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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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이 부조리극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부조리하다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리있게 다가왔다. 그 시대에는 기존 희곡의 형식을 탈피했다고 하니 부조리극으로 불렸는지 모르겠으나 주제의 전달에 있어서 상당히 일목요연해 보인다.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 자신이 나서서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걸 내가 알았다면 작품에 바로 썼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니까 말이다. 작가는 기대로든 희망으로든 구원으로든 구세주로든 신으로든 각자가 정의하기를 시도하도록 바란 게 아닐까 싶다.

 

모자와 구두로 영 또는 지성과 육 또는 행위나 미천함 등을 상징하려 한 건 일차원적인 상징이기도 하고 기다림과 나무(상징하는 바는 모든 걸 끝내는 것일 수도 구원일 수도 있다), 포조와 럭키(계층이나 지배와 피지배일 수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관계성일 수도 있다), 소년(가장 중의적이며 함의가 큰 상징 같다) 등 상징체계들이 고도라는 대상에게서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는 상징 속에서 비단 기대와 희망으로 상징되는 그 이상을 그려내 보고자 시도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사의 반복 등으로 그저 부조리만으로 다인 이야기를 전하려 한 희곡이 아니라는 감상이 들었다.

 

삶에서 세상의 눈물이 일정해 누군가가 울면 누군가가 웃고 누군가가 웃으면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도 되지만 우리는 다음 순간 나는 눈이 멀고 타자는 귀가 먼 순간이 같지만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잊어버린다. 고작 어제 만난 서로에 대해서도 희미할 뿐이다. 그렇게 고작 어제 일이 희미할 정도로 우리는 고단하고 막막하게 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희망하고 기대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엇인지 어떤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듯, 모른 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세상의 누구나가, 오늘이 처음 만나는 거고 처음 말하는 거라며 고도는 오늘 오지 않고 내일 오신다고 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듯, 그렇게 우리에게 낯설게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는 모든 걸 오늘 끝장낼 수도 있지만 기다림의 결실을 기대하며 끝낼 순간을 미룬다. 막연한 기대만으로 막막한 삶을 억지스럽게 감당하고 있는 거다. 고도가 신이건 구세주건 기대건 희망이건 간에 우리는 그 또는 그것이 무언지 알고 기다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수염이 하얗다는 말을 듣고 놀라리만치, 그는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그 미지의 대상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매정하고 가혹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타자가 없으면 서운하면서도 좋다는 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타인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바람하는 것에서도 엿보이는 성향일 것이다. 타인은 필요악이면서 동시에 지옥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희곡을 정의하면 '부조리극이다' '의미보다 대사의 반복이다'는 말들이 많던데 대사의 반복에도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그런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반복들을 행하고 경험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말이다.

 

이 희곡은 부조리극의 효시였다지만 읽으며 느낀 건 너무도 정연하게 조리있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마 다시 읽는다면 다른 감상이 더 깊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희곡이다. 극이 주는 감상과는 다르게 또 하나 기대하며 오늘도 이 삶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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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전기다 - 인간 몸의 생체전기에 관한 새로운 과학
샐리 에이디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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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무협물을 많이 봐서인지 무술 수련을 나름 해서인지 내공 수행을 좋아했고 중학 1학년 때부터 뚜렷한 계기가 없었던 것 같은 데도 몰두하게 됐습니다. (1부터는 몇 년 간 텀이 생겼지만 다시 수행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에 관한 서적을 중학 시절부터 탐독했고 로버트 베커와 게리 셀든이 공저한 [생명과 전기]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는 생체전기가 기()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열의를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체전기에 대해 알게 된 최초의 책이기는 했으나 어린 나이다 보니 생체전기의 발견과 연구 과정에 관한 내용은 재밌었지만,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독서를 포기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자라서도 기공과 생체전기의 상관성을 짐작하며 생체전기 관련서들을 읽어볼까도 싶었지만, 관련 전문서들은 고가이기도 했고 전문적인 내용 같아서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러다 본서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생체전기는 영화나 애니 등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 등장한 맥스(제이미 폭스), 인간을 배터리로 쓰는 [매트릭스],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프랑켄슈타인(1995)]에서 본서에 등장하는 내용과 유사한 설정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서는 생체전기의 역사부터 발전 과정을 인물사처럼 전개하기도 하고 분야별로 서술하기도 합니다. 갈바니의 생체전기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부터, 생물학적인 접근을 하는 갈바니와 대립하며 화학적으로 물질의 전위차가 전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라 주장하던 볼타와의 대립을 그리기도 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갈바니의 이론으로 시작해 역사를 거치며 심전도와 뇌파측정이 발전해 나가며 신경과 뇌에서의 전기 흐름을 알게 되고 시대를 거쳐 뇌와 신경 작용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 상처와 절단 회복과 암 연구, 그리고 뇌 기능의 확장에까지 이르르고 있습니다.

