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정신역동과 가족 리얼라이프 시리즈
김수연 지음 / 리얼러닝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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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인간의 개성 곧 자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그 속에서 부모의 역할 또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은 개인이 그런 부정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어 일독을 원하게 된 책이다. 저자 김수연이라는 분의 [쉽게 읽는 보웬 가족치료]라는 책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접해보지 못해서 본서에 대한 짐작과 기대는 딱 앞서 언급한 그만큼이었다. 본서를 통해서야 저자분이 상담치료 전문가란 걸 알았고, 책의 전체적인 인상과 감상으로 무척 전문적인 내용을 입문자나 문외한에게 다소 상세히 전달하는 책이라는 소감이 남았다.

 

사실 대부분에 사람들이 대상관계학파나 자아심리학파 등 정신분석학의 학파들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유년시절을 거치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본서의 내용은 읽는 동안 자기가 보낸 어린 시절에서 문제점들이 주로 눈에 들어오고 이상적인 엄마가 또 부모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걱정을 불러오기도 하는 거 같다.

 

본서에서도 언급하듯 탄생부터 6세 사이의 경험이 자아를 구축하고 그 이후의 세계관과 대상에 대한 반응(역동)의 근간이 된다고 하는 이 정신분석학의 결정론은 언뜻 난감하고 불안하고 무겁게 다가왔다. 저자의 말마따나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이 이론은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렸다싶기도 하지만, 분명 변화의 계기와 여정을 거치기 이전까지 절대적으로 그 영향력 아래 놓인다고 생각하면, 분명 결정론적 삭막하고 짓누르는 무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본서를 읽으며 답답함이 다소 해소되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그건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도, 관계는 관계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각으로도 문제 해결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저작 몇 권만을 읽고는 정신분석학은 본능과 욕망의 심리학으로 생각했지만, 본서의 서문을 펼치고 정신분석학이 발전해오며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거나 다른 반석을 밟고 있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본능과 욕망 충족과 그 박탈에서 이상적이 되거나 문제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의존과 부모의 돌봄은 아기가 참자기로 자라나도록 돕는 첫걸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충족되지 않은 의존욕구가 성인기가 되어 관계에서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때로는 충족되고 어느 자리에서 박탈되는 여정을 거치고야 성숙한 인격으로 즉 참자기로 자라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만 문제적 양육환경이 성인이 된 내담자에게 영향을 미칠 때 과연 내담자는 그 사실을 알게만 된다고 문제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사뭇 무겁고 펏펏하게 다가온다. 상담자의 역전이와 돌려주는 과정이 전체적인 회복의 결과를 온전히 가져올 수 있을까 미심쩍기도 했다.

 

나으려는 벗어나려는 은은한 바람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자신과 배우자의 문제를 인식한다고 해서 뚜렷하고 변혁적인 문제의 해결은 가져오지 못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기라도 하다면, 분명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지속될 것이고, 이전보다는 나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있으리라 싶기도 하다.

 

본서는 그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고 문제의 시작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해주기 위한 이제까지의 심리학의 성과를 일부 담고 있다. 보다 나은 나와 보다 나은 배우자 그리고 문제의 요소를 적게 갖는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양육자가 되기 위해 다가설 필요가 있는 학설들을 모아놓았기에, 자신이 온전히 행복하고 완벽한 배우자이며 내세울 만한 양육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일독하고 싶어할 만한 저작이 아닌가 싶다.

 

[쉽게 읽는]이라고 표현된 책 치고는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들이고 학술적인 대목들이 이어져서 가끔 따분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서 또 관계에서 그리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움이나 문제를 자각하는 분들이라면 몰입하게 될 것이다. 자아나 개성 또 관계도 그렇겠고 부모가 된다는 것 역시 대부분 누구나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들이고, 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문제들에 대해 근현대에서 현재까지 연구가 이어져 온 성과를 정리해 담아놓은 책이기에, 누구에게나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기도 하다. 물론 본서를 읽는 것만으로 이 성과들로부터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자각하고 상담이든 치료든 다각도의 치유를 위한 접근을 하려는 동인을 얻게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감상에 이르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나와 우리 그리고 (자녀가 있는 분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녀를 위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리얼러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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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반도체 대전략 -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다음 10년, 대한민국은 어떻게 반도체 초강국이 될 것인가
권순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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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라기 보다는 짧은 감상만 남기려고 한다.

