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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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거꾸로 읽는 지구의 역사


왜 주제가 멸종인 걸까?


저자는 멸종이라는 주제로 한국적인 그리고 저자만의 스타일로 빅히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왜 멸종이란 주제여야 했을까 싶기도 했는데 [잔혹한 진화론]에서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 님이 죽음이라는 주제로 진화론의 이야기를 펼치며 누구에게나 명백한 현실일 주제로 진화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듯 본서의 저자 이정모 님도 멸종이라는 강렬한 주제로 빅히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중에게 빅히스토리의 의의의 하나를 선명히 전할 수 있다고 믿어서인 듯했다. 저자가 전하는 멸종의 의의는 한 종의 멸종이 다른 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순환으로서 바라보며 지구 내 생명체의 역사 전체로 크고 넓게 시야를 확장하게 한다.


기발하고 재치 있는 해설


저자는 가상의 미래 2150년 인류 멸망 이후에서 시작해 2050년 화성에 테라포밍을 시도하는 있을 법한 가정으로 환경에 적응을 너머 변화시키며 개척하려는 과정에서부터 서술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부터 환경의 변화가 생물종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부빙이 사라져가는 이야기로 생물종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작은 인공지능 그리고 화성 탐사로봇 그리고 범고래와 펭귄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다. 점차 시대를 거슬러 오르며 네안데르탈인, 공룡을 거쳐 끝내는 바다와 달의 대화에 이른다. 이들이 각자가 그 시대의 주역으로 환경의 변화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도태되어 결국 멸종에 이르렀음을 서술하고 새로운 종들의 탄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 탄생의 비밀까지 재치 있고 기발한 서술로 전하고 있다.

저자는 시대를 역순으로 거슬러 오르며 각 진화의 정점에서 하나의 생물종이 멸종해 가는 이야기로 빅히스토리를 쌓아나간 것이다.


다만 과하다고 여겨진 것은...


저자는 여러 박물관장을 거치고 과학기술 훈장 진보장을 받은 인물로서 대중에게 과학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해온 인물이다. 빅히스토리를 그리며 환경변화가 생물종의 멸종을 불러온 과정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을 직시하신 분이다 보니 현재의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부차적인 효과도 저술에서 노리신 것 같다. 다만 과하다고 여겨진 것은 전 세계 몇천 명에 이르는 과학자들은 지금도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고 그들의 저작을 읽어보면 현재의 기후위기가 근거가 조작되고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재의 환경문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관점만으로 저술의 배경을 삼은 것은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히스토리 속에서 환경이란 생물종에게 지대한 영향을 행사해왔기에 환경을 우려하는 시선이 그릇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빅히스토리를 국내 저술로 만나본다는 의의


본서의 소개에서 이정모 관장님을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런 소개가 전혀 과찬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필력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소설보다 재미있고 다큐보다 감동적이다!”라는 책 소개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정도 필력은 타고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까지 하다. 물론 유익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을 자연사를 어떻게 독자들에게 깊은 감상으로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저자의 고심도 깊게 느껴지는 책이다. 빅히스토리를 한국인 저자의 책으로 만나볼 기회 그리고 자연사를 지루하지 않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들어볼 기회를 많은 분들께서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찬란한멸종 #이정모 #다산북스 #도서협찬 #빅히스토리 #자연사 #진화 #멸종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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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8-20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읽고 싶네요! 소개 감사해요~

이하라 2024-08-20 11:17   좋아요 0 | URL
끌리만 한 책이에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무, 최고의 상태 - 인생의 통증에 항복하는 삶의 기술
스즈키 유 지음, 부윤아 옮김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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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무는 무아를 이야기한다. 일본의 사이언스 라이터라는 저자는 16세부터 무려 5000편의 논문을 독파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을 일상에서 유용하게 적용할 방법들을 강연하고 저술하고 있다고 한다. 본서에서도 여러 연구가 저자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자기라는 것은 규정지을 수 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고정된 나는 없으며 그럼에도 자기를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원시 시대부터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불안정하고 역동하는 원시 세계에서는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하고 생존에 유효한 데이터만을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대상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나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고정하고 규정하는 단순화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투쟁-도피 반응이 유효했던 원시사회에서는 유효한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이런 지나친 단순화가 자신을 더 알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불안으로 내몰게 된다는 게 저자 주장의 요지 같았다.

