로부터 출발하여 전쟁 옹호의 주요 논리로도 사용됨).
-인격체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되며 살인이나 고문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도덕이 존재한다(이마누엘 칸트).
-‘숫자’가 최우선의 조건이므로 행위의 의도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벤담의 공리주의).
-어떤 행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차이가 있는가(피터 싱어).
-행위의 의도는 도덕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프랜시스 캠, 토머스 네이글).
-선택을 결정짓는 다양한 변인(성별, 인종, 종교, 인구통계학적 요인 등)에 따른 실험 데이터를 수집하여 일상적 직관을 해체한다(실험철학X-phi).
============================================= 읽어보고 싶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 어찌 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회피의 최고봉격인 '질문이 잘못됐어!'를 외치며 생각을 멈춰버릴 것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깊이있는 내용과는 달리 제목이 좀 와닿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듯하다. 한없이 가볍고 가볍고 가볍게만 흘리며 보내고 싶은 내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라는 마음이 있나보다.

오늘 아침에 잠깐 훑어본 책은 '서재에 살다'
별다른 감흥없이 읽어볼까, 하고 펼쳤는데 첫장부터 마음을 확 잡아끈다. 저자의 서재는 수경실 修绠室 이라고 한다. 수신제가,하면서 익혀왔던 한자라 그 뜻만 생각했는데 이 뜻은 길다,로 수경은 긴 두레박줄.
뭐, 자세한 건 책으로 확인하시고.
찬찬히 꼼꼼하게 읽어나가야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과는 또 상관없이 나는 책장을 휘리릭 넘기게 될 것이다.
어머니 수술일정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긴장상태로 멈춰있는 듯 했었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 위험한 수술을 취소하고 항생제 치료를 하고 팔에는 관절을 꺾을 수있는 부목을 대기로했다. 수술몇시간전까지 긴박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의사의 만류와 엄포에도 불구하고 수술강행을 요구하던 어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취소 결정을 한 후, 죽음을 각오했던 긴장이 풀리셨는지 이틀동안은 긴 잠에 빠져계시다가 이제는 슬금슬금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하니 수술을 취소하고 당신을 왜 살려냈냐고 원망하신다. 그래, 아프니까 그런 푸념은 우리가 다 받아줘야지. 그래, 받아줘야 하는데... 나 역시 상태가 안좋으면 은근슬쩍 짜증과 화가 올라온다. 하지만 뭐. 나도 그동안 쌓인 피로가 누적되었었고 어머니 수술의 고비도 넘기고 중요한 회의도 지나갔으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토요일 병원에 가서 식사때와 어머니 운동겸 산책을 위해 한시간동안 휠체어를 끌었던 것 빼고는 줄창 잠만 자다가 돌아왔다. 아, 어제도 실컷 잠을 잤어야 하는건데...
아무튼 이제 조금씩 평소의 평온하고 바쁜듯하면서도 조금은 늘어지는 일상이 돌아온 듯 하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책을 둘러볼시간도 나는 것이고. 당분간은 이 여유를 느껴봐야겠어. 이제 하루 이틀 후면 또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어서 바빠지겠지만 그래도 단 하루, 이틀만이라도.
만화,라고 하기보다는 이제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이 더 와닿기는 하다. 그래도 뭐 따지고 보면 그냥 다 그림책,인거 아닌...게 아닌가? 아무튼 그래픽노블이라고 해서 글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여름에만 읽는것도 아니고.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소설만 읽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이 읽고 싶은데 내 수준이라는 것이. 책을 읽는데 수준을 따질 것은 아니지만 나의 수용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 그걸 인식하지 않을수도 없는 것 아닌가.

ㅎ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읽고 싶지만 지금 내 앞에 쌓여있는, 혹은 쌓여있게 될 책들은 이것. 읽으려고 펼쳐든 책이 있음에도 오늘 점심시간에 래핑을 뜯어 들여다보기라도 하게 될 책은 아마도 호주... 호주. 가보고 싶다. 쓰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