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책이라는 문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상상여행이며, 여행은 현실이라는 문을 통해 세계를 읽어가는 책읽기..인가?
아주 오래전 처음 배낭여행이라는 것을 떠날 때 내 배낭속에는 여행지에 관한 정보가 가득한 책의 한귀퉁이를 찢어낸 종이들로 가득했었다. 가방이 무거워 책을 통째로 담기 부담스러웠을뿐 아니라 내게 필요한 부분은 두툼한 책 한권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분량이었기때문에 미련없이 여행정보책자를 찢어내버렸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지속적으로 변하는 여행정보책자는 몇년이 지나면 '정보'의 역할을 할 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이후에도 '정보'를 얻기 위한 준비말고는 별다를것이 없었다.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이 일정에 포함되면서부터는 여행을 가기전에 미술과 관련된 서적을 뒤적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원래도 이주헌의 책을 좋아했지만 유럽, 특히 조카녀석들을 데리고 유럽을 여행할때는 딱 알맞은 책이 있어 여행을 가기 전 며칠동안 줄곳 그리스 로마 신화와 미술 관련서적만 읽어대곤 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 우리의 옛것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 더욱 풍부하게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한점을 보더라도 그 그림에 담겨있는 역사를 아는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경험했을뿐 아니라 사전지식을 갖고 더 꼼꼼하게 그림감상을 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물론 순수하게 내 느낌만으로 감상을 할수도 있겠지만 그리 높은 안목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책을 통해서라도 도움을 받고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이 더 좋았다.




낱장으로 시작된 내 배낭속의 여행준비는 이처럼 신화이야기나 미술과 관련된 책읽기뿐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단순여행이 아니라 행사참가를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관광이 목적이 아닌 여행은 긴 이동시간과 짬짬이 생기게 될 여유시간을 보낼 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읽을만한 책이 뭐 있겠나 싶어 가벼운 에세이나 월간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담없이 읽고 또 부담없이 여행지에 두고 올 수있는 그런 책들만 골라서 배낭에 집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조금씩 내가 여행하게 될 곳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여행의 형태와 일정에 따라 내 배낭속에는 다양한 책들이 담기게 된 것 같다. 여행자의 독서를 읽으며 이 사람은 정말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로서는 아직은 그런 그가 부러울뿐이다.
물론 나는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처지라기보다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책을 읽는 처지이지만, 그 읽는 책의 범위가 조금씩 확장되어가면서 여행자의 독서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토 여행을 가면서 갖고 가고 싶었던 책은 두권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책과 데즈카 오사무의 마지막 산문집인 아톰의 슬픔.
물론 안도 다다오나 데즈카 오사무가 오사카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빛의 교회나 아톰 박물관은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톰의 슬픔은
"나는 자연과 인간성을 외면한 채 오직 진보만을 추구하며 질주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얼마나 깊은 균열과 왜곡을 가져오고 얼머나 많은 차별을 낳는지, 또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얼마나 무참한 상흔을 남기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로봇공학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첨단과학이 폭주하면 어떻게 될까, 행복을 위한 기술이 인류 멸망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22)
=============== 새벽에 쓰다가 뒷날 출근을 염려해 그냥 멈췄더니 다음날 글이 이어지지 않고 또 며칠이 흘러버렸네. 내가 뭘 쓰려고 했었는지 서두만 꺼내놓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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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학작품속의 세계를 현실에서 느껴보고 싶어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어딘가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던 책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비밀의 화원'이었다. 정원가꾸기라거나 꽃나무의 아름다움을 즐긴다거나 하는 그런 낭만적인 꿈에 부풀어있는 달콤함 같은 감정이 아니라 (비밀의 화원을 읽었을때는 '멋'모르는 어린아이 시절이었을터이니) 그저 막연히 메리와 디콘이 히이드가 가득 핀 들판을 마구 뛰어다니는 그 풍경을 보고 싶었을뿐이었다. 그건 어쩌면 훗날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쓸쓸함과 화사함이 뒤엉킨 이미지로 존재하는 영국의 들판에 대한 환상이 더해져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나의 소망은 영국의 이든프로젝트로 조성된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것부터 베아트릭스 포터의 로저 래빗을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좀 더 멀리 다른 곳으로 가야하겠지만) 타샤의 정원을 거닐어 보고 싶은 소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것이다.
동화에서 시작해 현실세계속의 동화같은 정원에 대해 떠올리다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로우의 월든은 재미없었다. 재미만으로 읽을 책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소로우가 월든에서 생활했던 것은 겨우 몇달이었다라는 말은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삶이 아닌 '책'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져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는 단 하루도 월든 같은 곳으로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에 대해 뭐라 할 형편이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우연찮게 알게 된 니어링 부부의 삶의 모습은 충격같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흙집의 지혜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돌집의 지혜가 있었고, 자연과의 조화가 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소박한 밥상을 꾸릴 줄 안다는 것이 놀라울뿐이었다.
어린시절 읽었던 비밀의 화원에서 시작된 소망은 자그마한 화원에서 들판으로 퍼져나가 자연과의 조화로움과 생태환경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고있다. 나도 옛사람이긴 하지만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있으니까.
영국의 자연으로 떠나고 싶은 소망의 이면에는 그곳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까지 서슴지않았던 이들을 품고있는 섬, 아일랜드가 있다.



아일랜드와 제주도가 닮은꼴이 많아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온 아일랜드의 신부님들이 제주를 무척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아일랜드의 풍경들은 역시 제주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으니, 그들의 역사와 자연은 알게 모르게 내게도 닮은꼴의 선망을 품게 했는지 모르겠다.
안젤라의 재와 두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는 그런 내가 아일랜드로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아일랜드로 가게 될 때 나는 아마도 '더블린 사람들'을 갖고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아마도 스웨덴으로 떠나며 로큰롤 보이즈나 렛미인을 떠올리게 되는 것보다 더, 아이슬랜드로 가게 된다면 참고삼아 생선의 '나만 위로할 것'을 먼저 펴들기 전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집어들게 되는 것보다 더 강한 이끌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여행정보를 위해 여행서만을 뒤적이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문학책을 한권씩 들고가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의 뉴욕은 그 화려함뿐이었지만, 슬픔이 함께 떠오르는 오스카의 아빠찾기가 떠오른다. 오스카 와오의 삶도, 비내리는 마콘도를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