 

생체의 회복만이 아니라 세포의 분극도 탈분극도 전기작용으로 제어할 수 있으니, 상처나 절단된 신체만이 아니라, 세포로부터 생명체로 완성되기까지 전기의 작용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포 막의 전위차가 어떤 세포로 분화할지 결정하고, 암세포 역시 이런 막 전위차를 보이기에 생체전기를 제어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체로 분화하거나 비정상적인 생체로 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병의 확산과 치유 양 측면을 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장애를 지닐지 아닐지와 암으로 죽을지 나을지마저 결정하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뇌 신경에 작용하는 전기는 우울증 등 정신과적 질환과 다양한 신체적 질환의 지속과 치유에도 작용합니다. 최근까지 임플란트 시술로 치유 효과를 누려왔고 갖은 고비 끝에 FDA 인증도 통과했으나 임플란트 시술은 부작용이나 작용 기간의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뇌 임플란트는 신경과 세포에 또 혈액-뇌 장벽에까지 미치는 악영향이 커서 그간 일런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뇌 임플란트를 FDA에서 허가받는 데도 난항을 겪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서술을 보면 최근까지 젤라틴, 콜라겐, 케라틴 등의 자연 물질과 산호라는 생물 그대로를 사용하거나 인공 전도체인 특정 폴리머 등을 개발해내며 이러한 난항을 극복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본서를 통해 의식의 변혁을 경험하게 된 대목은 그간 유전자학이 생체 분야의 혁신인 듯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어왔지만, 실제 DNA 구성인자들은 홀로 결합하고 분열하는 기능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전기의 작용이 없이는 이들 구성인자들이 있다 해도 어떠한 세포 구성원으로서의 작용을 할 결합을 하지 못한다네요. 이 내용을 알게 되고는 생명의 본질에 다가서는 한 막이 시작되는 경로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체전기가 인류 아니 생명체 진화의 항로를 열어주는 큰 바람이자 지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저작입니다. 가장 정교한 3D 프린터만 갖춰진다면 유전자학과 생체전기학이 만난 것은 이제 생물진화의 획기적 전환점이 열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호모데우스를 믿지 않고 데우스 마키나를 믿습니다. 인간이 신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신을 창조해내고 그 기계신의 지배를 받는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생체전기학도 앞서 말한 세 가지가 더해진다면 생명 존중이 사라질 시대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예측하는 미래상이 올지 더 나은 시대가 펼쳐질지는 아직 알 수 없기에 먼 미래를 두고 걱정하느니 근미래의 질병을 정복하고 장애를 극복하는 시대를 기대하며 미소 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SF영화에서 그려내던 시대가 점점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흐름을 모르고 시대가 닥쳐온다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 보다 금세 우리는 당황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늦지 않게 미래를 예측해 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가 재미 속에서 전달되어 오는 책이니 부담 없이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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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틱스 - 노화시계를 되돌리는 자세혁명
토마스 하나 지음, 최광석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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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정리라는 도가 수행서의 이론을 보면 다양한 키워드들이 정리되는데 그 중 양형(養形)과 형전기장(形全氣壯)의 원리는 기공의 참장공과 요가의 아사나를 비롯해 알렉산더 테크닉, 펠덴크라이스 메소드 그리고 소마틱스의 이론적 배경과 통하는 전통 선도의 이론이랄 수 있을 것이다. 형태를 기른다는 관점과 형태를 온전히 하면 기가 성해진다는 개념은 현대의 치유(재활) 기법들과 전통적인 수행체계가 공통분모를 찾는 지점이기도 한 것 같다. 더욱이 인지를 중시하는 펠덴크라이스 메소드와 소마틱스는 천선정리의 다른 키워드인 식도(識道) 그리고 식법(識法)과도 닿아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현대적인 것이 가장 전통적인 것과 하나의 흐름을 낳고 있는 것이다.

