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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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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그림 감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책들로 인해 잘 알지못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되곤 한다. 아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맘에 들면, 혹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오래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언니는 풀밭위의 점심 앞에서 움직일줄을 몰랐고, 나는 그동안 무수히 봐 왔던 모나리자가 상상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그림임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니 또 복사본과는 다른 느낌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진을 치고 있었다. 훗날 단체관광으로 따라갔을 땐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그 미소를 덮어버린 유리벽과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통만 쳐다보게 되어 처음 봤을때의 그 알수없는 설레임을 다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런 유명작품들은 굳이 설명이 없더라도 나만의 느낌으로 그림감상을 해보려고 하는데 간혹 잘 알지 못하는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볼때가 있다. 저 그림은 별론데 왜 그러나 두리번거리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둘이 그 넓은 루브르를 헤매고 있을 때 마침 마주친 한국인 관광객 단체가 들어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고 있어 설명이 아쉬운 우리도 잠시 따라다녔다. 책에서 얼핏 봤던 것 같은 그림 앞에 멈춰서서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마침 가이드는 파리에서 유학중인 미술학도라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이 아니지만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등등... 나는 그림이란 단지 그림일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림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림관련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관심은 서양미술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우리 미술로 옮겨오게 되었고 실제 작품을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옛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조금씩 인식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책에 실려있는 그림도판밖에 보지 못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은 그 도판을 보면서 이 그림이 뭐가 위대하다는거지? 라는 생각도 감히 하곤했다.
그런데 그림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설명이 더 많았던 책들과 달리 '문학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은 그림을 독해하는 기본 문법이었고, 문자 향유의 특권을 누렸던 문사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 장치이자 그림 이해의 핵심 코드였다"라며 문학적인 접근을 하며 그림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이 책은 문학적 감성과 미적 감각이 어우러진 우리 옛그림에 대한 사랑을 더 깊어지게 해 주었다. 

내가 글을 잘 읽는편이라고는 하지만 그 문학성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고 그저 가끔 문학안에 담겨있는 은유를 느끼며 감탄할 때가 있는데 그러한 것 또한 그림에서 볼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강세황의 지상편도에서 강세황과 유경종이 나눈 마음의 정원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정원의 상상으로 서로의 인격을 칭송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 그림의 내면을 멋지게 감추어준다. 글과 그림으로 즐기는 정원 속에서 물질적 욕망은 오히려 마음껏 펼쳐질 수 있었다"(194)라고 말하는데 그림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해보게 한다. 그것이 화가의 의도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의 그림 감상이 아예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게 해주기도 하고.
윤제홍의 한라산도 역시 "한라산의 실제 모습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화가가 그림으로 불러들인 것은 백록담에 담긴 옛 사람들의 숨소리"(311)임을 말하고 있어 그림으로 표현되는 문학을 조금 더 느껴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옛 사람들이 당연히 알던 것을 어렵게 이해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옛 그림의 매력으로 작용했던 것이 지금은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림의 바탕이 된 문학작품을 끄집어내어 해설하고 덧붙여 알아보는 이야기까지 해 주며 옛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림이 나타낸 주제에 따라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우리가 감상할 그림을 앞에 두고 잠시 자신의 느낌을 짚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저자의 꼼꼼한 해설이 뒤따라 옛 시문과 그 의미, 또 세부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한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렇게 옛 그림을 이해하게 되면 다시 저자는 자신의 마음으로 바라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해 준다.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참고문헌이나 인용출처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덧붙여 알아보기'는 새삼 저자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고 그림을 한번 더 바라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그림 중 하나는 이재관의 오수도午睡圖(낮잠)였다. 책을 쌓아 등을 기대고 또 쌓아 머리에 베고 또 잔뜩 쌓아 곁에 두고 책을 읽던 선비가 잠든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책이 귀한 그 시대의 꿈일뿐만 아니라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부러워하며 오수(낮잠)을 즐기는 이 선비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아니 보편적인 이야기로 눙칠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선비를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적인 책문화의 무게를 일단 배제하고, 꿈에 들어 원하는 세계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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