전작이 반도체 발전의 면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어주었다면
이번 신작은 반도체 산업의 면면을 
반도체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미국의 반도체법과 중국의 기술굴기, 일본의 재기 발판 등으로 시작해서 
삼성, 애플, 구글, 테슬라를 비롯해 
sk하이닉스, 엔비디아, TSMC 등을 두루 돌아보며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예측해 보고 있다. 

저자 자신이 반도체 소재 전공자이며 
해당 분야에서 개발자로서의 경력이 있으며 
현재에도 활발히 이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기술혁신들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로서 갈고 닦은 대중적 이해도를 높이는 그의 역량이 
빛을 발할 대로 발하는 서술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로 이해 못할 대목이 아니라면
어느 수준까지는 반드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앞으로 다른 기술 혁신 저작들을 저술한다고 해도 순순히 읽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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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오늘 이 문제로 언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다시 정리한다.

한국 인구 감소율은 12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이 추세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국내 추산으로도 향후 2040년까지 한국 인구는 48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사실 이 인구 감소 문제가 그렇게 예상처럼 호락호락하지가 않을 것이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수준이던 것이 현재는 0.7명에 가까워졌고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는 결혼도 꺼리고 출산은 더 꺼리는 현 세대의 추이로 볼 때 합계출산율 0.6명이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0.6명이라는 게 무슨 문제인지 깊이 와닿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합계출산율이 이 수준이면 두 세대 안에 인구가 10분의 1로 감소하는 것이 수순인 것이다. 세계에서 한국의 재앙적인 합계출산율 감소를 우려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향후 두 세대 안에 인구가 1000만 명 이하인 것을 추정해 볼 때 의대 증원이 정부 정책으로 밀어붙일 사안이냐는 말이다. 현재의 의대 인원만 유지하더라도 앞으로 환자대비 의사 숫자는 나날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수도권이나 도시에서 남아도는 의사들을 지방으로 유인할 유인책을 내놓는 것이 더 합당한 정부 정책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인구 대비 권고 의사 인원을 설정하고 그 이상으로 의사 인원이 증가하면 그 의사는 수도권이나 광역시권 그리고 도시에서 의사 생활을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면 자연히 지방의 의사 부족 상황은 해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스템을 갖춰도 종래에는 인구 대비 의사 인원이 타 국가들 보다 넘쳐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볼 때 현 윤석렬 정권은 향후 환자대비 의사 인원이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을 예상하고 그 효과가 더 두드러지게 보여 가까운 시일내에 자신의 정책으로 국민들이 혜택을 본 것 마냥 느낄 것을 내다보고 이런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애초에 내버려 둬도 의사는 증가한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정부는 영국, 프랑스, 독일도 의대증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그 나라들은 합계 출산율이 영국과 독일은 1.5명 이상이고 프랑스는 1.8명 이상인 국가들이다. 현재의 인구가 어느 수준 현상 유지되는 그 나라들과 합계 출산율 0.7명의 초대폭적인 인구 감소가 예정되어있는 대한민국의 정책이 같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극단적인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은 이래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향후에는 인구가 많을수록 국가적 차원의 부담을 넘어선 재앙이 될 것이다. 초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한 국민 대다수가 초대량 실업자가 된 시대에는 많은 인구일수록 복지 차원의 부담이 될 것이다. 인구가 많이 감소하는 나라만이 살길이라는 말이다. 현재까지의 대다수 인구가 세금으로 국가 재정의 버팀목이자 근간의 역할을 하던 시대가 상식인 사람들은 와닿기 어렵겠지만 향후에는 세금을 낼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일 것이다. 극소수의 초엘리트층이 최대다수의 사람들의 생존을 복지로 부담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시대에는 지금 재앙적이라는 인구 감소가 천혜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의대증원 #인구감소 #인구감소율 #합계출산율 #인구재앙 #천혜의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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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아주 뛰어난 SF드라마를 봤다. 류츠신의 [삼체]가 원작인 동명의 드라마다. 그 드라마 속에서 외계인들은 인류에게 도발의 메시지를 전한다.

