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 일주를 하고 싶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돈다는 것은 뭔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세계화 덕분에 지구 반대편이 이웃처럼 느껴지기 전에는 모든 모험가들이 일종의 사명처럼 세계일주를 꿈꾸었다. 지금은 세계 일주가 예전처럼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목표에는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14)

 

내가 개인적으로 비행기 여행을 반대하는 이유는 대개 안락함, 미적 요소, 철학적 원칙과 관련이 있지만, 비행기 여행의 정치적 측면도 점점 논란을 일을키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비행기를 반대하는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반 비행기 정서는 대부분 환경적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대형 여객기는 재생할 수 없는 자원을 엄청나게 연소시킨다. 땅 위에서 게이트까지 천천히 이동하는 데도 터무니없이 연료가 많이 든다...... 이륙한 비행기는 한 달에 약 10억 킬로그램의 등유 찌꺼기를 하늘에 내뿜는다. 비행기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와 질소 산화물을 방출하는 주범이다. 런던-파리 구간을 왕복하는 비행기는 유로스타가 유로 터널을 왔다갔다 할 때보다 이산화탄소를 열 배 이상 더 많이 방출한다. 게다가 비행기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상층부에 바로 누적되므로 더 해롭다.
공항 또한 환경 운동가들의 멸시와 비난의 초점이 되고 있다. 동절기에 비행기 제빙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근처 수자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 또한 공항은 외따로 떨어진 준교외 지역에 건설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새로운 고속도로와 교통정체, 난개발이 불가피하게 뒤따른다. 반면 시내에 기차역을 지으면, 도심지 주변에 실질적인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의식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혹은 불편한 걸 못참는 습성 때문에, 비행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한다. 그러나 점점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비행기 여행자 중에는 나무를 심거나 친환경 활동을 하는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자신이 방출하는 탄소를 상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집 가까운 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지구에 남기는 탄소의 흔적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 즉 우리의 영적동지들은 지구 표면에 달라붙어 여행을 하기로 맹세했다...(70-72)

 

이렇게 해서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책은 탄생했다. 글을 읽다보면 그 유머의 코드가 자꾸만 빌 브라이슨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사진 한 장 없는 여행책이 무척 재미있고 박진감넘친다. 가끔씩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막 읽어줘야만 될 것 같고, 코끼리를 타거나 돈다발을 뿌리지는 않지만 그러고 싶어지는 마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한국관광객에 대한 이야기가 딱 한구절 나오는데, 그 내용이 바로 러시아에서 단지 박물관티켓이 인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루한 기다림을 하고 있을때 돈다발을 흔드는...것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색다른 여행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여행에 대한 사색을 하게 해 준다. 

"나는 비행기가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앞으로 비행기를 타야할 온갖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에 아주 심각한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슴벅찬 것을 많이 잃어버렸다. 대서양 한가운데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라든가 바옥 버스 터미널의 화려한 혼돈, 시베리아로 들어가는 낡은 러시아 기차의 암울한 아름다움 같은 것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요즘 여행에 대해 생각할 때는 순전히 목적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실제로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차, 배, 자전거 등 합리적인 속도를 내는 멋진 육상(해상) 교통 수단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목적지에서 얻는 경험도 약해졌다. 우리는 지구 표면을 직접 접하는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 다 잊어버렸다. 그런 여행을 하면 우리가 소화한 거리를 뼛속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서서히 새로운 장소에 익숙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새로운 맥락에 편안해진다."(330-331) 

 

그런 의미에서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지구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자원의 고갈도 없이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을 따라나서본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 이 책은 At Home :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사생활의 역사를 탐구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오래된 목사관의 골방에서 시작된 집구석 여행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냥 단순하게 집구석 여행이라고 하면 안된다.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그의 논문준비리포트같은 글들은 단순하게 읽을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을 꼬깃꼬깃 많이도 꾸겨넣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 라고 했지만 실상 내가 뭘 잘 알겠는가. 며칠전에 리뷰를 올렸었으니 그냥 그 글이나 퍼올밖에. ;;;