 

본서에서는 나라는 상이 만드는 혼란과 투쟁-도피 반응으로부터 야기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다양한 심리기법과 수행방식들이 제시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라는 상을 타파하기 위한 철학적 논서가 아니라, 무아의 일상에서의 유용성을 주장하고 무아로 돌아가는 실천법이 담긴 실천서에 가깝다. 물론 지적인 대상으로 독서하기에도 적합한 책이긴 하다. 하지만 일상과 업무에서 불안과 두려움과 혼란과 부조리를 크게 느끼는 분들이라면 본서의 실천법들을 통해 삶의 어지러움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감상이 크게 이는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무아를 연구하고 천착해온 역사는 오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대중에게 무아가 적용되기 적절할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서와 또 같은 주장을 담은 여러 저작들과 같은 이 시대의 이점을 잘 활용하셔서 나라는 상이 주는 부담과 불안과 혼란에서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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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요가
이태영 지음 / 여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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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요가의 모태인 탄트라를 나는 그저 수행체계와 수행 전승의 하나로만 바라봤는데 tantra의 의미는 날실과 경전을 말한다고 한다. 씨실을 의미하며 경전을 이르는 다른 말인 sutra와 대칭을 이루는 표현이었다. 씨실이 베틀에서 세로줄을 이루며 한 가닥씩 열을 이루고 날실이 그를 한 올씩 가로지르면서 가로로 나아가며 면을 만들 듯이 수트라와 탄트라의 역할도 그와 같은 것이구나 생각되기도 했다. 탄트라는 수행체계이기도 하니 수트라와 탄트라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 거구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실천과 수행을 수트라와 탄트라가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감상도 갖게 되었다.

 

또 탄트라에 대한 추가 설명으로 비밀스런 요가적 행법, 신들에 대한 찬가, 의례, 제사 의식 등의 종교 행위와 연금술을 비롯한 화학, 의학, 천문학 등의 자연 과학, 그리고 요술, 주술, 복점 등의 신비 사상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이기까지 하고 있다.

 

탄트라에 대해 수행으로만 접해 봐서 개념이 주먹구구로 잡혀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강을 알게 되었다.

 

본서는 쿤달리니 요가에 대해 한의학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쿤달리니 증후군이라는 부작용(중국 기공식 표현으로는 편차’)에 대해 그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마음장상이라는 불용성 위축도 극단적인 수준의 생식기 축소로 이루어질지 몰랐었는데, 리 샤넬라 님의 [신비의 쿤달리니]를 읽은 후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고 이런 내용까지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읽은 [, 최고의 상태]에서도 명상 수행을 주기적으로 수행한 집단에서 이타적 감정과 행위가 감소하고 자아의식이 극대화되었다는 연구에 관한 내용을 듣고 충격이었다. 수행이 긍정적 영향을 더 준다는 믿음이 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같은 책의 다른 장에서는 관찰 수행과 연기성에 집중한 수행을 한 집단은 이타적 행동과 정서가 500% 향상되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상반되는 두 연구 결과로 보자면 명상과 수행도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서 또 얼마나 수행력이 깊으며 전문가 집단인가에 따라서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본서의 다른 장들은 쿤달리니 요가 행법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꾼달리니 딴뜨라]와 그 전작을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면 실수행으로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수행 횟수와 시간의 분배에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본서는 수행 방법들만을 소개하고 실수행은 스승의 전문적인 가르침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저자가 스승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들도 이어지니 당연한 감상이 아닌가 싶다. [꾼달리니 딴뜨라]라는 책에서의 꾼달리니 운행은 도가적 표현으로 역주천이다. 상식적으로 익숙한 수행체계로 수행하고 싶다면 [꾼달리니 딴뜨라] 수행 중이나 이후에 본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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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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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생태학자, 동물행동학자이자 국내에서는 개미에 대한 강연과 저작들로 잘 알려진 학자이신 저자분은 국내에서 박물관장으로 정부 부처의 자문으로 사회운동가로 활동해 오시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첫 단락은 저자분의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로 한 명의 학자이자 인간으로 성장해온 저자의 과거를 통해 사람의 생이라는 게 노력과 함께 운명적 흐름도 깊게 영향을 주는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 한다. 저자분의 생의 지점들마다 주어진 우연들이 저자분의 인생을 만든 운명이 되었다는 자신의 설명과 그 설명을 따르며 그런 감상을 갖게 된다.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주어지는 요소들이 사람이 느닺없이 갖게 되는 결심만인 것이 아니라, 그의 생의 저변을 이루는 경험들을 통해 갖춰지듯, 자신의 선택들에서도 우연인 듯 주어지는 요소들과 선택의 기로들이 운명적으로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통해 갖는 감상과 다름없지 않나 싶다. 미성숙한 인간은 자신만을 보기에 자신의 의지니 노력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만을 하겠지만 자신만이 아닌 모든 영향력과 요소들을 넓게 보다 보면 노력이니 의지니 하는 것의 근원이 운명이었음을 또 그 의지와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그다지 크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 단락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곤충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우지만 인간 이상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곤충들이 있으며 농사, 목축, 낙농, 건축, 분업, 전쟁, 영토확장, 사회 형성, 노예 육성 등을 통해 살아가는 개미와 또 그와 유사한 벌의 삶은 보며 인간의 삶의 모습이 그다지 위대한 지배종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헌신과 희생의 면은 곤충이 더 위대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은 여왕개미가 임신하고 돌아온 공주개미를 위해 벌집과 일벌들의 절반을 남겨주고 집을 찾으러 나가는 분봉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결혼하는 자식을 위해 집을 장만해 주는 부모의 헌신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벌들은 이보다 더하지 않느냐며 극찬을 하기도 한다. 그저 삶의 양식의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씀에 약간은 공감하기도 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저자분은 이 책 전반의 이야기들을 종합하고 환경문제를 더하며 공진화를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사회와 자연이 다 함께 성장과 풍요를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이다. 나로서는 인간의 영향이 극단적인 영향을 미쳐서 환경파괴가 시작되었다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믿지 않기에 저자분의 말씀의 모든 부분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다 함께 살아가자는, 함께 진화해 나아가자는 말씀에는 적극 공감했다.