 

소마틱스는 이완법과 알렉산더 테크닉, 펠덴크라이스 메소드 그리고 적응성 질환 이론 등 현대의학까지 포함한 치유 체계로 감각적 인식과 운동능력 재조정 등을 중시하는 기법이다. 저자 토마스 한나는 1975년 미국에 최초로 펠덴크라이스 메소드를 소개한 인물로 철학자이기도 하다고 한다. [소마틱스]라는 본서를 읽으며 [펠덴크라이스의 ATM]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들이 대부분이라 놀랐지만 토마스 한나는 현대 의학과 그 자신만의 독자적 이론을 접목해 펠덴크라이스 메소드를 한결 대중 친화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펠덴크라이스도 잊어버린 정상 신체에 대한 감각을 재인식하는 것을 주지시켰으나 토마스 한나는 감각운동기억상실증(SMA)라는 간단한 용어로 정리했고 빨간등반사(RLR)와 초록등반사(GLR) 등으로 명료히 이상 상태를 명명해 참여자 또는 수혜자 또는 내담자라고 불릴 치유대상이 효과적으로 이상을 인지하고 인지한 이상을 교정하도록 했다. F.M. 알렉산더나 모세 펠덴크라이스 같은 한 장르의 창시자도 놀랍지만 토마스 한나와 같은 사람도 대중에게는 필요하고 절실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3장으로 구성된 본서는 감각운동기억상실증을 다룬 첫 장과 그 원인을 다룬 두 번째 장 그리고 실제 소마틱스 기법을 다룬 마지막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장은 5명의 실제 내담자의 사례로 정상 신체 감각을 잃었을 때의 증상과 그 치유 과정으로 소마틱스 이론의 배경을 간략히 소개하고, 두 번째 장은 소마틱스가 적용되면 이상 증상이 나을 수밖에 없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 상태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장에서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근육은 운동에서 글리코겐을 대사해서 젖산을 만드는데, 긴장 상태는 근육의 글리코겐 대사를 과다하게 만들어 그로 인해 쌓인 젖산을 혈액 흐름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과도해진 젖산이 통증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개별적인 원인으로 근육이 긴장하거나 자세가 틀어지는 상태를, 저자는 정상 상태에 대한 기억을 신체가 잊었다는 의미로 감각운동기억상실증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감각운동기억상실증 상태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만들어 통증을 불러오기도 하고 뒤틀린 신체(자세, 체형)으로 디스트레스를 불러오기도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욱 신체의 정상 상태에 대한 과도한 바람으로 역설적인 이상 상태의 지속을 불러오기도 하기에 자신의 이상 상태를 인지하는 게 우선한다고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빨간등반사는 회피 반응으로서의 신체 상태를 나타내는 특징들(복근이 수축하여 자세가 굽고 머리는 앞으로 나왔으며 가슴은 평평해지고 팔은 긴장해 굽혀져 있는 등 다양한 특징들)을 보여주게 되며, 초록등반사는 행동 반응으로서의 신체적 특징들(허리쪽 근육이 수축해 배를 내밀고 있는 등)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심리반응 중 하나인 투쟁-도피 반응 상태가 육체로 드러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주목되는 건 이런 심리상태가 외부적 원인이던 내부적 이유에서든 시작되면 자세만이 아니라 심리에까지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하기에 이런 신체 상태를 인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기법들은 결국 심리상태마저 치유하는 효과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천선정리에서도 수행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를 보면 그 중 양심(養心)이 있기도 하다. 수행의 과정은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마틱스를 읽으며 어제와 오늘에 걸쳐 4시간 30분 가량 소마틱스 기법 전반을 수행해 보았는데 확실히 육체만이 아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를 느꼈다. 몸을 움직이는 단순한 기법인데도 위빠사나 수행 후의 내적 안정과도 유사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선'이라는 표현은 태극권을 이르는 말인데 소마틱스를 움직이는 선이라고 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소마틱스 전체를 압축해 추린 [매일 하는 고양이 스트레칭]이라는 대목은 간단하기에 전체 과정을 마친 후 매일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 과정도 주말에 마쳐보기에 무리가 되지 않으니 도서관 대여로 읽어본다고 해도 부담 없을 분량이다. 자세, 체형, 동작 등에서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읽어 보실만 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 리뷰를 쓰며 언급하려 했는데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 있어 다시 언급해 보려 한다. 토마스 한나는 노인들의 자세와 동작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문제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늙음이라는 영어 old는 라틴어 alo에서 기원했고 alo는 고대 그리스어인가 페니키아어인가(기억이 확실하지 않는데)alt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의 본래 뜻은 채워지는 것, 진보하는 것, 자라는 것 등의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저자의 말은 결국 늙는다는 말은 성장하고 진보하고 채워지는 과정을 뜻한다고 결코 결핍이나 손실, 파손됨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직언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말 늙다도 어쩌면 늘다와 어원이 같을 수 있다. 지식이 늘고 권한이 늘고 자유시간이 는다는 게 늙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른다. 자세나 체형이나 움직임의 이상을 느낀다면 늙어서 그렇지라며 체념하시기보다 본서를 읽으며 따라 해보신다거나 소마틱스 단체를 통해 배움을 가져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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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교양 115 - 중국 어문교과서 수록 필수 암송 한시 115수
이규일 지음 / 리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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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대해서는 전통문화에 관심이 깊은 분들과 장르 소설 등을 통해 접해보고 빠져드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오래전이지만 자주 찾던 웹소설 창작 사이트에서도 중학생 웹소설가의 작품에마저 등장할 정도로 어느 장르에서는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한시(漢詩)라고 하면 중국 외에도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다수 국가의 옛 시도 포함하는 관계로 한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현대시와 구별하기 위해 고시(古詩)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시 즉 옛 시라는 이 표현과는 다르게 중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학생 모두에게 한시를 기본적으로 암송하게 한다. 이 교육은 암기 위주로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계 미국인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양젠닝 씨에 의하면 어릴 때 외운 이 시가 세월이 지나 70대가 넘으며 이해가 가고 공감하게 되더라고 말하고 있다. 배송(背誦)이라고 한다는 이 암송하는 과목에서 공감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한시를 외우도록 하는 것이 학교 교과목이면서 동시에 부모들에게는 아이의 재롱이기도 하다고 한다. 중국인 일상과 일생에 함께하는 것이 한시인 것이다.