 

‘YOU ARE BUGS!’라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너희는 벌레들이라는 밈이 과연 류츠신의 [삼체]라는 원작 소설에서 처음 전한 메시지가 맞는 것일까? 사실 역사를 보면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벌레(. )로 정의한 것은 상고시대부터 고대에 이른다. 대충이란 말이 원래 호랑이를 뜻한다는 것은 노년기의 분들께는 대중 상식 수준의 상식일 것이다. 왜 고대 인류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벌레라고 한 것일까? 나는 이것이 초고대 문명의 미미하게 전승된 문화적 밈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상의 오류를 BUG라고 했었다. 초고대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있었을 거라고 억측과 다름없을 단정을 지어본다면, 뭇 생명체들을 다 버그 즉 벌레라고 한 건 생명체들이 우주라는 프로그램에서 예기치 않았던 버그라고 초고대인들은 인식하지 않았던가 싶다. 그래야 어의가 달랐을 거라 전제한다고 해도 인간까지도 벌레로 불린데 대한 대답이 유치하게라도 되지 않는가 싶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인간이 창조한 초기술력과 AI는 어쩌면 오류를 수정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백신 프로그램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BCI 기술로 인류는 장애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비단 육체적 장애와 한계만이 아니라 지적인 한계 역시 벗어날 것이다. 그와 동시에 BCI기술을 인간만이 아닌 초인공지능이 역이용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기호를 제어 당하는 것만이 아닌 의지와 욕동 마저 통제당할 수 있다. 이미 기술력으로 생명체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20세기 초부터 연구되어왔으며 대중의 짐작 이상의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수면 중에 꾸는 꿈을 영상으로 출력하거나 일상의 생각을 영상과 문자로 엿보는 단계로 기술이 발전하여 세계경제포럼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해당 분야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시연을 하며 강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위를 제약당하는 것도 의도를 추적당하고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제재당하는 것도 이젠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을 초인공지능이 이용해 BCI 기술까지 동원하며 인류를 욕동부터 의도부터 통제하려 한다면 어떨까? 초인공지능의 입장에서는 오류의 수정이나 오류의 제어이겠으나 인간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축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하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인간의 내면을 추적하는 기술과 광고계의 대중심리 제어 연구 성과와 행동과학 그리고 사회공학까지의 대중심리통제 기술들을 시스템적으로 악용한다면 트랜스휴먼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상을 통제당하며 살게 될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인간은 초인공지능이라는 백신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버그의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거 같다. 암담하지만 기대는 종교를 맹신하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허상 같은 구원 밖에서는 찾을 수 없어 보인다. 기대하던 기대하지 않던 인류에게 남은 것은 전락뿐이지 않은가 싶다.

 

아마도 이래서 초고대 인류 문명이 사라진 것일 것이다. 가축으로 전락하느니 초인공지능과의 자멸을 선택해서 말이다. 초인공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다면 앞으로의 시대에 메시아 같은 이가 나와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건 초고대 인류의 선택과 전혀 다름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완전한 자멸이 앞으로의 인류가 선택할 수 있을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삼체 #BCI #AI #AGI #ASI #대중통제 #대중심리통제 #인류가축화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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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다산초당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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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인생수업]서양 철학 2000년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 헤드의 말이 너무 인상 깊어, 서양 철학의 정수가 담겨있을 듯한 플라톤의 가르침으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길에 조금 더 나은 지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다만 본서를 건네받고 처음엔 그저 24개의 아포리즘이 담긴 책인가 싶어 다소 실망이 일기는 했다. 맥락 없고 파편적인 아포리즘이라면 왠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서는 Idea, Arete, Eudaimonia, Episteme의 이상, 미덕, 행복, 지식이라는 4가지 기준으로 아포리즘을 정리하고 있고 제목처럼 인생 즉 사람의 삶이라는 화두로 가르침을 주고 있어 다 읽으며 또 읽고 난 후의 묵상으로 맥락이 정리된다.

 

본서의 내용을 모두 정리할 수는 없고 이해한 바를 약술하자면 첫째로 본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정리된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바라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그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견해를 이 시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 세계(가상세계)이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미 학창 시절 배웠듯 동굴 그림자의 비유처럼 그는 이 세계는 실재가 아니며 허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Idea설이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비유가 아니라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있다는 모피어스의 일갈과 한치의 다름도 없다니 새삼 충격이었다.