 

본서는 생태학만이 담기기보다 한 사람의 생의 몇 대목을 담고 있기도 하고 곤충의 삶을 공감하고 그를 통해 성찰할 기회도 되며 아울러 자연과 함께 나아가자는 감상까지 갖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가져지는 책이다. 지식과 성찰과 지혜가 어우러진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분이 구어체로 일상의 이야기들을 토로하는 투로 저술하신 책이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교훈과 조언과 성찰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찾으실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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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결 - 근본적 붕괴의 시대와 아웃사이더의 부상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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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를 읽으며 저자에게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반감이 이는 대목들도 있었다. 저자의 시각은 현시대를 직시하면서도 또 그녀의 신념으로 채색되어 삐뚤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 자체가 삐뚤어지다 못해 뭉그러져 있기에 좌측으로 삐뚤어진 그녀만이 그릇되었다고 보이지만도 않는다. 이 시대는 좌측이면 우측에게 우측이면 좌측에게 중도이면 좌우 다에게 욕을 먹는 시대가 아닌가? 편향과 갈등과 충돌이 일상이며 정상이 되어버린 시대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선에서 공감할만한 구석도 보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이야기는 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한국이든 유럽이든 동아시아 어디에서든 이 시대를 바로 짚은 것으로 보일 시각도 있다. 그건 이 시대를 위기의 시대로 보는 시선이다. 이 시대를 19세기 미국의 산업화 시대를 일컫는 도금시대로 보거나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현재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얼핏 시대에 대한 대다수의 해석과 다르지 않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3차 세계대전 직전의 현재가 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도금시대나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시대를 현재와 비교하는 건 식자인 저자의 박학이 불러온 시선일 것이다. 명확히는 이 시대만큼 편향과 갈등과 충돌이 극대화된 시대는 과거에도 거듭되었을지 몰라도, 이 시대만큼 좌우로 갈려 날선 대립을 하는 기세가 사회 전체에 만연하고 팽배하며 대중과 정부가 어우러져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인지 모호하게 유도하는 시대, 진정한 올바름이 무얼지 대중 전체를 혼란과 부조리에 빠뜨리는 시대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있었을지 의혹이 이는 시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웃사이더가 나설 시대라고 아웃사이더 예찬론을 펼치기도 한다. 한마디로 비주류의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유명인으로는 스티브 잡스나 대다수 한국인에겐 생소한 사회 운동가를 예로 들기도 하고 시대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류 문학가들과 여성 학자들을 예로 들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예의 결론은 이 시대가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완곡하게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나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치를 떠는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들리기도 한다. 현재 미국 안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데 그녀는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절규이자 슬로건을 낙태 옹호와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지지받아 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소수자 문제는 이미 비주류의 안건도 아니며 이들은 민주당 정권 내에서 주류로 발돋움해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공직들을 차지하였고, 캘리포니아 주로 기억하는데 아니라면 어느 주에서인지 소수자들이 주 의회의 요직을 장악해 한국식 표현으로는 아동 성폭력 정석대로의 표현으로는 아동 강간 및 아동 성추행과 관련해 단지 몇 개월의 형량과 몇만 달러의 벌금을 더해서 부과하자는 주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등 물의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소수자들이 법률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동 성폭력에 관한 처벌을 강화할 때 소수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뭔 미친 주장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아동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면 성소수자가 피해를 본다는 말은 곧 지들이 아동 성폭력범들이라는 걸 자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리고 미국뿐만이 아니고 남성이 성전환도 없이 버젓이 생식기를 달고도 올림픽 여자 수영선수로 출전이 가능하고 성전환하면 여성 배구선수로 출전해 스파이크로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던 선수의 뇌 손상과 경추 골절을 일으키는 상황 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차별을 없애자는 것도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본다.