 

더욱이 한시는 중국 지도층이 신년사와 당 대회 또는 외교적 언사를 통해 자주 사용하고 있는 실생활에 일반적인 문화이다. 그래서 미국 등 타국가 정치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면서도 한시의 한 귀절 정도는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국의 문화가 세계적 문화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표현 중에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중국의 한시에 대한 예는 우리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계기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리뷰를 쓰고 있는 본인은 원래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지라 중학시절부터 전통 무예와 시조와 한시 등을 좋아했지만 한자의 압박으로 거리감을 크게 느낀 적이 많았다. 그러다 오래 한시를 잊고 지냈는데 본서는 한자와 중국어 간체자 그리고 유투브 등을 통한 원어민 낭송까지 더해진 책이라 시적 감성 충족과 한자 공부 그리고 중국어 발음 공부까지 일석삼조의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래 뜸을 들이다가 구해보게 되었다. 격일이나 하루 3편의 한시 정도는 부담 없이 읽고 들을 수 있기에 여러 각도에서 한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하다.

 

본서는 우리로 치면 국어 교과서인 중국 어문 교과서에 실린 75편의 초등 암송용 한시와 40편의 중등용 한시가 수록된 책으로 한자의 난이도도 점층적으로 상승할 것이기에 한시를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즐기며 배워갈 수 있는 책이다. 본서에는 한자로 수록된 내용을 다시 중국어 간체자로 간추린 단원이 따로 할애되어 있어 중국어 병음을 보며 음성파일을 듣는다면 중국어 학습에도 아주 유용하고 유효할 것이다. 한시가 좋다거나 중국어 발음을 재미지게 익히고 싶다는 분들에게 권할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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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덴크라이스의 ATM - 소마틱스 클래식
모세 펠덴크라이스 지음, 최광석 옮김 / 소마코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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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부상 전후로 [알렉산더 테크닉][소마틱스]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고 관련 도서를 검색하다가 [펠덴크라이스의 ATM]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 대강에 대해서도 모르던 때라 알렉산더 테크닉과 소마틱스는 독자적이며 다른 기법이고 [펠덴크라이스의 ATM]은 소마틱스 기법의 원전인 줄로만 짐작했다. 관련 저작들을 최근에서야 한 권 한 권 읽고 있는 중이다. 소마틱스는 알렉산더 테크닉과 펠덴크라이스 메소드와 그 외 기법들의 유익을 담아 구성된 기법이지만 펠덴크라이스의 시대에 펠덴크라이스의 메소드는 독자적인 인지 시스템이며 재활 기법임을 [알렉산더 테크닉][펠덴크라이스의 ATM]을 다 읽고서도 여러 차례의 검색 끝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펠덴크라이스 메소드의 창시자 모세 펠덴 크라이스는 프랑스 핵 연구소에 수년 간 참여하고 퀴리 부인의 라듐 연구소에서도 근무한 엔지니어이자 무술가이며 독자적 치유기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주짓수를 배운 전적도 있으며 유도 유단자이기도 하다. 펠덴크라이스 메소드를 창시한 계기는 알렉산더 테크닉을 창시한 F. M. 알렉산더처럼 자신이 입은 손상 또는 부상에 대한 치유기법을 연구하다 창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펠덴크라이스 메소드는 그가 창안한 인지 시스템이자 재활 기법을 말하는 것으로 ATM(Awareness Through Movement)FI(Functional Integration)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기법상의 분류라기보다는 FI는 아쉬탕가 요가 등에서 접촉을 통한 교정을 해주듯 학습자가 접근하는 방식이 원활하도록 교사가 접촉을 통해 지지해주는 걸 말한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다른 기법이나 방식은 아닌 것이다.