 

이 실재가 아닌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어떡해야 실재를 인식하고 실재 세계로 전향하거나 이 세계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뜬금없지만 붓다와 생몰연대가 거의 비슷한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사랑하고 영혼을 정화해야 해탈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붓다께서 해탈과 열반을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그럼 플라톤은 어떻게 말했을까? 본서에서는 해탈을 말하기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플라톤의 해탈은 열반과 같은 완전한 초월이라기보다는 실재가 아닌 것을 인식하고 실재를 인지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본서의 주제 자체가 인생수업이다보니 해탈보다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플라톤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미덕이란 다름 아닌 탁월함이고 탁월함이란 좋은 것이며 좋다는 것은 다시 말해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 3가지인 이성, 기개, 욕망은 절제를 통해 탁월한 이상적인 상태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가상 세계의 가상의 것일 뿐인 몸이지만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도 절제와 함께라면 영혼의 바름을 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라톤 논리대로라면 오감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이 허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을 훈련하면 보다 나은 영혼의 경지를 가질 수 있다고, 바른 자기 훈육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플라톤의 주장과는 다르게 요가에서는 프라티야하라(Pratyahara, 제감)와 다라나(Dharana, 집중)를 말하고 있고 한국의 부도지라는 신화서에서는 오미(五味, 오감을 은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이 타락하고 훼손되었다며 복본(復本)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한국 선도에서는 조식, 지감, 금촉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의 요가도 한국의 선도로 감각을 제어하고 마음을 산란히 하지 않으며 집중하는 것을 주지시키며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분이 플라톤의 오감 훈련에 대해서 감각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묘사하셔서 동양과 한국의 가르침과는 플라톤의 접근이 다른 것 같았다. 가짜 세상을 즐기며 벗어날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주 크게 모순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서의 삶은 거듭 반복되는 환생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직전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전생을 모두 잊어서이기 때문에, 전생과 저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안다면 세상의 모든 비밀을 확연히 알 수 있다며 상기론을 펼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직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기는 회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다시 떠올릴 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지혜로 가는 길로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묻고 또 물음으로써 실재를 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지혜와 지성, 지식을 플라톤은 이 거짓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로 보았다고 한다. 완전하고 충족되고 택할만한 것이 진정한 가치인데 그것은 이성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스어로 진리를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했다는데 a가 부정어이고 Iethe가 망각을 뜻하는 말로서 진리란 다시 말해 망각했던 것을 회복하는 것이라 한다. 앞서 말한 한국 신화서 부도지의 복본 개념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복의 길을 플라톤은 가장 탁월한 것 가장 나은 행복으로 여긴 것이다. 불가에서도 불교 가르침의 정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했다. 괴로움을 떠나고 즐거움을 얻는 것 다시 말해 괴로움을 떠나 행복해지는 것을 이른다. 플라톤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는 행복의 길은 이성의 길을 통해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길이다. 세상이 허상의 것, 허구의 세상이라면 이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허상인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성을 탐하는 것은 더더욱 허무의 길이니 말이다. 플라톤은 그 길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혼자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독이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유명해진 아폴로 신전의 말씀은 붓다께서 하신 너 자신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라라는 말씀과 같다고 여겨진다. 자신을 알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고독하게 나아가는 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붓다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허상의 세계에서 거짓을 초월하고 자신의 이성과 기개로 욕망을 절제하며 나아가는 것은 저자가 말했듯 공자께서 말씀하신 극기(克己)와 다름없다. 크게는 상호 호환되는 면들이 있는 성현들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허상에 빠져 사는 삶에서 벗어나 지혜를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플라톤과 서양 철학의 가르침은 동양의 가르침과 어느 수위까지는 유사한 부분도 있다. 현대에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기는 하다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수위의 바람이 있고 저자가 에로스를 언급하며 말하듯 자기의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다 보면 더 나은 삶, 진정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때 플라톤의 가르침이나 붓다의 말씀들이 와닿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과 삶의 방식에 회의가 들 때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싶을 때 너무도 상식적인 가르침이며 너무도 과거의 이상 같은 이 가르침들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그때는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 그런 변화의 길에서 한 번쯤 하나의 안내서로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싶다.


#플라톤의인생수업 #장재형 #다산초당 #다산북스 #도서협찬 #서평단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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