 

정치적 올바름이 진짜 올바르게 시행되려면 좀 더 숙고의 과정을 거친 정책들이 펼쳐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주류가 되어버린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모럴의 혼란과 부조리를 야기하는 정책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말처럼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 세상을 선도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꿈 같은 현실을 불러오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되려 모럴의 혼돈과 부조리 속에서 대중은 더욱 공정이란 무엇이고 평등이란 어떻게 세워나가야 하는지 혼란과 갈등과 충돌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미국 민주당이 야기한 것은, 미국 단극체제의 패권을 위태롭게 하고 대다수의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며, 대중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안주할 모럴의 기준마저 잃은 카오스의 세상으로 세계를 밀어 넣은 것 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허언만으로 민주당과 똑같은 결의 세상을 가져다줄 트럼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미국도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도 결국에는 혼란과 갈등과 충돌 속에서 어떠한 빛도 찾지 못할 부조리로 좌절하고 말 것이다.

 

저자와 같이 답을 알고 있는 체하면서도 대중이 빠진 두려움과 망설임과 혼란을 해소하기보다 더욱 강화하는 식자들이 많은 건, 이 시대까지의 상식과 이 시대를 지탱하는 정의를 내세우는 이들 속에서 어떠한 답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답이 아니라면 카멀라 해리스는 과연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녀 역시도 민주당의 편향을 이어갈 또 한 명의 삐뚤어진 인사일 뿐일 것이다. 그녀 역시 미국 전투기 구입비용의 장부상의 거대한 오차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부패하고 위선적이고 삐뚤어진 인물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가리지 않고 가득하다는 걸 증거하는 인물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적 기준대로 살아가자는 사람들과 사회적 기준이 잘못되었으니 비주류가 바꿔나가자는 새로운 기준 맞다는 사람들이나 각자의 관점에서는 각자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올바름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할 때는 각자의 올바름일 가능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미국이든 세계이든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넘어선 대립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의라는 명분을 찾으며 나와 너로 나눠지니 별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는 한편으로 기울어지기보다 새로운 중도를 타당하고 설득력있게 납득시킬 대안이 필요하다. 이런 대안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치코 가쿠타니 같은 사람들는 그저 편향을 옹호하는 쪽이다. 전쟁과 갈등의 줄다리기에서 한쪽의 줄을 당기고 있는 사람이고 그 줄을 끊고 새로운 룰과 기준을 제안하는 이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는 낙태를 옹호한다. 그것이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자유라는 민주당측의 주장에 옳은 면이 있다해도 낙태옹호론자들은 6개월에서 8개월의 태아가 살아남으려고 낙태 수술용 도구를 태내에서 몸을 사리고 움츠리며 피하려다가 토막 살해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여성의 신체적 자유만큼이나 생명도 소중하다는 공화당측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편향이다. 그냥 한쪽으로 기울어 수긍할 말에도 귀를 막는 것이다. 편향에서는 올바름을 찾을 수 없다. 그저 각자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상대의 말에는 귀를 막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를 찾으면 대중이 수긍할 만하다.

