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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내게 '헌법의 풍경'이라니. 정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정말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냐고 되물으면 대답을 망설이겠지만,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되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읽으세요!'라고 대답하겠다는 것도 정말이다.
맞장구를 치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알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법'을 소유한 특권층의 행위에 무척 화가나 욕이 나올때도 있고...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법학과를 다닌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들이 뭘 공부하는지 몰랐지만 옆에서 동냥으로 느꼈던 건 '법'공부하는 애들은 모두 단순하고 무식한 녀석들이라는 거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해석'이라는 부분이 전혀 없이 법전 그 자체를 외우는 모습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정상참작'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봤지만 그래도 내게는 법조문만 암기하는 단순 무식한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뿐인가. 그 당시 우리 사이에 나돌던 얘기 중에는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전과범은 자신의 형량뿐 아니라 범죄를 어떻게 하면 형량을 줄일 수 있는지 다 꿰고 있다는 것도 있었다. 정말 '법'이란게 단순 무식한 적용일뿐인거 아냐?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를 받고 결국 구속된 선배가 있었다. 재판이 있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런 문제들과는 거리가 멀어 그저 재판이 있다면 선배들을 따라 법원으로 가곤 했었다. 그때 선배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민주 변호사입네 하는 그 변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선배 가족이 변호사를 바꿔버렸다는거였다. 그런데 웃긴 건, 재판을 앞두고 삼십분전에야 법원으로 오던 그 변호사가 그때야 그 사실을 알고 당황해하며 돌아갔다는 얘기. 그게 사실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때 느낀건 그랬다. 구속 수감되어 감옥에 가 있는 당사자와 가족, 그를 아는 모두에게는 아주 중대한 것들이 변호를 맡은 변호사나 잡아넣으려고 하는 검사나 또 학생이야, 하는 판사나 공통된 것은 '빨리 끝내보자'라는 것. 그들은 '법'을 뭐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헌법의 풍경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 법정의 풍경이 떠올랐다. 우연챦게 일찍 가서 맨 앞줄에 앉아 다리를 올리고 있다가 주의를 세번씩이나(!) 받으면서 '왜 그래야지?'라고 툴툴대며 괜한 개김성(?)을 보였던 것은 나뿐이었다. 판사가 들어올 때는 다 일어나야 했고. 난 정말 그때 '신성한' 법정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잘못한 것도 없는 학생을 잡아 가두고 재판을 하면서 뭐가 신성하다는거야?
정말 멋모르던 갓 스물의 어린 시절에 부렸던 치기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감정은 남아있다. 물론 그 후에 또 갔었던(난 도대체 법정엘 몇번이나 갔던거야?) 법정의 풍경은 또 달랐다. 젊은 시절의 치기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나름대로 긍정적이어서 그랬는지, 어린 여학생이 안스러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사나 변호사보다 더 많은 말을 했던 판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만 조금씩 울먹이는 선배를 달래며 입장을 이해하는 듯 대변해주던 그 판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또... (이왕 말 나온김에 그냥 다 해버리자. ㅡㅡ;) 선배의 재판을 기다리며 옆집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가 고소된 사람, 간통죄로 들어온 사람..등등의 이야기를 어이없게 듣다가 더 어이없게도 졸고 있는 판사를 보기도 했었다.
아마도 내가 봤었던 법원의 풍경은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헌법의 풍경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무척 흥미롭고 재밌는 책이지만 현실을 떠올리면 조금은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 그러니 부디 많은 분들이 읽으시길. 특히 '법'으로 '밥'벌어 먹고 사시는 분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