사생활의 역사란 인간이 점차적으로 편안해지게 된 과정(170)이라고 말한것처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편리함은 어느날 우연히 뚝 떨어진 결과물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편리함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생각을 좀 해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을 편리함과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끝없는 노력의 결과, 우리는 결국 편리함도 행복도 없는 세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540)
에너지가 모자라 원자력발전기까지 돌려야하고 그것이 지금 현재 가깝게는 방사능비 걱정에 마시는 물, 먹거리인 농수산물의 오염까지 걱정하게 된 오늘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 가장 근본적인 방식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석기시대 사람들이다. 식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석기시대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제아무리 월계수 잎사귀와 다진 회향풀을 흩뿌린 요리라고 하더라도,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모두 석기시대의 음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플 때, 우리를 괴롭히는 것 역시 석기시대의 질병이다."(53)

석기시대의 식단, 석기시대의 질병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미 우리의 환경은 석기시대의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멀리 떠나지 않고 집구석만 여행해봐도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다고 가만히 집안에서만 맴돌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 다시 주섬주섬 여행을 떠나보게 된다. 


"문명이란 단어는 놀랍게도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 시초부터 이 단어는 편견이 개입된 부정직한 말이었다. 문명의 의미에는 도덕적 품위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하면 일반적인 자연, 특히 야생의 자연에는 그러한 특성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또한 문명이란 단어에는 문화와 예술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므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열등함을 암시한다. 이 단어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문명만이 문명이란 이름에 걸맞은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지배 사회에 의해 주로 사용된다....."(73) 

그렇지, 역시 변한것은 환경이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위의 온갖 것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들이 문제인것이다. 빌 브라이슨이 말한 사생활의 역사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명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정신은 자유롭고 야생적이며, 현실의 대상물로서 야생의 땅을 필요로 한다. 정신을 땅으로부터 떼어내고 시계와 울타리와 일상으로 정신을 가두며, 지루한 복사의 세계에서 종이로 궤변을 늘어놓는 사회는 치매와 불행을 만들어내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야생의 자연 속에서 발달했고 여전히 야생의 자연을 필요로 한다."(280) 

 그리피스는 단순히 태고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원시의 모습을 그리워하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제목에서 느꼈던 것처럼 환경운동가의 모습으로 생태환경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의 모습과 그 안에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게 그 모든것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을뿐이다. 아마존이 파괴되고 북극 빙하의 얼음대신 도시에서 공수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북극이 점차 녹아 무너지고 있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줄뿐이다.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여행이야기책 세 권이다. 이게 정말 여행서 맞냐? 라고 따져묻는다면 뭐라 대꾸할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이 책들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진정한 '여행'을 찾아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프로방스로 떠난다. 물론 이 책을 통한 상상여행일뿐이지만, 나는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겠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의 시작, 첫번째 경험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첫 경험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한한 가능성이 아직 하나의 정해진 운명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장 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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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1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독특한 책들이네요.
맨 위의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chika 2011-04-13 09:40   좋아요 0 | URL
저 개인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네권의 책 모두가 재밌더군요. 두 권은 한번 읽어볼까? 싶기엔 책값이 좀 부담스러울뿐인지라... ;;;

oren 2011-04-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 일주』를 꼭 한번 실행에 옮기고 싶어지네요. 다음달에 난생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문득 '비행기를 타지 않고' 가면 얼마나 걸릴까 궁금해지는군요.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이 책을 사서 '비행시간 동안' 읽어보고도 싶군요.ㅎㅎ
* * *
생의 진정한 절정은 만족과 성취, 도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르반테스는 일찍이 "여행길이 여관보다 언제나 좋은 법이다."라고 말했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대중의 반역』中에서

chika 2011-04-13 09:43   좋아요 0 | URL
오~! 멋진 여행의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려면 중국을 거쳐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거겠지요?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면말이죠.
한때 통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그려낸 러시아 기차는... 음... 그냥 통일만 소원하게 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