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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특정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공간이 있다. 야크 버터 초 향내가 가득한 티베트 사원, 소리가 울려퍼지는 중세의 성당, 부드러운 털이 몸을 감싸는 침실, 각각 향기, 소리, 감촉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공간에서도 오감은 한데 어우러져 나타났다.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지만 우리는 온몸으로 공간을 경험한다. 바라보는 동시에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만진다. 초의 향기가 코를 찌르기는 하지만 거친돌과 발자국 소리가 있었다. 메아리가 신비로웠지만 돌 틈의 미세한 이끼와 세월의 육중한 무게가 있었다. 나신을 에워싸는 침실에서도 수많은 실의 냄새와 둔탁하게 먹히는 소리가 있었다.
감각은 촘촘히 짠 그물과 같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물을 이룬다. 공간의 체험은 이 감각의 그물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그물을 통과한 감각정보가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214)  

책의 첫장을 펼쳐들면서부터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공간속으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느낌들과 함께 빠져들어가버렸다. 뭔가 거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왠지 지금은 말이 뒤죽박죽되더라도 나의 느낌을 그냥 툭 던져넣어버리는 것이 진짜 공간공감이 될 것 같아서 일관성없겠지만 그저 순간순간 떠오른 나의 기억 속 공간을 끄집어내어 투박하게 이야기하다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공간에 대한 틀을 깨버리고, 특정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공간에서도 오감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나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
어쩌면 그것은 언젠가 떠났던 단체 관광버스의 소란스러움에 익숙해져 있다가 긴 여행에 지친 이들이 모두 잠들어있고, 혼자 깨어 나지막히 울려퍼지는 깐쪼네와 구비구비 돌아가던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길의 너와지붕, 해를 등지고 고개 숙이고 있던 해바라기꽃밭, 기분좋게 덜컹거리던 버스의 느낌까지 한데 어우러지던 그 순간, 이 세상에 참된 평화 있어라를 중얼거리며 느꼈던 그 완벽한 평화로운 느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것은 또 어쩌면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책 속에 나오는 다락방에 대한 선망어린 추억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락방에 놓여있는 건초침대, 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달빛과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림,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숲, 아침에 눈을 뜨면 짙푸른 숲이 세상의 상쾌함을 몰아 맑고 깨끗한 공기를 담아주는 곳. 그래서 몇년 전 단지 3일간 머물렀을뿐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지낸것처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독일 산골마을의 다락방에서 지낸 즐거움의 공간. 

공간공감은 건축학으로서의 공간의 중요성은 단지 실용적이거나 디자인이 훌륭해야한다거나 하는 나의 단순한 생각을 뒤집어 엎어버리면서 동시에 나의 특별함을 간직한, 간직할 수 있는, 간직하게 될 공간의 탄생과 그러한 공간에 대한 체험과 기대가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의 공간이 주어지고, 그 안에 툭 던져졌을 때 나의 고유하고 독특한 체험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간의 경험을 만드는 일은, 건축을 하나의 살아있는 체험으로 보지 않으면 디자인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건축을 이미지나 형태로 생각하면 온전한 경험이 나오지 않는다.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경험은 그냥 만들어진다는 생각과, 애초부터 공간의 경험을 위해 조심스럽게 계획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117)   

'자신만을 위한 에워싸인 공간'. 바로 이 공간은 우리 삶 속에서의 공간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의 순수한 본질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20) 
하이데거는 한 사람의 삶이 평안함 속에 머무르면서 자신만의 본질을 찾을 때 진정한 거주가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그가 말하는 거주란 단지 집이나 어떤 건물안에 잠깐 체류함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를 의미하며 특정한 건축양식을 초월한다. 삶은 건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길에서도, 숲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이기 때문이다(38).  
그러니 공간공감은 삶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언젠가 친구 하나는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의 흙집을 그대로 보수하며 지내다 훗날 할머니가 사시던 그곳에서 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공간공감은 그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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