 

[펠덴크라이스의 ATM]을 읽으며 실행해본 결과(허리의 통증으로 모든 동작을 해보지는 못했다), 이 기법은 몸으로 접근하지만 인지의 변화를 의도한 기법이다. 신체적인 개성으로 인한 기능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개성을 통한 재능의 차이라는 의식까지 확장하는 언급만 보아도 육체의 치유만을 위한 기법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ATM이 움직임을 통한 인식이라는 뜻인 것을 보아도 펠덴크라이스는 자세와 동작 자체의 변화에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 의도한 기법을 연구하고 창안한 걸로 보인다.

 

기법적인 특징은 습관화된 자세와 동작의 패턴을 낯설게 하기로 접근하며 의식적인 동작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그 중 하나이고, (12 레슨의 후반부 즈음에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세와 동작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또 하나이다.

 

여기서 저자가 이야기한 생리 반응인 리닉 시스템과 본능, 욕망에 대한 반응인 림빅 시스템 그리고 창의적 활동 상태인 슈프라 림빅 시스템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이 단계이자 과정들에서 자기 이미지가 구축되고 그걸 강화하거나 확장하고 개선하는 변화에 역시 자기 이미지가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동기와 과정과 움직임에 대한 원인과 과정과 결과이기도 한 게 자기 이미지라는 말이다. 이러한 자기 이미지를 개선하여 몸의 상태, 자세와 동작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은 다시 개인의 인지에 변화를 야기한다는 순환적인 개념이 담겨 있다고 생각됐다.

 

본서의 내용을 읽고 따라하며 동작 자체도 그렇지만 접근 방식이 상당히 아이키도나 태극권의 색채가 연상되었다. 동양이 잃어버린 전통이 주는 절정의 무언가를 서양인이 창안했다는 기법들을 통해 되돌아보니 이채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양의 무예들에 대한 접근이 근간에는 기예 즉 기교에 대한 기술적 접근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게 동양에서의 현실이지만 서양에서는 오히려 동양의 정신을 통해 새로운 치유와 의식으로 다가서고 있어 놀랍기도 하고 아쉬움도 생겼다. 최근에는 중국 무술 전반이 사기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중국 이종격투가의 동영상이 유투브에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나로서는 실전성이 있는 무예가 아닌 수도(修道)의 길인 태극권, 팔괘장에 대한 격투 기법으로의 효용성을 둔 접근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양인은 동양의 관점인 수양으로 다가서며 동양의 정신을 배우려 하는데 동양인은 서양의 관점인 효용으로 접근하며 동양의 정신을 폄훼하려 한다. 참 수긍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싸워서 이기는 기술 배우겠다고 태극권, 팔괘장을 배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마음의 안정과 심신의 수양이 목적하는 바이기에 다른 무예가 아닌 이런 무예들에 다가섰을 것이다. 수양하겠단 사람에게 왜 실전성이 없느냐고 묻는 것도 넌센스가 아닌가 싶다. 태극권은 움직임마다 기를 운행한다. 이것은 기공(氣功)이기도 한 것이다. 건신과 수양에 실전성을 논한다는 접근이 우습기도 했다. 의식으로 다가설 대상에 왜 살상력이 없느냐는 건 애초에 접근 경로가 아니었던 거다.

 

알렉산더 테크닉도 펠덴크라이스의 ATM도 결국에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라는 게 편안한 자세와 동작이기만 하다 해도 자연히 의식의 변화가 더해지는 과정이니 몸이 불편할 때만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할 때도 다가서볼만한 치유기법이라고 생각된다.

 

본서가 저술된 연대가 1970년대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동양의 전통과 정신에 서양인들이 동경과 흠모를 품던 때였으니 이 즈음 창시된 서양 치유기법들에서 동양적인 향취가 느껴지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저자는 분명 동양적 인식과 통찰에 서양의 논리적이고 체계적 관점을 더해 이 기법을 창안했다. 동서양의 융합이자 통합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본서는 반세기 전인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독자층을 유입하는 저작이라고 한다. 예전 리뷰한 서양인이 집필한 요가 호흡법에 관한 책 중에는 한 세기 전의 책도 있기는 했지만, 반세기를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다는 것도 그마만큼 변치 않는 가치와 정신이 담겨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본서를 읽으며 독자들의 변치 않는 니즈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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