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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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진중함이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 심지어 나의 글에서조차 가끔은 모순과 거짓행동을 보게 되기도 하는데 그의 글에서는 자기반성과 성찰,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다. '진솔하다'라는 표현은 딱 그에게 맞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불편함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더 악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유니세프를 후원하고 성탄카드는 항상 유니세프에서 제작한 카드만 구입해 사용하시던 신부님이 카드 구입처를 바꾸시면서 '유니세프에서는 낙태를 권장하고 있으니 후원하면 안되겠다'라고 하신적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공식적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 외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또한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책에서 박노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평화와 연대에 대한 업적은 대단하지만 다른 모순적인 부분들도 많다. 언젠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불편하지만 진실인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을 털어놨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은 어려운 문제들, 특히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이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 아닌가 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선생님의 말씀은 이론만을 고집하던 나에게 깨우침과 더 많은 고민을 던져주셨고 지금까지도 그것은 계속 진행중이다.

박노자의 글은 '인권'에 대한 생각의 중심을 고민하게 해 주셨던 그 선생님의 말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하는 커다란 돌 하나를 던져주는 그런 느낌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단호하게 중심을 잡고 흔들림없이 확신을 갖고 옳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진심이 와서 박히는 그런 느낌.

 

나는 스스로를 좌파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좌파하라'는 말에 선뜻 응하지 못한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좌파하라'라는 말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 현실에서 왠 헛소리인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박노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정통이라는 느낌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 진중하게 '좌파하라'는 정언명령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정치가,라는 것에 대한 불신의 편견때문에 선거 자체에 큰 관심을 갖지 않다가 투표 며칠전에야 받은 정당 홍보인쇄물을 보면서 고민을 시작했었다. 최종적으로 두 정당을 놓고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녹색당은 독자정당의 역할보다는 진보신당과 연대하여 환경분야의 역할을 맡는것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정당투표를 했는데 그런 내 생각이 더 명확하게 잘 정리되어 글로 표현된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스스로 좌파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박노자가 이야기하는 좌파의 성향이 있는건 맞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박노자의 '좌파하라'를 읽고 있으려니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관, 계급성과는 관계없이 그저 성실하게 신앙생활만 하던 친구들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진지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검토하고 옳은 길을 찾아 가려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주교님이 신앙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강론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며 맹목적으로 변화하는 친구도 보게 된다. 가끔 그 맹목적인 지지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제주해군기지 반대 이외의 사회문제에 대한 기준점이 없이 뭐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생활하는 모습은 전혀 아닌데, 나는 꼼수다를 애청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깔깔대며 좋아라 웃는 친구의 모습이 불편하기만 한데 나는 그저 그 모든것을 방관자처럼 바라보고만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모습이 불편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혹시 내가 그들의 의식화를 믿지 못하는 편견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빠들에 대한 불편함도, 나꼼수의 팬들에 대한 불편함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가지의 모습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맹목적인 추종의 느낌이 그 불편함의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박노자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믿고 싶다.

 

'좌파하라'는 언젠가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이기적인 개인주의 성향을 반성하게 되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 있다.

진중하고 진솔한 그의 글을 그 태도와는 달리 성급하게 달려들어 읽어버린 내가 내 안에 담긴 것을 정리하기에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설득력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홍세화님의 추천사를 다시 한번 더 읽고 되새겨본다.

"진보를 참칭해온 리버럴들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비정규직을 배제해온 한국의 이상한 대기업 노동조합과 줄곧 두 손 맞잡아온 좌파정치의 불편한 진실을 겨냥하는 그의 최근 글들은 전면적인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를 맞아 더욱 박진감 넘치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좌파하라]라는, 한국어로는 약간은 어색한 제목을 단 박노자의 이번 책은 언설로는 모든 진보를 말하는 '좌클릭'을 행하면서도 정작 몸은 리버럴들의 품에 안기는 '우클릭'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좌파, 좀 제대로 하라'는 경고로 내게는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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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5-0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답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나 책이나 리뷰...

chika 2012-05-10 09:14   좋아요 0 | URL
^^;;

감은빛 2012-05-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는 관계없는 댓글입니다만,
녹색당과 진보신당은 서로 성격이 다른 정당입니다.
정책적 연대는 가능하겠지만, 엄연히 선거 국면에서는 경쟁 관계가 되겠지요.
저도 녹색당 창당 전에는 진보신당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점은 좀 안타깝습니다.

짧은 한마디지만, 녹색당을 독자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구가 조금 맘에 걸려 한마디 남깁니다.
녹색당과 진보신당은 비록 지금 등록취소가 되었지만,
당당하게 재창당하여 보다 더 굳건히 자기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hika 2012-05-10 09:12   좋아요 0 | URL
^^
네. 어떤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재창당이야기도 알고 있고, 이번에 지지율이 낮아 안타까웠습니다. 제 친구는 녹색당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저는 현시점에서 굳이 따지자면 정치적으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이러한 말조차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

그런데 뭐... 지켜봐달라고 하지 않으셔도 관심있게 소식 듣고 있습니다. 감은빛님 서재나 까페에서 전해듣는게 많으니 종종 글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