 

그녀와 같은 다른 식자들은 백신 음모론, 음모론, 가짜뉴스 등에 대해 비판하며 그에 관련한 저작물들까지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백신 음모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미군의 통계가 백신 사망률 증가를 통계로 내놓자 미군은 이전 통계가 느슨했다며 백신 보급 이전의 통계를 수정했다. 미국 보험사의 미국 근로자 사망률과 발병률 통계도 백신 음모론이라는 주장을 무색케 했다. 아스트라제네카사는 자사 백신의 치명률과 부작용이 논란이 될 시점에 백신 제조 승인을 철회했으며 화이자사는 치명률과 부작용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 등 각국 정부에서 청문회를 통해 책임 추궁을 당했다. 미국 법원이 화이자사에게 공개를 명령한 문서 정보의 공개로 화이자 백신의 치명률이 3%라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0.01~0.1% 정도이다. 10000명 중에서 1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 10000명 중에서 10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 10000명이 접종하면 300명 이상이 죽는 약을 꼬박꼬박 먹인 것이다. 접종하고 살아남은 다수가 부작용에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은 정부와 공중파 언론이다. “접종을 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것이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적을 것이다. 만약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정부가 책임질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접종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파자가 된다.” 이 모두가 거짓이었다. 미국의 질병청인 CDC에서는 백신 보급 초기에는 접종 후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고 소개하다가 이후 집단 면역은 형성되지 않지만 재감염을 방지한다고 했고 이후에는 재감염을 방지하진 못하지만 증세를 완화한다고 소개했다. 점점 백신의 약효를 낮춰갔던 것이다. 게다가 이 백신이란 건 mRNA 기법으로 지어진 것으로 체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단백질을 생성하기에 특정시기에는 진단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런닝맨]이란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가운데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송지효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가 그 증거이다. 접종을 하고 나서 특정기간 내에는 접종을 한 사람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는 것이다.

 

또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 미국 정부와 미국 언론 매체였던 또 하나의 경우는 미국 정부는 코로나 전파 초기에 코로나19자연 전파되었지 연구소를 통해 전파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연구소 전파설을 말하는 모두를 가짜뉴스 생산자로 몰았다. 하지만 현재는 연구소 전파설이 정설이 되었다. 미국 정부가 정보부처를 통해 입수한 믿을 수 있는 정보라 공언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백신 음모론의 하나로 몰리던 미국 CDC가 우한 연구소에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당시의 낭설과 사람에서 잘 감염되도록 코로나 바이러스를 변이시키는 기능획득 연구에도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음모론적 낭설이 모두 낭설이 아닌 사실이었음이 미국 청문회에서 공개되어 미국 전역에 전파를 탔다. 그 이전의 청문회에서는 NIAID(미국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가 백신제조사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는 게 사실이냐 액수가 얼마냐는 청문회 질의시간에 파우치 박사는 법적으로 그 액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며 액수를 밝히라는 미의원의 강요에 청문회가 중단된 바가 있다. 하나 같이 음모론 같은 이 이야기가 백신 음모론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증거하게 되고 말았다. (백신 음모론 같은 실제 사실들은 이미 한국의 많은 유투버들이 해당 각국의 뉴스를 유투브 영상으로 공개한 상태다. 다만 유투브 정책상 백신 관련 영상은 삭제되는 경우가 많아 유투버 점점더 님 같은 경우에는 럼블이라는 매체에 영상을 남겨두고 있다.)(음모론에 대해서까지 언급하면 본서의 주제와 관련 없기도 하고 분량이 상당해질 것 같아서 음모론에 대한 논란은 다음에 다른 포스팅으로 전하고자 한다.)

 

본서의 저자도 그렇고 식자들 대부분이 음모론, 백신 음모론, 가짜뉴스라는 어휘를 해당 사안들에 대해 전혀 고려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밈으로써 악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편향을 강요하고 납득시키려 할 때는 아웃사이더론같은 비주류가 주류가 될 거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주류가 되어야 할 비주류라면 좌측이든 우측이든 한측으로서의 편향이 아닌 통합할 수 있는 중도주의자여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역시 편향이라고 한다면 말을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마지막까지도 말했듯 이 시대는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이 심대한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는 기존의 기준을 깨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기도 하지만, 실제 지금의 현실을 겪어보는 사람들이라면 공감보다는 반감을 더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을 더욱 극대화하다 못해 더더욱 부조리한 세계로 만들어 버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무속인 말에 대한민국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지도자도 아니고 기껏 25만 원짜리 환심을 사서 자신의 범죄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려 하는 지도자도 아닐 것이다. 통합하고 중도를 걸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주류에서든 비주류에서든 찾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실제적이고도 심리적인 안전과 안정을 가져다줄 인물이 지도자인 세상이 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한측으로 기운 저자의 견해를 따라가다가 자신만의 숙고를 다시 할 여지를 가져다주는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런 까닭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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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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